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서상택 지음 / 시학사 / 1992년 4월
평점 :
품절


<img src='http://cafe14.daum.net/Cafe-bin/Bbs.cgi/evergreenmompds/dwn/zka/B2-kB27m/qqfdnum/7/qqfname/아내에게.jpg'> § ...은비친구 유정이 아빠에게 받은 시집... §

딸아이 은비의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짝친구 유정이는 참 예쁜아이였다.
외모는 물론 마음까지 참 곱고 단정한 그런 아이였다.
그 아인 무남독녀로 부모님의 사랑을 톡톡히 받으면서 자랐지만,
타인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심성도 함께 지니고 있었지.

아무래도 그런 심성은 시를 사랑하는 아빠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유정이의 부모는 참 열심히도 붙어(?) 다녔다.
난 그 부부의 모습을 동네 슈퍼에서, 시장에서, 비디오 대여점에서,
참 자주도 만났었지.
특히 비디오 대여점에서 만나게 될 때면 언제나 그들 부부가 함께 의논해서
빌리는 비디오는 어떤 영화일까 참 궁금하기도 했다.

유정이 아빠는 정말 소년 같은 남자였다.
어느 날, 유정이가 우리 집에 놀러와서 불쑥 내미는 시집 한 권!
내 이름까지 아주 정갈하게 쓰셔서 선물해 준,
유정이 아빠가 직접 쓰신 아주 특별한 시집이었다.
그 시집은 다름 아닌 그들 부부의 결혼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유정이 아빠가 그 동안 써 온, 시들을 엮은 것이었다.
그 시집을 결혼기념일 선물로 아내에게 주기 위해서...

시들은 모두 좋았다.
아빠를 쏘옥 빼 닮은 유정이를 보면서
난 오랜만에 시다운 시를 만난 듯 그렇게 유정이 아빠의 시를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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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序
- 결혼 10주년 기념 詩集에 부쳐

지난 10년 동안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의 內服 빨래를 해 준 아내에게,
나를 위해 국을 데우고 더운밥을 지어온 아내에게,
일 년에 한 번씩은 밤을 새우며
함께 이삿짐을 꾸리고 풀어야 했던
나의 착한 아내에게,
사랑 노래 한 소절을 바친다.

당신을 짝사랑해 오던 내가
당신 앞에서 사랑을 고백한 그날처럼
그냥 부끄러운 오늘이다.

………………………………………

1992. 4. 18. 서 상 택



◎ 아내는 무슨 꿈을 꾸나 ◎

연두빛 햇살은
먼지처럼 풀풀 날리고
물방울처럼 데구르르 굴러다니던
1982년 신혼의 봄

경북 포항시 변두리
담장 없는 10평 짜리 임대 아파트촌 그리고
맨 꼭대기 5층 8자 방 한 칸에 풀어놓았지
내 고향 부산에서 꾸려 온 아내의 새살림

아내의 집 떠나온 생활은
좁다란 부엌 안에 갇혀서
태엽인형 마냥 이리저리 부딪혀 멍이 들고
날마다 울보가 되어 갔지

오늘이라도
집으로 돌아가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아내의 신발을 내 마음의 말뚝에 동여매 놓고
밖을 나다녔던 그 해

가끔 화장거울 앞에 앉은
아내는 꿈을 꾸듯 언제나 말이 없다
아내의 꿈은 어떤 빛깔일까
여자임을 알 때 처음 꾼 하늘 다리 무지개 빛깔일까
웨딩드레스의 순결한 빛깔일까
아니면 칠 벗겨진 아파트 벽처럼 실망의 빛깔일까

오늘도 조심스럽게 누르는 초인종
환하게 문이 열리면 밖으로 새어나오는
친근한 집안 내음과 함께
하루를 기다린
피곤한 웃음으로 맞이하는 나의 아내여
아, 기다림의 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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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늘푸른은 위의 시를 읽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었지.
오늘 또 다시 읽어보며,
역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유정이 아빠의 시 속에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 묘한 움직임 비슷한 감동이 숨겨져 있었다.

유정이와 은비는 중학교 2학년 때 헤어졌다.
우리도 이사를 하고, 유정이네도 인천으로 이사를 했다.
둘은 가끔 메일을 주고받고 있다.
은비가 속내가 맑은 친구 유정이와 오래도록 우정을 아름답게 쌓아 나갔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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