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피천득 수필집
피천득 지음 / 종합출판범우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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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수필집

 

<찰스램> p39

나는 그저 평범하고 정서가 섬세한 사람을 좋아한다. 동정을 주는데 인색하지 않고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곧잘 수줍어하고 겁많은 사람, 순진한 사람, 아련한 애수와 미소 같은 유머를 지닌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비원> p42

비원은 창덕궁의 일부로 임금들의 후원이었다. 그러나 실은 후세에 올 나를 위하여 설계되었던 것인가 한다. 광해군은 눈이 혼탁하여 푸른 나무들이 잘 보이지 앟았을 것이요, 새소리도 귀담아 듣지 못하였을 것이다. 숙종같이 어진 임금은 늘 마음이 편치 않아 그 향기로운 풀 냄새를 인식하지 못하였을 거다. 미는 그 진가를 감상하는 사람이 소유한다.

 

비원은 정말 나의 비원이 될 것이다.

 

<> p62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의 초조와 번뇌를 해탈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은 무기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무디어진 지성과 둔해진 감수성에 대한 슬픈 위안의 말이다. 늙으면 플라톤도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지혜도 젊은만은 못하다.

 

<오월> p64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비취가락지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

p80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반사적 광영> p87

나는 범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달이 태양의 빛을 받아 비치듯, 이탈리아의 플로렌스가 아테네의 문화를 받아 빛났듯이 남의 광영을 힘입어 영광을 맛보는 것을 반사적 광영이라고 한다.

 

사람은 저 잘난 맛에 산다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 잘난 맛에 사는 것이다. 이 반사적 광영이 없다면 사는 기쁨은 절반이나 감소 될 것이다.

 

<이야기>

p93 좋은 말을 하기에는 침묵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긴 침묵을 필요로 한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아니요, 농도 진한 말을 아껴서 한다는 말이다.

남의 말을 정성껏 듣는 것도 말을 잘하는 방법인데 남이 말할 새 없이 자기 말만 하여서 얼마 되지 아니하는 바닥이 더 빨리 드러나는 것이다.

 

이해관계 없이 남의 험담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이런 재미도 없이 어떻게 답답한 세상을 살아간단 말인가. 남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사람은 위선자가 틀림없다.

 

<>

p100 눈같이 포근하고 안개같이 아늑한 잠, 잠은 괴로운 인생에게 보내온 아름다운 선물이다. 죽음이 긴 잠이라면 그것은 영원한 축복일 것이다.

<플루트 연주자>

p124 토스카니니가 아니더라도 어떤 존경받는 지휘자 밑에 무명의 프루트 연주자가 되고 싶은 때는 가끔 있었다.

 

<송년>

나는 반세기를 헛되게 보내었다. 그것도 호탕하게 낭비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일주일 일주일을 한해 한해를 젖은 짚단을 태우듯 살았다.

<장수>

p148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하더라도 감추어둔 보물의 세목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나날이 착한 일을 하고 때로 살아온 자기의 과거를 다시 사는데 있는가 한다.

 

<만년>

p149 그리고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여성의 미>

p153 아무리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도 청춘의 정기를 잃으면 시들어버리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여 나는 사십이 넘은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드물게 본다. ’원숙하다또는 곱게 늙어간다라는 말은 안타까운 체념이다. 슬픈 억지다. 여성의 미를 한결같이 유지하는 약방문은 없는가 보다. 다만 착하게 살아온 과거, 진실한 마음씨, 소박한 생활 그리고 아직도 가지고 있는 희망 그런 것들이 미의 퇴화를 상당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선물>

p154 선물은 뇌물이나 구제품같이 목적이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주고싶어서 주는 것이다. 구태여 목적을 찾는다면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선물은 포시아가 말하는 자애와 같이 주는 사람도 기쁘게 한다.

 

<서영이>

내가 서영이 아빠로서 미안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첫째 내 생김생김이 늘씬하고 멋지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따라서 아름다운 아내를 맞이하지 못하였던 것이 미안하다. 젊은 아빠가 아닌 것이 미안하다. 보수적인 점이 있기 때문이다. 기대가 커서 그것에 대한 의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미안하다.

 

<딸에게>

이 싸움을 네가 언제까지 할 수 있나 나는 가끔 생각해본다. 그리고 너에게 용기를 북돋워 준다는 것이 가혹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도산>

p176 지도자일수록 과학적 정확성과 예술적 정서를 가져야 한다.

 

 피천득 선생님의 인생에 대한 긍정과 연민, 작고 소박한 것들에 대한 사랑, 순수함과 자연스러움 그리고 작은 행복과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는 글과 삶이 같았다. 아니 어쩌면 글보다 삶이 더 따뜻하고 순수하고 소박했으며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신 분이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딸 서영이를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중나가던 자상한 아버지, 훌쩍 커버린 서영이의 자리를 대신하는 곰인형과 난영이가 잠들지 못할까봐 안대를 해주고 이웃 주민들이 시끄러워 할까봐 박지 못한 액자가 벽 아래 놓여져 있는, 착한 소 시민이자 동물과도 교감을 나누던 성프란치스코의 마음을 가진 독실한 천주교인, 학문에 있어선 누구 못지않게 열정으로 많은 후학들에게 학문의 자세가 무엇인지 보여준 학자이셨다. 그는 98세까지 장수하시면서 세상 모든 것과 소중한 인연을 맺으며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감수성으로 순수하고 맑게 살아가신 듯하다. 글 안에서는 그가 겸손하다못해 아주 작게 느껴지기도 했다. 자신의 위신이나 명예보다는 다른 사람의 공적을 찬양하고 누구든 늘 좋은 모습으로 그려주신다. 자신의 인품이 부족함을 부끄러워하고 염치없어 하셨다. 엄마에 대한 사랑에서 딸에 대한 사랑으로 또 다시 손자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그는 정말 사랑하며 살았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사셨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미는 그 진가를 감상하는 사람이 소유한다.

비원은 정말 나의 비원이 될 것이다.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남 잘난 맛에 사는 것이다. 이 반사적 광영이 없다면 사는 기쁨은 절반이나 감소 될 것이다.

 

좋은 말을 하기에는 침묵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긴 침묵을 필요로 한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아니요, 농도 진한 말을 아껴서 한다는 말이다.

 

나는 반세기를 헛되게 보내었다. 그것도 호탕하게 낭비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일주일 일주일을 한해 한해를 젖은 짚단을 태우듯 살았다.

 

훗날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어 사랑을 하고 갔구나하고 한숨지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나는 참 염치없는 사람이다

 

 

피천득 선생님 엄마의 죽음 너무도 안타깝고 슬프다.

아기소가 엄마소 옆에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는 말이 애잔하다.

 

나에게 죽음은 왜 아무렇지도 않을까?

오히려 기다리는 무언가이거나 그냥 그런 무언가이다.

아빠는 할아버지가 죽기를 기다리는 건 아니지만 퇴직 후 할아버지를 모시며 이렇게 세월이 길어질 줄 몰랐다. 10년이 지나고 또 15년이 지났다. 할아버지는 100세를 넘었고 아빠도 할아버지처럼 노인이 되었다. 책임감으로 시작한 일이 세월이 길어지면서 아빠는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고 아빠의 몸과 마음을 더 약하게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아빠를 안타깝게 여기거나 고마워하지 않는다. 100세까지도 자신만 생각하는 할아버지다. 오히려 아들을 귀찮아하거나 미워한다. 그래서 아빠는 그런 희생을 치루고 있음에 어떤 보람을 느끼시긴 어려웠다. 엄마는 아빠를 위로하려는지 사람이 늙으면 빨리빨리 죽어야 해, 안 죽고 살아있는 것도 못할 노릇이야.’ 이런 말을 꺼내면 아빠는 그저 얼굴에 잔뜩 인상을 쓴 채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함께 아빠의 노년이 시작되었고 아빠의 괴로움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우리는 한 노인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죽음에 대한 무감각이 자라게 된 건 어리석은 생각이란 걸 알면서도 내게 죽음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이다. 적어도 기다리는 그 분의 다음 세대이니 나의 엄마 아빠는 천년만년 오래오래 살아 계실 것만 같다. 설사 돌아가신다해도 내 마음은 무덤덤하다, 살아 생전에 원 없이 효도를 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마 아빠에 대한 원망이나 증오 따위도 없다. 그냥 인간의 삶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 꽃이 피었다 사라지듯 인간의 삶이 그렇게 가치 있거나 그렇게 안타깝게 여겨지지 않는다. 얼마 전 귀 뒤에 갑자기 작은 혹이 하나 생겨서 내심 깜짝 놀라 남편에게 두려움 섞인 볼멘 소리로 여보, 나 이거 종양 아니예요? 나 죽는 거 아닌가?“했더니 남편은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나무랐다. ”죽으면 죽는거지 죽음이 뭐 대수라고 호들갑이야..“ 집안 내력인지 우리 엄마 아빠도 남편도 죽음은 빨리 헤치우는게 좋거나 혹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피천득 선생님의 어머니처럼 우리 선생님의 어머니도 선생님이 중학교 때 돌아가셨다. 지금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 아직은 보호 받아야 할 나이에 삶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너무도 큰 상처와 아픔을 갖게 된다. 그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아픔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고스란히는 착각일 것이다.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맞다.) 다른이가 맞이하는 죽음은 너무도 안타깝고 슬프지만 여전의 내 주위의 죽음은 덤덤하다.

 

몇 달 전 시댁에 작은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은 코로나의 여파로 더욱 썰렁했다. 장례식장에는 아무도 슬퍼하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작은 어머님(부인) 은 몸이 안 좋다는 이유로 딸과 함께 집에 머무르셨고 아들들은 여는 명절과 다르지 않은 표정들이다. 큰아들은 우리 아버지 살아 생전 원하는 거 다 하시고 80세까지 사셨으니 호상이다.“하시며 사람들이 보내온 화환을 다시 돈으로 환급받을 궁리에 빠지셨다. 주위를 둘러봐도 누구도 슬퍼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감정이 사라진 담백한? 장례식도 있구나 하는 생경한 느낌이었다.

 

친구네 집 화분에 오랫동안 아름답게 피어있던 구절초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화분은 다시 예전처럼 잎사귀로만 무성했다. 원래의 모습이었다. 한때 그렇게 신비로운 꽃을 피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잎만 무성한 화분을 바라보며 얼마 전 피어났던 구철초를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피천득 선생님의 삶과 글을 보며 나를 본다. 세상 무엇에도 무덤덤하게 살아간 나, 관계 속에서도 무관심했던 나, 소박한 것들은 하찮은 것으로, 소중한 것들은 당연한 것들로 여기며 살아왔다. 나의 무감각으로 세상과 연결되지 못했다. 피천득 선생님의 그 세심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대상에게 진정과 정성을 다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그러한 삶을 나도 살고 싶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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