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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퀸 클레오파트라
스테이시 시프 지음, 정경옥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내가 알고 있던 클레오파트라라는 여성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지구의 모든 표면이 변했을 것이란 말을 남긴 것만 보더라도 그녀의 미모가 실로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녀의 외모를 칭송하는 많은 언급에도 불구하고 실제 그녀의 모습은 그 어떤 유물로도 남지 않았다. 어쩌면 아무런 기록도 남지 않았기에 더욱 신비에 싸인 채 후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런 부정확한 추측들 속에서 클레오파트라라는 뛰어난 미모를 지닌 한 여인이 영웅을 통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상대를 추락하게 만드는 희대의 요부, 팜므파탈의 이미지로 강하게 있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뇌리에 심어진 그녀의 이미지는 실패한 왕에 대한 왜곡된 역사의 기억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구체적 근거보다는 그녀가 가진 여성성과 성적인 매력만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클레오파트라가 여왕으로서 해냈던 수많은 일들을 깎아내리고 마치 그녀가 자신의 외모를 이용해 남성들의 업적을 방해한 것 마냥 부정적인 인식을 심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방법은 매우 잘 먹힌 듯 하다.
왜곡된 기록을 토대로 검증없이 내보낸 수많은 대중매체들을 통해 그녀의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는 널리 퍼졌고, 그대로 굳어버렸으니 말이다. 내가 접했던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기록을 떠올려보니 쉽게 수긍이 가는 대목이었다. 내 기억 속의 클레오파트라는 늘 여인으로 존재했을 뿐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의 모습은 거의 없었다.
그저 시대의 영웅인 카이사르, 그리고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모두 빠져들 만큼 뛰어난 매력의 소유자였던 그녀가 자신의 매력을 십분 활용해 권력을 쥐었고 종국에는 그녀 자신 또한 몰락의 길을 걸었던 비운의 팜므파탈 ...이 정도가 내가 평소 클레오파트라를 생각하면떠오르는 대강의 것들이었다. 진짜 클레오파트라를 알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못해 잘못된 인식이 심어져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의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우스13세와 결혼 한 뒤 ( 그 시대의 이집트에서는 혈연간의 결혼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권력을 지키기 위한 가장 쉬운 수단이었기에 남매간의 결혼 혹은 사촌 간의 결혼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집트를 함께 다스리던 중 왕위에서 쫓겨난 그녀가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카이사르를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그 어떤 정치적 목적 없이 사랑의 감정을 느껴 그와 함께 한 것인지는 저자 역시 확신하지 못했고, 나 역시 그렇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그녀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을 모두 내려놓고 여왕 클레오파트라로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로마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른 이집트의 왕가에서 태어났다. 덕분에 어려서 부터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왕위를 잇기 위한 후계자 수업을 착실히 받아왔고 여기에 그녀 자신의 노력이 더해져 마침내 형제들과의 지리한 권력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녀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배움을 멀리하지 않았다. 다른 어떤 왕도 시도하지 않았던 어려운 이집트어를 배워 통역 없이 소통했고 뿐만 아니라 수개국어를 익혀 외교에 있어서도 커다란 수완을 발휘했다. 통역 없이 직접 대화에 참여하는 그녀의 모습이 상대국의 믿음과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음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용모와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좌중을 아우르는 분위기와 듣는 이를 압도하는 연설실력은 당대의 영웅들을 사로잡기 충분했으며 뛰어난 판단력과 지략의 소유자였던 클레오파트라는 정치적 능력 또한 탁월했다.
이렇듯 책에 담긴 클레오파트라의 여왕으로서의 면모는 기존에 가졌던 희대의 요부라는 이미지를 불식시켰고 그녀의 삶과 사랑을 통해 그간 알지 못했던 지도자의 고뇌와 비탄을 느낄 수 있었다. 긴 시간에 걸친 고증을 통해 비로소 제 모습을 찾은 클레오파트라. 저자의 오랜 노력 끝에 진짜 그녀의 본 모습을 만날 수 있음이 다행스러웠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삶이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여인 클레오파트라'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