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역할의 경계를 넘어서
이윤주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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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할의 경계를 넘어서 - 이윤주 / 한국학술정보

[셰익스피어 극에 등장하는 남성적 여성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성역할의 경계를 넘어서’라는 책을 읽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려 한 이유는 딱 하나다.
내가 요즘 쓰고 있는 글이 있다. 그 글을 쓰기 위한 자료를 찾고 읽고 있는데,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이 책이 결과페이지에 소개되었다.
자세한 책 소개를 읽지 못하고 제목만으로 이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책 두께나 디자인, 편집 수준에 비해 가격도 그리 가볍지는 않다.

그래도 셰익스피어라는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의 남성적 성향을 소개하고 분석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신선하게 느껴져서 읽어보기로 결정했었다.

조금 성급하지만, 결론을 이야기하라면 [책값이 너무도 아깝다.] 라는 말로 대신하겠다.

책을 사기 전에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려 했지만 그리 상세한 리뷰를 찾을 수 없었다. 서점에서 이 책을 찾았다면 아마도 절대 사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지만 어쨌든 사버리고 말았으니...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넷을 분석하고 있다.

첫 번째는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포오샤
두 번째는 [리어왕]의 거너릴과 리건
세 번째는 [맥베스]의 마녀들과 멕베스 부인
마지막으로 [헨리 6세]의 죤과 마가렛

그리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아마 이 책은 저자의 논문을 출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선, 책의 목차와 전개방식, 그리고 참고문헌을 인용하는 방식 등에서 전형적인 논문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저자의 이야기 진행에서 느껴지는 전형적인 남성비하적 시각과 상대적으로 우월하게 그리려 애쓰는 여성비상(?), 그리고 자신만의 독특한(이라고 쓰고 이기적이라고 읽고 싶다.) 시각으로 바라본 왜곡된 성 역할의 정의.
뭐, 저자가 여성이고 남성 우월주의를 타파하고자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그런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이런 식의 해석도 가능하긴 하겠다.

내가 이 책을 보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점이다.
우선, 저자가 선택한 것은 [소설]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셰익스피어라는 단 한 사람의 작품, 그 중에서 위에 적은 네 권 이외에도 많은 책이 있는데도 저 네 권만을 선택했다는 것.

물론 저자는 왜 하필이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인지, 그리고 저 네 권만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밝히기는 했다.

서론의 앞부분에 이런 글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극작기가 바로 성 역할을 파괴하고 부정하는 위협적 여성들인 남장 여인과 여인전사(Amazon), 그리고 잔소리가 심한 여성들에 대해 폭발적 관심이 쏠리던 시기였다고 지적될 정도로 셰익스피어는 어떤 작가보다 다양한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특히 전통적 성 역할을 거스르는 여성들의 면면을 극작품 속에 가장 다양하고 심도 있게 그려낸 작가다.]
문장이 너무 길어 조금 헷갈리기는 하지만 저자는 셰익스피어를 ‘전통적 성 역할을 뛰어넘는 여성’에 대한 글을 최고로 심도 있게 표현한다고 평가하는 듯하다.
이 책에서 나누는 기준은 아닌 것 같고, 어쨌든 여성, 특히 남성적 영역에 도전하는 여성을 넷으로 구분한다.
androgyne, virago, 마녀, amazon
뭐, 각각 두드러지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여성전사도 있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녀도 있고...

중요한 것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지는 저자의 남성관이 너무 부정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부정적 남성관, 그 남성관을 깨트리는 여성을 찾기 위해 이 네 작품을 선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떠나질 않는다.

물론 지은이의 말대로 셰익스피어의 이 네 작품에서 남성이라는 이미지가 부정적일 수도 있다.
그 부정적 남성관, 쪼다 같고 병신 같은 남성, 여성의 속삭임에 넘어가는 줏대 없는 남성이 세상의 모든 남자의 모습은 분명코 아닐진대 이런 식의 분석과 그에 따른 결론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더 중요한 것은 네 작품이 모두 [소설]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소설이란 그 발표된 시기의 세상을 풍자하고, 고발하고, 비틀고 꼬집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사서도 아니고 소설이라는 형식의 허구의 글에서 나타나는 것은 결국 작가의 편견일 수도 있고 오해일 수도 있다.
아무리 좋게 말하려 해도, 작가가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위해 얼마나 자료조사를 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현실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지은이의 해석이 얼마나 셰익스피어의 [집필의도]를 세세하게 집어냈는지 모르겠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이 책(이라 적고 논문이라 읽는다.)의 결론 첫머리에 이런 글을 볼 수 있다.
[근대 초기 영국은 경제, 정치, 인구 등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맞이 했는데 무엇보다도 이런 변화들 가운데 전통적인 성 역할을 거부하는 여성들은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문학은 여성의 남성다움, 남성의 연약함,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본질”에 대한 전반적 질문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는데, 이런 점은 또한 당대의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한 관념이 상당히 도전을 받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근대 초기 영국이라...
지금은 셰익스피어라는 작가가 활동하던 시기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 간극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지금도 읽히고 있고, 여전히 고전문학의 진수라고 평가받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없다.
하지만 문학작품이 위대하다고 해서 그 내용이 현실을 반영한다고 말할 수 없고, 작가의 정신과 사상이 그 시대의 보편적 반영이라고 보는 것은 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만일 지은이가 이런 식의 분석을 하고 싶었다면, 단지 셰익스피어라는 작가 하나, 그의 작품 달랑 네 개가 아니라...
시대별로 작가 하나와 그의 대표작 한, 두 권씩 잡아서 적어도 네댓 명의 작품 열 종 이상은 분석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사실 그렇게 분석을 꼼꼼히 한다고 해도 그 내용은 [시대별, 작가별 여성관의 차이와 그 이해]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의 작가와 같은 분석과 연구라면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도 가능하지 않을까?
[인류의 멸망과 그 후의 전개에 관해] - 헐리웃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미래 예측에 관하여- 라는 제목으로 [터미네이터 1, 2, 3, 4편]을 분석하는 것...
터미네이터 1편, 2편은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했고 3편은 조나단 모스토우, 4편은 뭐 아직 개봉도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맥지라는 감독이 제작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하나의 시리즈 영화로 각가 다른 세명의 감독의 작품을 분석하는 것이니 오히려 더 포괄적이고 현실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성 역할의 경계를 넘어서]라는 지은이의 주관적인 내용으로 꾸며진 논문을 이렇게까지 길게 말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살 때 참고할 자료가 별로 없었기에 이 책을 구입하는 실수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나처럼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도 한 사람쯤 있다는 것을 알고 구입하든 말든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나는 이 책의 지은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따라서 그의 다른 작품(이 있는지는 모르지만)에 대한 섣부른 평가는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 [성 역할의 경계를 넘어서]라는 책만큼은 별로 좋게 평가하게 되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을 하자면, ‘저자의 개인적, 주관적인 성적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셰익스피어]라는 대문호의 작품을 방패막이로 내 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고,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하는 말이야.’라고 말을 하면서 그 작품을 순전히 자신만의 색안경을 통해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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