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기의 기술 - 카피라이터 김하나의 유연한 일상
김하나 지음 / 시공사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힘 빼기 기술 김 하나

 

p28 창문을 단단히 잠가버렸다. 통곡을 무시했다. 나는 내 고통을 감내할 자신이 없어서 티거의 행복을 봉쇄한 것이다. 그게 나란 인간의 진짜 크기였다.

 

나가서 뭐가 제일 즐거웠냐고, 보고 싶은 고양이가 있냐고, 지금 행복하냐고, 그러나 나는, 솔직한 답을 들을 자신이 없다.

 

p36 몇몇 사람으로부터 푼돈을 받아들며 돈을 갈퀴로 긁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여유로운 걸까?

 

p39 하나, 나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에게 너무도 많은 도움을 받아왔어. 이제 내가 너에게 그 친절을 돌려주는 거야. 그러니 하나, 너도 여행을 하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만나면 네가 받은 친절을 그 사람에게 돌려줘

 

p39 나는 마음의 빚 따위는 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답은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라는 거니까.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가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면 되니까. 그렇게 해야 따뜻함의 순환이 생겨나는 것이다.

 

p40 내가 누군가에게 베푸는 친절은 너에게 보답하는 것이기도 하다.

 

p44 장수 풍뎅이 연구회 등장 이후 집회란 누구나 아무 깃발이나 들고 슥 한번 나가보는 무언가가 되었다. ‘나도 한번 가볼까......’하고 나가 볼 수 있게 하는 힘. 그것이 장수풍뎅이 연구회의 싱거운 저력이었다.

 

p45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잘 그릴 수가 없어서가 아니다. 잘 그리지 않아서다. 힘을 줄 수 있는데 힘을 빼버렸기 때문에 생겨나는 매력이다.

 

p46 잘하려고 한다는 게 뭔가? 기존에 정해진 잘함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맞추어 높은 성취를 이끌어내기 위해 힘쓰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힘을 빼버릴 때 잘함의 기준을 전복하는 전혀 새로운 매력이 생겨나기도 한다.

 

p49 내가 멀찍이 굴어와 자라가는 걸 엄마는 그냥 지켜 봐준다. 설거지할 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지금이 인생에서 최로고 좋은 때라고 말하면서. 나는 내가 어엿한 상수리 나무로 자랐는지는 모르겠으나 멀찍이 엄마 상수리나무가 기분 좋게 이파리를 떨면서 서 있는 것을 보면 참 기분이 좋다.

 

p51 나는 사실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세상에 나타난 데는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

 

p52 사랑은 인간에게 닥치는 가장 근사한 이벤트이자 동시에 가장 크게 배울수 있는 기회다.

 

p55 여러분도 나도 올봄엔 잘 좀 해봅시다.

 

p62 사랑은 개체에서 전체를 발견하는 것 주둥이가 까맣고 점잖은 강아지 한 마리가 한 사람 으로 하여금 세상 모든 고양이의 삶까지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p64 우리는 어느 정도만 가까워졌어야 했는데 이미 깜냥보다 너무 친해져 버린 탓에 간헐적 절교가 불가피한 것이다.

 

우리는 술통에 빠진 대가족처럼 인생의 한 기간을 얼큰하게 지냈다.

 

p70 한 마리의 고양이가 한 사람의 세계를 얼마나 변화시키는지

 

내 집은 갈아 움직이는 아름다운 액자를 갖게 되었고 그 액자는 바쁜 세상 속에서도 아랑곳 않는 속도를 유지했다.

 

누군가 내게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반년간 남미를 여행한 일과 한 마리의 고양이를 만난 일이라고 답하겠다.

 

p72 그 모든 동작 사이에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분주함도 소홀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비슷한 작업을 오랫도록 반복한 사람의 특유의 낭비없는 동작을 지켜보기를 좋아한다.

 

어떤 몸짓에 깃든 기품

 

가장 기품이 없을 곳에서 스스로 길러낸 것이어서 더욱 눈부셨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처지에서든 나도 나의 일에 눈이 아닌 정신을 다하여 기품을 기르는 생활을 하고 싶다.

 

p80 20, 30대에 철없는 짓, 멍청한 짓, 미친 짓 골고루 다 해봐야 비로소 40대에 반복할 때도 익숙해서 좋다.

 

어렸을 때 너무나 중후하다고 생각했던 40대라는 나이에 스스로 도달하고 보니 생각처럼 그다지 어른이지가 않아서 나도 좀 당황스럽다.

 

비슷한 실수와 시행착오를 저지르면서도 내 안에는 분명 무언가가 쌓여왔다. 처음 겪는 일들을 파도처럼 맞닥뜨리면서 정신없이 그것을 헤치며 살아오는 동안 내 안에는 그 파도에 실려 온 모래 같은 것들이 알게 모르게 쌓여왔다. 이제 그 모래 알갱이들은 제법 두툼한 켜를 이루어 웬만한 파도에는 쉽게 휩쓸려 버리지 않는다. 익숙함이란 그런 켜 같은 것이고 그 켜들이 이루는 무늬를 좀 떨어져서 바라보게 될 때 통찰이 생겨나는 듯하다.

 

그래도 내가 보내온 시간들이 그려내는 무늬를 어렴풋이 보게되는 나이가 바로 이 40대가 아닌가 한다. , 아닐 수도 있고, 어쨌거나 그렇게 믿고 있는 나는 지금이 참 좋다.

 

그 무늬는 드러나 빛을 발하든 그렇지 않든 나름대로 아름다울 것이다.

 

p84 나사가 빠른 속도로 빙빙 돌아가다 끝까지 딱 조여지면 그 단단한 결합의 느낌이 손으로 전해오는데 그걸 여러 번 반복해 어떤 작업을 끝냈을 때 온몸으로 느껴지는 뿌듯함이란!

 

p85 십자 홈이 튼튼하고 용도에 맞는 나사를 써서 정확하고 견고하게 나사 하나를 조이는 건 결국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요령과도 같다. 단단한 하루가 모여 뿌듯하고 견실한 삶을 이루어내리라.

 

p86 그 작은 나사 하나하나만큼 중요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일과 모든 삶에서.

 

p88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하는 바람에 차 안의 온도는 순식간에 영하 40도로 내려 앉았다. 준이 얼음을 털어내며 조심스레 말했다.

 

, 고마워 하면 너라도 그랬을 거야 라는 말을 잘한다.

 

이 사람이 세계에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도우려하고 선의로 가득할 것이다.

 

p97 아우라의 한국어 표기는 오라가 맞지만 오라에는 아우라가 없다.

 

p105 진실로 배우려는 사람은 후배 뿐 아니라 말 못하는 아기나 반려동물의 행동에서도 깨달음을 얻는다. 배움은 온갖 방향으로 흐른다.

 

p120 자기분수를 알아서 오빠와 놀이를 할 때는 항상 오빠의 부하가 되어 대장님, 나쁜놈이 나타났습니다.” 또는 박사님, 공룡이 나타났습니다.”등의 역할을 즐겁게 한다.

 

p122 사람들로부터 참 안정되고 인생에 불만이 없는 사람같다는 얘기를 곧 잘 듣는다. 그건 내가 태어났음을 기뻐하고 오랫동안 나를 지켜보고 보듬어주었던 사람이 있었음을 머리맡에 꽂아둔 <<빅토리 노트>>를 볼때마다 기억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시한번 하나야 잘 자라서 무엇인가를 이루고 깨닫고 그리고 스스로 만족하며 또한 만족감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p129 나는 조심해야 한다. 나 같은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p140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노래가 아니라 그냥 그것이 그의 인생인 것 같고 당신은 그 순간을 깨고 싶지 않으며 어쩌면 깰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숨죽여 그냥 훔쳐보고 있습니다. 숨막히게 아름답다고 여기며

 

p172 너의 밥그릇에 부어주는 그 일상적인 행위조차도 얼마나 큰 호사였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는다.

 

p173네가 나의 시간에 스며든 이후로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

그건 아마도 너로 인해 시간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거야.

바람을 볼 수는 없지만

흩날리는 깃발로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단지 고개를 돌려 너를 보기만 하면

나는 시간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받은 인간이 되는 거야.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거나 주의 깊게 털을 다듬는

너의 모습이 떠오른다.

 

장그르니에의 (고양이 물루>를 들취보고 싶구나.

 

언니는 좋을 대로 기억해버리는 습성 때문에 원성을 사고 있단다.

 

네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설사 네가 날 잊어다 하더라도

너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단다.

 

p179 한 방울 한 방울씩 더해져 결국엔 또르르 넘쳐 흘렀던 하루였으니까.

 

p196 기록이나 타이틀은 객관적 사실이지만 그게 항상 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건 아니다.

 

p211 내 친구들은 세계 최고다. 나는 그들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다. 나의 조그만 집이 세상과 격리되어 있지 않고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1. 연대감을 통한 사랑

일반대중/ 동물/ 여행자/ 동네 이웃/ 친구의 가족/ 가족/ 친구들/ 다른 작가들

2. 센스있는 필체와 마무리 p91, 95

3. 성찰과 교훈 그리고 감동 p29, 34

4. 단어의 정확성 p55

5. 일상의 소중함 p172

6. 관찰력 p70 p71

7. 어설픈 인간미 p46

8. 자기이해 p125

9.진정성

 

김하나 글의 소재는 정말 다양하다. 그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글에서 빛난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삶에 대한 관찰력과 통찰이 놀랍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사람에 대한, 대상에 대한 사랑이 충만하다. 가족에 대한 사랑, 동물에 대한 사랑, 친구들에 대한 사랑 또 넓게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따뜻했고 그래서 뭉클했다. 카피라이터라는 직함 때문인지 그녀의 문체에 대한 세련된 감각과 센스가 돋보였다. 글을 읽다 푸하하고 웃음이 터질 때가 많았다. 국어 선생님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언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적확한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또 맘대로 쓰고 싶을 땐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자유롭게 스스로의 신선한 언어를 만들어 낸다. 그녀는 언어의 명확한 틀과 자유로움을 넘나든다. 글을 쓰다 이건 좀 이상하다, 이건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하며 스스로 자신의 글을 평가하기도 한다. 이상하고 말이 안 되면 보통은 빼 버릴텐데 또 그냥 그런 상황을 표현하면서 기술한다. 그녀는 정말 엉뚱 발랄하다. 완벽해 보이지 않는 어눌함에서 통통 튀는 매력이 느껴진다. 그녀의 글에서 가장 닮고 싶었던 건 그녀가 이끌어내는 무겁지 않은 교훈과 감동이다. 매번 그녀는 삶에서 상황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배운다. 하지만 그 메시지들이 글에 자연스럽게 묻어있어 나도 덩달아 책을 덮고 그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다. 사람들과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그녀는 외롭지 않고 또 늘 안전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자란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엄마의 육아 일기는 정말이지 감동이었다) 그런 그녀와 그녀의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있어 세상이 더 밝고 따뜻해질 것만 같다. 참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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