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 Nader and Simin, A Separat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과 남녀배우상을 모두 석권해 화제가 된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중인 영화다. 법원에서 이혼 소송 중인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해 복잡한 사건이 얽혀드는 이 영화의 줄거리만 소개하려 해도 이 지면은 부족하다. 줄거리만 복잡한 것이 아니라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외연, 이란 사회의 종교와 법, 계급과 성, 현대와 전통, 국가와 가족 등의 문제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꼬여가는지 이야기하는 것도 흥미롭겠지만 모두 생략하고 여기서는 두 가지 포인트만 짚으려 한다.

 

<라쇼몽> 혹은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영화의 첫 장면에서 부부로 보이는 남녀(아내 씨민과 남편 나데르)가 아이의 양육 문제로 외국으로 가느냐 마느냐를 놓고 설전을 벌인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두 명은 카메라 정면을 보고 이야기한다. 법원의 판관에게 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관객을 향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결국 씨민은 이혼은 하지 못하고 별거에 들어가고, 나데르는 치매인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라지에라는 여성을 고용하는데, 어느날 집에 들어와 보니 라지에는 없고 아버지는 침대에 묶인채 죽을뻔한 위기를 겪고 그녀를 해고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나데르는 라지에를 밀치는데, 이후 그녀는 사산하게 되고, 나데르는 살인죄로 고소당한다. 다시 법원! 이후 영화는 나데르의 사정을 나데르의 관점에서, 라지에의 사정을 라지에의 관점에서, 그리고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아내, , 가정교사, 이웃집 여성 등등)의 각각의 증언을 듣는다. 누구의 이야기가 진실인가? 일본의 거장 구로자와 아끼라의 <라쇼몽>을 본 사람이라면 그 영화를 떠올릴 것이다. 본 사람의 입장에 따라 재구성되는 영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결국 하나의 진실을 향해 가지만, 각자의 개인적 사정과 윤리적 책무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만을 보여줄 뿐이다. 여기서 누가 거짓을 말했는지, 누가 범죄자인지를 판별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 그 자체가 오히려 삶의 진실이 아닌가란 질문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알프레드 히치콕과 추리소설의 구조

 

영화는 계속 사건에 사건이 겹치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 중요한 단서들이 있지만, 사건의 핵심, 가령 정말 나데르가 밀쳐서 라지에가 유산하게 된 것인지, 라지에가 집에서 나간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갔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등은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의 모든 사건들은 촘촘하게 엮이는데, 여기엔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 같은 탐정은 없다. 오히려 그 탐정의 역할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 관객에게 남겨진다. 해외의 언론과 비평가들이 현대판 알프레드 히치콕이란 찬사를 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123분이라는 짧지 않은 런닝타임 동안 관객은 단 몇 초도 쉬지 못하고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추리소설을 읽듯 사건을 추적해 가는데, 영화가 끝나면 그때 비로소 사건의 진실은 바로 우리들이 이곳에서 지금 살아가고 있는 민초들의 삶이라는 울림을 가지게 된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작가가 관객에게 무엇을 전달하는 시대는 끝났고, 관객 스스로 작품에서 의미를 찾는 시대다라고 말한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는 이란사회의 특수성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이기에 많은 나라에서 이국적인 가치관들에 낯설어한다고 한다. 가령 독실한 무슬림인 라지에가 바지에 소변을 본 할아버지의 옷을 갈아입혀줘야 할 때 그녀는 종교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어 그래도 죄가 아닌지 물어보는데 가령 그런 장면은 우리에게도 낯설다. 하지만 이 영화의 그런 특수한 상황들은 더 큰 보편성 안에서 작동한다. 세계 어느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라 해도 겪고 있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질문들, 그래서 이 영화 속의 사건들이 낯설지만, 동시에 익숙하고 공감을 일으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