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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어린왕자 두 번째 이야기 - 마음이 외로운 당신을 위한 따뜻한 위로
A.G 로엠메르스 지음, 김경집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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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는 언제까지나 어린왕자일 거라고..아니 어린왕자여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나보다. 어린왕자가 자라서 청소년이 되고 더 나이가 들어 아저씨가 되고 또, 할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생각해본 일이 없다. 내 마음 속 어린왕자는 그저 늘 같은 자리에서 작은 별의 장미 한 송이를 돌보며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줄로만 알았다.
기다림 끝에 책을 받아든 내 눈에 비친 어린왕자의 모습이 궁금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 그 떄문인 듯 하다. 표지에 그려진 어린왕자의 훌쩍 자란 뒷모습은 더이상 내 기억 속 어린왕자가 아니었다. 곱슬거리는 금발머리에 자그마한 키를 가진 귀여운 소년은 어느새 훌쩍 커버려 청년의 어깨를 지니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면서 혹시나 훌쩍 자란 키만큼 순수했던 마음까지 변해버렸으면 어쩌나 하는 어리석은 우려를 잠깐 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어린왕자의 내면은 그 옛날 '어렸던 어린왕자'였을 적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해 폭풍 질문을 쏟아내며, 자신이 한 질문에 답변을 듣기전까지는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던 그 호기심까지 그대로였다. 나는 안도했고 또 기뻤다. 몸이 커가는 속도에 뒤질세라 마음까지 변해가는 우리들과 다르게 어린왕자는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변화가 순수함 대신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거라면 어린왕자의 변화는 말그대로 '성장'이었다. 몸의 성장과 마음의 성장... 그 사실이 나를 기쁘게 했다. 소년이 아직 순수한 내면을 간직하고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그 순수함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임을 느낀 후 더욱 마음이 놓였다.
저자는 친구의 결혼식으로 향하던 중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지쳐 잠이 든 천진한 얼굴의 소년을 발견한다. 파란 망토에 반짝이는 검은부츠를 신은 조금 이상한 복장의 소년은 한적한 시골과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저자로 하여금 혹시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잠시동안 망설이던 저자는 그냥 둘 수가 없어 소년을 차에 태우고 다시 길을 향한다. 소년이 깨어나길 기다린지 얼마쯤 흘렀을까, 드디어 잠에서 깬 소년은 낯선 어른을 경계하기는 커녕 저자가 건넨 물과 새샌드위치를 맛있게 먹고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우리가 타고 있는 기계가 뭐에요?" 그때부터 소년은 옆자리에 앉은 어른을 향해 많고 많은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 질문들은 때론 쉬운 답변에 그치기도 하지만 때때로 저자로 하여금 깊은 생각을 필요로 하게 만든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을 찾기 위해 지구로 왔다는 소년의 말에 저자는 소년을 도와주고자 그 사람이 사는 곳을 묻고, 이어진 소년의 대답으로 깨닫는다. 상대방을 난감하게 만들 정도로 믿기 어려운 이 순수한 소년은 자신이 오래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아이였다는 것을.. 날아다니는 기계를 갖고 있으며, 웃는 별들을 선물로 줬던 사람을 찾고 있는 파란망토의 소년! 그는 바로 어린왕자였다. 소년은 자신이 겪고 있는 마음의 슬픔을 털어놓는다. 자신이 양으로 알고 있던 존재가 사실은 사진이란 것에 불과했으며, 양이 담겨 있다고 믿었던 상자에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잡초가 알려준 순간 어린왕자의 세상이 무너지고 말았음을.
그 날은 어린왕자의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이었고 그 후 어린왕자는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어린 시절 아이들이 처음 산타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때 받는 충격은 실로 큰 것이다. 보이는 대로 믿고 들려주는 대로 받아들이는 어린 아이들에게 자신이 믿어마지 않던 존재가 사실은 거짓이었고, 더군다나 그 거짓을 말한 이가 자산이 가장 사랑하고 믿는 절대적인 존재, 자신의 전부와도 같은 부모님 이라는 사실은 어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충격일 것이다. 어린왕자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친구가 건넨 선물에 대해서 잡초가 들려준 이야기가 어린왕자에게는 세상을 무너뜨릴만큼 커다란 슬픔이었다. 어린왕자는 잡초로 인해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지만 그로인해 오히려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상실감에 빠진다. 때로는 모든 것을 아는 것보다 모르는 채 사는게 나을 때가 있다. 속임수와 거짓도 그 중 하나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이야기들을 잡초는 마치 성경 속 뱀과 같이 어린왕자에게 일러준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에 이 모든 것들은 가혹해보였다. 결국 소년은 친구를 만나 왜 자신에게 거짓을 말했는지 물어보라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다시 한번 지구를 찾기로 결심한다. 그것만이 더이상 웃지 않는 자신의 별들을 다시금 웃게 만들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그러한 이유를 안고 돌아온 지구에서 우연히 만난 저자와 어린왕자는 여행길을 함께 한다. 그것은 내면의 세계로 향하는 힘겨운 여행과도 같다. 자신을 흔드는 문제로부터 답을 찾아 떠나는 여행, 결국에 어린왕자는 살아오면서 처음 겪게 된 어려움 앞에서 자신의 마음에 닥친 슬픔을 스스로를 이겨낼 수 있는지 시험해보는 것 같았다.
이 책에는 인생에 닥친 많은 어려움과 그것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어린왕자와 저자의 대화를 빌어 말하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담고 있지만 어렵게 풀지 않고 담백하게 이야기 한다. 어린왕자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처럼. 그렇게 많은 대화를 주고 받던 중 저자의 긴 설명 앞에 어린왕자는 말없이 옳은 행동을 보여줌으로 그의 설명을 무색케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범하는 모순을 어린왕자는 비난하기보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으로 상황을 변화시킨다. 강아지 날개와의 만남이 그러하다. 저자와 어린왕자가 타고 있던 차에 치어 목숨을 잃게 된 하얀 개를 두고 저자는 대부분의 어른들과 다를 바 없는 태도를 보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말하고 자리를 떠나려다 개의 주인을 보고 진심어린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사과를 구하기 앞서 지갑을 먼저 꺼내 든 것이다. 그러나 어린왕자는 떨고 있는 커다란 개를 보듬어 안으며 눈물 흘린다. 그러자 어린왕자의 눈을 올려다보던 개의 눈에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천천히 눈을 감는다. 개의 주인은 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한다. '이건 그저 돈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오' 이것이 어른의 마음과 아이의 마음인 듯 하다. 간혹 아이의 마음을 간직한 어른도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어른들은 자신이 벌인 문제와 자신 앞에 놓인 문제들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늘상 입으로는 세상에는 돈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고 말하지만 마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개를 잃은 주인은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 사랑하는 친구의 목숨을 잃게 했음에도 오히려 어린왕자에게 작은 새끼 강아지를 안겨주며 새로운 생명을 선물한다. 진실한 마음이 통한 것이다.
P.107
그것은 사랑의 기적이었고 어린왕자가 내게 가르쳐 준 첫 번때 교훈이기도 했어. 나는 말로만 떠들면서 내 경험을 어린 왕자에게 나눠 줬지만 어린왕자는 마치 선생님처럼 내게 침묵의 지혜를 보여 준 거야. 사랑의 기술에 대한 백 권의 책이 한 번의 입맞춤에 미치지 못하고, 사랑에 대한 백 번의 연설도 단 한 번의 행동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확실히 깨닫게 되외었어
어린왕자의 마음이 변화시킨 상황을 바라보며 우리가 사는 동안 범하는 수많은 실수 앞에서 어떤 마음으로 노력해야하는 가를 생각했다.
그렇게 자신의 순수함으로 하나 둘 상황을 변화시키며 길을 가던 어린왕자는 자신이 머물러야 할 곳을 발견하고 저자와 안녕의 인사를 나눈다. 저자가 어린왕자와 함께 했던 사흘 간의 동행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듯 나 역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많이 느끼고 깊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누구나 어린시절 간직한 추억의 한 켠에 어린왕자의 자리가 있을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갈매기의 꿈, 꽃들에게 희망을.. 이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어린왕자는 내 마음 속 가장 훌륭한 서랍에 담겨 있고, 지금도 가끔 꺼내보곤 한다. 앞으로도 이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린왕자가 더 나이를 먹어 아저씨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어도 어린왕자는 영원히 소년의 마음 그대로를 간직한 채 우리를 찾아 올테니 말이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그리고 작은 노력이 많은 것을 변하게 할 수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어린왕자의 이야기는 세 번째, 네 번째...언제까지나 계속 되지 않을까.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지구별의 어른들에게 어린왕자가 일깨워준 작은 바람은 물결처럼 번져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언제나 한결같이 좋은 방향으로.. 다시 찾아올 어린 왕자를 기다리며 내 마음 속 어린왕자의 서랍에 두번째 이야기도 담아두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