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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시바타 쇼 지음, 이유정 옮김 / 태동출판사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젊은 시절에는 저마다 마음속에 '성서' 하나씩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성서? 앗. 나는 없잖아. ㅠㅠ
그런데 뜻밖에도 이 책에는 일본 50-60년대 학생운동에 몸담았던 젊은이들의 사랑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첨엔 결혼을 앞둔 후미오와 세츠코의 까닭모를 부담감, 두려움...뭐 그렇게 시작하더니만. 그러니까 난 그만 속고 만 것이다.
시위중에 도망쳤던 경험 때문에 자신을 배신자로 규정하고 괴로워하며 운동을 떠나 살다가 결국 자살한 사노, 열정적으로 서클후배인 자신을 지도하던 노세를 사랑했지만 당의 명령으로 무장투쟁을 위한 잠수에 들어갔던 그가 당이 실패를 선언한 후 돌아와 절망과 무기력을 드러내 보이자 그만 사랑이 식어버리고 운동에도 흥미를 잃고 만 세츠코. 단지 열정으로 시작한 관계에서 마음을 온전히 열지 않는 그를 원망하며 자살한 유우코를 통해 발견한 삶의 허무에 짓눌려 살아온 후미오.
고등학교때 사노와 노세는 학급회의중에 이런 대화를 한다.
"한국전쟁은 한국 독재자 이승만과 독재자를 지원하는 미제국주의자가 일으킨 전쟁입니다. 그 증거는 전쟁 시작 일주일 전에 덜레스가 38도선을..." ...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야."
오호라. 일본 공산당은 한국전쟁을 진정 이렇게 보았단 말이냐. 게다가 고등학교 학급회의에서 이런 토론을... -_-;;
지금 일본의 사회운동이 갖고 있는 면모를 생각해보며 소설을 읽다보니 문득 "80년대 변혁운동가들의 정체성 변화과정-운동권출신 여성모임을 중심으로"(박현귀 - 읽을사람 누르셥^^)라는 논문에서 본 인터뷰가 생각났다.
"재작년(94년) 같은 경우, 공지영의 {고등어}, 최영미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 나왔을 때 사람들이 많이 얘기하고 그랬어요. 나는 공지영 그거 보면서 너무 열이 받기도 하고 그래서 울기도 했고. 최영미 시집 나왔을 때도 나 열받아서 울었어.
그런 거에 대해서 다 부정하는 건 아닌데, 뭐라 그럴까. 얼마 전에는 미경 언니가 우리가 한참 운동했던 80년대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돈으로 환산해서 가져갔대. 그렇잖아, 나보고 '글을 쓸려면 소재가 그렇다. 80년대는 다 약삭빠르게 돈으로 환산해서 가지고 갔다'라는 얘기를 했어. 내가 그 얘기 듣고 다음 다음날 아침에 아르바이트하러 일찍 나갔는데 갑자기 전철에서 내려 그 생각이 나는거야.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요. 그래 가지고 아침 10시쯤 아르바이트하는 아파트 주변에서 얼마나 내가 눈물이 많이 흘렸는지. 도저히 못 참아서 미경 언니한테 아침부터 전화했더니 지금 너무 눈물이 난다니까 ‘왜 그러냐고?’ 그래서 언니 말 한마디에 지금 이렇게 너무 눈물이 난다고 그랬지."
격렬한 사회운동의 물결은 어디서 일어나며 어떻게 순식간에 가라앉고 마는걸까.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은 왜 모두 더러는 박탈감을 더러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걸까.
어쨌거나... 끊임없이 삶과 죽음에 대해 묻는 이 사색적인 소설을 다 읽은 뒤 누운채로 두어시간 잠들지 못하고 상념에 잠겨야 했다. 분홍빛 아롱거리는 표지만큼이나 가슴속이 계속 울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