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없는 세상
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없는 세상 / 엘런 와이즈먼 / 이한종 / 렌덤하우스

이 책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인류가 사라진다면 지구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황당한 문장을 화두로 던지고 시작한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날한시에 쏙 빠져나가버린다고 가정하면 이 지구는 그 날부터 어떻게 변할까?
생각해보니 꽤 그럴듯하고 재미있는 가정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보는 중에 우연찮게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을 볼 기회가 있었다.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이 영화는 우주에서 외계인이 지구인들을 없애기 위해 날아온다. 그 영화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이런 말을 한다.
“지구가 멸망하면 인간도 사라지지만 인간이 사라지면 지구는 살 수 있다.”
어쩌면 이 말이 이 책의 가장 큰 주제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저자 엘런 와이즈먼은 유명 저널리스트이고 애리조나 대학의 국제저널리즘 교수라고 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해 그는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를 비롯하여 폴란드-벨로루시 국경 원시림, 터키와 북키프로스의 유적지, 체르노빌, 미크로네시아, 아프리카, 아마존, 북극, 과테말라, 멕시코 등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직접 취재를 했다고 한다.

이 책의 중간쯤에는 우리나라 비무장지대를 취재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외국 사람이 쓴 책에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과 지명 등이 나오니 꽤 눈길을 끈다.

그는 저자 서문에도 우리나라 비무장지대를 취재한 소감에서 50년이라는 세월동안 방치된 그 곳에서 ‘인간없는 50’년이 주는 감동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쨌든 저자는 인간이 사라지고 나면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인간이 별 큰 고민 없이 만들어서 사용하고 버리는 각종 쓰레기라고 말한다.
플라스틱과 고무류 등의 각종 화학제품들은 인간이 사라지고도 한동안 이 지구를 뒤덮고 있을 것이며 어쩌면 그로 인해 인간 이전의 세상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말을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시간의 단위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 인간이 지구상에서 존재하는 시간은 길어야 백년 조금 넘어선 그 언저리다. 하지만 그 정도의 기간을 살고 떠나는 인간들이 이 지구에 뿌려놓은 온갖 화학제품들은 인간이 사라지고도 오래도록-몇 십 년이나 몇 백 년 수준이 아니다. 몇 천 년에서 몇 만 년, 아니 그 이상의 사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남아있을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사라지고 나면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이 전기 공급에 의해 유지되는 온갖 장비, 기기, 그리고 발전소와 같은 거대한 시설들이다.
핵연료를 다루는 시설들, 댐과 같은 거대한 물막이를 조정하는 기기들이 모두 전기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이 사라지고 이런 것들을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면 제일먼저 시작되는 것은 밤의 암흑이다.
도시의 모든 건물은 일주일에서 길어야 몇 달, 몇 년 수준이면 전기가 끊기게 되고 밤이면 암흑이 찾아올 것이며 전기 공급의 중단은 앞서 언급한 시설과 설비의 가동 중단을 가져온다.
그렇게 되면 핵은 터지거나 노출될 것이고 방사능은 지구를 오염시킬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그는 체르노빌까지 직접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지구 곳곳에서 물을 막아두고 있는 온갖 댐들은 결국 물이 넘쳐흐르다가 터져버릴 것이고 그렇게 온갖 난리가 지구를 흔들게 될 것이라고 한다.
사방에서 상상할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불을 끄겠다고 나설 수 없으므로 엄청난 수준의 비가 내리거나, 더 이상 탈 것이 없을 때까지 화재는 지구를 휩쓸 것이라고 단언한다.
지구의 이쪽에서는 초대형 화재로 사라지고, 반대편에서는 거대한 댐이 터져서 물난리가 날 것이다.
사람이 키우는 애완동물은 제일 먼저 야생동물의 먹이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온갖 비극이 지구를 휩쓸고 난 다음에 이 지구는 다시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체르노빌, 최악의 핵폭발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는 그 도시를 다녀온 저자는 방사능에 의해 초토화된 도시를 취재하면서 희망을 보았다고 한다.
도시 전체가 사람이라고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건물과 시설들이 멈춰버린 그 곳, 나무와 풀들이 타버리고 방사능에 고사하고 만 그곳에서 그는 새로 시작하는 생명을 보게 된다.
절대 복구될 수 없던 체르노빌은 사람이 떠나고 나니 스스로 알아서 생명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다큐멘터리 영화 [인류 멸망 그 후]라는 작품에서 영상으로 확인을 했는데, 죽어버린 나무, 시커멓게 타들어간 흙과 돌 사이로 새로운 싹이 돋고, 무언지 모를 동물들이 살고 있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악의 사고를 내고 도망가 버린 인간의 무책임함을 비웃듯이 체르노빌의 생명은 꿈틀거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책의 결론은 이렇다.
인간이 사라지고 나면 오래도록 이 지구는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그게 얼마나 오랜 시간일지는 저자 스스로도 단언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몇 만 년 이상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지구는 인간이 없는 새로운 세상이 되어 있을 것이고, 인간 이전의 세상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겠지만 여전히 꿈틀대는 생명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내용이 있었다.
인간이 없어지고 나면 과연 이 지구에 인간이 있었던 흔적이 얼마나 오래 남아 있을까?
만일 또 다른 지적 생명체가 진화를 통해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날이 온다면 그 때의 그 지적 생물체는 과거에 인간이라는 종이 살았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인간들이 사용하는 모든 것들, 컴퓨터니 뭐니 하는 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기록매체들은 절대 오래도록 남아있지 못할 것이고 우리의 기록을 보존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이렇게 문명을 발전시켰는데, 점토판에 새긴 상형문자만큼 오래도록 남길 수 있는 저장매체는 없다고 한다.
피라미드와 같은 고대 건축물처럼 오래 갈 건물도 없을 것이고, 따라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장은 미래에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화학제품들마저 모두 분해되고 말 그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아마 인간이 살았던 흔적은 전무하다고 말해도 될 만큼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미국의 그 대통령 네 명의 얼굴이 새겨진 바위산, 그 조각은 어쩌면 그 오랜 세월을 견디어낼 것이라고 한다.
그 바위의 재질은 화강암인데 이게 마모에 대한 내구성이 꽤 세다고 한다.
만일 벼락이나 뭐 그런 게 떨어져서 조각을 내버린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바위산은 그 오랜 기간 동안에도 마모되는 양이 생각보다 적어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걸 대단하다고 감탄해야 할지, 그토록 깊게 팬 흔적이 안타깝다고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글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만일 새로 출현한 지적 생명체가 그 바위산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냥 자연의 일부로 생각할까?
아니면 신의 모습?
어쩌면 저렇게 생긴 사람들이 과거에 살았었다는 걸 알아챌까?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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