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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이야기 ㅣ 이산의 책 2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지음, 허호 옮김 / 이산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얼마만인고, 신비의 책꺼풀 이야기!
한동안 책을 거들떠도 안보고 지내기도 했거니와, 최근에는 이 책 한권을 무려 두달 동안이나 읽고 있느라고...
작년말 일본어를 시작한 후로 일본에 관한 거라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터라 우연히 이 책을 시민행동 도서관(또는 책장)에서
발견하고는 매일같이 가방에 처박아두거나 테이블위에 올려두거나(^^;;) 하여간 가까운데 두고 쉬엄쉬엄 읽다보니 어느새 두달이
훌렁 가버렸다.
그래서 정말... 정말로 오랫동안 참으로 자주 이 표지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말 그대로 책꺼풀 이야기를 하자면,
돌이켜보니 이 책의 모든 이야기들이 표지속에 다 숨어있었다고나 할까. 화재, 홍수, 지진. 그리고 화재, 홍수... 또 지진.
에도 사람들의 피부에는 진흙냄새가 배어있었고, '보다가 망한다'고 할 정도로 무언가를 보러가길 좋아했다지. 인력거라는 기가막힌
이동수단이 한껏 기량을 뽐내는 사이사이로 전차가 지나가고, 자동차가 빵빵거렸다지.
제목은 『도쿄이야기』지만, 사실은 중세 상업도시에서 근대 도시로 달음질쳐가는 초기 도쿄에 살던 에도 초닌(町人. 장
사치들? 막부에 물건을 대는 저잣거리의...?)들의 이야기. 아니 점차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도쿄도민이 되고, 아시아를 짓밟은
제국 신민이 되고, 다시 헌법을 가진 민주국가의 시민이 되어있던 도쿄 사람들의 이야기. 아니, 옛날에는 신화였다가 언젠가 땅위에
발을 딛더니 기어이 가격표가 매겨지고 만 삶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랄까.
중반쯤 읽고서야 이 책을 쓴 E. 사이덴스티커라는 미국인이 일본문학을 전공하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번역해 서구에
소개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응, 가끔은 책표지의 날개 부분도 읽고 그러자구. ;; 글이 단순한 시대구분이랄지,
십진분류(^^;)에 의한 체계적인 설명이랄지, 권력구조나 세계사의 흐름과 관련된 설명이랄지 그런 것이라곤 하나도 쓰지 않고 그저
타임머신을 타고 훌쩍 메이지와 다이쇼의 도쿄 거리에 도착한 것 처럼, 그 거리를 함께 거닐며 나눌만한 이야깃거리로 가득차 있는
것이 무척이나 문학적이라고 느껴졌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나보다. 아저씨, 멋지잖아요! (아참, 번역도 꽤 매끄러웠음.)
책을 덮고나서야 현대의 도쿄, 그리고 일본 지도를 뒤적인다. 두달동안 줄곧 책속에서 걸어다닌 그 도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확인하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어쩔수 없이, 무의식중에도 서울의 역사를 더듬거려 빗대어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의 수도 이야기
서울처럼 이름부터가 수도인 교토(京都)에는 오래전부터 텐노(天皇;
천황)가 살아왔는데, 무사계급에 권력을 빼앗긴 후 이름뿐인 권력자로 남아있었다지. 실권을 지닌 막부는 교토와 텐노를 그대로 두고
에도(江戶;지금의 도쿄)에서 진짜 권력을 행사해온 거야. 그 막부도 몇백년 사이 권력을 잃게 되니 새 시대를 맞아 부활한 텐노
역시 교토를 그대로 남겨두고 에도로 옮겨오지. (메이지 유신) 그리고 막부의 상징과도 같은 에도라는 이름을 떼어내고 단순히
수도의 동쪽이라는 뜻으로 통용되던 도쿄(東京)를 명칭으로 정하게 되었다나. 하지만,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논란을 피하기 어려운
문제인 경우 일단 두고보는 경향이 있달까? 일본이라는 국명도, 공용어인 일본어도, 국가의 원수도 법적으로 일체 정한 바 없는
나라인 고로, 천황이 언제 정확히 교토를 버리고 도쿄에 정착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 에도는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거며, 언제 그 생명이 끝나 도쿄가 시작된 건지는 누구도 분명히 말할 수 없다는 거야. 메이지 시대 내내, 아니 다이쇼
시대까지도 줄곧 '에도는 죽었다' '에도는 끝났다' 라고 외쳐댔다는 예술가들의 낭만! 짐작이 갈듯말듯...^^
에도는 보아서 망할지도!
"교토는 입어서 망하고, 오사카는 먹어서 망한다"라고 하면, 글쓴이는 에도에 대해 '보아서 망한다'는 말을 쓸 수도 있겠다고
하네. 꽃을 보러 가고, 나무를 보러 가고, 축제와 불꽃놀이, 가부키에 연극에 오페라까지 볼거리라면 가리지 않고 쫓아다닌 에도
사람들의 모습이 진정 흥미로운거다. 왜 일본 관광책자에는 그리도 명소/명물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표절의혹이
나올 정도로 다양한 소재의 대중문화가 발달한 건지 알것 같기도 한 그런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