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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세계 1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장영은 옮김 / 현암사 / 199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통속적인 세상사를 그저 그렇게만 관망하며 살아가는 남들과 조금 달라지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연시 해오던 관념이나 통상적인 형식, 평범한 사물을 한번쯤 비틀어 보거나, 보이지 않는 이면 어딘가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숨어 있으리라 진지하게(혹은 장난스레) 추측해본 경험을 분명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소박한 우리들도 알고보면 철학자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다.
'훌륭한 철학자가 되려는 우리에게 필요한 오직 한가지는 놀라워 할줄 아는 능력이다' 라고 우리를 설득하고 위로하는가 하면, 사실 부추기는 저자는 방대한 서양의 철학사를 쉽게 읽히도록 저술했다. 범위는 탈레스부터 시작해서 헬레니즘의 철학,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계몽주의, 낭만주의, 현대의 실존주의에 이르기까지 전체 철학사를 거의 아우르지만 소설의 형식을 빌어 결코 지루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꽤나 흥미진진하게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세상이 어디로부터 비롯되는지, 나는 누구인지, 그와 같은 인식은 이성으로 하는 건지 아니면 경험이 나를 일깨우는 건지. 작가가 끌어주는 철학의 길을 따라 허겁지겁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끝에는 '지금 여기' 존재 하는 현대의 우리 모습이 있다.
이책은 철학책이라기보다 철학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그러나 철학사에 대한 지식전달에만 그쳤다면 이처럼 유명한 책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하는 방법과 우리가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 그리고 삶에 대한 반성을 하라며 끊임없이 마음을 찔러대는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 마치 저자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지 않느냐 말하는 듯 하다. 철학을 처음 접한다면, 이 책을 한번쯤 읽어 보기를 권한다. 많은 곳에서 청소년 권장 도서로 분류되어온 이 책을 20대라는 어설픈 자존심 때문에 외면하려 했던 나 같은 철학 문외한들에게 추천!
인상깊은 구절: 마술사의 텅 빈 모자에서 흰 토끼가 나온다. 그것은 매우 큰 토끼이니까 이 마술을 하는 데는 수십억 년이 걸리겠지. 모든 아기들은 가느다란 털 끝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이 불가능해 보이는 마술을 보고 감탄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토끼 가죽 털 깊숙한 곳으로 기어들어가 그 안에 머물게 되지. 그 곳은 지극히 편해서 가죽에 박힌 털을 붙잡고 위로 다시 기어오르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어지지. 오로지 철학자들만이 언어와 존재의 극한에 도달하는, 이 위험천만한 여행을 감히 실행에 옮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