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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상처를 말하다 -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예술가의 뒷모습
심상용 지음 / 시공아트 / 2011년 12월
평점 :
상처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시대의 예술가들, 그들은 고통 속에서 예술의 혼을 불사르기도 하고 때론 재능을 마음껏 꽃피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카미유 클로델, 빈센트 반 고흐, 케테 콜비츠, 프리다 칼로, 권진규, 백남준, 이성자,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방미셸 바스키아 열 명의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에 대해 담고 있는 이 책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들이 겪었던 내면의 갈등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예술의 세계에서 여성은 시대의 냉담한 시선과 차별로 더욱 힘겨운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 외로움과 고독이 동반된 그녀들의 삶을 예술가로서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기보다 그저 남성 예술가들의 그림자로만 존재하길 바랐던 사람들로 인해 그녀들은 더욱 고립되어 갔다.
로댕의 연인으로 알려진 카미유 클로델 역시 불운한 여성 예술가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여성으로서도 예술가로서도 결코 평탄하거나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없는 그녀는 대중들의 기억과는 사뭇 다른 생을 살다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사랑하는 연인의 배신과 그녀의 예술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늘 로댕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그녀는 끝내 자신을 외면하는 가족에 의해 강제로 수용소에 갇힌 후 30년이란 긴 시간을 갑갑한 병원에서 보내며 굴곡진 생을 마감하고 만다.
P.27
그녀의 주변을 둘러보라. 위선적인데다가 사티로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나 다름 없었던 로댕, 그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각가가 아니라 정부로만 몰아붙이던 냉혹한 전문가들, 비방과 험담으로 그녀의 영혼을 갉아먹었던 주변 사람들, 보호와 보살피의 의무를 팽개친 가족들.....카미유가 미치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예술가들은 그녀들의 재능과 무관한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카미유를 로댕의 정부로만 보려고 했던 사람들은 카미유클로델이란 예술가의 작품을 폄하하고 비난하기 바빴다. 그런 세간의 시선들이 그녀를 더욱 어둠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어쩌면 로댕의 여성편력으로 인한 배신의 상처보다 자신의 작품을 로댕의 아류작으로만 치부하려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더욱 컸으리라고 저자는 말한다. 카미유는 예술의 세계에서 철저히 약자에 불과했고 이같은 여성 차별적 시선은 비단 그녀에게만 해당되는 편견이 아니었다.
여성이기에 감내해야 했던 불합리한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야 했던 이는 또 있었다. 한국의 여류화가 이성자가 그러했다. 그녀는 먼 타국인 프랑스 땅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뿌리내렸고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자신의 예술세계를 오롯이 인정받지는 못했다.
P. 207
이성자는 그의 예술적 성과가 아니라 실존적 소외에 의해, 즉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자신이 나고 자랐던 나라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함으로써 더더욱 시대의 대변자로 나서게 된다. 기억에서 멀어지고 반쯤 잊힘으호써 오히려 자신에세 부여된 시대적 소임에 충실했다 해야할까. 이성자는 뒤늦은 근대기를 서둘러 지나고 있던 조국에서 여성 화가라는 제도적 보호권 밖의 이방인으로 서성여야 했고, 은연중에 거부당하거나 세인의 관심사에서 서서히 멀어져 가는 존재로 남아야 했다.
그녀가 화가 이성자의 삶을 살게 된 것은 그리 행복한 일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에 예고없이 들이닥친 시련과 좌절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남편의 외도로 위기를 맞은 그녀의 결혼 생활은 그녀의 삶을 지탱해주던 아이들을 불시에 빼앗아가며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남겼다. 잔인한 이별은 그녀의 내면과 남은 생을 지배했고 절망적 상황 속에서 그녀는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산다기 보다 목숨을 이어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던 그녀에게 한줄기 희망처럼 프랑스로 떠날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낯선 존재가 되어야 했던 이방인 이성자는 파리에서 화가가 되었고 예상 외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P.212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이성자는 더욱 작품에 매달렸다. 밥은 먹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보고 싶은 아이들이 떠올라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듯, 옷을 입히듯, 붓질을 해대고 조각칼을 쥐었다." 아이들의 입에 음식을 넣어 줄 권리를 약탈당한 억울함과 비통함 떄문만은 아니었따.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그녀에게 뺴앗긴 권리를 조금씩 되찾는 회복과 치유의 상징적인 과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투레트쉬르루의 인터뷰에서 이성자는 이렇게 평생을 품고 갈 아픈 여정을 술회했다.
카미유 클로델의 로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면 이성자는 빼앗긴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자책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그림을 선택했다. 이렇듯 상처와 고통이 녹아든 작품을 보면서 여성이기에 감내해야 했던 수많은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야만 했던 그녀들의 삶이 예술가이기 전에 한 여인의 아픔을 말하고 있는 듯해 가슴이 시려왔다.
이 책에 담겨진 열명의 예술가들은 각기 다른 모습의 상처를 끌어안고, 그 상처로부터 예술을 끌어내는 삶을 살아낸다. 그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인생의 아픔을 보고 슬픔을 느낀다. 상처의 깊이가 저마다 다르듯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도 각기 다르다. 그러나 예술을 사랑하기에 상처마저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그와 그녀들의 시린 삶이 남은 이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상처와 예술이 뗄 수 없는 연장선에 놓여있듯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도 언젠가는 빛나는 실을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