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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파 남편의 편지
안정효 지음 / 민음사 / 1995년 12월
평점 :
품절
낭만파 남편의 편지를 읽고...
제목이 우선 마음에 끌렸고, 낭만파 남편은 어떤 내용의 편지를 아내에게 쓸까 무척 궁금해서 그동안 그가 전혀 낭만파로 생각지 않았는데, 줄곧 이 글을 읽으며 낭만파 남편을 안정효로 생각하며 읽었고, 낭만파 남편과 그가 무척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첫 장을 넘겼고, 낭만과는 전혀 연관 없는 익숙한 생활들의 반복을 나열하는 소설 기법이 지루하게 느껴지다가, 그 표현들이 아주 가깝게 다가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일상적인 내 생활의 반복과 그 생활에서 갑갑증 내지는 답답증을 품고 살고 있던 그 즈음의 내 자신의 모습을 바로 코앞에서 바라보는 느낌 바로 그거였다. 그러면서 그런 소설 기법이 아이러니하게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처음에 읽을 때는 비슷한 대목은 건너뛰기도 했다. 그러나 지은이는 반복되는 부분을 마음놓고 듬성듬성 건너뛰며 읽지 말아야 할 이유를 미세한 움직임의 장치를 여기저기 숨겨놓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시 읽어 가면서 글로 읽는 보물찾기를 하게 되었다. 그의 말처럼 거듭되는 반복이 지루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나름대로의 맛을 자아내는 부수적인 효과도 가져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각도로 보든 <낭만파 남편의 편지>는 무척 잔인한 소설임에 틀림없다. 남편이 벌이는 심리적인 놀이도 그렇고, 시원하게 사건을 빨리 전개시키지 않고 바늘 끝으로 모기의 날개를 떼어내는 기분으로 글을 써나간 작가의 태도 또한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사디스트적인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흐뭇해서 웃겠다고 할만큼 이 작품을 쓰는 과정은 남을 괴롭힐 때처럼 재미있었다고 고백한다. 인상깊은 내용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무엇인가 이상해야 하는데 이상해야 할 무엇이 이상하지 않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남편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복제된 하루, 복사기로 무수히 찍어낸 하루를 하루씩 살아가면서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상적이 아니라고 남편은 생각했다.
p100 그렇다. 결국 나 역시도 다시 찾아 나선다고 해도 지금의 남편과의 삶보다 나을 것이 따로 없을거란 생각을 한다. 오히려 다시 시작하기 위해... 서로에게 적응하기 위해... 헛된 시간을 낭비하느니 현재의 위치에서 작은 낭만(?)들을 하나 하나 모아가면서 살아가고 싶다. 편안함에 길들여진다는 것은 쉬운 듯 하면서 어려운 것이다. 그런 편안함을 언제부터인가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데 새롭고도 위험한 모험을 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
'정신적인 사랑을 어떤 여자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도 나눠준다면 그것은 죄가 될지 모르겠지만, 남편이 아닌 다른 여러 남자에게서 정신적인 사랑을 받기만 하고 되돌려주지는 않는다면 그것은 여자에게는 남몰래 수집하는 보석처럼 소중한 비밀은 될지언정 결코 죄가 아니라고 아내는 믿었다.'는 내용이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