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흉년 - 상 박완서 소설전집 2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2001/09/24/월요일 늦은 오후에 <도시의 흉년> 읽기를 드디어 끝냈다.

후편 후반부에서부터 정신없이 망가져 가던 지씨 가의 몰락이 가져다주었던 너무나 칙칙하고 어두운 정서로 내 몸의 각 세포는 아주 치밀하게 조율되고 있는 것 같아 꼼짝을 못했다.

한 가족사의 최후가 그렇게 처절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치를 떨며 소름이 돋던 팔을 더듬거렸다. 그 가운데서도 내 정신 속에서는 이 가족은 이제 어디에서부터 코딱지 만한 희망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다시 마음이 추워졌다.

희망이란 단어를 그나마 부여잡을 수 있었던 아주 작은 빛을 언뜻 발견한 것도 같았지. 바로 순정의 얼굴이 그것이었다.
'난 약한 남자의 힘이 되고 싶지 강한 남자에게 치이는 건 싫어.'라고 말했던 그녀, 어떤 혼란에도 질서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은 크고 든든하고 따뜻한 손을 가진 그녀, 가끔은 수현의 눈에 전체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밉다가, 지독스럽게 오만해 보였던 그녀,

단지, 소설이었지만 지씨 집안의 몰락이 왜 그토록 날 전율케 했을가?
아마도 그들의 최후가 너무나 끔찍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보다 더 인간사가 꼬일 수 없을 정도로... 쌍둥이 남매의 상피 붙음보다 더 문란한 가족들간의 애증의 관계.

구주현과 지수현의 관계의 흐름은 이 소설에서 어쩌면 가장 가치(?)있는 메시지들을 전달해 준 매체가 아니었는지?...

가끔 나도 수현이가 구주현을 바라보며 느끼는 비애를 경험했던 적이 있다. 형언할 수 없는 비애를 느끼게 하는 자의 머리를 가슴에 따뜻이 품어 안고 싶다는 소망이 너무 간절해 가슴깊이 육체적인 통증을 느꼈던 적이... 그 상대가 짝꿍일 수도 있고 더러는 타인일 수도 있다. 여러분들은 그런 경험이 혹 없었던가?

이 소설의 마지막을 해피앤딩으로 장식하지 않았다면, 난 아주 오랜 시간 고통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흐름은 처음부터 칙칙했다. 그 칙칙함의 불쾌함을 구주현과 지수현의 관계맺음으로 마침표 찍어 준 것에 대해 박완서 님에게 감사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결국 수현은 내 가슴에 따뜻함을 실어주는 것으로 자신의 새로운 삶을 피워 올린다.

구주현! 그는 그토록 오래 찾아 헤맸던 가락을 느낄 수 있는 고장 사람들 속에서 아버지가 잃고 간 인심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그가 안락함을 껴안을 수 있는 곬. 그는 그 더없이 평화로운 곬, 바로 고향의 품에 안긴 것이다. 그 곳에서 그는 그의 생애 처음(?)으로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었으니까...

독초처럼 서 있던 지수현은 구주현으로 하여금 독을 버리게 되었고, 사랑과 사명감을 동시에 가슴에 품게 된다. 그 두 가지의 감정들은 사랑한 적도 미워한 적도 있었던 어머니를 향한 가슴 펼침으로 매듭을 짓게된다. 수현과 주위 식구들의 지독한 가해의 날로 인해 결국 치매 걸렸지만, 어쩌면 김복실 여사는 젊은이들이 쉽게 정들 것 같지 않은 그 고장에서 어쩌면 수현의 따뜻한 마음에 기댈 수 있으리라. 며느리 순정의 무릎이 아니라, 딸 수현의 무릎에서 안식과 평화를 취할 수 있으리라.

독이 빠져서 완벽하게 예뻐보이는 수현과, 그 예쁜 수현을 각시로 맞아들이는 구주현이 큰소리로 감사하고 싶어했던 행복! 그 행복이 이 가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도 고운 빛으로 물들었으면 좋겠다.

<도시의 흉년> 책읽기에 마침표를 찍으면서 내가 다시 느낀 것은, 박완서 님의 예리한 비판의식과 너무도 섬세한 인간 내면세계의 심리 묘사들이었다.

내 마음속도 그분의 안광으로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환하게 비춰 볼 것 같다. 내 조악하고 오염된 마음속을 그 분 앞에 내어놓는다는 게 벌써부터 무척이나 염려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분과의 만남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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