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은 흐른다 - 범우사르비아문고 11 범우 사르비아 총서 705
이미륵 지음 / 범우사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줄 곧 내마음이 엷은 청색, 맑은 하늘색으로 물들어가듯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 책이었다. 역자 후기에서 표현했듯이 고결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어린 시절 동무들과의 즐거움이 생생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윽한 평화가 지배하는 고장에서 수암과 먹냄새 향기로운 가운데 훈장에게 글공부도 하고, 독약을 먹을 정도의 장난꾸러기 짓을 하는 수암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미륵은 영육간에 균형을 잡으며 아름답게 성장해나간다.

무엇보다 미륵과 아버지의 관계는 내게 오랜 여운을 남길만큼 고결했다.
미륵은 외로운 아버지에게 주법을 배웠으며 더불어 술친구가 되었다. 그러면서 왠지 자신이 무척 자랐고 큰 것처럼 느낀다. 미륵은 현명하고도 아름답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아버지의 술친구가 된 것을 얼마나 기쁘게 생각했는가! 밝은 달빛아래서 향그러운 살구향을 맡으며 아버지와 술 마시며 함께한 대화의 시간은 미륵에게 훗날 얼마나 값지고 윤기도는 추억이었을까?

하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너의 영혼을 맑게 하기위한 높은학문이니 조심스럽게 경청하라고 진지하게 충고해 주는 아버지. 바둑을 가르치면서 '상대방이 돌을 놓거든 소리가 울리는 동안 기다려라. 그리고는 너의 돌을 놓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경솔하게 놓지는 말아라.'고 교훈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오랫동안 그려보았다.

미륵은 그런 아버지의 곁에 있을 때에는 어딘지 모르게 아늑히 안겨 있는 기분을 느꼈고 아버지의 핏줄이었으며, 아버지의 품은 언제나 자신을 받아 들일 수 있을 만큼 넉넉했음을 훗날 느끼리라.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푸근한 정서로 미륵이 성인되었을 때도 남아있으리라. 그런 정서가 미륵의 독일유학생활에서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새교육으로 이루어지는 참다운 교양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곳에서만 공부를 하여야 할 것 같았다.> 유럽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이틀동안이나 걸어서 사야 하는 신막 시장을 향한다. 북쪽 국경을 통과할 기차를 타기위해서... 결국 기차를 타지 못하고 귀로에 오르지만, 그런 유럽에로의 꿈은 그래서 미륵을 유학생활에서 더욱 열심히 정진하게 한 촉진제가 아니였나 생각한다.

새로운 학문을 위해서 의학 대학에 입학하지만, 해부실습후 의학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는 <존재의 이론>이라는 철학서적에 깊이 빠져들기도 한다.
불안의 시기에 아들의 안전을 위하여 어머니는 말한다. <너는 자주 낙심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충실히 너의 길을 걸어갔다. 나는 너를 무척 믿고 있단다. 용기를 내라! 너는 쉽사리 국경을 넘을 것이고, 또 결국에는 유럽에 갈 것이다. ……………… 너는 나의 생활에 많고도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자! 내 아들아, 이젠 너 혼자 가거라.>

그리하여 미륵은 공자라도 낯선 나라에 가서는 그 나라의 풍습대로 살아야 되는 것처럼 독일에서의 유학생활은 시작된다. 붉은색 지붕이 많은 독일에서의 생활에 적응이 되기까지 그는 노스텔지어와 페이소스가 엄습하는 유럽 땅위에서의 일몰을 맞이해야 하리라.

늘 말이 없고 너무 많이 생각하는 미륵에게 봉운은 서방에서의 문화를 설명한다. 그러한 태도가 비사교성의 표시로, 심지어는 거만의 상징으로 여겨진다고... 언제나 여럿이 대화할 때는 섞여 같이 대화를 나누라는 조언을 하고 그는 프랑스로 떠난다.

혼자 독일에 남게 된 미륵은 항상 매 구절마다 단어를 찾아가며 한 줄 한 줄 고생스럽게 독일어공부에 정진했다.

어느 집 정원에 서 있는 한포기 꽈리나무를 보며 마치 고향의 일부분이 현실적으로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는 미륵. 그러던 얼마 후 눈내리는 날 아침, 늘 자애로우셨던 어머니가 지난 가을에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미륵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오랫동안 슬프고 잔잔한 여운이 가슴속에 전해짐을 느끼며 <압록강은 흐른다>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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