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노릇 사람노릇 -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나잇값! 나잇값 제대로 하면서 사는 어른이 된 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요즈음 내가 항상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가 어떻게 하면, 나잇값을 제대로 발휘(?)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이다.

아이들에게 최소한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가르칠 수 있는 어머니들이 되길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의 정체성을 점검하고 지켜나가는 작업이 필요하겠지.

어른 노릇뿐만 아니라, 진정한 사람 노릇을 하면서 살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작업이리라. 오늘도, 난 사람 냄새 풍기는 인간으로 살고 싶다. 최소한 사람 냄새 풍기면서 사는 사람이라면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주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기에...

사람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

자연을 관찰하고 친해지려고 하는 사람들. 그래서 세상을 한없이 부드럽고 겸손하며 평화롭게 만드는 사람들. 한 철 울기 위해 깜깜한 땅 속에서 적어도 오륙 년 길게는 십몇 년까지 땅 속 생활을 인내하는 매미의 일생을 듣고 짠한 마음을 지닐 수 있는 사람들.

음악을 들으며 이 세상에 태어난 걸 행복해하기도 하고 산다는 것의 덧없음에 눈물지을 수 있는 사람들. 완벽한 평화속에 스며있는 비애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 한없이 여유로움을 부리다가다도 어느 순간, 자신이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 앞에서는 언제나 '몰두'할 수 있는 사람들.

꼭 말해야 할 자리에서 주눅들지 않고 꼿꼿이 머리를 곧추세우고 상대방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품위 있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 잔소리꾼 엄마로 살다가도 가끔은 아이들에게 생생하게 기억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 그리하여 적어도 엄마가 남기고 간 희미한 자국을 혐오하지 말고 따뜻이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엄마의 기억들을 가능하면 몇 가지 만들어 줄 수 있는 어른들.

늘 마음만큼은 넉넉해지기 연습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들. 그리하여 씀씀이가 너무 위축되지 않고 건실하고 넉넉해지는 것도 직접적인 나눔 못지 않게 중요함을 깨닫는 사람들. 결국 그런 넉넉한 마음이 고통도 분담하게 된다는 진리(?)를 깨닫는 어른들.

용서와 망각을 혼동하는 일이 없기를... 용서는 하되 잊어버리지는 않는 어른들. 좋아하고 때때로 즐기는 책만 간직하는 자들의 절도, 그런 소유의 절제력을 행사하는 어른들.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 길러질 뿐이라는 걸 체험적으로 알았던 육십대의 비극을 다시 재현하지 않도록 언제나, 깨어 있는 어른들. 그리하여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아이들의 미래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세상이 될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어른들이 되길 희망한다.

보봐르가 그랬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더는 그런 편견이 없는, 남자답게가 아닌... 여자답게 아닌... 인간답게... 정말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이 펼쳐지길 희망한다.

그러나 그런 희망을 제시하면서도 내 눈앞에 어른거리는 세상은 그다지 밝지가 않다. 요원하기만 한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무엇을 제시해 주어야 할 지... 그것은 오로지 정신적인 유산뿐인지?... 그렇다면 우리 어른들은 내 아이들에게 확실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정신적 유산을 남겨 줄만큼 자신의 정체성들을 지니고 있는지...

어른 노릇 사람 노릇 엄마 노릇에 앞서서 우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 제대로 된 노릇을 하기란 아직 내겐 아득히 먼 우주의 무엇을 잡으려는 것처럼 힘겹다. 그러나, 오늘도 난 내가 해야 할 '노릇'을 게을리 하지는 말아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