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
유희경 지음 / 아침달 / 2020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바로 생각난 노래가 하나 있다. 럼블피쉬의 한사람을 위한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멜로디에 따라 가사를 읊어보고 있자면 꼭 이 책 전문을 낭독하는 기분이 든다.
“언젠가 서로가 더 먼 곳을 보며
결국에 헤어질 것을 알았지만”
모든 것이 명백해지는 순간을 두려워 하면서도 잠에 드는 사람. 꿈에서 불안을 지속적으로 마주하는 사람.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어째서 지난 날의 일을 불러내려 하는 것인지 궁리하는 사람. 기억나지 않는 것들을 자세히 묘사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 궁금하지 않다면서 실은 궁금한 사람. 밤에 이끌려 모든 것에 반대되기 시작한 사람. 반대로, 밤대로 뱉고 마는 사람. 미래를 예측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미래를 예측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하여금 이미 미래를 예측해버린 사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설명하면서 어떤 일들은 설명할 수 없다고 모른 척 하는 사람. 둘러대는 사람. 불안해하면서 불안에 머리를 기대는 사람. 멀어지려는 것들과 더욱 가까워짐으로써 스스로를 자책하는 사람. 대답이 늦는 사람. 아무도 아직 하지 않은 질문들을 하고 기꺼이 대답하려는 사람. 되돌아보는 사람. 예비하려 하지만 끝내 예비하지 못하고 작별해버린 사람. 지운다고 말함으로써 깊게 새기는 사람. 세게 끌어안는 사람. 지금 이대로가 좋다면서 이대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사람. 또는 ‘지금’이 매 초마다 바뀌어 모두 다른 ‘지금’을 귀가시키는 사람. 언젠가 모두 털어낼 것이라 이야기하지만 아직은, 하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변명하는 사람. 미루는 사람. 이 모든 것들이 결국 기다리는 방식임을 알고 있는 사람.
“이제는 어디로 나는 어디로”
시인은 책 안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돌고 돈다. 잠 속에서, 꿈 속에서, 그 안에서 쏟아지는 빛 속에서, 정처 없이 나다니다가 스스로 잠에서 깬다. 꼭 이 즈음에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정도를 아는 사람처럼. 꿈 속에서도 알람을 울리는 사람처럼. 다 알면서, 당신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모르는 척 하냐고 핀잔을 줘야 내 성질에 맞는데, 이상하게 핀잔 대신 위로를 주고 싶게 만드는 사람. 왜 나 같은 사람이 위로 따위를 주려고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 비로소 나는 느낀다. 시인이 말하는 당신이 나라고 단단히 착각해 버리는 것이다.
착각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이미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어떠한 것을 알게 된 후에는 그것을 몰랐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까.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시인의 편지들. 낱말들. 반짝이는 문장들. 절대로,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 모든 마음을 들켜버릴 것 같으니까. 정말로 그렇게 될 것 같으니까. 나만 알고 몰래 덮어두는 어떤 감정과 수치들.
책을 덮고 난 뒤 모든 것이 별 같고 장식 같다. 하늘로 쏘아 올린 위성처럼, 그는 그를 수없이 관측했다. 그리하여 나도 나를 관측하였다. 도중에 그만둘 수 없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