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차일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3-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3
존 하트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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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완벽한 가정, 행복한 가족이었다. 일년 전 쌍둥이 여동생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아름다운 엄마와 다정한 아빠, 이란성이지만 자신과 꼭 닮은 쌍둥이 여동생까지 조니의 삶은 무엇하나 부족한게 없어보였다. 그들은 늘 행복했고 집안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계속될 줄 알았던 행복한 일상은 동생 앨리사의 실종으로 철저히 붕괴된다. 사라진 동생은 남겨진 가족들의 웃음과 삶에 대한 의지도 함께 가져가버렸다. 차가운 공기로 둘러싸인 집은 더이상 어린 조니를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한다. 어린 딸의 실종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져버린 엄마, 이 모든 상황들로부터 도망친 아빠.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조니 가족이 처한 불행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난도질하는 켄까지...이 모든 상황이 어린 조니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하다. 

 

켄은 조니 아버지의 동료였다. 조니 가족에게 아직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전, 켄은 더없이 친절한 이웃이자 조력자였다. 상냥한 이웃의 표본과도 같았던 그는 앨리사가 실종된 후 감춰둔 본성을 드러낸다. 딸의 실종에 대한 비난과 책망을 견디지 못한 조니의 아버지가 가족을 떠나자 더이상 조력자가 아닌 약탈자로 조니의 가정에 침범한 것이다. 나약해진 조니의 엄마를 마약에 의지하게 만든 후, 약에 취한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는 힘없는 모자의 삶에 멋대로 침입해 위협을 가하면서도 자신의 재력을 이용해 모든 상황을 무마시킨다. 조니 엄마에 대한 켄의 집착은 날로 심해져 결국에는 폭력으로 이어지고 그때마다 조니는 하느님에게 기도했다. 가족이 돌아오고, 엄마가 약을 끊게 해달라고, 그리고 켄이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가게 해달라고 매일밤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어린 소년의 간절한 소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소원이 기도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깨달은 순간 조니는 기도를 멈췄다. 그리고 결심한다. 기도를 이뤄줄 사람은 하느님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동생만 찾으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리라. 조니는 엄마를 지키고 가족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차를 몰고 멀리 떨어진 가게로 가 장을 보고, 아침을 준비한다. 또, 엄마와 자신을 떨어뜨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 처럼 보이는 사회복지사에게 자신이 안정된 삶을 살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엄마의 약병을 감추고 집 안을 청소한다. 그리고 매일 동생을 찾아나선다. 너무도 위험해 보이는 지도 한 장을 들고.... 어린 소년의 손에 들린 지도는 이 마을의 추악한 범죄자들을 가리키고 있다. 어린 소녀들을 상대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소아성애자들. 조니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보며 혹시나 저들의 집 어딘가에 동생 앨리사가 갇혀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기도해도 이 가여운 가족에게 자비란 없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이건 정말 너무하다 싶다. 고난에도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거늘 고작 열세 살 밖에 안된 이 어린 소년이 감내하기에 이 모든 일들은 너무도 가혹하고 잔인하기 짝이없다. 조니의 내면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너무도 빨리 어른이 되었다. 믿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켄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을 묵인하는 자신의 삼촌도, 동생을 찾아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경찰도, 조니에게는 도움의 손길이 아닌 거추장스러운 참견일 뿐이었다. 무엇이든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야 한다. 엄마를 지켜 줄 사람도, 잃어버린 동생을 찾을 사람도 오로지 조니 자신 뿐임을 진작에 깨달았다. 그럼에도 이 가여운 소년은 스스로를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고 믿는 조니는 매번 자신을 향해 명함을 건네며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헌트 경찰의 손을 뿌리친다. 이미 그는 일 년 전 동생을 찾아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런 경찰에게 되찾아야할 가족의 행복을 맡길 수는 없다고 조니는 생각한다.

 

결국 조니는 앨리사를 데려간 범인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소아성애자의 집을 훔쳐보다 위험에 처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사건으로 조니의 엄마 캐서린은 자신에게 지켜야 할 아이가 한 명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잃어버린 딸 앨리사에 대한 절망으로 자신을 놓아버리고 어린 조니를 방치했던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그리고 아들 조니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 그런 조니와 캐서린을 도우려는 헌트 경찰은 조니가 그동안의 관찰을 기록해둔 메모에서 충격적인 내용을 발견한다. 믿고 싶지 않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다....조니의 메모는 소녀들을 납치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또다른 범인이 경찰이라 말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더하며 독자를 몰아간다. 조니가 찾아다닌 범죄자들에게 초점이 맞춰지는가 하면 어느새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의혹의 눈길을 향하게 한다. 그리고 의심을 거둬들이는 순간 화살은 곧바로 다른 이를 지목한다. 한명씩, 혐의가 벗겨지기가 무섭게 또다른 심증을 제시하며 어쩌면 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의 추측을 낳게 한다. 그러나 거듭되는 이 추리는 독자를 지치게 만들지도, 지루하게 하지도 않는다. 책을 읽는 내내 조니의 일상을 따라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나는 고작 열세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이 처한 상황에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팠고, 비열한 어른들의 모습에 할말을 잃었다. 조니 가족을 짓누르던 앨리사의 실종에 얽힌 비밀이 밝혀진 후에는 더욱 그러했다. 조니의 가족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건의 시작이 실수에서 비롯된 것임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앨리사가 돌아오지 않으리란 건 처음부터 짐작했었다. 그럼에도 조니의 간절한 모습에 나 역시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슬프긴 해도 이렇게까지 될 일이 아니었는데....실수가 실수에서 그쳤더라면 이 모든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어도 됐다. 한 순간 사라져버린어린 딸이 그런 상황에 처했던 이유만 알았더라도 조니의 가족이 이처럼 무너지지는 않았을 터이다. 만약 그랬다면 남은 가족들은 끔찍한 범죄가 아닌 안타까운 실수를 이해하고 슬프지만 현실로 돌아와 가정이란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까. 하루 아침에 닥친 납득하기 힘든 현실 앞에 그저 무력하게 주저 앉아 곁에 있는 아들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잘못을 저지르거나, 이로 인해 벌어질 모든 상황을 어린 조니가 떠맡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범인으로 밝혀진 이가 추악한 소아성애자였다면 이토록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허나 범인은 자신의 가족이 저지른 잘못이 행여 가족의 행복을 망칠까봐 실수를 범죄로 만들었다. 단지 자기 가족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조니의 가족을 이토록 처참한 지옥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어린 소년이 잃어버린 삶의 행복은 안중에도 없이,철저히 본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어른들의 이기심에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다양한 스릴러 소설을 접했지만 라스트 차일드처럼 가슴을 뻐근하게 하는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쉬지 않고 책을 읽었는데, 책장을 덮은 후에도 머릿속에서 조니가 떠나질 않았다. 힘겨운 고통에서 비로소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조니라는 아이가 내 이웃에 살고 있기라도 한 듯....아마도 당분간은 이 어린 소년의 행복을 마음으로 빌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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