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벌레
복효근
오체투지, 일보일배다
걸음걸음이 절명의 순간일러니
세상에 경전 아닌 것은 없다
제가 걸어온 만큼만 제 일생이어서
몸으로 읽는 경전
한 자도 건너뛸 수 없다
나는 옳지 않았다.
내 말이나 내 생각이나 내 판단이 옳지않았을 수도 있고,
내 말이나 내 생각이나 내 판단이 옳았다 하더라도
내 말이나 내 생각이나 내 판단을 드러냈다는 사실이 옳지않았을 수도 있고,
내 말이나 내 생각이나 내 판단의 옳고그름을 떠나
내 말이나 내 생각이나 내 판단을 드러내는 방식이 옳지않았을 수도 있다.
나를 전적으로 믿는 게 미련한 짓이듯
내가 취한 태도를 전적으로 반성하는 것 또한 그만큼 미련한 짓이며
나 아닌 타인을 전적으로 믿거나
전적으로 비난하는 것 또한 그만큼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이리라.
모욕이든 비난이든, 혹은 아전인수의 욕심에서든
그것이 정당한지 아닌지 따지는 건 차후의 일이고, 일단은
흔드는 만큼만 흔들릴 일이다.
그 이상을 사양하는 한,
누구든 무엇에 대해서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여전히 괜찮다.
잊지말아야 할 건
사람들을 움직이는 게 당위나 공평무사나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는 것.
사람들의 사고와 태도를 결정짓게 하는 건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
각자가 지닌 조건, 그들 각자에게 가해질 유불리 따위다.
오직 그들 각자의 입장과 이해만이
각자를 대변하며 각자의 마음을 움직이며 각자의 행동을 좌우한다.
명심하자.
사람들을 향한 시선을 그들 뒤편으로 밀어내야 한다는 것.
방향을 틀 것, 잣대를 상황 쪽에 둘 것,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