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문학동네 시인선 184
고명재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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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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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러키 스타트업
정지음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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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정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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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자리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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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은 너무 슬퍼서, 어떤 글은 너무 화나서, 어떤 글은 너무 행복해서 리뷰하기가 어렵다. 적절한 말을 고르기 어려운 까닭이다.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가장자리>는 셋 다 포함되는 책이다. 슬프고 화가 나는데 동시에 행복하기까지 하다. 


몇 달 전 애인은 나에게 '디깅(Digging)'이라는 말을 알려주었다. 디깅은 '파다'라는 영어단어 'dig'에서 파생한 것으로, 선호하는 품목이나 영역에 깊이 파고드는 행위를 뜻한다. 나는 자주 디깅하지만, 쉽게 성공하지는 못한다. 음악도, 책도, 음식도. 어쩌면 내 취향이 단호한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성공했다. <가장자리>가 내게 오기 전까지. 그동안 나는 메마르거나 굶주린 사람 같았다. 곧 죽을 사람 같았다. 살아있는 게 신기한 사람 같았다. 이제 와 보니 그렇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가장자리>의 표지나 표4, 보도자료를 보아도 이 책이 당최 어떤 책인지 어떤 작가가 쓰는 어떤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불친절하다. 그래서 책을 접하지 못할 사람들에게 꼭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이 책 진짜 좋고요. 나만 알고 싶은 책이라는 말을 쓰기엔 너무 알리고 싶어서 못 하겠고요. 꼭 읽어주세요. 좋으니까요. 그런데 좀 아파요. 짜증나요. 좆같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돼요. 뱉게 돼요. 습관처럼.


추천은 이쯤 그만하고 아주 약간의 본문을 발췌해본다.


"다들 마음속으로는 해야 할 일을 해치우고 싶어 한다. 동네를 가꾸고 자기 집과 자기 자산을 개선하고자 한다. 그러나 일이 너무 많은 데다가 아이까지 키우느라 좆같이 피곤하다. 어린 시절의 꿈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지쳐버렸다. 우리의 작고 처량한 꿈 풍선, 한때는 뜨거운 숨결로 부풀었으나 이제는 늙어 축 처진 살덩이처럼 천천히 쪼그라드네." p49


책이란 건 아무도 모르게 나를 조금씩 돌보고 자라게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내가 혼자서도 잘 크는 줄 안다. 책은 쌓여가고, 시간은 지나고, 쌓인 책 위에 또 다른 책이 쌓인다. 그 시간 겹겹이 내가 그어놓은 밑줄이 있고, 밑줄이 감당할 정도의 무게를 가진 문장이 있고, 미처 지탱하지 못해 찢겨 나가거나 필사된 말이 있다. 그런 말이, 삶이 있다. 지나고 보니 그렇다. 그리하여 내가 아직도 책을 사 모으고, 선물 받고, 선물 주고,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남의 책을 읽고, 팔고, 그러다 이런 행동으로는 성이 안 차 내 책을 펴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돈 드는 것 대신 내게 위안을 주는 물건들로 집을 채웠다. 돌과 깃털과 동물의 작은 뼛조각이 담긴 접시와 그릇. 푸른 구슬을 채운 컵. 조개껍데기와 부적과 자질구레한 장식품. 그리고 책.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책. 방마다, 선반과 테이블과 바닥에 높게 쌓아놓은 책. 책은 과거의 나로부터 나를 구해주었다." p50


이 책은 아직도 진행 중인 것 같다. 챕터가 끝나고 계속, 어딘가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혹은 나를, 나와 애인을, 나와 애인이 꾸리고 있는 이 세계를 수색하고 수사하는 형사가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증거를 찾으려는 듯이. 그래서 우릴 감옥에 처넣으려는 듯이. 


"나는 피 대신 달콤한 백설탕이 쏟아지는 것처럼 그의 손목에 남은 울퉁불퉁한 상처에 입 맞출 수 있으니까. (..)우리는 버려지고 폐허가 된 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중이다. 한동안 우리 둘 다 심리 치료나 보험같이 안녕한 삶을 위한 서비스에 돈을 쓸 수 없었다." P54


한때는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삶이 있다고 작가는 믿었다. 죽음의 이면이 삶이라고 나는 믿는다. 낡은 보도블럭이 몇 개인지 세면서 걷고, 어느 가발 가게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병든 고양이를 보고, 곧 비가 쏟아질 듯한 하늘을 어둠이 끌어안은 것을 보면서 모든 게 죽음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게 나의 근황이며, 리뷰라고 보기에는 사설이 너무 많이 섞여버린 내 일기의 한 페이지.


애인이 집으로 떠나고 나는 열심히 방을 치웠다. 애인 없이도 나는 방을 치울 수 있는 사람이다.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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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 - 99년생 시인의 자의식 과잉 에세이
차도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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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


2020 한국일보 시 부문으로 등단한 차도하 시인의 첫 책이 나왔다. 시집이 아닌 산문집이라는 점에서 의외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분명 책은 시인의 시만큼이나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았고, 그런 문구들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집어 들게 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책날개에는 시인의 소개가 적혀 있다. ‘1999년생. 자기소개 잘 못하는 사람.’ 그 뒤에는 시인의 출생과 학교, 수상에 대해 적혀 있다. 이후 시인은 그러나 이런 이력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간단히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그래서 에세이집을 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이, 자신을 간단하게 설명하는 게 어려워 자신에 대한 글을 쓰고 그것을 출판하게 되었다니. 남을 의식하면서 자신이 읽힐 걸 아는 마음과, 반대로 이것이 읽히지 않았으면,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이 공존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기대감과 두려움 사이에서 독자인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음 책장을 넘기는 것을 택한다. ‘그러니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겠다99년생 시인의 자의식 과잉을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까닭에서다.


시인은 스물셋에 죽고자 했으나 책을 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알싸한 죽음이 책 귀퉁이나 페이지마다 스며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죽은 사람의 글을 읽듯이 자신의 글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부터 공허함과 피로함으로부터의 탈출 의지, 옷처럼 늘 입고 있는 허물과 주저흔 등. 2부까지는 어째서 시인이 스물셋에 죽겠다고 생각하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왜 다행히도 살아 이렇게 책을 낼 수 있었나? 그것은 3부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시인의 성지향성, 애인, 애인과의 연애, 그로부터 비롯된 모녀 갈등 등, 과거가 아닌 현재의 덤불을 파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시인은 여기저기 가시에 찔리고 줄기에 긁혀 상처 입는다. 그렇지만 꿋꿋하게 나아간다. 누군가 갈고닦은 길 위로 걸으려는 욕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거침없이 새 길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몰두한다. 그 끝엔 귀엽고, 보드랍고, 사랑스러운 것들이 있다. 디디가 있고, 설표가 있고, 버섯 튀김이 있다. 이밖에도 시인은 앞으로 다가올 원더월을 상상하고 기다린다. 모든 걱정을 초월하고 결국 나를 구원하러 올 어떤 형태의 ‘ ’를 생각하며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번역해 들려준다. 만능 이야기꾼을 자처하여 말을 할수록, 빗물에 죽고 싶다는 마음이 섞여 흘러가고 있는 것도 모른 채로 말이다. 그리하여 한편으로 시인은 살아 있다. 이야기를 함으로써 죽음이 점차 멀어져 가는 것도 모르고.


시인이 내 옆에서 탁, 하고 옷을 털고 있다. 개운하다. 문득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젖은 손바닥을 본다. 물방울과 함께 증발하는 슬픔이 있다. 나는 시인을 생각하면 이전만큼 내 삶이 아프지 않다. 이거 다 거짓말일 수도 있어. 시인이 말하면 나는 웃는다. 괜찮아. 재미있으니까. 그거면 된 거다. 우리의 첫인사가 끝났다.





주저흔을 만져본다. 나는 되돌아가지 않는다. - P111

누구든 어리둥절한 죽음을 맞아서는 안 된다. 누구든 이 일을 교훈 삼을 수 없다. 비유할 수 없다. 깨치고 나아갈 수 없다. - P217

나는 친구의 일을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친구에게 필요한 만큼의 커다란 사랑이나 돈이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친구가 지겹고 슬픈 시간에 대해 지나치게 몰입하는 걸 방해할 수는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 집에서 친구와 영화를 보기로 했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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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밤의 낱말들
유희경 지음 / 아침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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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바로 생각난 노래가 하나 있다. 럼블피쉬의 한사람을 위한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멜로디에 따라 가사를 읊어보고 있자면    전문을 낭독하는 기분이 든다.


 언젠가 서로가   곳을 보며

  결국에 헤어질 것을 알았지만


  모든 것이 명백해지는 순간을 두려워 하면서도 잠에 드는 사람. 꿈에서 불안을 지속적으로 마주하는 사람.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어째서 지난 날의 일을 불러내려 하는 것인지 궁리하는 사람. 기억나지 않는 것들을 자세히 묘사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 궁금하지 않다면서 실은 궁금한 사람. 밤에 이끌려 모든 것에 반대되기 시작한 사람. 반대로, 밤대로 뱉고 마는 사람. 미래를 예측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미래를 예측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하여금 이미 미래를 예측해버린 사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설명할  없는 일들을 설명하면서 어떤 일들은 설명할  없다고 모른  하는 사람. 둘러대는 사람. 불안해하면서 불안에 머리를 기대는 사람. 멀어지려는 것들과 더욱 가까워짐으로써 스스로를 자책하는 사람. 대답이 늦는 사람. 아무도 아직 하지 않은 질문들을 하고 기꺼이 대답하려는 사람. 되돌아보는 사람. 예비하려 하지만 끝내 예비하지 못하고 작별해버린 사람. 지운다고 말함으로써 깊게 새기는 사람. 세게 끌어안는 사람. 지금 이대로가 좋다면서 이대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사람. 또는 ‘지금  초마다 바뀌어 모두 다른 ‘지금 귀가시키는 사람. 언젠가 모두 털어낼 것이라 이야기하지만 아직은, 하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변명하는 사람. 미루는 사람.  모든 것들이 결국 기다리는 방식임을 알고 있는 사람.


  “이제는 어디로 나는 어디로


  시인은  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돌고 돈다.  속에서,  속에서,  안에서 쏟아지는  속에서, 정처 없이 나다니다가 스스로 잠에서 깬다.   즈음에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정도를 아는 사람처럼.  속에서도 알람을 울리는 사람처럼.  알면서, 당신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하냐고 핀잔을 줘야  성질에 맞는데, 이상하게 핀잔 대신 위로를 주고 싶게 만드는 사람.   같은 사람이 위로 따위를 주려고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 비로소 나는 느낀다. 시인이 말하는 당신이 나라고 단단히 착각해 버리는 것이다.


  착각이라 말할  있는 이유는 내가 이미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어떠한 것을 알게  후에는 그것을 몰랐던 이전으로 돌아갈  없으니까.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시인의 편지들. 낱말들. 반짝이는 문장들. 절대로,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 모든 마음을 들켜버릴  같으니까. 정말로 그렇게   같으니까. 나만 알고 몰래 덮어두는 어떤 감정과 수치들.  


  책을 덮고   모든 것이  같고 장식 같다. 하늘로 쏘아 올린 위성처럼, 그는 그를 수없이 관측했다. 그리하여 나도 나를 관측하였다. 도중에 그만둘  없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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