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섬 ㅣ 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공강시간, 학교서점에서 시간을 때우다 <섬>을 발견한 것이 사실 일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섬>은, 이른 봄날 뿌연 창을 통해 바라보는 아침풍광 만큼이나 아련하다. '공의매혹'과 '고양이물루'를 제외하고는 내용은 고사하고 글의 제목들조차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가 있어야할 자리엔 아쉬움이. 그건 마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는 전철 칸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을 발견하고 넋을 잃고 있었다가, 집에 돌아와 그녀의 얼굴을 떠올려보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 얼굴을 기억할 수 없을 때 느끼는 아쉬움과도 같다. 하지만 으레 여인의 향기만은 한동안 우리 눈가에 남아 미소를 머금게 해 주듯, <섬>의 분위기 또한 잘 지워지지 않는 키스마크와 같아 한번이라도 그 따사로운 마법의 언어들에게 애무를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 사실을 숨길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