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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Nabi - 단편
김연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제가 보는 김연주님은 장편보다는 단편에 강하다는 인상이었습니다. 하기야 단편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단편들이 모여 만들어진 중편이더라,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습니다만 그 경우 어느쪽이든 비교적 높은 점수를 주기 아깝지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모 잡지에 연재될 때 보았던 신경쓰이는 단편도 몇개 있고 해서 리뷰한번 보지 않고 덮어놓고 사버렸습니다만, 이번만큼은 조금 갸웃하지 않을 수 없네요.
각각의 에피소드가 모두 따로국밥인 점은 언젠가 그릴 장편의 외전격이라 말하셨으니 넘어갑니다. 다만 이부분이 문제될 소지가 있다면 이분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권할 수 없다는 것과, 그 '언젠가'가 과연 언제가 될지 기다리는 독자로서는 좀 화가 치민다는 것 정도겠죠.
제가 점수를 낮게 매겼던 것은 이전 단편들에 보이던 특유의 독창성이 사라졌다는 점에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그림은 예쁘기는 하지만 정교하지는 않습니다. 다섯명이 등장하면 다섯명 모두가 가발만 달리 쓴 쌍둥이처럼 보이고, 수염이 있어도 주름이 있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등장인물들의 연령이라든가, 좀 삐걱거리는 듯한 느낌의 개그 등등 뭐, 걸고 넘어지자면 많습니다만 이런 모든 어색함을 불식시키는 작가 특유의 반짝반짝 빛나는 주제와 그 깨끗한 표현력, 군더더기 없는 기발하고 깔끔한 스토리 전개방식을 굉장히 높게 치고 있습니다.(특히 정적인 화면과 건조한 듯한 대사는 일품.)
그렇지만 이번 단편집은 그런 반짝반짝 하는 느낌이 없어요. 장편의 외전 모음 이라는 작품들의 성격상 이야기의 개연성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빠진 이야기들은 후에 작가님이 보충해주겠지만 그냥 단편집을 보겠다고 산 사람으로선 어리둥절할 일이잖아요. 게다가 동양식 판타지라는 설정은 좋습니다만 그게또 묘하게 어설픈 느낌이 드는건 제 심술일까요^^; 장편에 등장할 각 캐릭터들을 소개하시겠다는 목적이신지 일인칭 시점 진행이 굉장히 많은데 그게 또 지나치게 감정과잉이라서 책은 전반적으로 사랑이야기와 맞물려 굉장히 축축한 느낌이 듭니다. 이분의 건조한 듯하면서도 순간순간 강하게 돌출되는 감정들이 굉장히 와 닿았던 저로서는 이게 또 꽤 거슬리더군요. 원래는 한 시리즈라는 설정덕에 에피소드 주제도 별로 다양하지 않습니다. 한편을 제외(제목을 까먹었습니다;)한 나머지는 모두 사랑이야기. 이것도 감점. 스토리 전개 역시 엉뚱하긴해도 기발했던 지난 단편집과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책장도 넘기기 전에 대사까지 알아맞출 수 있는 순정만화는 이분께 기대했던 바가 아니란 말이지요.
그럼에도 여전히 몇몇 단편들은 빛을 발합니다. '별' 같은 경우 이 한편(의 마지막 장면)을 위해 책을 사게 만들정도로 괜찮았어요.
이 정도로 설정과 캐릭터를 만들어 두셨으니 (나름대로 세계관에도 꽤 신경을 쓰신것 같고) 장편, 그리기는 하시겠지요. 이 정도 외전이 나올 정도의 장편이라면 기대해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모모 작가님들처럼 2년에 한권, 5년에 한권 수준의 페이스도 아니니 기다림에 목매다 못해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것으로 위안을 삼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