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오프 밀리언셀러 클럽 139
데이비드 발다치 엮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만약 이 책을 집어 든 누군가가 자타공인 영미 스릴러 소설의 엄청난 팬이라면, 이 책의 시도는 상상만 해도 흥분되는, 혹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런 엄청난 하나의 '사건'이다.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와 데니스 루헤인의 패트릭 켄지가, 리 차일드의 잭 리처와 조셉 핀더의 닉 헬러가 하나의 글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함께 사건을 해결하다니. 팬이 쓰는 팬픽션이 아닌, 진짜 그들의 부모인 작가들이 의견 교환을 하며 써내려간 콜라보레이션 작품들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니. 영미 스릴러 문학의 팬이 아닌 이들도 쉽게 와닿게끔 부연 설명을 하자면 그런거다. 아서 코난 도일과 모리스 르블랑이 펜 끝을 맞대고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이 함께 등장하는 글을 발표한 셈이랄까. ㅡ모리스 르블랑이 발표한 작품 속 헐록 숌즈만 생각해봐도 이러한 협업은 오래 전부터 다들 꿈은 꾸지만 쉽게 이루어지기 힘든 그런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나 역시 약간 들뜬 마음으로 책을 받아들고 조심스레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곧 책을 읽기 전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한편으론 나 같은 편식쟁이 독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안내서가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만약 내가 페이스 오프에 등장하는 모든 작가의 작품을 다 읽었더라면, 이 책을 읽는 재미가 열배, 아니 백배 혹은 수천배쯤 더 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작품을 통해 접하고, 좋아하거나 응원하는 소설 속 캐릭터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해당 작품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읽을 때 훨씬 즐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비록 등장인물은 낯설지만 짧게는 23페이지, 길게는 거의 백여페이지에 육박하는 다양한 사건과 모험들을 읽어내려가면서 작가들의 문장과 나는 아직 모르던 캐릭터들의 매력을 발견해나가는 재미를 느꼈다. 예를 들면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이라든가, 더글라스 프레스턴과 링컨 차일드의 펜더개스트 같은. 아, 그 펜더개스트와 짝을 이뤘던 R. L. 스타인의 슬래피도 물론 인상적이었고, 린우드 바클레이의 글렌 가버, 아니 글렌의 딸인 켈리에게 반해버렸다. 마지막 책장을 넘긴 후에 서둘러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그들의 작품을 검색하고, 심사숙고 끝에 몇 개의 소설을 장바구니에 넣은 걸 보면 확실히 이 책은 나 같이 얕고 편식이 심한 독자의 훌륭한 지침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게 맞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 속 캐릭터들이 함께 움직이는 이야기를 읽는 것도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었지만, 역시 각 작품 속으로 들어가기 전 한 페이지 남짓, 해당 작가들이 어떻게 이 협업을 받아들이고 진행했는지 써놓은 부분을 읽을 수 있다는 즐거움도 있다는 얘기를 빼먹을 순 없을 듯 하다. 원래 독자들은 그런 소소한 뒷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달려드는 법이니까. 특히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존 레스크로아트와 T 제퍼슨 파커의 '침묵의 사냥'의 기원이었다. 그 설명에 따르면 두 작가는 본인들이 실제로 함께 낚시를 하며 겪은 이야기 속에 자신들의 캐릭터, 와이어트 헌트와 조 트로나를 던져 넣고, '스릴러 선집이니까 주인공들이 위기에 처하는 모험'을 덮어 씌웠다. (p.392) 이런 에피소드들을 통해 뭐랄까, 작은 포장마자에 앉아서 서로 자신의 캐릭터들을 내세우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작가들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면 독자의 지나친 망상일까. 물론 작가들은 실제론 주로 이메일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나갔지만 말이다. 

     사실 난 좀처럼 단편집을 읽지 못하는 편이다. 이야기에 푹 빠져들 무렵 끝이 나버리는 느낌이 나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란 생각도 들고. 하지만 페이스 오프는 그런 불안감 없이 읽을 수 있었던 작품집이었다. 내가 아직 읽지 못한 수십, 수백개의 작품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