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툰드라
강석경 지음 / 강 / 2023년 1월
평점 :
카리스마와 간지, 둘 다 갖춘 강석경 선배께서 내게 신간 <툰드라>를 보내주셨다.
'툰드라'는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북극해 연안에서 남쪽으로 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방 한계선에 이르기까지의 거친 벌판을 가리킨다. 짧은 여름 동안만 지표면이 녹아 지의류, 이끼류 등의 식물이 자란다고 한다.
뜻을 찾아보니(그 전에 어감상으로도) 툰드라-제목부터 아우라가 장난 아니다. 제목에 비해 표지가 좀 약한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작가 말로는 구순의 조각가 최종태 선생 자코메티 그림으로 원본이 엄청 좋다고 한다. 또 듣고보니 더 좋아보이기도 한다(나는 팔랑귀)~~
(여기서 잠깐 새자면) 강석경 선배를 처음 만난 곳은 토지문화관에서였다. 문청시절(이 얼마나 고색창연한 말이냐)에 좋아했던 작가인지라 슬 말을 붙여보려 하다가 포기했다. 그러면 안 될 거 같았다. 집필하는 거 외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일에 열중해 있는 듯한 표정도 표정이지만, 가히 근접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그녀에게는 있었다. 바람 세찬 겨울의 언 땅을 밟고 걸어가는 듯한 그녀에게 말을 붙이면 왠지 정처없어진 사람처럼 슬프고 서운한 눈길을 돌려받을 것 같았다.
그후 사소한 친절과 사소한 배려를 주고받으며 선배와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영화도 봤다. 고민도 토로하고 앞으로 걸어야 할 길들 중 하나에 같이 눈길을 주기도 했다. 그 길을 잠시 혹은 오래 같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기를 바란다.
쌀쌀맞게 보인 인상이 실은 작가 강석경을 둘러싼 한국의 문화, 답답한 현실에 대한 거부감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면, 나는 이 글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강석경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인 <툰드라>에는 1987년작 '석양꽃'(1987)부터 2022년작 '툰드라'에 이르기까지 35년에 걸친 작품들이 묶여 있다. 작가로서 전 생애가 소설집 <툰드라> 에 담겨있는 것이다. 한국의 모든 것이 지겨워 인도로 그리스로 몽골로 늘 떠나야 했던 작가가 눈발 세찬 툰드라 벌판에 서서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 서있는 표지는 어딘지 울컥 하게 만드는 데가 있다. 구도자들의 뒷모습에 배어있는 슬픔과 그리움의 정조 탓일까.
작가 강석경이 홀로 서서 바라보는 먼 길의 끝에서 언젠가는 만날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이 책 <툰드라>를 읽으면 나도 그것을 만나게 될까. 만나도 그것이 그것인 것을 내가 알 수는 있을까. 내게는 내 길 끝의 그것이 있을 것이고, 인간은 어쩌면 단 하나 자기에게 주어진 구도의 길만을 걸어서 그곳에 도착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같이, 그러나 따로... 툰드라의 광활한 공간처럼 구도의 길은 외로울 수밖에 없고, 알면서도 가야 하는 게 모든 구도자의 운명인 것인가. 그리고 소설.... 그리하여 소설가들이란... 하고 나는 결국 중얼거리고 만다.
작가들이란 언어에 매혹되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작가에게 언어란 모태와 같아서 뜻 모르는 지명에도 환상을 이식해 먼 길을 떠나는 듯하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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