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명로진 지음 / 타임POP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명로진 / 타임POP 

내가 언제부터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중학교 1학년, 처음으로 백일장에 짧은 글을 하나 출품했다. 시라는 장르로 구분되었고 교내 1등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처음으로 '내가 글쓰는 데에 조금 소질이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소설가,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품고 살던 시절에는 참 행복했었다.
매일 밤마다 백지와 연필을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잤다. 가끔은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 몇 글자 끼적이다가 다시 잠을 자기도 했다.
백지를 조금씩 메꾸어 가다보면 스스로 생각해도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글도 만들어지고, 가끔은 나 자신에게서 나온 글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그런 글을 쓰기도 했다.

글을 쓰겠다는 꿈을 포기한 후로 나는 제일 먼저 머리맡에 놓아두던 백지와 연필을 치워버렸다. 가끔 제법 그럴듯한 문장이 떠올라도 무시하고 넘기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공책을 펼쳐들고 무언가 쓰고 싶었는데, 한참을 망설이며 담배를 피워 물기도 했지만 결국 아무런 글도 쓸 수 없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적어 내려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말 그대로 막막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멀어져버린 나의 꿈을 다시 일깨워 준 사람은 나의 딸 수민이었다.
"아빠는 꿈이 뭐야?"라는 지극히 단순한 호기심으로 던진 질문이 그것이었다.
'내 꿈?' 마흔을 넘긴 아빠에게 묻는 질문치고는 참 천진난만한 질문이 아닐까?
그 순간 떠오른 모습은 뾰족하게 잘 다듬은 연필과 빈 백지였다. 그 앞에는 까까머리를 한 열 서너살 시절의 내가 앉아 있었다.  

먼 길을 돌아서 다시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글을 쓰는 순간은 행복하니까..., 내 가슴 속에 감춰두고 있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급한 건 거칠고 털털거리는 글솜씨를 다듬는 것이었다. 그래도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는 제법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들었고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대신 써준 것만 해도 꽤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젠 쓰면 쓸수록정나미가 떨어진다.  
마음이 조급해지기는 하지만 별 수 없다. 써나가는 수밖에... 

글쓰기에 대한 책들도 읽기 시작했다.
국내외 작가들의 다양한 책을 만났다. 대부분 같은 말을 한다.
일단 써라. 무조건 써라, 쓰고 또 써라...

얼마 전,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을 읽었다.
모두 서른개의 꼭지로 글쓰게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그동안 성인들을 대상으로 '인디라이터'라는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면서 현장에서 파악한 문제점들을 분석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나 역시 인디라이터 과정을 수강했었고, 매주 일정 분량의 글을 제출해야 하는 무지막지한 부담감을 16주라는 기간 동안 겪었던 경험이 있다. 그런 경험을 세 번이나 했다. 인디라이터 정규과정을 두 번, 인디라이터 심화반 12주까지...
정말 희한한 것은 그렇게 제출했던 숙제들로 인해 내 거칠고 황량하기만 했던 글이 제법 다듬어졌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강좌를 진행할 때, 누군가에게는 글을 더 많이 쓰라고 했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책 한 권을 선물하며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베껴 써보라'고 권했었다.
수강생 하나하나에 대한 맞춤식 처방이었던 셈...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때가 생각나는 것은 강좌를 들을 때 수강생들에게 하던 그 목소리가 그대로 담겨있어서일 것이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그대로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글쓰기에는 특별한 비법이 따로 없다. 아니다, 특별한 비법이 있다. 바로 열심히 쓰는 것. 그리고 잘 쓰여진 누군가의 글을 그대로 베껴쓰는 것, 그렇게 그 멋진 글을 내 손으로 다시 써보는 것.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내 방 책장을 주욱 훑어보았다.
그리고 오래되어 표지도 제법 낡아버린 책 한 권을 빼들었다.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신영복 선생님이 수감생활 20년 동안 틈틈이 썼던 서간문을 비롯한 다양한 글을 모은 책이다.

펜꽂이에서 오래도록 쓰지 않았단 만년필도 꺼내어 검정색 잉크를 채웠다.
표면이 고운 종이는 사각거리는 느낌이 덜 할 것 같아서 재생지로 만든 노트를 한 권 펼쳤다.
어차피 시작하는 베껴쓰기인데, 기왕이면 내 악필도 고쳐보련다.

첫 페이지를 펼쳐들고 베껴쓰기 시작했다.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 - 신영복
고성(古姓) 밑에서 띄우는 글
- 남한산성 육군 교도소 1969년 1월 ~ 1970년 9월

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겨울의 싸늘한 냉기 속에서 나는 나의 숨결로 나를 데우며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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