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유물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7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7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찬차'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가. 악녀의 유물을 읽기 전까지 나는 찬차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작가의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저 두 글자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된 순간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언뜻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는 어감의 단어가 실은 사람의 머리를 말려서 만든 미라를 뜻한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말린 머리, 찬차...간단한 설명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작가의 친절함? 덕분에 찬차를 만드는 과정부터 그 끔찍한 모습까지, 너무도 상세하게 묘사된 글을 읽고나자 마치 내 눈으로 본 것 마냥 그 형태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뿐이 아니다. 습지미라의 괴기스런 모습은 또 어떠한가. 정말이지 책 표지에 리얼리즘 공포미학이라는 문구가 괜히 써있는게 아니었다. 대체 작가는 어떻게 이런 눈뜨고 보기 힘든 것들을 조사해서 글에 담아낼 수 있었는지, 나로서는 대단하다는 말로 밖엔 표현할 길이 없다.

 

보스턴의 한 박물관 지하에서 미라 한 구가 발견된다. 이집트 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는 미라는, 그것을 싸고 있는 고대의 리넨 헝겊을 분석한 결과  2천년 된 유물로 밝혀져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된다. 마담 X로 불리는 이 미라를 박물관에 전시하기에 앞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분석하는데 이 과정에서 도저히 2년 천 된 미라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금속물질이 발견된다. 그것은 다름아닌 총알. 고대 입트에 총알에 있었을리 만무하다. 충격에 휩싸인 이들은 미라를 시체 안치소로 보내 부검을 의뢰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마담X의 정체는 2천년 된 미라가 아닌 25년 전에 죽은 여인의 시체로 밝혀진다. 더욱 끔찍한 사실은 이 여인이 총알이 박힌 채로 2주가 넘게 살아있었다는 것이다. 살인마는 상대가 꼼짝하지 못하도록 부상을 입혀 어둠 속에 가두어 놓고는 서서히 고통 속에 죽였다. 그런 후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행하던 방법에 따라 시체를 미라로 만들고 박물관에 유기했다. 고고학자 조차 감쪽같이 속인 정교한 솜씨로 ... 마담X의 시체를 싸고 있던 헝겊을 벗겨내자 시체의 입은 마치 영원한 침묵을 고하는 듯이 굳게 꿰매어져 있었다. 그리고  입속에서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의문의 메시지가 발견된 순간 공포에 사로잡힌 한 여인이 있었다. 자신을 찾아내려 혈안이 된 악마를 피해 다섯번이나 이름을 바꾸고 매 순간 끝을 알 수 없는 공포의 끝에서 살아온 조세핀 펄시로는 또다시 떠나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닫는다.

이 괴기스런 사건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미라의 모습으로 유기된 시체 한구를 시작으로, 공포는 서서히 조세핀의 목을 조여온다.

마담 X가 발견되었던 크리스피 박물관 지하에 또다른 시체가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감지한 형사들은 수사에 착수하고 그 결과 그들의 추측을 뛰어넘는 시체가 발견된다. 도저히 인간의 머리라고는 믿고 싶지 않은 쪼그라든 머리 세 개.

 

P.96

마우라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찬차인 것 같아요." "말린 머리."

마우라는 제인을 보며 다시 말했다.

"진짜 같아요."   ....(중략)

"그냥 오래된 소장품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죠"

어둠 속에서 마우라가 제인을 보았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최근 것일 수도 있고요."

 

P.108

"난 그 머리가 어디서 난 건지 도통 모르겠어. 누가 왜 그 벽 안에 갖다 놓았는지 모르겠다고."

마우라는 눈과 입술이 영원히 봉해진 머리를 보았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누군가가 나름대로 수집을 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

 

 

고대 이집트의 미라를 재현한 시체 한 구와 남아메리카 부족이 인간의 머리를 잘라서 말린 찬차의 방식을 따라 살해한 세 개의 머리.

그리고 또다른 미라가 발견된다. 앞 서 발견된 것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지만 기이한 모습은 그에 못지 않았다...

 

P.129

지금 이 혼다 트렁크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이런 인간의 형상은 정말이지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다. 순간 마우라는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칼을, 타르처럼 새까만 얼굴을 말없이 응시했다. 주름 하나하나, 알몸의 미세한 선 하나하나가 마치 청동으로 만든 듯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죽어가는 표정 그대로 보존된 여자의 얼굴은 일그러진 상태였다. 입은 영원히 비명을 멈추지 않을 것처럼 벌어져 있었다.

 

 

이 모든 시체들이 가리키고 있는 다음 희생자는 너무도 명백했다. 죽은 여인들의 생전 모습이 마치 현재의 조세핀을 보는 듯 닮아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을 수집하는 괴물의 정체는 대체 누구인가.

 

이 책은 결코 독자의 방심을 허락하지 않는다. 쉬어갈 틈도 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몰아가는 이야기와 거듭 발견되는 새로운 사건은 뒤로 갈 수록 점점 온 몸의 신경을 자극하다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숨을 내쉬게 만든다.

이런 스릴러 소설은 본 적이 없다. 작가의 정확하고도 섬세한 묘사는 상상으로 비현실적인 사건에 현실감을 부여했는데 이는 전직 의사였던 테스게리첸이었기에 택할 수 있는 직설적인 방식이었다. 이집트 고대 유물  미라, 찬차, 토탄 습지, 캄비세스의 사라진 군대... 이 새로운 소재들에 인간의 끔찍한 집착이 더해져 악녀의 유물을 만들어냈다.

중독이라는 건 이 책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 끔찍함과 기이함에 고개를 돌리게 되면서도 결코 멈출 수 없게 만드는 테스 게리첸의 마력. 나는 아마도 그녀의 이야기에 중독된 것 같다.

 

 

 

"태양은 당신을 위해 빛나니...그 영원한 찬란함을 위해,

난 당신을 위한 불멸의 악마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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