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구운몽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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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광장

최인훈

 

p12 사람은 초목이나 짐승과 달라서 이 짐작이라는 것을 나면서 몸에 지니고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저편에서 가르쳐주고 제가 깨달아간다는 것이 사람의 삶의 어려움이다. 그런데 그 짐작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혼자 힘으로 깨닫기는 혼자서 태어나기 어려운 만큼이나 어려운 시대라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19 풍문을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하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35 허구한 나날 앉은 자리에서 뭉개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삶은 그저 살기 위하여 있다. 이 말이었다.

 

35 온누리가 덜그럭 소리를 내면서 움직임을 멈춘다. 조용하다. 있는 것마다 있을 데 놓여져서, 더 움직이는 것은 쓸데없는 일 같다.

 

36 쉴새없이 움직이고 쫓아가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비치는 단단함 속에 젖어가면서 살 수 있는 삶, 명준이 찾는 삶이다.

 

38 보람있는 일이라면 도깨비하고 흥정해도 좋다고 뽐내지만 도깨비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44 책장을 대하면 흐뭇하고 든든한 것 같았다. 알몸뚱이를 감싸는 갑옷이나 혹은 살갗 같기도 하다. 한 권씩 늘어갈 적마다 몸속에 깨끗한 세포가 한 방씩 늘어가는 듯한 자기와 책 사이에 걸친 살아 있는 어울림을 몸으로 느낀 무렵이 있다. 두툼한 책 마지막 장을 닫은 다음 창문을 열고 내다보는 눈에는 깊은 밤 괴괴한 풍경이 무언가 느긋한 이김의 빛깔로 색칠이 되곤 했다.

 

44 여자를 껴안고 뒹구는 건 사람의 여러 가지 몸부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여자 말고 싸움을 택한다. 그래서 그는 알렉산더가 되고 징지스칸이 된다. 어떤 사람은 물질 사이에 걸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을 택한다. 그래서 그는 갈릴레이가 되고 뉴턴이 된다.

 

48 지식을 다룬다면 어항 속 들여다보듯 뻔한 그녀들의 속이, 성이라는 자리에서 보면 보석처럼 단단한 벽으로 바꿔지고 말아, 관찰이라는 빛은 그 벽에 부딪혀 구부러져서는 그만 간데없이 되고 만다.

 

54 갈빗대가 버그러지도록 뿌듯한 보람을 품고 살고 싶다는 거예요.

 

55 정치? 오늘날 한국의 정치란 미군 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받아서 그 중에서 깡통을 골라내어 양철을 만들구, 목재를 가려내서 소위 문화주택 마루를 깔구, 나머지 찌꺼기를 가지고 목축을 하자는 거나 뭐가 달라요?

 

57 그는 밀실에만은 한 떨기 백합을 마려하기를 원합니다. 그의 마지막 숨을 구멍이기 때문이지요. 저희들에겐 좋은 아버지였어요. 국고금을 덜컥한 정치인을 아버지로 가진 인텔리 따님의 말이 풍기는 수수께기는 여기 있는 겁니다. , 좋은 아버지 인민의 나쁜 심부름꾼,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습니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 각기의 밀실은 신분에 맞추어 그런대로 푸짐합니다. 개미처럼 물어다 가꾸니깐요, 좋은 아버지 불란서로 유학 보내준 좋은 아버지 깨끗한 교사를 목자르는 나쁜 장학관 그게 같은 인물이라는 이런 역설, 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67 속에서 탈대로 타고 난 무서움의 잿더미에 미움의 찬비가 소리 없이 내리면서 남은 재를 고스란히 적시며 명준의 온몸에 스며간다. 부드득 이 가는 미움보다 더 차분하지만 사무치는 미움이다.

69 아버지는 그에게 튼튼히 이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그의 옆방에 살고 있다. 옆방에 사는 아버지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명준의 방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그에게 대신 행패를 부린 것이었다.

71 와 웃음이 터진다. 명준은 고개를 숙이고 발끝을 내려다본다. 아버지 이름이 놀림받는 자리에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태어나는 것을 알았다.

 

74 이명준, 자 보람있는 삶이 끝내 자네 것이 된것야. 갈빗대가 버그러지도록 벅찬 불안에 살 수 있게 되지 않았나. 하루의 시간이 어두운 무서움으로 짙게 칠해진 알차게 익은 시간이란 말일세. 자네가 그렇게 조르던 바람이 아닌가. 이제 심심하단 말은 말게.

75 적어도 나의 방 자물쇠는 장난감이었던 모양이다.

 

76 이런저런 생각에 엎치락뒤치락하였으나 어느덧 쉼 없이 밀려드는 잠의 물결 속에서 몇 번 꼴깍꼴깍 허덕이다가 끝내 깊은 밑바닥으로 푹, 가라앉아버린다.

 

77 자기 삶이 어떤 나무에서 익을 대로 익은 끝에 곱다랗게 자리잡고 있던 가지에서 뚝 떨어지기 앞선 얼마 동안, 새로운 움직임을 마련하는 숨결이 아무래도 본인에게 새어나게 마련이다. 두터운 벽을 가진 방안에서 주고받은 말소리가 듣는 사람에게 안다까움을 주는게 사실이라면, 문득 귀찮아져서 엿듣기를 그만두는 마음도 있을 수 있다. 명준은 자기 밖에서 또 안에서 아끼던 물건이 흠짓흠짓 허물어져가는 소리를 듣고 있다.

 

78 조건을 쑥 뽑은 다음에 그 어떤 알맹이가 남는다는 건, 곧 아름다운 미신이다.

 

83 먹이를 노리고 있는 모습이련만 떼어놓고 보기에는 날개를 기울이며 때로 내려꽂히고 때로 번듯 뒤채이며 스르르 미끄러지는 노곤한 그림 한 폭이다.

 

85 자기 품에서 숨을 할딱이던 바로 그 몸이라는 일은 그에게 자랑스러움을 준다.

 

109 윤애라는 사람 대신에 뜻이 통하지 않는 억센 한 마리 짐승을 보는 것이었다.

 

110 그의 말이 미치치 못하는 어두운 골짜기에 그녀는 뿌리를 가진 듯했다.

 

117 인민이란 그들에게 양떼들입니다. 그들은 인민의 그러한 부분만 써먹습니다. 인민을 타락시킨 것은 그들입니다. 그리고 북조선의 공산당원들은 치사하고 비굴하고 게으른 개들입니다.

양들과 개들을 데리고 위대한 김일성 동무는 인민공화국의 수상이라? 하하하......

 

137 대중은 오래 흥분하지 못한다. 그의 감격은 그때뿐이다. 광장에는 플래카드와 구호가 있을 뿐 피묻은 셔츠와 울부짖는 외침은 없다. 그건 혁명의 광장이 아니었다. 따분한 매스게임에 파묻힌 운동장 이런 조건에서 만들어내야 할 행동의 방식이란 어떤 것인가.

 

참으로 그것은 밀림이었다. 그럴듯한 오솔길을 발견했다 싶어 따라가면 어느새 그야말로 일찍이 다져진 밀림속의 광장에 이르는가 하면 지금 자기가 가진 연장과 차림을 가지고는 타고 내리기가 어림없는 낭떠러지가 나서는 것이었다.

 

138 목숨에 대한 사랑과 오랜 시간이 있어야 할 모양이었다.

 

줄거리

소설의 주인공 이명준은 철학과 학생이었으며 아버지는 북한으로 월북해 버리고 어머니는 돌아가셔서 지인인 은행장 집의 남매 영미와 태식과 함께 지내며 살아간다. 나름의 부유층과 한가롭게 어울리면서 살아가지만 마음 속은 밀실과 광장에 대한 꿈을 지닌다.

밀실은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공간, 광장은 세상으로 나아가 사람들과 함께 온몸으로 뛰어들어 운명을 만나는 공간을 말한다.

 

갈빗대가 버그러지도록 뿌듯한 보람을 품고 살고 싶다는 거예요. (p54)

 

쉴새없이 움직이고 쫓아가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비치는 단단함 속에 젖어가면서 살 수 있는 삶, 명준이 찾는 삶이다.(P36)

 

그의 막연한 이상과는 별개로 현실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친다. 월북한 아버지가 북한 방송에 얼굴을 비추면서 이명준은 갑자기 빨갱이로 몰리고 형사에게 이유없는 폭행을 당한다.

이명준의 밀실이 점점 무너짐을 느끼며 인천에 사는 윤애네 집에 머무른다. 윤애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윤애를 가지려하지만 윤애의 몸과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고 명준은 광장의 꿈을 안고 월북한다.

 

하지만 북한의 실정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실감한다. 이념은 없고 복사과 무한 반복만 존재했다. 그들의 말에는 색깔의 바뀜도 없고 냄새도 없었다. 신명이 아니고 신명난 흉내였다. 혁명이 아니고 혁명의 흉내였다. 월북한 아버지의 힘으로 노동신문 기자가 되지만 그는 어떤 표현의 자유도 얻을 수 없었다. 자아 비판장에 서서 자신의 마음과는 다르게 자신을 비판하고 있었다. 그것이 이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길임을 알았다. 떤 그럴 수 없이 값진 요령을 깨달은 것을 알았다. 슬픈 깨달음이었다. 알고 싶지 않은 슬기였다. 그는 가슴에서 울리는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명준이 유일하게 자신의 밀실에서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은혜였다. 은혜만이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진리였다.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진리의 벽을 더듬은 듯이 느꼈다. 그는 손을 뻗쳐 다리를 만져보았다. 이것이야말로 확실한 진리다. 명준은 자신의 유일한 손에 잡히는 그녀에게 더욱더 매달린다. 하지만 그녀는 명준을 속이고 모스크바로 떠난다.

 

그러던 중 6.25 전쟁이 벌어지고 공산군 고위 장교로 참전한 명준은 자신이 남한에서 고초를 치뤘던 곳에서 자신이 형사의 입장이 되어 김태식을 만난다. 김태식은 자신이 은혜를 입었던 은행장의 아들, 친구처럼 지내던 사이이다. 김태식은 자신에게 몸을 허락하지 않았던 윤애의 남편이 되어있었다. 명준은 악인이 되어 감태식을 고문하고 윤애를 농락하려하지만 결국은 둘다 풀어준다.

 

낙동강 인근 전쟁터에서 윤혜와 명준은 다시 만난다. 은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명준을 찾으려 간호병으로 자원해서 이곳에 왔다. 명준과 은혜는 다시 깊은 사랑을 나눈다. 광활한 전쟁터에서 둘은 서로의 밀실이 되어 위로와 쉼을 준다. 은혜는 아이를 임신하지만 결국 전쟁터에서 죽고 만다. 이후 포로가 된 명준은 남한행과 북한행 모두를 포기하고 중립국을 선택한다.

 

중립국으로 행하는 타고르호에서 명준은 갈매기를 보며 은혜와 아이를 떠올린다. 그리고 자유로운 푸른 광장으로 떨어지며 바다 속으로 투신한다.

 

느낀점

명준은 우리와 닮아있다. 우리는 모두 밀실과 광장을 꿈꾸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단단한 정체성을 찾고 마음껏 두발을 뻗고 누울 수 있는 밀실과 광장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의 소리를 내고 싶은 욕망이 함께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명준은 자신의 밀실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외부 상황에 의해 무너지고 흔들렸다. 광장에 나가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을 때도 사회는 앵무새가 되길 강요했다. 밀실도 광장도 자신이 생각하는 짐작이나 예상과는 달랐다. 그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허무했고 괴로웠고 슬펐다. 유일한 연인만이 자신의 실체였고 진리였다. 하지만 그 여인마저 죽자 명준은 그 어디에도 존재할 곳이 없었다. 밀실은 허물어졌고 광장의 동상은 넘어졌다. 그는 자유를 향해 은혜와 아이를 떠올리며 깊은 바다로 향한다. 밀실만 풍성한 남한, 무늬만 화려한 북한의 광장. 지금 내가 살고있는 이곳에 나의 밀실과 광장을 들여다본다. 나에게 밀실과 광장이 존재하는가?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준비되는 시기, 자기다워지는 시기를 밀실에서 준비해 간다면 나의 밀실은 아직 허술하다. 또 광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토대를 만들고 용기내어 사람들과 함께 온몸으로 뛰어들어 운명을 맞이하고 싶다.

 

거상의 자결을 다만 덩칰 큰 구경거리로 밖에는 느끼지 못한 바보도 있을 것이며 봄 들판에 부유하는 민들레 씨앗 속에 영원을 본 사람도 있다. 어떤 경로로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다만 그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느냐에 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17)

 

최인훈 선생님은 명준이라는 주인공을 남한과 북한이라는 아주 다른 환경 속에 넣어서 각각의 장소의 낭만과 처절함을 보여준다. 각각의 곳에서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실체를 보여준다. 남한에서의 단단히 보장되리라 믿었던 명준의 밀실을 단숨에 어이없이 부숴버리는 형사의 모습과 북한의 아름다운 광장일거라 믿었던 환상은 색깔도 냄새도 없는 신명의 흉내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념으로 분열된 한나라에서 벌어지는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참상의 모습들이 적나라하다. 남한에 살고 있는 나도 북한에 살고 있는 너도 각각의 형태로, 모습으로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 어디에서나 아름다움과 슬픔이 함께 묻어있다. 명준은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못하고 결국 흩어진다. 최인훈 선생님의 다각적인 관점과 시선들이 존경스럽다. 최인훈 선생님은 주인공의 내면의 깊은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나가고 결국 우리는 이렇게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인간이라는 내면의 수백개의 마음들을 쪼개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무진 기행의) 김승옥 선생님이 감각적인 문체로 마음의 겉을 쓸어 내렸다면

최인훈 선생님은 깊은 마음의 울림으로 묵직한 무언가가 가슴 아래로 떨어졌다.

 

김승옥 선생님의 감각적인 표현과 문체들이 가벼운 바람에 날려 자유롭게 춤을 춘다면

최인훈 선생님의 묵직함은 땅으로 깊이 깊이 꺼져 어두운 지하실에 앉아 깊이 나를 사색하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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