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그곳에 : 세상 끝에 다녀오다
지미 친 지음, 권루시안 옮김, 이용대 감수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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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친(Jimmy Chin)은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영화 제작자이자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로서, 20년이 넘도록 세계 최고의 모험 체육인과 탐험가들과 협력해왔다.

전문 체육인이자 극한의 탐사를 기록하는데 초점을 맞춘 사진작가로서 그는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올라 스키를 타고 내려왔고, 메루 산의 샥스핀 최초 등정을 노리는 많은 사람들 제치고 최초 등반하는데 성공했다. 일곱 대륙 전체에서 사진을 촬영했고, 그가 촬영한 사진은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뉴욕타임스 매거진'을 비롯하여 수많은 출판물의 표지를 장식했다. 지미 친의 작품은 또 '뉴요커', '배너티페어', '아웃사이드' 매거진과 '멘스저널'에도 실렸다. 그는 2020년 동료들이 주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 선정 사진작가상을 받았다.

영화 제작자로서 지미 친은 아내인 차이 바서렐리와 공동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감독한다. 두 사람의 영화 '메루'는 2015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고, 2016년 아카데미상 최고의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올랐다. 두 사람이 만든 다큐멘터리 '프리솔로'는 2019년 아카데미상 최고의 다큐멘터리상과 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상 그리고 프라임타임 에이미상의 7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지미 친은 차이와 딸 마리나, 아들 제임스와 함께 와이오밍 주의 잭슨홀과 뉴욕시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내가 지미 친 (Jimmy Chin)을 처음 알게 된건 2014년 무렵이다.

소박하게 내 몸에 붙은 살점을 좀 줄여 보고자 퇴근길에 있는 암장을 등록하게 되면서 부터 (그 때만도 대중적이지는 않았던 클라이밍) 내 삶의 방향이 꽤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처음엔 클라이밍 자체 보다는 거기서 만나는 유쾌한 사람들과 수다를 떨다 오는 것이 즐거웠을 뿐인데, 우연히 암장에 들른 외국인(현재의 남편)을 만나게 되면서, 내 행보는 미국으로 이어졌고 진짜 클라이밍의 세계를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비 오는 날 요세미티 수색구조대 YOSAR 캠프 풍경


요세미티 밸리는 CMAP 4 (벽에 가장 가까워 클라이머 들에게 인기가 많다.)를 중심으로 거의 모든 캠핑 사이트가 전 세계에서 모여든 클라이머와 하이커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원정 클라이밍을 위해 요세미티를 들렀든데, 우연히 '네셔널 지오그래픽'이나 '아웃도어 저널'에 나온 유명 클라이머를 만나는 일이 크게 힘든 일이 아니다.



클라이밍계에서는 하찮은 조무래기 축에도 미치지 못했던 나는 남편을 따라 주말마다 아리조나주의 '잭스캐년'에서 Climbing Dirtbag (클라이밍 노숙자 : 클라이밍을 하기 위해서는 어디서 자든, 무얼 먹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 사람들. 제약이 따르는 활동이다 보니 크게 환경을 따지지 않는 다는 말이 더 적당한것 같다.)이 되어보았고, 유아기 때 부터 입문을 하거나 적어도 10대에 클라이밍을 접하는 미국인들에 비해 너무나도 늦게 이 세계에 입문을 했으니 시청각적으로나마 지식을 쌓아 보고자 ' 구글, 넷플릭스, 아마존, 유투브' 등의 사이트에서 등반에 관한 정보나 사진, 영상 자료를 꽤 많이 훑어보게 되었다.

자료들 속에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등반 세계에 관한 엄청난 사진과 영상물이 넘쳐났고, 그 많은 자료들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등반가이자 영상 제작자 지미 친 (Jimmy Chin)의 결과물이었다.

지미 친(Jimmy Chin)의 사진과 결과물에 담긴 열정을 접하는 순간 나는 그에게 'crush on' 했던 것 같다.

당시엔 아시아계 남자 중에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했을 정도... 짐승남의 표본이 이 남자다 싶었었다.

때문에, 유명 클라이머 알레스 호놀드의 SNS는 팔로우 하지 않았지만 JIMMY( https://jimmychin.com/ https://www.instagram.com/jimmychin/) 계정은 좋아요를 누르고 수시로 드나들던 시절이다.


지미 친(Jimmy Chin)의 사진을 보면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이유는 그가 작업하는 환경의 영향이 크다.

그의 사진집 '거기 그 곳에'에서 보다시피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접근이 힘들고, '살아있음 과 죽음'이 '찰나'의 간격으로 이어지는 곳에서 그는 필름을 만들고, 사진을 찍었다.



알렉스 호놀드가 하프돔에서 생크갓 레지(thank god ledge)를 로프 없이 옆걸음으로 건너가고 있다.

Northwest Face of Half Dome (thank god ledge는 마지막 피치구간에 존재한다.)

유 형: Trad, Aid, 2200피트(667m), 23구간, 등급 VI

개척자: Royal Robbins, Mike Sherrick 및 Jerry Gallwas, 1957년 6월



같은 사진이라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라는 노란 테두리를 두르는 순간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왔다.

알렉스 호놀드라는 '클라이밍 괴물'을 전 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클라이밍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이 사진이 노출 된 이후에 Regular Northwest Face of Half Dome 5.9 루트는 요새미티 등반가라면 꼭 올라 사진을

찍어야 하는 코스가 되었고, 프리솔로의 한계를 넘는 과도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알렉스 호놀드의 이런 행동은 많은 찬반을 낳기도 했는데, 실질적으로 프리솔로잉을 하다가 목숨을 잃는 클라이머들의 수가 증가했고, 대중적이지 않은 위험 행동 논란으로 알렉스는 에너지 바 브랜드 'Clif Bar'의 스폰서를 잃는 결과를 가져 왔다.

반대로 스포츠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영감과 재능 있는 운동선수를 지원하자는 찬성의 목소리를 낳기도 했다.



사실, 클라이밍이라는 활동을 사진으로 전부 표현 할 수는 없다.

우리가 TV나 매체, 온라인을 통해 평면적으로 보는 자연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훨씬 더 크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 요세미티 밸리에 발을 들였을때 우뚝 솟은 거벽들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밸리를 둘러싸고 있는 거벽들 곳곳에 클라이머들이 붙어 있다고는 하지만 밸리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1km 이상 우뚝 솟은 바위를 오르고 있는 이들을 맨눈으로 찾아내는 일 조차 쉽지는 않았다.


엘캐피탄(El Capitan) 풀밭에서 등반가들이 모여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내일 계획을 세우고 있다.


때문에 거벽에 있는 클라이머들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사진에서 처럼 쌍안경을 들고 루트 진행방향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것이 좋다. 또 그들이 오르고 있는 루트의 상태를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날의 일정을 조율한다.

체력이 좋은 클라이머들은 엘 캐피탄이나 하프돔을 하루만에 오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클라이머 들은 절벽 중간에 포털레지(portaledge : a.k.a bivy)를 만들고 하루 또는 여러일 동안 프로젝트를 완료하기 위해 벽에서 내려 오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캐빈 조거슨과 토미 콜드웰이 돈월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다.

The Dawn Wall (또는 the Wall of the Early Morning Light)

유 형: Trad 5.14d, 32구간, 914m

7개 x 5.14 / 12개 x 5.13 / 8개 x 5.12 / 4개 x 5.11 / 1개 5.10으로 구성

개척자: Tommy Caldwell and Kevin Jorgeson, 2015년 1월 15일

이후 Adam Ondra가 성공 하여 전세계에 단 3명만 완등한 엘캐피탄의 루트



2015년 요세미티의 엘 캐피탄 (이후 엘캡 : 클라이머들의 엘 캐피탄 콜네임)의 돈월(Dawn Wall)에 오른 두 클라이머가 있다.

캐빈 조거슨과 토미 콜드웰, 그들은 이제껏 아무도 오른적 없는 엘캡의 미지의 구간을 오랜동안 작업하고 있었고, 포털리지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날의 프로젝트를 수행중인 모습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지를 장식하고 레드불 미디어를 통해 영화로 발표된다.

후에 토미 콜드웰은 회고록 푸시를 통해 우울증과 이혼의 현실을 피하기 위해 엘캡으로 향했고, 프리 솔로잉을 하다 '내가 죽으면 적어도 고통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 아침 하이킹 중 '돈 월'에서 비춰드는 일출을 본 후 그는 삶의 새로운 목적을 찾았으며, 캐빈과 함께 혼신을 다해 역경을 헤치고 최초 루트를 완성한다. 후에 콜드웰은 알렉스 호놀드의 엘캡 프리 솔로의 트레이닝 파트너가 된다.

사실, 이 시기에 돈월에서 서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토미가 아니라 캐빈 조거슨이었다.

콩알만한 홀드를 손끝으로 버티고 밟으며 돈월에서 가장 어렵다고 했던 구간을 완성한 이가 바로 캐빈 조거슨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여러 광고에도 등장했는데, 토끼가 북치고 심벌즈를 치며 유치하게만 느끼게 만들었던 듀라셀 배터리 광고를 한편의 다큐멘터리 처럼 바꿔 놓는 단계에 이른다.

듀라셀이 이들을 지원했던 이유는 주로 이들이 바위의 마찰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 겨울철 혹은 바위가 차가워지는 밤에 야간 등반을 했기 때문인데 등반일자가 12월과 1월 사이 야간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벽에 붙어있기 어렵다는 말.) / 참고 영상 : https://blog.naver.com/birudiva/220338951038



해거름의 유령들.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는 베이스 점핑이 불법이기 때문에 감시를 피해 동이 트거나 해가 질 때

뛰어내리는 경우가 많다.



베이스 점핑을 하는 사진과 딘포터의 사진들이 함께 있는 것은 은연중에 그의 사고를 암시하는 복선 구조처럼 느껴진다. 딘 포터(Dean Potter)는 요세미티의 클라이머 사이에서도 꽤나 이단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클라이밍만을 목적으로 벽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벽을 올라 베이스 점핑을 하고 줄을 타고, 윙슈트를 입고 하늘을 날았다. 그의 행보는 클라이밍이 클라이밍으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 발전해 나야가 할 방향을 제시했지만, 국립공원을 보호하고 사고를 감시해야 하는 공원측에서는 꽤나 골칫거였음에 틀림이 없다.


지미친이 직접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딘포터가 어떤 캐릭터인지 보여주는 사진

반려견을 업고 프리 솔로잉을 한다던지 윙슈트에 업혀 하늘을 나는 사진등은

'어디든 함께하는 반려동물 사랑의 끝판왕' VS '반려견의 안전할 권리 침해'를 놓고 대립하기도 했다.



나는 딘이 석양을 바라보는 이 얼굴 사진을 요세미티 하프돔의 북서 정규 루트에 있는

생크갓 레지 옆에서 로프에 몸을 고정하고 찍었다.


딘 포터 (Dean Potter)는 가까운 친구이자 멘토이며, 내아 아는 사람 중 미래를 상상할 줄 아는 최고의 체육인 중 하나였다. 우리는 여러 해 동안 함께 수많은 사진을 촬영했다. 나는 그를 존경했다.

딘은 복잡한 개성의 소유자였다. 그는 신비주의자이자 검투사였다. 장난기가 많고 호탕하게 웃었지만,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격렬하게 몰아붙이는 모습에 사람들은 기가 죽었다. 키가 196cm였고, 몸은 그가 날마다 오르는 까마득한 화강암을 그대로 깎아 만든 것처럼 보였다.

딘이 자신의 기준으로 삼은 삶의 방식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지만, 그를 필요로 하는 친구에게 그보다 더 충직한 친구는 없었다.

딘은 함께 일하기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가 사는 방식에는 우리가 따라가기 어려운 절박함이 있었다. 나는 끝을 모르는 듯한 그의 위업을 쫓아가며 사진에 담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촬영에 나설 때 내가 사전 준비에 집착하는 것도 그의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엘캐피탄을 타고 오르거나 무서운 고공 줄타기 준비를 할 때에 나 때문에 늦어질까 조마조마했다. 그가 나를 아슬아슬한 지경까지 밀어붙인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딘은 여러 곳에서 최초의 프리 솔로 등반자가 되었고, 요세미티 모든 곳에서 스피드 클라이밍 기록을 가지고 있었으며, 파타고니아에서는 어려운 새 루트를 여러 차례 탔는데 혼자 등반한 때도 많았다. 20년 동안 그는 요세미티 '스톤멍키즈'의 실질적 대장이었다. 그리고 프리 솔로, 스피드 클라이밍, 베이스 점핑, 윙슈트 플라잉, 고공 줄타기 등 그가 '다크 아트'라 부른 기술을 개척하고 다듬었다. 나는 딘 말고는 그렇게 다양한 스포츠를 정의하고 그 한계를 넓혀 간 체육인을 떠 올릴 수 없다.

딘은 2015년 5월 16일 요세미티에서 베이스 점핑을 하다가 사망했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그가 보고 싶다.


지미의 글에서도 보다시피 평범하지 않고 쉽지 않은 사람이었기에 그가 짧은 일생동안 남긴 자취 또한 크다.

만약, 딘 포터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는 현존하는 가장 쿨내 나는 클라이머 중에 한 사람임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샥스핀 모험을 시작하고 19일이 지난 뒤에 찍은 콘래드 사진이다.


경외심 절로 생기는 엄청난 모험과 도전의 이야기와 사진을 보고 있음에도 나는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콘래드 앵커(Conrad Anker)의 얼굴 사진이다.

삶의 질곡을 그대로 그리고 있는 그의 얼굴에서 밝게 빛나는 눈, 그 삶이 얼마나 순수했는가를 대변하는 듯 하다.

'딘 포터'나 '알렉스 호놀드' 그리고 '콘래드 앵커'의 열정은 우위를 겨룰 수 없지만 콘래드가 보여준 사랑과 애정의 결은 둘과 확연히 다르다.


콘래드 앵커의 새 결혼반지와 압화로 만들어 아내 제니 로우 앵커(Jenni Lowe-Anker)에게 가져가려고 그가 꺾은 꽃


나는 콘래드의 깊은 사랑과 다정함 그리고 그 모든것을 넘어선 책임감에 완전히 감동했다.

그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고 짓눌린 무게를 나누는 사람이며, 본질적으로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내 제니 와 콘래드의 관계는 흔한 연애를 시작으로 결혼 한 것이 아니다. 제니는 알렉스 로우(Alex Low)의 미망인이자 세아이를 둔 엄마였다.

콘래드는 친구이자 등반가인 알렉스 로우(Alex Low)와 스키로 에베레스트를 내려 올 계획을 하고 여정을 나섰다가 1999년 10월 5일 시샤팡마(Shishapangma)에서 눈사태로 알렉스를 포함한 일행 2명을 잃고 본인도 머리가 찢기고 갈비뼈 2개가 부러지고 어깨가 탈구되는 중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눈에서 빠져나와 최대 20m에 달하는 대형 잔해 밭에서 20시간 구조를 주도한다. 결국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 온 후 친구를 잃은 아픔과 자신은 살아 남았다는 죄책감 그리고 알렉스의 어린 세 아들을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에 제니와 아이를 돌보기 시작한 것이 그들이 결혼하게 된 이유다.

아버지 알렉스와 유대가 깊은 첫째 아들 맥스는 콘래드와의 관계가 잘 섞이지 않는다. 어린 동생들은 다정한 그를 아버지로 잘 따랐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도 맥스와 콘래드 둘의 관계는 어쩐지 서먹하다. 그럼에도 콘래드는 현재의 위치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아버지 역할에 최선을 다했고, 탐험가로서의 역할 또한 충실했다.

알렉스의 사망 17년 후인 2016년 4월 27일 등반가 Ueli Steck과 David Göttler는 빙하에서 나온 두 명의 등반가의 유해를 발견 했고, 알렉스는 주검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첫아들 맥스는 영화 'Torn(2021)'을 의 아버지 Alex Lowe의 죽음을 추모하고 그의 어머니 Jennifer Lowe-Anker 를 위로함과 동시에 알렉스를 대신한 아버지 콘래드에게 감사와 존경 사랑을 전하는 영화를 제작했다.


나는 콘래드를 2000년 여름에 처음 만났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알고 있었다. 그는 정점에 다다른 유명 등반가였다. 세계 곳곳에서 중요한 곳들을 최초 등반했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를 장식했으며, 에베레스트 산에서 조지 맬러리(George Mallory)의 시신을 발견하는 성과를 올렸다. 내게 있어 그는 초인이었고, 그래서 우리의 K7 등반에 끼워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에 나는 놀랐다. 나는 그의 기대에 부응 할 수 있을까 조바심이 들었다.

베이스캠프에서 지낸 첫 주 동안 브레이디와 나는 콘래드가 언제나 우리보다 일찍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게을러 보이고 싶지 않았고, 매일 아침 조금씩 더 일찍 일어났다. 그러나 매번 우리가 텐트에서 나와 보면 콘래드는 커피를 끓이거나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K7에 도전하기 전날 밤 우리 셋은 오전 3시에 일어나기로 했다. 브레이디와 나는 몰래 2시에 일어나 콘래드보다 먼저 준비하기로 했다. 우리 둘은 새벽 일찍 일어나 각자 장비를 소리 없이 쳥겨 어두운 텐트 밖으로 나왔다. 서둘러 배낭을 꾸리고 있는데 근처에서 헤드램프가 딸깍 켜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출발 준비를 마친 콘래드가 배낭을 어깨에 맨 채 바위에 편안하게 기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놀랍기도 하고 믿기 어렵기도 하여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6월 10일 K7에 오르기 시작했다. 콘래드가 실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웠다. 그는 문제가 생기기도 전에 상황을 예견하며 어려운 지형을 과감하면서도 착실하게 타고 올랐다. 수십 년간 다져 온 실력을 바탕으로 어떻게 타야 하는지, 어떤 장비를 가져가야 하는지,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 어떤 위험은 피해야 하는지에 대해 확고하게 판단을 내렸다. 그는 브레이디와 나에게 믿음을 주었고, 우리는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나는 책 곳곳에서 콘래드에 대한 지미 친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믿을 수 있는 든든한 동료이자 실력있는 리더 그리고 사려깊은 남자이며 책임감 있는 탐험가!

그렇기에 책의 곳곳에서 그를 만나는 것이 즐거웠다.

누군가에겐 산을 담은 멋진 사진집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거기 그 곳에'는 삶과 죽음 그리고 고통과 역경을 이겨내고 희망을 보는 인생이 녹아 있는 한편의 대하 드라마 같았다.

지미 친이나 콘래드 앵커, 알렉스 호놀드 등과 같이 죽음을 초월한 탐험가들이 있기에 현재의 인류는 그리고 스포츠는 경이롭게 한 발 더 미지의 세계로 전진한다. 지금에서야 그의 책이 출판 된 것이 늦은 감이 있지만 그의 업적에 진심을 담은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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