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존 버거 지음, 박홍규 옮김 / 아트북스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그의 삶 자체가 현대미술의 역사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피카소의 작품들을 보면 이게 한 사람의 작품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양하다. 그러나 그 다양함을 관통하고 있는 일관성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그의 이름 자체 피카소’, 고유명사가 아닌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피카소란 이름이 아닐까.

 

1943년에 전시된 숫소 머리는 잘 알려진 작품은 아니다. 존 버거의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에서 처음 발견했다.

 

존 버거는 이 작품을 통해 피카소의 마술사로서의 예술가의 측면을 본다.

 

마법은 하나의 환영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대 세계에서 갖는 적절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중략) 마법은 처음에 인간을 과학의 시초로 이끌어 주었다.”

 

나는 사물을 다루듯이 그림을 다룬다. 창문 밖을 내다보듯 바로 그렇게 나는 창문을 그린다. 만일 열린 창문이 그림 속에서 잘못되어 보이면, 나는 커튼을 쳐서 창문을 막아버린다.”

 

피카소의 작품은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창조한다. 그러나 그 창조란 무에서 창조하는 것이 아닌 배치를 바꾸거나, 관점을 바꾸거나, 마술처럼 눈속임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그렇게 사물들, 자연의 질서를 자신의 시선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그는 신들릴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유희이다. 그러나 유희와 마법은 완전일치가 가능하다.”

 

숫소 머리는 자전거의 안장과 핸들을 그 모양을 전혀 변형시키지 않고, 자전거에서 떼어낸 이후 그대로 붙였다. “그가 한 일이란 그것이 하나의 숫소 머리의 이미지가 될 가능성을 본 것뿐이다. 이 가능성을 보는 행위는 일종의 이름짓기 행위였다. ”이것을 숫소 머리로 하라,“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통해 피카소의 창작방법의 두 가지 성격을 볼 수 있다. 하나는 사물을 그 사물의 본연의 목적과 질서로 보지 않고 마술가(작명가 또는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지배자)의 관점에서 새로운 목적과 질서를 부여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왜 하필 소인가 하는 것인데, 피카소 하면 프랑스의 화려한 삶을 떠올리겠지만, 그는 스페인의 시골 출신. 당시 유럽대륙의 많은 나라들이 산업화와 도시화가 절정을 이루었으나 스페인은 중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근대적인 나라. 소는 그의 유년시절과 원초성의 상징. 그의 그림에서 종종 인간도 소의 모습과 닮아있기도 하다. 가장 현대적인 예술가인 동시에 가장 원초적인 예술가이기도 한 피카소의 뿌리가 이 작품 숫소 머리에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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