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 나를 확 끌어당겼던 이 책은 사실 내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허나 책을 읽기도 전에 멋대로 상상한 것도 나요, 추측했던 것도 난데 책을 탓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그저 내 뻔한 상상력에서 비롯된 혼자만의 착각을 황당해할 수 밖에..

그러나 책을 받아들었을 때 적잖게 당황했던 기분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어가긴 했지만 미셸투르니에의 사유는 분명 내가 생각했던 이상의 것들을 담고 있었다. 이 작고 얇은 책 한권을 읽는데 소요된 시간이 500페이지 분량의 장편소설을 읽을때와 맞먹었다면 설명이 될까 모르겠다.

 

나는 늘 상상을 갈구한다. 때문에 상상력의 대가로 불리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이야기들을 읽고나면 재미와 감동보다 신기함과 부러움을 느끼곤 한다.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는 것들을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담아 매끄럽게 풀어내는 그 능력. 나는 죽었다 깨도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그 능력에 질투를 느낄 정도다. 상상력이란 능력은 갈고 닦아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란 것을, 날 때부터 금숟가락을 물고태어나는 사람들처럼, 상상력 또한 선택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능력임을 몇몇 작가들을 볼 때마다 느끼곤 한다. 그러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싶어 애를 써봐도 쉽지가 않다. 다양한 책을 읽고자 노력하고,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의 고리를 잡기 위한 나름의 노하우도 있다. 언제 어디서든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생각의 잔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끄적거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심지어 잠자리에 들때는 녹음기를 옆에 준비해두기까지 한다. 실제로 꿈을 통해 얻는 소재들이 깨어있을때 쥐어짜내는 상상보다 건질 게 많았기에 나로서는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은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내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이란 제목에 홀딱 반해 마치 상상력을 키워주는 마법의 상자라도 발견한냥 들떴음은 더 말해 무엇할까.

이렇듯 엄청난 기대 속에 책을 받아든 나는 생각보다 작은 사이즈에 한번 놀라고, 첫 장을 펼쳐들었을때 내 상상을 빗나간 그 내용에 또 한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쪽집게 상상력기르기 과외 정도를 기대했던 내 바람을 비웃는 듯 이 책은 철학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바보같은 기대였는지... 나는 진귀한 음식을 입 안 가득 떠먹여 주길 바랐던 거다.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스스로 사유할 생각은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책을 읽기만 하면 생각의 상자가 뿅하고 열리기라도 기대한 건가 싶어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기가 죽었다.

 

책 속에서 미셸투르니에는 116가지의 닮음과 다름꼴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자면 행동과 정열, 시와 산문, 순수와 순결, 일차적 인간과 이차적 인간..과 같은 식의 나열이다. 과연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는 저자다운 발상이다. 서로 대립하는 쌍을 만들어 그 속에 감춰진 의미를 찾아내는 모양이 마치 다른 해석 찾기라도 하는 듯 느껴졌다. 이처럼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각각의 단어와 문장들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쌍을 이루어 비로소 완전한 모습을 갖추는 듯 하다. 하나의 짝이 완벽한 존재를 이루기 위해 다른 하나가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함을 상기시키 듯 미셸투르니에는 하나에 빗대어 다른 하나를 표현하고 정의 내린다. 그가 내린 정의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들도 분명 있었다. 내가 가진 생각의 한계를 여실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상상력 기르기보다 생각 기르기에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참신한 방식으로 이야기에 접근하고 싶다거나 새로운 의미의 해답을 찾고 싶을 때 한번 쯤 들추어 볼 만한 책이다.

 

 

 

<말과 글>

말은 좁은 공간을 벗어난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지워져버린다.

이에 비해 글은 시간과 공간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여행한다.

말은 살아 있는 것이며, 글은 죽어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말 없이 글은 생생해질 수 없다.

.....(중략)

위대한 작가란 작품의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그 목소리가 들려와 독자들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작가이다.

그는 글 속에 말을 용해시키는데 성공한 사람이다.

P.140~141

 

 

<고양이와 개>

사람들은 개에게 스스로 문을 열고 바깥을 정복하러 떠나는 충동을 기대한다.

...(증략)

반면 고양이는 집 안에 남아 난로가나 등잔 아래에서 빈둥거리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꾸벅꾸벅 졸기 위해서가 아니라 싶은 생각에 잠기기 위해서다.

고양이가 쓸데없이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지혜롭기 때문이다.

개가 일차적 동물이라면 고양이는 이차적 동물이다.

P.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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