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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작품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랑소와즈 사강이 마리화나 흡연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 했다는 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나는 프랑소와즈 사강을 좋아한다. 그녀의 소설에서는 진실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친구로부터 선물 받았을 때 제목을 보고 꽤나 기대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난 오늘 저녁 몇 시간을 온전히 이 소설에 투자하면서도 한치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순진하게스리.
그런데 젠장, 낚였다. ㅠ.ㅠ
잔뜩 폼을 잡고 있지만 지적인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극적인 요소나 스릴러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것도 아니다.
특별한 주제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 소설은 뭐랄까 행동주의 심리학자의 쓰다만 보고서 같은 느낌이다.
소소한 일상을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고 하기엔 구성이 너무 작위적이다.
감동도 없다.
하루키 문학의 삼류 짝퉁 복제화 같은 소설이다.
소설을 많이 읽다보면, 소설만 봐도 작가의 생각이 대충 짐작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소설에선 삶의 진실이 느껴지지 않는다. 김영하가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해본 사람인지 나는 의심스럽다.
이 소설은 너무도 작위적이다. 나는 판타지를 좋아하고, 자살에도 비교적 호의적인 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너무 개폼만 잡고 사실상 아무런 내용이 없다. 즉 정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있는 척을 못하는 소설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부구조가 없는 마네킹같은 등장인물들이 나와선 "석달동안 정액을 일 리터쯤 마시고 에비앙 생수를 마셨더니 물만 먹어도 토한다" 따위의 유치하고 너절한 이야기나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오해마시길. 나는 정액을 좋아한다. 물론 에비앙 생수도 좋아한다. 여자도 좋아하고 섹스도 좋아한다. 하지만 활자의 낭비와 그에 수반하는 독자의 시간 낭비는 극도로 혐오한다.
그리고 <마라의 죽음>은 왜 넣은 건가? 김영하도 알다시피 마라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자객에게 살해당했다. 더구나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은 마라를 영웅화하고 있는 일종의 성화에 가깝다. 작품의 내용이랑도 전혀 맞지 않고 주제(그런 게 있다면 말이지만)랑도 전혀 관련이 없다. 정답은? 똥폼이다. 사실 이 소설 전반에 흐르고 있는 일관된 분위기가 바로 그러하다. 이건 일종의 지적 사기다. 이 소설의 현실 인식 수준 혹은 주제 의식의 형상화 수준은 <주유소 습격사건> 정도의 수준이다. 하지만 적어도 <주유소...>는 똥폼은 안 잡는다.
선물해준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이 소설을 굳이 분류하지면
문화 산업 폐기물. In short, 쓰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