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억, 시네마 명언 1000 - 영화로 보는 인문학 여행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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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펼치는 순간 필독서임을 직감할 것이다. 총 200편의 영화를 여덟가지 파트로 나누어 1000개의 명언을 기록한 책이다.

꿈과 자유를 찾아주는 명대사, 사랑이 싹트는 로맨틱 명대사, 인문학적 통찰력을 길러주는 명대사, 사람의 심리를 파고드는 명대사, 지친 마음을 힐링해 주는 명대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명대사,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명대사, 내 안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명대사로 나눈 스크린의 기억을 촘촘히 읽고 있노라면 영화 속 인물들이 살아서 그 대사를 치는 게 보이는 듯했다.

책을 읽는 동안 어떤 영화는 그 장면만 찾아서 다시 찾아보기도 하고, 어떤 영화는 전편을 다시 감상하기도 했다.

200편의 영화 중 180편 이상을 관람한 난 진짜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분명하게 느꼈다. 아직 관람하지 않은 20여편의 영화는 하나둘 찾아서 모두 볼 계획이다.

책을 읽다 문득 장정일의 표현이 생각났다.

"한 번 본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한 것과 같다. 두 번 본 영화라야 영화를 봤다고 할 수 있다." 뭐 이런 비슷한 표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이란 지극히 주관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난 내 인생의 영화로 꼽고 싶은 몇 편의 영화는 열 번 이상, 어떤 영화는 직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백번 이상 관람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 책에 언급된 명언 천 개가 내겐 더 깊이 와닿았을 지도 모르겠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 중 《빌리 엘리어트》, 로열발레단 오디션에서 심사위원의 질문에 대한 빌리의 답변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모르겠어요. 춤을 추면 그냥 기분이 좋아요.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모든 걸 잊게 되고, 그리고 모든 게 사라져요.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요. 내 몸 전체가 변하는 기분이죠. 마치 몸에 불이라도 붙은 느낌이에요. 전 그저 한 마리의 나는 새가 되죠. 마치 전기처럼요."


《프란시스 하》 영화 속 대사처럼 '때로는 해야 할 때,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좋'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우리만 아는 세계'가 있음을 알지 않는가? 자심만의 은밀한 세계 말이다.


《일 포스티노》 영화는 조용히 속삭이는 듯하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라고...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라고... '사랑에 빠졌지만 곧 낫기를 바라지 않고 계속 빠'져 있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영화란 무엇일까? 죽음이 있기에 인생이 빛나고, 이별이 있기에 사랑이 빛나는 것처럼 영화가 있기에 그 속에서 수없이 많은 죽음과 이별과 사랑을 만나고 삶을 만나면서 인간은 고통받고 상실한다. 그리고 다시 애도하면서 성장해 나간다. 인문학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다. 빛나는 영화, 그 속에서 섬광처럼 빛나는 명대사, 내 마음을 건드리고 때론 훔치기까지 하면서 나를 휘둘러버리는 대사들. 그 모든 것들은 그 순간의 내 모습인 것이다. 그 순간의 내 못난 모습을 건드리기도, 혹은 잘난 내 모습을 인식시켜주기도 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를 감상하고 난 후의 그 길었던 여운을 어찌 설명할까? 언어장애가 있는 엘라이자는 말한다. '지금까지 나의 모든 것,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 그를 만나기 위함이라고 느껴요.'라고... 그런 확실한 사랑의 감정을 가질 수 있던 그녀를 얼마나 선망했는지 엘라이자는 알까? 그리고 그녀의 사랑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음을 그녀는 느꼈을까? 이별 후에도 그의 존재가 두 눈을 채우고 마음을 겸허하게 하는 이유는 그가 모든 곳에 존재함이라는 그녀의 사랑 앞에 나는 부끄러웠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연인과 헤어지고 와서 상심한 아들에게 건네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어찌나 감동이던지. '지금의 그 슬픔, 그 괴로움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아들의 사랑, 아들의 정서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이해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부모란 자녀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다시 깨달았고...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마음에 꽂혔던 명대사. '우는 것에는 이유가 없어.' '사랑엔 성별이 없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가질 생각도 못 했다.'


《화양연화》 내 인생의 화양연화를 반추했던 영화. 각자 가정이 있는 두 남녀가 품은 애절한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배우자의 부재로 외로웠던 두 사람은 비슷한 감정을 품고 서로에게 이끌린다. 감정이 깊어질수록 조심스러웠던 그들은 어느 날 깨닫는다. '우린 그들과 다르다 생각했는데…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알고 싶었어요. 이젠 알 것 같아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된 거죠.'


《중경삼림》에서 실연한 남자는 낙담한다. 그는 가슴이 아프면 조깅을 한다. 그 이유는 '조깅을 하면 몸속의 수분이 빠져나간다. 그러면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남자는 읊조린다. '기억이 통조림이라면 영원히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사랑에 유효기간이 없길 바라는 게 그의 진심인 걸까? 진짜 유효기간이 없다면 세상은 어떨까?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될까? 아니면 아수라장이 될까? 일단 유효기간 없길 바라는 그 사랑의 정의부터 다시 정립해 봐야겠지.


《미스터 노바디》 '모든 선택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감당하는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한 이후에는 선택하지 않은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왜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면서 미래는 모르는 걸까?'


《타인의 삶》 '내가 이 음악을 이전에 알고 있었더라면, 혁명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신은 저를 모르겠지만 저는 당신을 잘 알고 있어요. 전 당신의 '관객'이거든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모두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아내야! 길거리를 버젓이 활보하는 악당들보단 덜 미쳤다고.'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도 병인가요?' '그래도 난 시도라도 했잖아. 적어도 시도는 했다고.'


《토니 타키타니》 '기억은 바람에 흔들리는 안개처럼 천천히 그 모습을 바꿔 모습을 바꿀 때마다 흐려져 갔다.' 이 영화를 감상 후엔 원작을 찾아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었다. 영화와 함께 원작을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꾸뻬 씨의 행복여행》 '첫 번째 실수는 행복을 삶의 목표라고 믿는 데에 있다.' '행복은 자기 자신 그대로의 모습대로 사랑받는 것이다.' 행복은 내가 진정 살아 있다고 느낄 때 찾아온다.'


《버킷리스트》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었는가?' '내게 죽음이 찾아오기까지, 남은 시간을 알면 자유로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가 죽을 때, 눈은 감겼지만 가슴은 열려 있었다.'


《보이후드》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흔히들 이런 말을 하지. 이 순간을 붙잡으라고. 난 그 말을 거꾸로 해야 될 것 같아. 이 순간이 우릴 붙잡는 거지. 시간은 영원한 거고, 순간이라는 건 늘 바로 지금을 말하는 거잖아.' '주변 사람들이 내 인생에 간섭하는 게 너무 화가 나는데, 정작 그들은 그걸 알지도 못해.'


《나, 다니엘 블레이크》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나는 요구합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해 주기를.' '자존심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패치 애덤스》 '다른 이들을 돕기 위해 의사가 되었고, 그래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 또한 얻었습니다.' '의사는 단순히 의술을 시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의사는 무엇보다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 대사를 곱씹으면서 요새 tvn 슬기로운 의사 생활 5인방이 생각났다. 그들이야말로 환자의 사람의 질을 높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미드나잇 인 파리》 '예술가의 책임은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존재의 공허함을 채워줄 해답을 주는 거예요.' '진정한 사랑은 죽음마저 잊게 만든다네. 두려운 건 사랑하지 않거나, 제대로 사랑하지 않아서지.' '파리는 비가 올 때 가장 아름답죠.'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다시 보고 싶은 영화들 목록이 두꺼워진다. 어떤 명대사나 영화를 아우르는 메시지 앞에서는 그 장면을 다시 돌려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지금 여기에서 내가 느끼는 것과 해결되지 않은 현재의 문제와 연결되어 몇몇 대사와 메시지가 나를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나를... 나의 문제를... 답답한 현재의 상황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나는 열렬한 영화광이다. 혼자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용산 cgv에서 유럽 영화 《우리, 둘》을 보고 나서도 여러 가지 감상이 마음속을 오갔다. 원작이 있다면 찾아서 읽어보고 싶을 만큼 긴 여운을 남긴 영화였다. 영화는 무엇인가? 무엇인데 이토록 끌리는 걸까? 그에 대한 답은 이미 위에 언급했다. 그럼에도 다시 묻는다. 영화는 무엇인가? 왜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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