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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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건강을 위해 유기농 식단과 비타민을 챙기고 매해 좀 더 성장하고 나아지고 싶은 향상심에 생일마다 작은 계획을 세운다. 상대에게 행여 폐를 끼칠까 싶어 약속시간은 항상 5분전에 도착하고 바쁜 동생의 상황을 고려해 전화보다는 문자를 선택한다. 자신의 아이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건진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자신의 마음속에 혹시라도 오만함이 있었다면 반성했다. 그녀는 그렇게 겸손하고 사려 깊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이 만16세 여고생과 조건만남을 갖고 음주운전 사고로 그 여고생이 죽었지만 이 모든 사실을 눈감았다. '타인의 고통에는 무관심한 남편과 아들'은 그저 무용담 정도로 이 사건을 맞이했고 꽤나 품위 있고 사려 깊은 그녀도 결국 자신의 이기심을 드러낸다. 검은 정장을 입고 그 여자아이의 장례식장에 찾아가지만 그들의 슬픔을 그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결국 타인의 삶이다’라고 말한다. 인맥과 돈으로 사건을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듯 과거의 무용담처럼 말하고 싶어하는 남편을 거들어 한우 꽃살과 와인을 꺼낸다.남편과 다정하게 잔을 부딪히며 남긴 그녀의 마지막 말, ‘아마도 나는, 나와 영원히 화해하지 못할 것이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다는 자책과 고백의 말로 들리지 않았다. 가진 자의 자기합리화, 비겁한 윤리일 뿐이다. ‘나는 이런 인간이야, 어쩔 수 없지뭐.’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그녀의 상황이면 어떨까? 크게 다르지 않다. 좀 더 큰? 죄책감을 가질 수는 있었겠지만 아들을 마땅히 벌받게 두진 못했을 것 같다. 결국 같다. 나도 똑같다. 그래서 더욱 그녀를 못마땅히 여기고 비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그녀처럼 품위를 갖고 싶었다. 좀 더 겸손하고 배려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건강을 챙기며 보다 관리된 삶을 살고 싶어했다. 그녀처럼 매일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원하고 정체되기싫어 열심히 배웠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비일상적인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면 나도 그녀처럼 되지 않을 자신이 없다. 내 마음은 분명 말하고 있다. 옆집아이보다 내 아이가 더 소중하다 라고.

책장을 덮으며 지금 내가 지키려고 애쓰는 많은 것들(배려,겸손,예의..)이 그저 평화로운 내 삶에서 비롯된 것이고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음에 당혹스럽다.

“지난주 손님들하고 갔었는데 양식도미를 내놓더라고 품위없이 말이야.”

품위를 따지는 현우 아빠를 보며 진짜 품위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품위 : 사람이 갖추어야할 위엄이나 기품(고상한 품격;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

정의를 보니 그들은 품위있는 척만 했지 진짜 품위는 없었다. 사람 된 바탕으로 기본적인 됨됨이가 부족했다. 적어도 죽은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반성은 있어야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인 듯 잔을 부딪히며 스스로 면죄부를 내리는 그들은 누구보다 천하다.

우연적인 인연의 세계에서 누구에게나 비일상적인 날들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날, 내가 지키려고 했던 품위들이 '제대로' 발휘되길 바래본다. 그건 분명 외면적인 체면이나 격식이 아닌 내 안에서 뜨겁게 흐르는 것이어야 가능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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