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중국견문록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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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우리 집 거실 앉은뱅이 책상에서 날 보고 화사하게 미소지으며, 언제나 늘푸른을 술렁거리게 하는 바람을 몰고 오는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한비야! 다정한 언니가 곁에서 이야기를 해 주듯, 그녀의 메시지들은 때론 당차게, 때로는 격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거침없이 늘푸른의 나태한 정신을 번쩍 번쩍 깨도록 해준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책을 아주 아껴가면서 읽는다. 그녀는 내게 때로는 번개같은 메시지로, 때로는 톡 쏘는 콜라같은 메시지로, 때로는 시원한 바람 한줄기같은 메시지로 늘푸른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 <중국견문록>을 읽다 보니 아니나다를까 한비야, 그녀는 아주 다양한 별명들을 지니고 있었다. 갓 낳았을 때는 순둥이, 어렸을 때는 매일 어디를 싸다녀서 장돌뱅이, 고등학교 때는 확성기를 사용해서 내는 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 덕분에 인간확성기, 목소리만 들어도 톡 쏘는 것이 정신이 번쩍 난다고 해서 코카콜라,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해서 탱탱볼, 그리고 그녀의 대명사가 된 바람의 딸까지......

■ 그녀의 책 가운데서도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그대로 옮겨본다.

■ ~* 한비야의 일본인 친구 이쿠요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

어느 날, 이쿠요 아버지가 나에게 진지하게 물으셨다. 왜 한국에서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일본 사람들에게 사죄를 요구하느냐고. 이미 반세기 전의 해묵은 이야기를 잊을 만하면 꺼내냐고. 절대 따지는 투가 아니었다. 이런 사안에 대해 한국 사람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모든 문제는 일본이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데 있다고 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관계 개선, 즉 용서와 화해에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지요. 잘못한 사람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게 생각하며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야 용서해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이 용서하고, 그런 다음에게 화해가 있는 거죠.

잘못한 사람이 자기는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피해자가 그래도 나는 무조건 네 잘못을 용서한다 그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더욱이 가해자가 이미 다 지난 일인데 왜 용서 못하냐고 말할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 일본어 실력으로는 이렇게 중요한 말을 제대로 못할까 봐 이쿠요의 통역을 빌려 얘기했다.

나는 혹시 아버지가 기분이 언짢으셨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후에 아버지는 한국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고 한다. 결국 아버지는 못 오셨지만 이쿠요와 언니, 형부들은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차례대로 다녀갔다. 내가 한국에 돌아와 회사 다닐 때 이쿠요 아버지는 간염으로 병원에 계셨다. 점점 병세가 나빠지던 어느 날 이쿠요에게 '네 친구 비야 한 번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단다.

이 친구가 바쁜 나에게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던 차에 내가 도쿄로 출장 갈 일이 생겨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뵐 수 있었다. 너무나 쇠약해진 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으시던 그 힘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버지는 다음날 돌아가셨다. 나 역시 일본 사람이라면 무조건 싫었던 적이 있다. 괜히 일본 사람만 보면 임전 태세가 될 만큼. 그러나 이쿠요와 그 가족을 만난 후 달라졌다. 일본인, 한국인, 어느 국적을 가졌는가에 앞서 그냥 한 사람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

■ 내가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서 새삼스레 깨달은 것은, 맑은 눈빛과 함께 진실하고 열린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는 누구에게나 통한다는 메시지이다. 누구나 이론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실제상황에서는 감정이 앞서서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비야 그녀의 메시지를 통해 내 삶의 부족한 단면을 다시 한 번 뒤돌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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