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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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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ad - 코맥 매카시 / 정영목 / 문학동네
이 책을 구입하게 된 동기는 이렇다.
어머니께서 책 읽기를 참 좋아하신다. 그리고 수민이에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시며 특히 수민이가 공부할 때는 옆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신다. 물론 TV고 뭐고 다 끄고 조용히...
우리 집엔 책이 좀 많은 편이기는 하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두 권씩을 읽으시는 어머니의 독서량을 보자면 늘 읽을만한 책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가끔 서점엘 들르거나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할 때는 어머니께서 읽으실만한 소설도 몇 권 같이 구입한다. 물론 나 역시 짬짬이 읽고 있고...

이 책은 얼마 전에 동네에 있는 홈플러스에 생필품을 사러 갔다가 서적 코너에 놓여있는 것을 우연히 보고 구입했다.
띠지에 노란 색의 고딕체로 [감히 <성서>에 비견되는 소설!]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구 위, 아래로 2007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라느니 아마존과 뉴욕 타임즈의 베스트셀러 1위라느니 유명한 사람들이 선정한 소설이라느니 하는 소위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라는 문구가 가득하다.

이 책은 일단 어머니께서 먼저 읽으셨다.
소감을 여쭈어보니, 동양에서 말하는 ‘고행’, 또는 ‘진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서양식 해석이 아닐까 한다는 말씀을 하신다.

책을 펴 들었다.
그리고 조금 짜증이 났다. 요즘 영화로 개봉했다고 해서 다시 유명해진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책이 생각났다.
주제 사라마구가 쓴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을 때 조금 불편했던 것이 모든 문장이 그냥 주욱 주욱 적혀 있었다는 점이다.
물음표와 마침표 정도로만 구분되어있고, 대화든 설명이든 모조리 똑같이 취급하고 따옴표니 쌍따옴표도 없는 그런 문장, 게다가 아마도 등장인물의 이름도 제대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이 그와 같다.
그냥, 그 남자와 아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
이것도 최신 트렌드인지는 모르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어색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꽤나 불친절하다는 생각이다.
보통 소설이라고 하면 이야기 중간에라도 전후관계와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왜, 어떤 일이 있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었고 어쩌고 하는 설명이 전혀 포함되어있지 않다.
읽는 사람은 그냥 막연하게 ‘아, 뭔가 대단한 사건이 터져서 전 인류가 멸망하고 겨우 살아남은 몇 몇 사람은 생존을 위해 어딘가로 이동을 하는구나. 그리고 그 가운데에 이 등장인물이 있는 거구나.’라는 정도의 예상을 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사전지식도 설명도 없이 이 책을 읽어나가야 한다.

대형 마트에서 보는 큼직한 카트를 밀면서 해안가로 가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그들 앞에 펼쳐진 죽음의 세상.
그 가운데서 그들은 살기 위해 뒤지고, 시체를 넘어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과 마주치는 몇 명의 다른 생존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다른 이의 물품을 빼앗거나 훔치거나, 살인을 하고 가져가거나...
생존을 위해 아기를 꼬챙이에 꿰어 불에 익혀 먹거나...

그런 다양한 모습을 그냥 담담하게 적어내리고 있다.

마지막에 가서 남자는 죽고, 아들은 다른 생존자 집단과 함께 하게 된다.

중간에 아주 짧게 남자의 과거 회상에서는 이 재앙 이전의 가족의 모습이 등장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그냥 ‘등장하나보다.’ 정도 이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회상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냥 회색의 죽은 도시, 또는 무채색의 폐허 풍경화...

지은이가 글을 잘 쓴 건지 책장은 잘 넘어간다.
그리고 무언가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문장에 숨은 함의가 무엇인지 고민을 한다면 상당히 골치 아플 책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것과 관계없이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다면, 이런저런 생각 없이 그냥 읽겠다고 해도 책장은 꽤 잘 넘어가니 책 읽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다.

책은 읽는 사람의 감정과 상태에 따라 전달되는 의미가 여러 가지로 변화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저자의 문장을 이용해서 독자 개개인의 상상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전혀 다른 감동을 전할 수 있는 독특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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