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속/우리 밖 박스세트 - 전2권 - 위니북스-X001
코노하라 나리세 지음, 안효진 옮김 / 위니북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이쪽 소설을 잘 읽는 편은 아닌데, 이 작가의 작품만큼은 왠만하면 챙겨본다. 콜드 시리즈를 먼저 봤었는데 정말 한동안은 다른 책을 손에 못 잡을 정도로 충격이었다. 그러다가 이것저것 번역되어 나오는 작품들을 읽어보니 글을 참 잘쓰는 작가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인물 표현이 어찌나 실감나고 생생한지 소름이 돋을 정도다. (그래도 프레자일은 못 읽겠다... 소문을 듣자니 무서워서 ;ㅁ;) 그래서 오랫만에 나온 번역본을 신나게 사서 읽었다. 그리고 감히 말하는데 콜드 시리즈를 보고 상처받은 분들은 이 책을 읽기 권한다. 헤집어진 상처가 치유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

뭐라 표현하기 힘든 행복하고 쓸쓸한 이야기였다.  

정말로 코노하라 나리세만이 쓸 수 있는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이다. 두 권이라는 느긋한 호흡으로 끌고가서 그런지 읽는 사람도 함께 충족되는 느낌이 한가득 드는 소설이기도 했다. 작가가 후기 썼듯 ' 키타가와의 일생을 기록한 소설 ' 이란 말도 맞다. 나는 어쩐지 타카후미의 일생을 본 느낌이 들었는데 아마도 키타가와 1인칭 독백시점은 없어서 그런게 아닌가 한다. 만나서 1년, 그리고 10년,  그리고 또다시 30년. 30년이라는 시간은 한 인간에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백치상태에서 28년, 그리고 도우노를 만나고 35년. 키타가와에게 삶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 우리 밖 '에서 키타가와가 도우노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했던 말이 두 개 있다. ' 외로워 ' 그리고 ' 사랑해 ' 이 두 마디 말에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가 되고 싶다고, 죽으면 당신의 아이로 다시 태어나면 될까? 라는 말을 진심으로 건네는 모습이 ' 곁에 있기만 할게. 지켜보기만 할게. 그냥 당신 옆에 있고 싶어.' 라는 말과 겹쳐서 눈물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가 어머니에게 학대당했기 때문이라든가 가진게 하나도 없는 외로운 사람이라던가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텅 비어버린 인간의 황량함이, 그리고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간절히 갈구하는 단 하나가 결코 손에 들어올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 나는 무엇보다 슬펐다.

키타가와에게 있어 도우노는 그냥 '사랑하는 사람' 이 아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 상냥함'을 알려주고, 사람을 사귈 때 '대가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아무것도 하고자 하는 바도 없이 그냥 생존만을 위해 '생존'해 있던 자신에게 '자아'를 심어준 최초의 사람이다. 태어나자마자 죽지 않은 것이 기적적인 모친의 방치와 학대속에서 자란 키타가와에게 있어 도우노는 거짓말 좀 보태서 하느님 같은 존재였다. 단지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없으면 안되기 때문에 키타가와는 도우노에게 ' 사랑해 '라고 말하고 ' 외로워 '라며 운다. '남자끼리' 라는 사회적 시선과 통념은 처음부터 키타가와의 범주에 들어있지도 못했다. (이해도 못한다.) 태어나 줄곧, 오로지 살기 위해 살아왔던, 표정도 없고 말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키타가와에게 도우노는 정말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우노는 그렇지 않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밟고 평범하게 취직해서 성실한 삶을 살아왔다. 도우노에게 있어 키타가와는 우연히 일어난 재수없는 사고 중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던 키타가와는 뒤늦게 그걸 깨달았고 한때는 그를 포기했으나 결국 도우노는 키타가와에게로 돌아간다. 그것이 마치 불행이라는 제목으로 점철된 연극같은 인생의 마지막 선택이었다고 할 지라도.

본편인 우리 밖은 이렇게 끝났다. 그러나 뒤쪽에 추가된 단편인 '비오는 날' 이라든가 '여름방학' 을 보면 도우노와 키타가와의 그로부터 30년의 시간은 정말로 행복했다는 걸 알 수 있다. 30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흐르고 결국 키타가와의 장례식에 걸린 사진에는 '웃는 얼굴'이 올라가 있었다. '죽을때까지 옆에 있어준' 도우노가 있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집과 개와 정원. 그는 소원을 다 이루고서는 이렇게 말했다. ' 나한테 상냥하게 대해주지마. 우쭐해지잖아 ' 혼자 남겨진 도우노는 어쩔 수 없었다 쳐도 키타가와 케이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다. 울면서도 나 역시 내 안의 무언가가 따뜻하게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한 인간의 삶을 애정이라는 공식을 통해 보여준다. 말이 쉽지 이걸 글로 쓴다는 건, 그리고 그 공식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까지 납득하게 만든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다. 코노하라 나리세의 인간들은 늘 한군데가 어긋났거나 부족하거나 부서져있다. 그녀의 소설은 언제나 마이너스에서 시작한다. 혹은 평균보다 우위에 서 있었던 인간들이 철저하게 깨지고 무너진 후 밑바닥부터 시작한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인간은 얼마나 비참하고 서글픈가. 그러나 껍질을 홀랑 벗겨버린 인간이 누군가를 만나서 변화하고 성장한다. 인간의 성장은 언제나 감동을 주는 법이기에, 그 과정이 너무 생생하고 있을 법하여 지켜보자면 괴롭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사랑스럽다. 나를 포함한, 매져니(...) 트라우마니(....) 운운 하면서도 그녀의 소설에 중독된 많은 사람들이 소설 속에서 읽어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 그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