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의 위엄 - 상 민들레 왕조 연대기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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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었다. 다라 제도를 통일한 제국의 황제의 행차로 시작되는 이야기에서 거대한 새가 등장했을 때, 그리고 그 새의 정체가 밝혀지던 순간에는 이미 이 소설, 아무나 영화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바라기 시작했으니까. 워낙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지만 미리 들어 기대하고 있던대로 흔히 톨킨식 정통 판타지 세계관을 다루는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재미가 있어서 남은 책장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아쉬워하며 읽었다. 무엇보다 읽는 내내 초한지의 인물들, 이야기들과 얽혀들어 익숙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세계관을 구성하는 낯선 단어의 이미지들이 쉴 새 없이 떠올랐고 사그라들었다. 물론 이런 경험은 드물긴 하지만 아예 새롭고 신선한 감각은 아닌데 아예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디선가 이미 비슷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가 아닐까.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문득문득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를 처음 읽었을 때의 유쾌한 기분 비슷한 게 느껴졌던 것은. 아무래도 눈마새나 피마새 쪽이 나에게는 좀 더 익숙하면서 낯선 신선한 감각을 느끼게 해주긴 했지만 이 작품은 다소 결이 다른 신선함, 친숙한 옛 이야기가 새로운 옷, 그것도 엄청나게 내 취향에 맞는 모습으로 나타난 그런 기분을 선물해주었다. 


     이 작품은 쿠니와 마타,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비슷하기도 한 그 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말 안해도 알겠지만 유방과 항우가 이 둘의 모티브가 된 인물들이고. 물론 이 둘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세계관인 다라 제도 7국의 곳곳에서 명멸하는 캐릭터들 역시 인상적인데, 개인적으론 각 7국을 수호하는 다라의 신들이 가끔씩 등장해 티격태격하는 게 제법 즐거웠다. 친근하게 다양한 콘텐츠의 소재로 활용되는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을 보는 거 같으면서도 아무래도 동양의 신적 존재들은 위엄있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보니까 신선하게 느껴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굉장히 간만에 읽으면서 신이 났던 작품이었다. 다음 권을 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만 들 정도로. 


     사실 초한지를 본격적으로 읽어본 적은 없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서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접하기도 했고 일종의 전래동화 비슷한 느낌으로 알고 있을 뿐이라고 해야하나. 굳이 설명을 하자면 이야기의 큰줄기나 제일 중요한 결말은 아는 상태면서, 초한지와는 고유명사가 전혀 다르게 쓰여졌지만 작품 속 주요 캐릭터나 몇 몇 사건이ㅡ전부가 아니다ㅡ 어떤 인물을 모티브로 했는지, 어떤 사건을 이야기하는 건지 눈치채는 정도? 물론 이정도 수준에 불과한 내 엉성한 초한지에 대한 지식은 이 작품을 읽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방해가 되지도 않았는데 상권을 다 읽고 난 지금은 딱 그 정도만 알고 있어서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너무 자세히 알아서 이건 이렇지 않은데, 앞으로 이렇게 되겠군, 같은 불필요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딱 익숙한데 낯선, 그런 느낌. 하지만 이 민들레 왕조ㅡ읽기 전에 왜 민들레 왕조인지 엄청나게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은 비교적 초반에 풀렸다ㅡ연대기는 총 3부작이고 내가 읽은 것은 1부인 제왕의 위엄 상권 뿐이라 솔직히 이 작품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기가 힘들다. 초한지는 제법 긴 이야기이고, 초한지대로라면 쿠니와 마타는 곧 새로운 관계성을 정립하게 될테니까 어떻게 보면 아직 시작도 안한 이야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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