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 - 99년생 시인의 자의식 과잉 에세이
차도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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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


2020 한국일보 시 부문으로 등단한 차도하 시인의 첫 책이 나왔다. 시집이 아닌 산문집이라는 점에서 의외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분명 책은 시인의 시만큼이나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았고, 그런 문구들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집어 들게 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책날개에는 시인의 소개가 적혀 있다. ‘1999년생. 자기소개 잘 못하는 사람.’ 그 뒤에는 시인의 출생과 학교, 수상에 대해 적혀 있다. 이후 시인은 그러나 이런 이력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간단히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그래서 에세이집을 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이, 자신을 간단하게 설명하는 게 어려워 자신에 대한 글을 쓰고 그것을 출판하게 되었다니. 남을 의식하면서 자신이 읽힐 걸 아는 마음과, 반대로 이것이 읽히지 않았으면,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이 공존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기대감과 두려움 사이에서 독자인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음 책장을 넘기는 것을 택한다. ‘그러니 나는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겠다99년생 시인의 자의식 과잉을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까닭에서다.


시인은 스물셋에 죽고자 했으나 책을 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알싸한 죽음이 책 귀퉁이나 페이지마다 스며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죽은 사람의 글을 읽듯이 자신의 글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부터 공허함과 피로함으로부터의 탈출 의지, 옷처럼 늘 입고 있는 허물과 주저흔 등. 2부까지는 어째서 시인이 스물셋에 죽겠다고 생각하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왜 다행히도 살아 이렇게 책을 낼 수 있었나? 그것은 3부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시인의 성지향성, 애인, 애인과의 연애, 그로부터 비롯된 모녀 갈등 등, 과거가 아닌 현재의 덤불을 파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시인은 여기저기 가시에 찔리고 줄기에 긁혀 상처 입는다. 그렇지만 꿋꿋하게 나아간다. 누군가 갈고닦은 길 위로 걸으려는 욕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위해 거침없이 새 길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몰두한다. 그 끝엔 귀엽고, 보드랍고, 사랑스러운 것들이 있다. 디디가 있고, 설표가 있고, 버섯 튀김이 있다. 이밖에도 시인은 앞으로 다가올 원더월을 상상하고 기다린다. 모든 걱정을 초월하고 결국 나를 구원하러 올 어떤 형태의 ‘ ’를 생각하며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번역해 들려준다. 만능 이야기꾼을 자처하여 말을 할수록, 빗물에 죽고 싶다는 마음이 섞여 흘러가고 있는 것도 모른 채로 말이다. 그리하여 한편으로 시인은 살아 있다. 이야기를 함으로써 죽음이 점차 멀어져 가는 것도 모르고.


시인이 내 옆에서 탁, 하고 옷을 털고 있다. 개운하다. 문득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젖은 손바닥을 본다. 물방울과 함께 증발하는 슬픔이 있다. 나는 시인을 생각하면 이전만큼 내 삶이 아프지 않다. 이거 다 거짓말일 수도 있어. 시인이 말하면 나는 웃는다. 괜찮아. 재미있으니까. 그거면 된 거다. 우리의 첫인사가 끝났다.





주저흔을 만져본다. 나는 되돌아가지 않는다. - P111

누구든 어리둥절한 죽음을 맞아서는 안 된다. 누구든 이 일을 교훈 삼을 수 없다. 비유할 수 없다. 깨치고 나아갈 수 없다. - P217

나는 친구의 일을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친구에게 필요한 만큼의 커다란 사랑이나 돈이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친구가 지겹고 슬픈 시간에 대해 지나치게 몰입하는 걸 방해할 수는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 집에서 친구와 영화를 보기로 했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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