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은 아이들만 위한 것인 줄 알았는데, 이책도 역시 어린이 출판사에서 나온 그런 그림책인 줄 알고 들었답니다. 그런데 저의 그림자를 보게 되었답니다. 얼마나 오랜동안 내 그림자를 보지 않았는지 그 시간을 헤아릴 수가 없었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어쩌다 해 떨어진 후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의 가로등 밑으로 길게 길게 자라나던 그 그림자, 그만큼의 무서움... 그 이후로는 저의 그림자에 대한 기억이 없더군요. 삼십여년의 세월을 성큼 건너뛰었습니다.
이제 어른이 되고 밤에 집으로 돌아간다하더라도 무섭지도 않았고 세속의 상념에 젖어 내 그림자가 가로등에 얼마나 길어지는 지도 본 적도 없지만 상상해 볼 수 있답니다. 나를 꼭 닮은 내 그림자가 길었다, 줄었다 하는 것을요. 그 길었다 줄었다하는 내 그림자는 내 생만큼의 세월을 그러고 살았겠지요. 그리고 그 세월의 대부분을 주인이 돌아보지도 않는 버려진 그림자로 살았구요. 그동안 나를 버리지도 않았고 나에게 싫은 소리 한 마디 없이 살았으니, 나는 얼마나 무심한 사람이었는지...
다시 주위를 둘러봐야 겠네요. 내가 그토록 무심하게 사는 동안 또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묵묵히 나와 함께 한 세월 보낸 그 모든 것들을 말이에요. 오늘 밤에는 집에 일찍 들어가더라도 다시 나와서 다시 들어가며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내 그림자에게 말 걸어봐야하겠습니다. 그 긴 세월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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