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더스 키퍼스 - 찾은 자가 갖는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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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당신이 무언가의 팬(fan)이었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천재 작가가 남긴 원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파인더스 키퍼스'는 재미 없을 수가 없는 그런 소설이다. 비록 그 행동과 결과엔 동의할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보통 이해하기 힘들고 이입하기 쉽지 않은 범인의 심리가 별다른 설득 없이도 손에 잡힐 듯이 이해가 될테니까. 특히 그 애정과 열의를 쏟아부었던 대상이 어떤 작가나 소설이라면 이 작품은 당신이 한번쯤 상상했던, 혹은 원했던 그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 될 수도 있다ㅡ물론 살인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마지막 모습이 늘 만족스러울 수는 없는 법이고, 설사 만족스럽더라도 그들이 그 후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 지 궁금해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 아닌가?

 

     이 작품은 과거의 모리스와 현재의 피트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과거의, 그러니까 이십대였던 모리스는 파인더스 키퍼스 속의 또 다른 소설 '러너'의 열광적인 팬이다. 그는 '개 같은 일은 개무시'하라고 말하는 '러너'의 주인공 지미 골드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 그는 그 '러너'의 작가인 로스스타인이 은둔하며 살고 있는 집 안에 있고, 눈 앞에는 그 로스스타인이 자취를 감추었던 18년간 써내려간 수많은, 지미 골드의 뒷 이야기가 담겨 있을 지도 모르는! 노트들이 있다. 그리고 현재의 피트는 전작인 '미스터 메르세데스'에서 벌어졌던 사건으로 인해 심각한 장애를 갖게 된 아버지와 고단한 삶을 이어나가는 어머니 사이의 끊임없는 다툼을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불운한 십대 초반의 소년이다. 사랑하는 여동생을 위해서라도 부모님의 다툼이 멈추기를 바라는, 너무 빨리 커버린 그 소년 피트는 우연히 그의 인생을 확 바꿔버릴 공책들을, 그리고 돈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모리스와 피트는 로스스타인이 남긴 그 공책, 아니 러너와 지미 골드를 매개로 엮이게 된다. 물론 서로 그 존재를 알지 못한 채로. 

 

     은퇴한 형사이자 현 파인더스 키퍼스의 해결사 빌 호지스는 책장이 삼분의 일 이상 넘어간 시점에서야 처음 등장한다. 전작에서 다소 걱정스러웠던 홀리도 제법 안정적인, 그리고 프로페셔널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여주고, 이제는 하버드 대학생이 되어버린 제롬도 빼놓을 수 없다. 반가운 인물들의 반가운 이야기도 잠시, 곧 흐름은 현재에 도달한 모리스와 대학 진학을 눈 앞에 둔 피트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물론 모든 것은 로스스타인과 러너와 지미 골드를 가운데에 놓고 이어져 간다. 모리스와 피트, 성격도 나이도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같은 것에 깊이 빠져있는 모습은 닮아 있으면서도 다르고, 그 차이는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끔 만들어 간다. 모리스의 모든 행동은 별다른 설명이 없이도 이해할 수 있고, 피트의 행동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둘을 지켜보는 나 역시 그들과 참 다르면서 비슷한 존재이니까. 팬이라는 이름의. 

 

* * *

 

     파인더스 키퍼스는 지난 여름 전작인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읽으며 느꼈던 약간의 아쉬움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멋진 후속작이었다. 처음과 마지막을 이어주는 두번째 작품으로도 전혀 손색 없는 흥미로운 소설이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책이다. 이 글을 읽는 중간 문득, 내가 어렸을 때도 스티븐 킹의 작품을 읽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홀연히 잠적해버린 로스스타인과 달리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왕성하게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들더라. 덕분에 그의 집에 쳐들어가야 할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인상 깊었던 단락 하나를 필사해보았다 :)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을, 살면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책을 읽는 수준을 넘어서 책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대책 없이 푹 빠져버린 순간을 말이다. 맨 처음 그런 느낌을 선물한 작품은 평생 잊히지 않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다시금 뜨겁고 강렬한 깨달음이 찾아온다. (p.180)

슈퍼맨이 크립토 나이트를 질색하듯 그를 두들겨 팰 수도 있는 덩치 큰 아이들이 도서관이라면 질색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도서관이 안전한 피난처였다.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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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모노레일 - 제1.2회 타임리프 공모전 수상 작품집
윤여경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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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고집이지만 난 한 때 단편소설을 읽지 않았었다. 뭔가 부족한 것 같고 많은 것들이 생략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라고 변명해보지만 말 그대로 변명일 뿐이다. 나이를 먹고, 문학은 아닐지언정 짧게나마 문장을 쓰는 일을 하게 된 이후 그 생각은 달라졌다. 길지 않은 분량 속에 완벽한 기승전결과 설득력을 갖춘 짧은 글의 매력을 그제서야 알게 된거지. 

 

     바로 그 단편집인 '러브 모노레일'은 재미있었다. 공모전의 수상작품들답게 조금은 어설프면서도 신선한 느낌이 가득한 여섯 개의 글들이 마치 그 소재처럼 내 시간을 가지고 가버렸다. 시간을 의미하는 시계의 톱니바퀴와 표제작 속의 모노레일이 인상적으로 표현된 표지를 넘긴 후엔, 한 번도 쉬지 못하고 끝까지 읽어야 했으니까.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여섯 개의 작품 중에서 내 시선을 가장 끌었던 건 2회 최우수상 수상작인 '어느 시대의 초상'이었다. 수록된 작품 중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거대하고 흥미로운 세계관을 풀어낸 인상적인 글이었다. 무엇보다 익숙한 개념들이 그대로, 비록 의미는 조금 다를지언정, 세계관 속에 녹아들어 있어서 빠르게 이 글 속의 세상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게 좋았다. 짧은 글만으로도 참 다양한 상상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작품이었지만, 한 권짜리 긴 글이나 두 시간 정도의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로 본다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많이 들더라. 아직도 갖고 있는 의문 중에 하나는 시간 이주를 통해 이동하는 이들이 겹치지는 않는가? 하는 것. 노동력의 손실이 발생하면 끝까지 추적하는 이들이 있느니만큼 그런 존재의 중첩 현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글을 읽는 내내 묘하게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리고 역시 2회 공모전 작품이자 우수상 수상작인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도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역시나 섬세하게 잘 만들어만 준다면 영화로 봐도 재미있겠단 생각이 들었고. 앞서 언급한 '어느 시대의 초상'이 디스토피아적인 느낌으로 가득하다면, 이 작품은 누구나 한번쯤 하는 상상을 독한 현실 속에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 상상이 글 속에서나마 실현이 되어버리니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에 점점 힘이 들어가더라. 안타까움과 아쉬움, 뭐 그런 감정들 덕분에.

 

     장르문학에서도 특정 소재만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이 있다는 건 참 반갑고 감사한 일인 것 같다. 덕분에 이런 매력적인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볼 수 있었으니까. 앞으로도 끊기지 말고 계속 이어나가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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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선생님 11 - 완결
다케토미 겐지 지음, 안은별 옮김 / 세미콜론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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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스즈키 선생님의 마지막 권까지 읽었다. 9권은 전편에서부터 연결되는 학생회 선거 이야기의 마무리와 작가 스스로가 "연재 처음부터 대작이 될 예정"이라고 설명하는 문화제 이야기의 시작을 담고 있고, 이어지는 10권과 11권은 그 문화제 이야기를 전 페이지를 할애해 가득 담아낸다. 그 문화제 에피소드의 타이틀인 '신의 딸'은 작품의 마지막 에피소드이니만큼, 스케일도 크지만 생각할 '꺼리'도 많아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매번 하는 얘기 같지만, 책을 단순히 읽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서 이야기하는 내용, 던져주는 의문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을 만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서 역시 참 반갑고 고마운 만화책이다. 아직도 주변엔 만화책, 하면 애들이나 보는 거 아니냐는 편견을 가진 이들이 제법 있는데 꼭 권해주고 싶기도 하고, 그런 이들에게 당신들이 말하는 그 '애들'이 이 작품 속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상상이나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고 싶기도 하고. 

 

우선 학생회 선거 에피소드다. 사실 전 편을 읽으면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니시와 그 친구들이 과연 어떻게 나올지 참 많이 궁금했었다. 현재 우리나라도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매번 정곡을 찌르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해 온 작가가 과연 어떻게 선거라는 제도의 맹점을 끄집어낼지 더 관심이 가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리고 작품 속 아이들은 역시나 내 기대에 훌륭하게 부응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선거에 유효참가하라고 독려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무효표는 의미가 없는 것일까. 왜 굳이 선거에 참가하기까지 하면서 무효표를 찍는 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고백하자면 나 역시도 애매한 생각 밖에 없었다. 아니, 그리 진지하게 1인 1표가 보장되는 현대 선거제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가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다. 물론 현재의 제도가 완벽한 제도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니시가 제기한 의문처럼, 과연 내가 내 투표권을 행사하는데에 있어서 후보들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하고 있는지, 얼마나 고민을 해야 충분한 건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모두의 1표가 동등한 1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 과연 옳은가? 혹은 그 반대의 경우라면 옳을까? 정답이 정해진 문제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답을 알 수는 없지만 한 번 정도는 분명 고민하고 생각해봐야 할 그런 문제인 것도. 그래설까 기시의 회장 후보 연설 속 질문이, 바로 얼마 전 사전투표를 마치고 온 내게 직접 향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물론 작가는 단순히 의문만 제기하고 끝내진 않는다.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기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답을 들고 아이들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가니까. 

 

그리고 마지막 문화제 에피소드인 '신의 딸'은 내 기억이 맞다면 전체 시리즈의 에피소드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고,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가장 속도감 있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내용에 대해 언급하진 않겠지만, 하나의 에피소드 안에 다양한 문제를 유기적으로 담아내는 작가의 역량이 가장 잘 드러난 에피소드가 아닐까.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이야기 중엔 이런 것도 있었다. 확실히 내 주변에서도 힘내라, 화이팅! 같은 일방적인 격려가 과연 격려일까, 같은 의문에서 출발해 그런 방향성의 조언은 지양하는 분위기가 있다. 나도 그런 편이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더 열심히 하라고 하면 울컥할 때도 있거든.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런 끊임없는 격려 혹은 등 떠밀어주는 행위가 필요할 수도 있다. 상대방이 어떤 타입의 사람일지 좀 더 진중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거지. 생각해보면 스즈키 선생님 속에서 다뤄지는 이야기들은 대부분이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식적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과연 그런 걸까, 놓치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 한 번만 뒤를 돌아보라고 한다. 참 용감하다. 절대적인 상식이나 방향 같은 건 없는데도, 중도를 지키려는 태도나 생각은 회색분자라며 배척하기까지 하는 세상인데. 하지만 스즈키 선생님은 묘하게도 이상주의자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아이들 앞에서는 든든한 교사의 모습을 보여주곤 있지만, 그 속에선 치열하게 고민하고 갈등하며 그럼에도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스즈키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것 같다.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하지 않아서 그렇고, 그저 내가 가진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한 번 더 고민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사람이라서 그렇다. 그리고 그런 내가 그의 모든 생각에 다 동의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래도 스즈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거려줄 사람이라서 가장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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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잠 밀리언셀러 클럽 145
가노 료이치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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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주인공은 폐허, '사람의 손길이 끊긴 채 남겨진 광경들에 매료되어 있'는 사진작가 다쓰미 쇼이치다. 불미스러운 사건에, 그것도 억울하게 연루되어 자신의 모든 커리어를 통채로 잃을 뻔한 상실에서 간신히 벗어난 사람이 폐허에 매력을 느끼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고, 그런 텅 비었지만 비어있지만은 않은 공간을 담아낸 사진집을 내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다쓰미 자신의 사진집의 표지를 장식할 사진을 찍기 위해 작은 도시 다카하마를 찾는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머릿 속 이미지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라 한 여성의 시체였고, 이건 이상한 일이다. 살해당한 채 발견된 사람은 아이자와 다에코. 저명한 여성 저술가로, 다카하마 지역의 공항건설을 반대하는 환경보호운동가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다쓰미의 동료인 후지코가 사고 직전에 그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고, 다쓰미가 이 사건에 발을 들이밀 수 밖에 없게끔 이어지는 우연들이 착착 쌓여나간다.

 

창백한 잠은 타지에서 온 사진작가가 약 9일간 자신이 발견한 시체와 얽힌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이다. 얼핏 생각하면 그리 복잡한 전개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단순해 보이던 살인사건의 배경에는 공항건설이라는 공공개발을 둘러싼 주민들 간의 대립이 섞여 들어가 있었다. 다쓰미가 처음 시체를 발견하고 신고했을 때 사건을 담당한 형사도, 피해자를 보고 엉엉 울어버렸던 남자도, 모두 피해자와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일만큼 좁은 인간관계는 그 숫자가 적은만큼 복잡하게 꼬여있다. 거기에 더해 공항반대파의 정신적 지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명망있는 도예가와 직접적으로 등장하진 않지만 지속적으로 작중 인물들을 통해 언급되는 일본 정재계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던 이종원이라는 존재도 있다. 9일간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엔 참 짙고도 깊은 과거들이 많이도 엮여있다.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이들이 들고 나가지는 않지만, 인물관계도를 그려보면 몇 안되는 인물 사이에 수많은 화살표들이 오고갈 그런 작품이었다.  

 

물론 아무리 복잡하게 꼬였더라도 사건은 해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은 갑갑함이 느껴지는 건 아마도 사건 외적인 부분 때문일테지. 앞서도 말했듯이 이 작품은 살인사건 뿐만 아니라 공공개발을 둘러싼 지역사회의 갈등을 담고 있고 그 옳고 그름을 논하진 않는다. 찬성이든 반대든 결국은 자신에게 있어 가장 유리한 태도를 취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결말은 그게 바로 인간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어쩌면 작중에서 살해당한 다에코의 전남편이자, 사건을 조사하는 다쓰미의 충실한 파트너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자 안비루가 가장 솔직한 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난 잘 모릅니다. 아니, 다 큰 어른이니 이런 말투는 안되겠지요. 여러 사고방식이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중에 어떤 생각을 골라야 좋을지 결정을 할 수가 없어요.'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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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선생님 7 세미콜론 코믹스
다케토미 겐지 지음, 안은별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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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스즈키 선생님 5권부터 8권까지 읽고 쓴 감상문입니다 :)

 

이렇게 읽는 도중에도, 읽고 난 후에도 작품 내 논의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끔 만드는 만화책은 처음인 것 같다. 아니, 굳이 만화책으로 한정짓지 않아도 내가 읽고 접하는 책들 가운데에선 상당히 드문 일이다. 특히 내 자신이 평소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던 상식이 어쩌면 생각없이 수용한 편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라고 내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해 내린 결론이라 믿고 있던 것들이 정말로 그랬던 것인지 의심하게 되는 일은 정말로 그렇다. 지난번 처음 이 스즈키 선생님이란 작품을 접했을 땐, 중학생들과 그 담임 선생님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가끔씩 잊어버리게 될 정도로 날 것 그대로의 표현과 소재에 당황스러워했었지만, 솔직히 이번엔 그렇지 않을 줄 알았다. 충분히 이 작품 속 캐릭터들에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아니었다. 작중 스즈키의 표현에 따르면 '어른들끼리라도 보통은 불가능할 정도의, 정말 깊은 부분까지' 여과없이 끄집어 내는 일을 이 작품은 망설이지 않았다. (스즈키 선생님 7권, 스즈키 재판 -에필로그- 中)

 

이번에 읽게 된 5권부터 8권에 담긴 내용 중 가장 큰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스즈키 재판'이란 에피소드다. 결혼도 하기 전에 여자친구를 임신시킨데다 그 여자친구를 방학 중 업무인 '행사 순찰'에 대동하고, 입덧하는 모습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들킨 스즈키 선생님은 교사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학교에서 행하고 있는 피임 교육은 물론이고,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평소에 자신이 제자들에게 역설해오던 것들과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모습을 목격한 것은 평소 스즈키를 신뢰하며 따르던 나카무라와 오가와였다. 우선은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고, 제자들에게도 충분히 상황을 설명해주려고 했던 스즈키였지만, 모든 일은 그의 생각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결국 반 학생들 전체 앞에서 '재판'에 가까운 추궁을 당하게 되어버리고 마니까. 

 

이 과정에서 작가는 말 그대로 치열하고 솔직하며 다소 당혹스럽기까지 한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들을 2-A반 학생들의 입을 빌려 토해낸다. 처음부터 하나의 주장을 기둥으로 잡고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중구난방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나온다. 당연하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으니까. 혼전임신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혼전임신을 했더라도 결혼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전자의 사람에게 묻는다. 그 임신한 상대가 원래의 여자친구가 아니어도 괜찮은 것인가? 혹은 아무하고나 무책임하게 피임하지 않은 채 관계를 맺다가 덜컥 애가 생겼을 때 그 상대와 결혼하면 다 괜찮다는 이야기인가? 결혼은 했지만 등 떠밀려 한 결혼이기에 가정에 충실하지 않고 바깥으로 나돌아도 괜찮은 것인가? 또 결과적으로 좋은 남편, 아빠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기 전까지 무책임하게 옳지 않은 일을 하고 다니는 게 정말 용인할 수 있는 일인가? 결혼하기 전까지 복수의 이성과 성관계를 맺는게 괜찮은 일인가? 그런 사람이 옳지 않다고 한다면 다른 면은 나쁘지만 성관계에 있어서만은 한 사람의 이성만 허락한 사람과 여럿과 관계를 맺었지만 다른 면은 훌륭한 사람 중 누가 더 나은가? 아이들은 하나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또 다른 관점에서 그 발언을 지켜보고 또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혼전임신을 했지만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나쁜 사람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앞선 치열한 논의에선 전제되었던 그 답에 대해 아무도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현실엔 편모, 편부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 부모들 가운데엔 정말로 무책임하고 나쁜 이들도 있겠지만 그 모든 부모들이 그렇다고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그렇게 아이들의 토론은 단순히 옳고 그름을 가리겠다는 이분법적 태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난 아이들이 솔직하게 던지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같이 고민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어떤 의문에 대한 나의 생각이 다른 아이에게 반박당하면 당황하기도 하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당하면 놀라기도 하면서, 그렇게 마치 내가 스즈키 재판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임장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재판의 대상이 된 스즈키는 아이들이 치열하게 난상토론을 벌이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그렇다. 이 이야기의 끝은 단순히 혼전임신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것이 아니다. 보다 넓은 시야, 열린 관점, 다양한 입장, 역시나 스즈키의 표현을 빌리자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줄 아는 것을 아이들은 배워나간다. 

 

***

 

거기에 더해 5권 초반의 청소당번 에피소드 역시 꽤나 인상깊었다. 

학창시절의 내가 눈에 띄는 문제아도 아주 뛰어난 학력우수자도 아니었어서 그런가, 

그런 평범한 학생들은 당연하게 혹은 자연스럽게 뒤로 돌려놓고, 

문제아들의 케어에 몰두하거나 뛰어난 학생만을 편애하는 것처럼 묘사되는 

다양한 학원물들에 다소 질려 있었는데, 바로 그 부분을 지적하고 있는, 

이제 막 교사의 길에 들어선 스즈키의 과거를 다룬 에피소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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