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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ㅣ 어른을 위한 동화 4
안도현 / 문학동네 / 1998년 1월
평점 :
<<관계>를 읽고 나서>
시끄러운 세상, 따분한 일상사에 지쳐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지만 지켜야할 가정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주부들에게 소설과 동화와 에세이와 시의 중간 어디쯤을 들락거리고 있지만 어디에도 소속되기 싫어하는 책 안도현 시인의 <관계>를 권하고 싶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자와 신선한 공기와 가슴까지 시원해질 맑고 깨끗한 물이 필요한 사람도 <관계>를 읽으면 좋을 것이다.
통신에서 만난 어느 주부가 말하길... 그렇게 하기 가장 좋은 방법중의 하나가 오랜만에 서점에 들러 자신에게 필요한 공기와 물을 공급 받아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손에 잡힌 것이 어른을 위한 동화 안도현 시인의 <관계>라고... 꼬박 하룻밤으로 읽어낼 수 있는 얇은 책이었는데, 읽고 나니 긴 여행을 다녀온 듯 했다고 했다.
그렇다. 정호승 시인이 말했듯이 안도현 시인은 자연을 통해서만이 인간이 아름답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관계>를 읽고 나면 도토리와 햇볕, 낙엽과 자작나무, 또다시 걸어가야 할 길, 발길이 닿는 대로 갈 수 있다고 착각하는 우리 자신과의 만남, 가고 싶은 곳을 지금 막바로 갈 수 없는 감옥 속에 늘 갇혀서 살고 있는 우리의 실재를 만나게 된다. 농부의 쟁기와 미루나무의 푸른 목숨, 그리고 눈사람이 되고 싶었던 시인을 만날 수 있는 긴 여행을 다녀 온 느낌을 받는다.
그냥 무심코 지나쳐 버린 모든 것들이 새로운 관계로 다가왔다. 겨울 바람 한 줄기와의 관계도 새로웠고, 아이들과의 눈빛을 마주할 때 느껴지던 느낌 또한 새로운 관계로 다가왔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과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읽으면서 그와의 관계를 새롭게 했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읽으며 전태일이라는 청년과 새로운 관계를 갖게된다. 그냥 무심히 지나쳤던 노동자의 일상과 그들의 고뇌를 책을 통해 전달받으며 마음이 많이 아파왔다. 이렇게 노동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책과의 관계도 감사하다. 관계! 관계라는 말이 늘 가슴 한켠에 따스함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우리의 삶은 늘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관계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리라. 최소한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고 끔찍한 관계를 형성하는 관계를 맺진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춥고 아픈 시기에 서로에게 진정한 온기를 심어주는 포근한 관계를 글사랑 여러분과 맺어갈 수 있으면 참으로 행복할 것 같다.
거리에서 쓰레기를 쓸고 있던 환경미화원의 빗자루 끝에. 들판에서 밭을 갈던 농부의 쟁기 끝에, 어린아기의 똥기저귀를 빨던 아내의 손 끝에 시가 묻어 있는 것을 그는 보지 못하고 있었다. 환경미화원과 농부와 아내, 그들이 바로 시인이라는 것을 애석하게도 우리의 시인 지망생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시인이 되는 법> 아기의 똥기저귀를 빨때면 작은 고모는 늘 즐거웠다. 고모는 그 기저귀에서 나는 고약한 똥냄새가 쵸코릿 냄새보다 더 향기롭고, 황금색 변은 그 어떤 빛깔보다도 아름답다고 했다. 바로 작은고모는 시인이었던 것이다. 고모의 말을 난 내 아이들을 키우며 공감하였으니 나도 시인?
자기 자신의 성취만을 위한 꿈이 아니라,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주위를 둘러보는 사려깊음과 나눔, 그리고 사랑을 함께 배양해 나가는 꿈이 바로 옆으로 아래로 꾸는 꿈이 아닐까? 자기 희생이 내포된 꿈. 그리하여 위로만 꾸는 꿈의 실현이 좀 늦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이룬 꿈은 더 아름답게 빛나리라. 우리집 가훈은 <땀과 꿈>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옆이나 아래로 꾸는 꿈을 가르쳐 주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