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 - 이것은 외국어 공부로 삶을 바꿀 당신을 위한 이야기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책
김미소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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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양한 언어와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사춘기 시절 '한비야' 작가의 여행기를 읽으며,

세계를 여행하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버킷 리스트'로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공으로 말레이 - 인도네시아어를 선택했고,

20대시절 말레이시아에 사는 동안에는 중국계와 말레이계 그리고 터키에서 유학을 온 남자와 썸을 탔다.

한국으로 돌아와선 우연히 폴란드인 남친을 만들었고,

결국, 미국인 남자와 결혼을 했다.

인생 자체가 문화의 용광로였지만 그래서 내 언어는 복잡하고 다양하게 꼬여버린채

아리송한 상태 그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넓지만 깊지 않고, 다양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그래서 3중 언어를 구사하는,

대학에서 강의하는 응용언어 학자가 소개하는 일본어는 어떨지 궁금했다.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땐,

일본어 - 영어 - 한국어가 1:1:1 정도의 비율로 소소하게 읽기 좋은 문장이나 글들이 적혀 있을 줄 알았는데,

실물로 접한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은 김미소 작가가 경험한 일본어 좌충우돌 경험과

다양한 언어에서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많은 부분 공감이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녀만큼 뜨겁지 못했던 내 '언어학습'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 학습 초기에 소리 내어 읽기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었다.

어릴 때 시시하다고 무시했던 소리 내어 읽기가 꼭 필요한 이유가 있었구나.

눈과 뇌와 입이 서로 칼군무를 출 수 있도록 연습이 필요한 거구나.

나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한국어를 배웠었지.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도 당연한 건데 왜 그걸 몰랐을까.

그냥 대충 안다고 넘어가면 안되는 거였구나.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중요한 이유가 있었구나...

P. 032 - 033


내 발음이 콩글리쉬인 이유.

'개떡 같이 발음해도 찰떡같이 알아 듣는' 남편이 내 곁에 존재했고,

내가 어려워 하는 것들을 슈퍼맨처럼 대신 해결해 주었기에,

기초적인 언어를 배우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었지만 또한 장벽인 사람이기도 했다.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눈에 들어 오자마자,

영어 오디오 북을 다운 받아 앵무새 놀이를 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책은 일본어에 관한 내용인데, 갑자기 남편에게 '영어를 영어답게' 발음해 주고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언어는 내 몸 안에 속복이 눈처럼 쌓이는 거였다.

경험이 쌓이는 만큼 새 언어가 쌓였다.

반대로 경험이 없었다면 쌓일 언어도 없었다.

'지금-여기'의 세상으로 나가서 부딪치는 만큼, 당황한 만큼, 몸개그를 한 만큼, 학생들에게 웃음을 준 만큼 언어가 쌓이는 거였다.

P. 045


언어는 내 몸안에 소복히 눈처럼 쌓이는 거다.

그렇지만 나는 눈처럼 소복히 쌓일 시간과 경험을 주지 못한체, 여러 언어들 사이를 방황했다.

초반 학습 속도가 빠른 반면 시큰둥 해지는 속도도 그에 못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김미소 작가처럼 틀린다고 해서 크게 부끄럽지 않았다.

외국인이고 외국어니까 당연히 어색하고 이상하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언어에 있어 '어중이떠중이'고, 그녀는 응용언어학자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을 터였다.



어를 배운다는 건 내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해 주는

새로운 단어를 공들여 고르는 거라고.


국어처럼 바로 귀에 꽂혀서 이해가 갔던 부분, 한국어로 직역되지 않으니 일어 뉘앙스 그대로 받아들여진 부분,

일어 단어가 들리지 않아 영어로 이해했던 부분이 서로 섞여 있었다.

그렇게 세 언어의 퍼즐이 맞춰졌다.

P. 087


말레이시아에 사는동안 여러 인종들(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그리고 기타 외국인)이 섞인 틈바구니에 살면서

언어역시 여러 재료가 고루 섞인 '잡채'나 '짬뽕'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말레이어로 표현의 한계를 느끼면 영어 단어로, 그것도 안되면 중국어 단어로...

그들도 그렇게 사용했고, 그러다 보니 포용과 이해의 넓이가 훨씬 넓어졌다.

내가 사용하는 '문법도 국적도 없는 언어' 그러나 그 여러 언어의 퍼즐 속에서

우리는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고, 즐거웠다.

돌이켜보니 그들의 엄청난 포용이 언어의 깊이를 가두는 한계점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국어로만 모국어를 보면 항상 내부자의 시선으로만 보게 됩니다.

외국어와 비교하다 보면 외부자아의 시선으로 모국어를 볼 수 있어요.

P. 190


아주 오래전에 '된장녀'라는 말이 유행한적이 있다.

외국에 살다 온 것처럼 '외국어 단어'를 문장안에 자주 섞어쓰는 것이 못마땅한 것을 비꼬는 의미였는데,

말레이시아와 미국에서 생활해 보니 '뇌'가 이해하는 쉬운 단어들이나 문맥에 딱 하고 맞는 단어들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색채가 다양한 팔레트 속에서 가장 아름 다운 색감을 콕 찍어 내는것이 언어의 활용이다.

'백인' 이라는 말 보다 말레이어의 "오랑뿌띠"라는 말이 더 찰지게 들리고,

'명함'을 "네임카드" 보다는 "비지니스 카드"로 쓰는 것이 더 명확한 것처럼...

모국어를 모국어로만 볼 때는 '된장녀'와 같은 언어 습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차가운 시선이었다가

막상 외국어로서 모국어를 바라보게 되니 '된장녀'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언어 버퍼링이 느려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다!)



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건 내 감정에 맞는 새로운 단어를 발견한다는 뜻이기도 해요.

나를 표현 할 수 있는 도구를 하나 더 갖는 거죠.


신의 존재를 집단의 위치로 소개하면, 이 집단을 벗어났을 때 자신의 존재는 무엇이 되는 걸까요?

자신을 동사로 소개해 보면, 자신을 새로운 모습으로 그릴 수 있어요.

나는 이 학교가 아니라 어디에서도 공학 공부를 할 수 있는 거죠.

나는 이 카페가 아니라 어디서든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거고요.

나는 집단 속의 내가 아니라, 나 자신이니까.

P. 143


결국, 언어를 학습한다는 것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 간다는 말이었다.

나를 사랑하게 되는 법을 하나 더 알아가는 방법!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알게되는 지식과 체험과 경험들...

그로 인해 더욱 커가는 나를 만나는 것이다.

김미소 작가가 이야기한 동사의 활용법은 '나를 표현 할 수 있는 도구를 더 늘여 보라는 격려'와 같은 말이었다.




과 줄 사이를, 책과 현실 사이를, 이론과 경험 사이를, 언어와 문화 사이를,

그리고 독자와 작가 사이를 가로지르며 읽는 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요.

작가가 행과 행 사이에 무엇을 숨겼는지 찾아내는 것보다,

작가가 써놓은 글을 재료로 해서 자신의 경험을 이리저리 엮어보고, 느꼈던 감정을 이것저것 섞어보고,

생각의 나래를 쭉쭉 뻗어보는게 글이 살아나는 방식이니까요.

P. 206


줄과 줄사이를 책과 현실사이를 이론과 경험 사이를 언어와 문화사이를 가로지르며

과거와 현실의 내 삶을 되짚게 해준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책'.

남편에게 '언어적으로 소홀' 해 질 때 다시 책장에서 꺼내어 읽어 봄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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