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카세론
캐서린 피셔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매력적인 소재를 빛나게 하는 작가의 위력.
내가 장르문학에 빠져든 이유는 작가가 만들어내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마음껏 영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인카세론은 근래 만나 본 판타지소설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수작이었고,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끈임없이 머릿속으로 인카세론의 모습을 그려보는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어느날 눈을 떠보니 인공지능 감옥인 인카세론에 누워있던던 한 소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핀.
소년이 눈 뜬 곳은 천국도 낙원도 아니었다. 그곳은 또다른 지옥에 불과했다. 인간의 그릇된 희망으로 만들어진 감옥은 자비가 존재하지 않는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지옥이었다. 살아있는 감옥 인카세론은 스스로 인간을 생성해내는 능력을 지녔다. 많은 반인간들이 인카세론으로부터 태어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핀은 자신이 태어난 곳은 감옥이 아닌 바깥세상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탈출을 꿈꾼다. 불현듯 발작처럼 떠오르는 기억들과 몸에 새겨진 문신이 자신이 외부에서 온 존재임을 말해주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이 같은 핀의 생각을 터무니없는 망상으로 여기며 비웃을 뿐이었다. 출구가 없는 감옥에 어떻게 들어올 수 있겠는가. 감옥 안의 다른 사람들이 볼 때 현실적으로 핀의 생각이 헛된 꿈에 불과해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핀을 지지하는 이가 있었다. 오랜시간 꿈 꿔온 탈출이란 꿈을 이뤄줄 거라 믿는 그는 핀을 예언자로 추대하며 탈출의 날을 꿈꾼다.
고대의 신들 중에서 정의의 여신은 항상 장님이다.
하지만 만약에 정의의 여신이 볼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본다면, 그리고 그 눈이 차갑고 자비라고는 없다면 과연 어떨까?
누가 그 시선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
한 해 또 한 해 인카세론은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천국이어야 했던 장소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게이트는 잠겼다. 바깥세상은 우리의 비명을 듣지 못한다. 그래서 몰래 나는 열쇠를 만들기 시작했다.
-칼리스턴 경의 일기
인카세론의 위치는 교도소장만이 알고 있었다. 그는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인물로, 누구도 감히 그의 명령을 거역하거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러나 교도소장의 딸 클로디아는 시아여왕의 아들과 결혼을 앞두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고자 마음먹는다. 그녀는 어릴적 자신의 약혼자였던 전 왕비의 아들을 사랑했지만 어느날 갑작스런 왕자의 죽음으로 현 왕비의 소생과 결혼할 운명에 처한 것이었다. 자신의 짝이 될 지금의 왕자는 형편없는 인품에 아무런 꿈도 없는 어리광쟁이 왕자에 불과했고 클로디아는 이 결혼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마침내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계획을 세운다.
이야기는 인카세론 안의 핀과 인카세론 밖의 클로디아를 중심으로 각기 펼쳐지다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던 이 소년소녀가 인카세론의 열쇠를 손에 넣은 후 우연히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며 감춰진 비밀에 서서히 다가가게 된다. 핀이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은 정말 그가 바깥세상에서 왔다는 증거일지, 그의 생각이 맞다면 핀은 왜 이곳 인카세론에 갇히게 되었는지..독자는 이야기를 읽는 내내 새로운 궁금증과 마주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퍼붓게 될 것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 지루할 틈 없이 독자를 끌고가는 작가의 능력이 놀라웠다.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예상치 못했던 반전까지 선보이며 그야말로 장르 문학의 장점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살아있는 감옥이라는 설정은 인간의 욕망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감옥 안팎에 즐비한 인간의 이기심은 인카세론의 존재 이유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재미요소는 섬세한 상황묘사와 탄탄한 이야기구조에 있다. 판타지적 요소가 곳곳에 등장해 상상의 즐거움을 선사했는데 섬세한 상황묘사가 마치 머릿속에 영상을 틀어놓은 듯 해 책을 읽고나자 판타지 영화 한편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영상미가 그려지는 작품이니 영화화가 예정된 것도 당연하다. 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커다란 영상으로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레는데 모쪼록 반지의 제왕을 잇는 시리즈가 탄생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