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에로이카 > [레디앙] [심상정의 노대통령 검증①] 최장집 서문에도 못미치는 반론들

아마도 새판짜기 논쟁이 양분될 모양이다. 하나는 애초에 논쟁을 태동시킨 손호철-조희연 축으로, 다른 하나는 어쭙잖게 끼어드신 대통령 각하 덕에 노회찬, 심상정 등 정치인들이 나서는 모양새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둘다 아주 끝장을 볼 때까지 하자.

심상정 의원이 세 차례에 걸쳐 노무현 정부 비판을 계획하고 있다. 퍼온 글은 그 첫번째... 완전 조목조목 자근자근 씹었다. 유시민 장관이라도 구원투수로 등판해야 할 판이다. (들어오시죠.. 장관님, 이제 뒷짐지고 있는 것 다 뽀록 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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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는 복지사칭 정부다"
[심상정의 노대통령 검증①] 최장집 서문에도 못미치는 반론들
2007년 02월 22일 (목) 07:13:32 심상정 / 국회의원

노무현 대통령의 글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는 진보 진영의 정치 논쟁을 사회적 이슈로 급속하게 부상시켰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글에 나타난 현실 인식이 매우 심각하다고 보고, 이를 비판하는 글을 <레디앙>에 보내왔다.

심 의원은 이번 기회에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정책을 본격적으로 검증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레디앙>은 앞으로 세 차례 걸쳐 심 의원의 기고문을 나눠 싣는다. 글의 순서는 아래와 같다.

1. 참여정부는 복지정부? 복지사칭정부?
2. 개방해서 성공했다고? 서민은 실패했다!
3.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인가? 민주주의의 질적 퇴보인가?  <편집자 주>

노무현 대통령의 글을 보고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거의 전과목을 F 학점으로 장식한 학생에게 노(老) 교수가 실망해 말했다. “자네는 낙제일세.” 학생은 대꾸한다. “D학점이 무려 두개는 있는데, 왜 낙제라고 말하냐. 교수면 다냐.” 노 교수는 어안이 벙벙해 진다.

지식인을 '정치의 링'으로 불러들이다

한 교수가 있다. 

그 교수는 참여정부 등장 이후 많은 책과 논문을 통해 대한민국 정치에 있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해왔고, 정치 밖의 정치가 아니라 제대로 된 정당정치의 장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논지의 학문적 주장을 일관되게 해 왔다.

불행하게도 그 교수의 학문적 주장에 대해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은 제대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 나라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정치적 개혁의 성과도 용두사미에 그쳤다.

교수의 비판을 수용하는가 여부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자유이다. 그런데 분을 삭이지 못한 대통령이 그 교수를 자신의 홈그라운드인 정치의 장으로 불러들여 공격했다. 대통령이 포문을 열자, 대통령의 분신들도 따라나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통령과 그 분신들이 그 교수를 공격한 글들을 모아 봐도 교수가 쓴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서문의 한 단락에도 미치지 못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내뿜는 것의 요점은, 크게 보면 구체적인 근거와 자료를 따져보지 않고 참여정부가 국정에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진보진영의 ‘무책임성’, 다른 하나는 한국이 처한 현실을 도외시한 채 비판만 일삼는 진보진영의 ‘교조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나는 대통령선거 출마를 준비하면서 진보진영의 정책을 다듬는 작업뿐만 아니라 유력 대선후보의 정책을 검증하겠다고 자임한 바 있다. 비록 대선후보는 아니지만 자신과 진보진영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현실인식이 심각하다고 판단되어 그를 본격적으로 검증하고자 한다. 

복지에 대해 큰 애정을 가지고는 있으나 

난 참여정부가 복지에 대하여 큰 애정을 지니고 있다고 인정한다. 2003년 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인수위원회는 최종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GDP대비 사회보장비 지출이 OECD 30개국 중 29위라며 복지후진국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이후 복지, 여성, 환경, 문화, 주거 분야에 투자를 높이겠다고 강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2005년에는 '희망한국 21'을 발표하여, 2006~2009년 동안 빈부격차를 선진국 수준으로 축소하겠다고 발표했고, 작년에는 고령화, 양극화에 대응하는 ‘비전 2030’ 미래전략도 공개했다.

여기까지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야기해도 되는 선은. ‘이렇게 복지를 늘리고 싶었다’라고 고백하면 된다. 그러나 대통령은 훌쩍 사실의 선을 넘었다. 지나친 홍보 열정에 그러한 것인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참여정부의 업적을 챙기며 진보진영을 비판했다.

“참여정부가 아무 한 일도 없이 국정에 실패만 했다고 한다면, 구체적인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따져보자고 말합니다..,,..참여정부 4년 동안 재정에서 차지하는 복지지출 비중이 20%에서 28%로 증가했습니다. 이것은 지난 어느 정부보다 빠른 속도입니다.,,,,,

동반성장, 양극화 해소를 위해 국민총생산 대비 복지지출을 2020년까지는 현재의 미국·일본 수준으로, 2030년까지는 현재의 유럽 수준으로 높이자는 ‘비전 2030’도 이전에 없던 국가 장기발전 계획입니다.,,,,,,이에 대해 진보진영에서 얼마나 진지한 관심을 가졌는지 의문입니다. 진보가 진보다우려면 미래문제에 대해 보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노무현대통령,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 2007. 2. 17).

노대통령의 자랑, 대부분 수치 가공 효과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복지재정 확대를 업적으로 삼고자 하는 절실한 심정은 이해가 가나 그렇다고 수치를 가공해선 안된다. ‘자료와 근거’를 가지고 평가받기를 원한다면 참여정부 스스로 자료과 근거에 엄격해야 한다.

참고로 밝혀두건대 노 대통령이 업적으로 자랑해온 ‘복지재정 확대’ ‘신용불량자 수 감소’ ‘최저주거기준 개선’ 등은 대부분 수치 가공 효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이 억울해하면 얼마든지 근거와 자료를 제시하겠다)

나는 다음 여섯 가지 ‘구체적인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참여정부가 복지정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주고자 한다.

첫째, “참여정부 4년 동안 재정에서 차지하는 복지지출 비중이 20%에서 28%로 증가했습니다”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참여정부 4년차인 2006년 복지지출은 총 56조원으로서 전체 재정 224조원의 25%에 불과했다. 3% 차이면 7조원에 해당하는 금액인데, 참여정부의 셈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참여정부 5년차인 2007년 국가재정도 얼마 전 국회를 통과했다. 올해 복지재정도 약 61.7억원으로 전체 재정 237.1조원의 26.0%에 불과하다.

복지 지출 비중 28%로 증가는 거짓

둘째, 내가 누차 지적한 바 있지만, 더 심각한 것은 위 수치조차 심하게 부풀려져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혹시 복지재정의 내역을 살펴본 적이 있을까? 본 적이 없을 것이라 믿고 싶다. 설마 내역을 알았다면 이렇게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았으리라.

우리나라 복지재정엔 이상한 마술이 작동한다. 이 마술을 보면 참여정부는 가만히 앉아서도 복지재정을 늘리는 복지정부가 될 수 있다.

언제부턴가 정부 복지재정에 주택부문 예산이 대거 포함되어 계산되기 시작했다. 2007년의 경우 복지재정 61.7조원 중 주택부문이 무려 14조원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 14조원 중 실제 주거복지에 사용되는 재정은 약 3조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11조원은 모두 주택관련 융자금이다. 도대체 나중에 다시 회수하는 자본적 경비인 주택관련 융자금을 복지재정으로 계산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회계법인가?

주택관련 지출 전체를 사회복지 재정에 포함시키는 정부의 재정분류방식은 사회복지 지출에 대한 국제기준에 비추어 볼 때 부적절하다.(국회예산정책처, <2005~200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시안) 분석> 73~74쪽). OECD 기준에 의하면, 사회복지지출(social expenditure)이란 “가구 또는 개인이 사회적 위험에 처해 있는 동안 공적제도에 의하여 제공되는 사회적 급여(social benefit) 및 재정적 지원(financial contributions)"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를 경우, 사회복지 지출에 포함되는 주거(housing)란 주거비용과 관련된 임대비용 보조금 및 기타 현금급여로 정의되며, 우리나라 세출구조에서 보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주거급여’가 대표적인 예에 해당한다.

이승만, 노태우 정부 몫까지 가로채려나

주택관련 융자금은 자본적 경비이다. 엄밀히 사회복지 지출을 따지자면, 주택관련 융자에 따른 임대료 시장가격과 정책가격의 차액을 복지지출로 삼아야 한다. 현재 복지재정 중 10조원 이상이 복지비용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경우 2007년 재정 중 복지지출 비중은 4% 포인트 이상 낮아져 22% 이하로 계산되는 것이 옳다.

셋째, 그래도 복지재정은 조금이라도 늘고 있지 않느냐는 항변이 나올 듯 하다. 그렇다. 늘고 있다. 그 중 핵심이 공적연금(특수직역연금, 국민연금) 지출의 증가이다. 이는 참여정부의 정책 개입과는 관계 없이 연금제도가 성숙됨에 따라 연금급여를 수령하는 가입자들의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자신의 성과라고 우기면 곤란하다. 굳이 따지면 1960년에 공무원연금을 처음 도입한 이승만 정부, 1988년에 국민연금을 도입한 노태우 정부의 성과(?)다.

넷째, ‘비전 2030’을 인정해 주지 않아 섭섭한 모양이다. 향후 20년 이상 미래구상을 펼친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비전 2030'이 발표될 때부터 줄곧 이어지는 비판의 이유에 대해서 아직도 모르고 있다면 이는 심각하다.

국민들이 정말 관심을 가진 것은 ‘장미빛 청사진’이 아니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재정방안’이다. '2030'에 재정마련계획이 없다. '앙꼬 없는 찐빵'을 왜 안사 가느냐고 짜증을 내는 격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나 ‘2030’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부심의 크기만큼 허전함도 깊어진다는 사실을 알기 바란다.

기업 세금을 깎아주면서 어떻게 복지정책을?

다섯째, 노무현 정부는 애초부터 복지지출의 토대를 이루는 국가재정을 확대할 의지도 계획도 갖고 있지 않았다. 정부의 2006~2010년 재정운용계획을 보더라도 조세부담율은 2006년 20.7%에서 2010년 20.6%, 국민부담률은 26.7%에서 26.4%로 현상 유지다. 지금도 OECD 평균(조세부담율 28.2%, 국민부담율 37.6%. 2003년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한 처지인데도 말이다.

여섯째, 더 심각한 일은 항상 재정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노무현 정부가 정작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감세정책을 통해 복지재원 통로를 줄여놓고 이제와서 세수확대가 어렵다고 말한다면 도대체 국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노무현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조세정책의 기본방향은 감세였다. 노무현 정부의 전신인 김대중 정부는 지난 2001년 기업경쟁력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법인세율을 (28%에서 27%, 16%에서 15%로) 1% 포인트 인하하여 이윤을 잘 올리고 있는 기업에게 특혜를 베풀었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법인세가 인하된 지 불과 2년만인 2003년에 다시 법인세율을 2% 포인트 인하했다.

소득세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소득세율은 구간별로 무려 10%씩 내렸다. (최고세율 40%가 36%로 인하) 그런데 노무현정부는 3년만인 2004년에 다시 소득세율을 1% 포인트씩 내려 세금감면혜택을 부자들에게 주었다.

노무현 정부 시기 단행된 세율인하에 의해 발생한 세수감소액만 계산해 보면, 2005~2007년 3년 동안에만 8조 3천억원에 달한다. 세율인하는 이후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는 조치여서 참으로 심각한 조치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참여정부를 복지정부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유감스럽지만 참여정부와 복지정부는 먼 거리에 있다.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그런 경우를 두고 우리는 ‘실패’ 라고 한다. 그런데도 수치까지 가공해서 계속 복지정부라고 강변하면 복지사칭정부가 된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민심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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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바람구두! 디지털 아카이브 본심에 오르다

바람구두! '인문사회과학분야의 디지털 아카이브' 본심 추천

정보트러스트 어워드는 현존하는 디지털 정보들 중에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인터넷 유산을 선정하여 시상하는 행사입니다.

올해 정보트러스트조직위원회에서는 지식과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나누고 있는
‘디지털 오픈 아카이브’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1일부터 12일까지 추천위원들의 사전추천과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추천을 통해
후보들이 올라왔고, 이를 조직위원회에서 1차 심사를 거쳐
총 30개의 본선 노미네이트 후보작들을 선정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제가 운영하고 았는 인터넷 사이트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http://windshoes.new21.org)"가
네티즌들에 의해 후보로 추천되어 '인문사회과학분야의 디지털 아카이브'로
조직위원회의 1차 심사를 통해 본상 노미네이트 후보로 선정되었습니다.

어제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어디에서 추천이 이루어지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http://trust.daum.net/awards2007
혹시 살펴보시고 추천해주실 마음 있는 분들은 이곳에 가셔서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카이브 소개 :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는 바람구두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개인이 운영하는 비상업적 개인 홈페이지이다. 이 사이트이 주요 콘텐츠는 사람인데 좀더 구체적으로는 사람으로 본 20세기 문화예술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콘텐츠에 맞게 이 사이트에서는 문학, 미술, 음악, 사진, 영화, 역사 등에 대해 역사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풍부한 정보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제공되는 문화예술사 뿐만 아니라 바람구두 개인의 마음을 담아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모은 유리병편지, 인터넷상에 유통되는 여러 텍스트들을 모아놓은 작은책창고 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사이트이다.

추천사유 : 사람으로 본 20세기 문화예술사 - 문학, 미술, 음악, 사진, 영화, 역사 등에 관한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각 주제별로 문화연표도 있다. 이밖에 유리병편지, 작은책창고,구두연방에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수년 동안 운영자의 노력이 묻어나는 아카이브가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추천인: 최화연)

본심 노미네이트 사이트 : 저와 함께 본심에 노미네이트된 사이트들입니다. 이와 같이 훌륭한 사이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뿌듯함을 느낍니다.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 http://www.minjung20.org  
518사진아카이브
http://www.518.org
Designflux http://designflux.co.kr
강유원의 블로그 http://armarius.net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 http://arborday.egloos.com
김달진미술연구소
http://www.daljin.com
노동의 소리 http://www.nodong.com
노동자의 책 http://www.laborsbook.org
녹색연합 자료실 http://www.greenkorea.org
대한민국청소년방송스스로넷 http://www.ssro.net
듀나의 영화낙서판 http://djuna.cine21.com
맹범호의 미술교육 http://www.art2me.org
문학의 즐거움 http://www.poet.co.kr
미디어아트웹진 앨리스온 http://www.aliceon.net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http://windshoes.new21.org
성공회대사이버NGO자료관 http://demos.skhu.ac.kr
세계시민운동정보채널 http://action.or.kr
 아시아NGO디렉토리 http://www.asiainside.net
아트아카이브 http://artarchives.or.kr
언더그라운드아트채널 http://www.undergroundartc
여성환경 데이타베이스 http://www.ecofem.or.kr
오픈유어북 http://openyourbook.net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http://urisori.co.kr
인터넷에 배경음악 돌려주기 http://freebgm.net
지구를 살리는 환경책 http://www.ecobook.or.kr/
평화네트워크 http://www.peacekorea.org
표절과의 한판승부 kmra.net http://www.kmra.net
하늘을 사랑하는 사람들 http://afbase.com
한국고전의 세계 http://gojun.knu.ac.kr
환경운동연합 환경사이트DB http://www.kfem.or.kr

* 어쩌다보니 성공회대 NGO자료관, 평화네트워크, 환경운동연합과 경합을 다 하게 되었네요....
** 좀더 욕심을 내보자면 이왕이면 여러분의 감상평도 함께 부탁드려요. 저도 궁금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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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에로이카 > [한겨레신문] 유종일, "유연한 진보와 한-미 FTA"

난 노무현이 우리편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어쨌든 읽다가 웃겨죽는줄 알았다. 알라딘 서재의 "작게작게"님 (얼마전까지만해도 단거리요정 나애리라는 닉을 쓰시던)의 정체가 이 분이 아니었을까 의심할 정도 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들어와서 판을 키운 건 참 좋은 일인 것 같다. 그런데 대통령 성격에 이렇게 조롱당하고 그러면, 또 그 욱하는 성격에 뭐라고 하겠지.. 얼마후 인터넷신문기자들이랑 대화자리가 마련되나 보던데... 또 뭐라고 해댈지 궁금하긴 하다... 오늘 서재 붙들고 너무 많이 놀았다. 알라딘 놀이 오늘은 이제 그만...
[나라살림가족살림] 유연한 진보와 한-미 FTA / 유종일
나라살림가족살림
한겨레
» 유종일/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현재 스코어는 0 대 2. 이제 후반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패색이 짙다. 그러나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한다면 무승부를 이루어 연장전으로 갈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대표팀의 주장 노 선수는 또다시 우리 편 골을 향해 드리블을 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관중들의 야유 소리가 높아간다. 한편 아직도 남아 있는 소수의 노란악마들은 ‘노 선수 파이팅’을 외치며 목청껏 응원을 해댄다. 어쨌든 노 선수는 금방이라도 우리 골을 향해 슛을 날릴 태세다. 그리 되면 경기는 끝이다.

이 경기는 참으로 이상한 경기다. 대표팀 선발 경쟁에서 비교적 무명이었던 노 선수가 우여곡절 끝에 인기 절정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주전 스트라이커 자리를 꿰찼을 때만 해도 국민들은 기대에 부풀었고 힘껏 그를 응원했다. 그런데 본경기가 시작되자 노 선수는 자꾸만 볼을 우리 편 골을 향해 몰고 갔다. 상대방의 저항이 거센 탓도 있으나, 어떤 때는 아예 상대편 방향으로 진격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반대로 공을 차기도 했다. 그러니 경기가 제대로 풀릴 까닭이 없다. 경기 시작 직후 노 선수의 자책골로 0 대 1로 뒤져 나갔다. 재벌개혁과 금융개혁 등 개혁정책을 포기해 버리고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운운하면서 성장지상주의에 굴복한 것이다. 추가 골은 후반전 중반 상대 팀의 총공세에 밀려 내주고 말았다. 나름대로 저항도 했으나 공을 빼앗아 역습에 나서려는 의지는 없이 그저 상대 팀의 전진을 조금 방해하는 정도로만 수비를 하다 보니 결국 골을 허용하게 되었다. 이 두 번째 골은 부동산 정책의 실패다.

경기의 흐름은 상대 팀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우리 팀도 때론 완강한 공격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부동산 골 허용 후에는 전의를 다지고 열심히 공격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제 경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왔다. 노 선수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골을 우리 편 골대를 향해 쏘아버릴지 아니면 마지막 순간에 위험지역 바깥으로 차낼지 조마조마한 순간이다. 관중들이 항의한다. 도대체 왜 우리 편 골대를 향해 가느냐고. 처음엔 심판을 탓하고 상대 수비가 너무 거칠다고 변명했다. 그렇다고 거꾸로 가서야 되겠느냐는 질책에 답이 걸작이다. “공격을 꼭 상대 팀 골에 대고 해야만 하느냐. 유연하게 생각하면 공격을 우리 쪽에 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전술적 유연성을 발휘해서 백패스를 하는 것과 엉뚱하게 우리 편 골을 향해 슛을 날리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유연한 진보, 좋은 말이다. 그러나 방법론이 유연해야지 원칙과 가치 자체를 유연하게 휘어버려선 안 된다. 경제개혁과 집값 안정 모두 대선 공약에서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었는데, 이를 저버린 것은 결코 유연한 방법론이라 할 수 없다. 적극적인 개방, 반드시 해야 한다. 자크 아탈리의 말처럼 신유목주의 시대가 오고 있다. 우리나라 진보세력의 상당수가 개방에 소극적인 것은 문제다. 그러나 개방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원칙과 가치는 지켜야 한다. 이 점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무척 버거운 과제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나 약값 적정화 방안 등과 관련하여 공공정책의 자주적 결정권이라는 원칙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충분한 대비책도 없이 금융시장, 농산물시장 등을 과도하게 열어 대다수 국민의 경제적 향상이라는 가치를 저버려서도 안 된다. 그러자면 낮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으로 타결 짓는 것이 최선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신중론은 개방 반대론이 아니다. 오히려 유연한 개방론이다. 무조건 개방이 아니라 원칙과 가치를 지키면서 유연하게 접근하자는 것이다. 그야말로 유연한 진보의 입장이다.

유종일/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기획연재 : [사외] 나라살림 가족살림


기사등록 : 2007-02-21 오후 05:20:40 기사수정 : 2007-02-22 오전 11:27:52
한겨레 (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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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이것이 저술가의 서재다

현대와 삼성의 배구 맞대결 기사를 읽다가 손가락 가는 대로 끌려들어가 읽은 기사는 한겨레의 '재모아빠' 혹은 구본준 기자(http://wnetwork.hani.co.kr/bonbon/)가 쓴 '필진네트워크' 기사이다. 지면에 게재되는 기사는 아니라는 뜻이다. 건축사학자인 임석재 교수의 '거대한 자료실' 탐방기사인데, 얼마간은 부러운 마음으로 죽 둘러보았다(나는 내달 '고아원'에 있는 책들을 근처 다른 '고아원'에다 옮겨놓아야 한다). 저술가가 되면 이런 자료실을 갖게 되는지, 아니면 자료실을 마련해야 저술가가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한 가지 '모델'로 창고에 넣어둔다(하긴 이웃나라엔 '고양이 빌딩'을 갖고 있는 저술가도 있다고 하니 '저술가의 서재'가 특별히 놀랄 만한 것은 아니지만).

한겨레(07. 02. 16)[필진] 이것이 저술가의 서재다

2년쯤 전이었습니다. 모처럼 건축사학자 임석재 교수를 만났는데, 근황을 묻자 “서재를 구해 책들을 옮겼다”고 하더군요. 새로 구한 서재는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 광주라고 했습니다. 임교수의 집이 직장인 이화여대 근처 아현동인 것을 알고있던 저는 왜 가까운 집 놔두고 그렇게 멀리 서재를 구했는지 궁금해 다시 물었습니다. 임교수의 대답은 명쾌했습니다. “자료가 너무 많아서 20평짜리 집에서는 불가능한 지경”이란 겁니다. 게다가 자기는 공기 좋은 곳이 좋으니 금상첨화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도대체 자료가 얼마나 되기에 집까지 옮겨야 하느냐고 말이지요. 임 교수는 집안 전체가 자료로 가득찼다고만 빙긋 웃었습니다. 무척이나 궁금해서 언젠가 한번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5일, 임석재 교수의 광주 아파트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10여년 동안 무려 28권의 책을 쓴 우리 시대 대표적인 건축글쟁이, 그 글쟁이의 서재를 찾아가는 제 연재 기사 <한국의 글쟁이> (한겨레 출판섹션 ‘18도’섹션 참조) 열아홉번째 초대손님으로 임 교수를 모시게 된 것이 제가 임교수 댁을 찾아가게 된 경위입니다(*그러니까 다음주 연재가 '임석재 교수' 편이겠다).

임교수의 집은 광주 시내를 살짝 벗어난 언덕 위에 잡은 비교적 대단지 아파트였습니다. 평수는 제법 넓었는데 방이 5개 짜리더군요. “서울에서 드는 비용으로 2배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임교수는 설명했습니다. 가족들과 같이 생활하는 곳이 아닌 완전한 집필실로 마련한 공간입니다. 임교수가 현관문을 여는 순간 현관에서 보이는 집안 모습은 이 곳이 ‘거대한 자료의 바다’임을 이미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현관에서 마루로 이어지는 짧은 복도 같은 공간부터 철제 책장이 놓여있는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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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조금이라도 빈 공간에는 책장들이 열병하듯 서있었습니다. 마루는 그저 큰 방일뿐이었습니다. 마루 가운데에는 책상이 있고 나머지 모든 벽은 책장을 놓았습니다. 자, 마루 책상 앞에 선 임석재 교수입니다.

임 교수는 마침 슬라이드 필름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임교수는 글쟁이이면서도 사진을 직접 해결합니다. 사진을 거의 전문적으로 찍는데, 내년도 이화여대 다이어리를 임교수가 찍은 우리나라 전통가옥들 사진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52주별 그림으로 넣을 52개 전통가옥별로 좋은 사진을 고르던 차였습니다. 책상 위에는 슬라이드보관통과 사진을 살피는 도구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5개의 방은 방 하나 하나가 모두 서재였는데, 나름대로 분류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선 사진 자료를 넣어놓는 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물별 자료방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건축가, 미술가, 철학자 등 개인들에 대한 자료들을 모은 방입니다. 또다른 방 2곳은 시대별 자료방입니다. 고대부터 19세기까지 자료방, 그리고 19세기 이후 현대건축까지 자료방 등. 마루는 집필공간 겸 현대건축 자료들 공간입니다. 우선 근대건축 이전 자료들을 모은 방입니다. 카메라도 모두 이방에 놓았더군요.

조금의 빈 틈에도 책장을 넣을만큼 자료는 많았습니다.

각 자료들에는 찾기 쉽도록 종이로 항목을 붙여놓은 모습입니다. 임교수 자료실의 압권은 바로 슬라이드 사진을 모아놓은 방입니다. 물론 모두 임교수가 직접 찍은 필름들입니다. 부피가 나가는 책도 아니라 조그만 슬라이드 사진필름이 도대체 몇 개나 되기에 방까지 따로 만들었냐구요? 자그마치 20만개라고 합니다. 클리어파일처럼 생긴 두꺼운 파일철에 한 쪽당 20개씩 끼워 보관합니다. 자, 한번 보시죠.

보시면 낯익은 생활용품인 방습제 ‘물먹는 하마’가 있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습기흡수용품을 넣은 것은 슬라이드 필름이 습기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엽기적인 것은 이 필름철 한쪽한쪽 사이에 넣기 위해 신문지를 크기를 맞춰 1만쪽을 잘라놓은 점입니다. 습기 빨아들이는데 신문지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데, 임교수가 신문을 주워다 모은 뒤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종이를 잘랐다고 합니다. 정말 자료 관리가 저술가에겐 생명과도 같구나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사진철에는 꼼꼼하게 필름 항목을 적어놓았습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의 이름이 보이네요. ‘English Baroque, Christoper Wren'.

(#크리스토퍼 렌은 영국 바로크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갑니다. 원래는 자연과학자로, 뉴튼이 칭찬할 정도의 대단한 양반이었다는데, 옥스퍼드대 천문학과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놔두고 건축가가 되었답니다. 참 재주도 많은 분이죠? 대표작은 영국 세인트폴 대성당입니다. 이만틈 설명하고서 사진도 안보여드릴 순 없으니 세인트폴 성당 사진 첨부합니다.)

학자들의 일상은 자료와의 전쟁이자 동고동락입니다. 스스로 분류한 자료가 아니면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결국 자기 스스로 자신만의 도서관을 만드는 불가능한 도전을 시도하게 됩니다. 건축이란 분야 속성상 임교수의 도전은 다른 인문학자들보다 훨씬 돈이 듭니다. 왜냐구요? 건축책들은 비싸거든요. 사진들이 들어가면 책도 크구요. 보통 원서가 권당 10만원 가까이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거대한 자료실 속에서 임교수는 읽고 쓰고 자료를 정리합니다. 그의 삶을 보면 글쓰는 팔자가 따로 있다 싶습니다. 아니, 글쓰는 기계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본인도 씨익 웃습니다. “참 미련하게 살지요? 저도 제가 왜 이렇게 사나 싶을 때가 있어요.” 그 결과 28권의 책이 독자들과 건축을 이어주었으니, 보람은 클 것입니다.

임 교수는 방학이면 카메라를 짊어지고 해외로 떠납니다. 취재와 자료수집을 위한 출장인데요, 그 중간중간 사서 모은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머그잔’입니다. 나라별 특색있는 기념품으로 하나씩 모은 것이 부엌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선반 위에도 한줄로 머그잔이 서 있네요. 건축학자라서 그런지 건축물 그림이 들어있는 머그잔들을 모아놓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술가들의 서재가 모두 임석재 교수의 서재 같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학자이면서 책을 쓰는 저술가들의 서재는 이렇게 자료실이 되고 맙니다. 얼마나 많은 자료에 투자하고 관리했느냐에 따라 저술의 양과 질이 바뀌기 때문에 오늘도 글쓰는 학자들은 모으고 또 모읍니다. 그게 저술가의 팔자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모으는 과정 자체가 즐겁기에 모으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죠.

자, 그러면 퀴즈! 책이 이 정도면 한 몇권이나 될까요?

임석재 교수에 대한 기사는 조만간 <18.0> 섹션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구경 잘 하셨습니까? 다음에는 다른 저술가의 서재를 엿보도록 하겠습니다. 명절들 잘 보내세요.

참, 임교수 댁에 있는 책은, '1만권'입니다.

07. 02. 19.

P.S. 4-5년 뒤면 나도 1만권쯤의 장서를 갖게 될 터인데 이를 어이해야 할 것인지, 미리부터 걱정스럽다. '물먹는 하마' 정도는 미리미리 준비해둘 수 있겠건만...

P.S.2. 한편 아래는 지난 2000년 10월말 한겨레의 '인문학 데이트' 연재란에 실렸던 임석재 교수에 대한 소개이다. 저서가 그간에 훨씬 늘어난 것은 물론이다. 작년에 나온 책으론 <서울, 골목길 풍경>(북하우스, 2006)과 '임석재 서양건축사 3'에 해당하는 <하늘과 땅>(북하우스, 2006)이 있다.

임석재는 누구?

△1961년 서울 출생

△1980~1987년:서울대 건축학과 및 같은 대학원

△1989:미국 미시간대 건축학 석사.

△1992: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건축학 박사

△1993년:원도시 근무

△1994년~현재: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저서:<추상과 감흥:비엔나 아르누보 건축>1·2(문예마당, 1995), <장식과 구조미학:불어권 아르누보 건축>1·2(발언, 1997), <형태주의 건축 운동:형태와 조형의지>(시공사, 1999), <생산성과 시지각:뉴 브루털리즘과 대중사회>(시공사, 2000), <한국 현대 건축 비평>(예경, 1998),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대원사, 1999), <물질문명과 고전의 역할:임석재 교수의 현대 건축 이야기>(북하우스, 2000), <한국적 추상 논의>(북하우스, 2000) 등 다수.

임석재가 말하는 임석재

철들면서 시작된 사춘기 때 나의 관심사는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사람들 사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집이라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조형 환경은 끝없는 호기심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서울의 오래된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다른 한 가지는 시(詩)였다. 한국 현대시의 고전들을 암송하고 스스로 시작을 해보기도 하였다.

이 두 가지 관심이 합쳐져 나는 지금 건축 역사와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의 길을 가고 있다. 아직은 사춘기 때의 감성과 열정이 유지되고 있다고 자평하는 편이다. 나는 사람들 사는 방식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사람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일년 내내 대부분의 시간을 책 읽고 책 쓰는 데 보낸다. 건축에 요구되는 실용성과 현실성은 골목길 탐방과 각종 매체를 통해서 얻고 있다. 요즘은 그 동안 공부해온 내용을 응용할 설계 작업도 시작하여 1~2년 후면 처녀작을 선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연구는 20세기 서양 근현대 건축사, 한국 현대 건축사, 서양 건축사의 세 분야로 나뉜다. 각 분야에 대해 방대한 양의 저서 시리즈를 기획하여 매일 열심히 공부하며 집필하고 있다. 이미 상당수가 출판되었다. 그러나 이런 연구의 최종 목표는 나만의 건축 사상을 세우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지금도 학생들 사이에 끼여 철학 강의를 듣는다. 혼탁한 세상에 한 줄기 빛을 던질 수 있다면 더 이상 원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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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동아시아 저항사상의 계보

이번주 경향신문의 북리뷰를 읽다가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그린비, 2007)에 눈길이 머물렀다. 출판관계자를 통해서 이 책이 나올 거라는 이야기는 진작부터 듣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동아시아 사상'은커녕 일본 근대사상에도 눈이 밝지 못하다. 마루야마 등의 이름을 일본의 근대사상가로 주워섬기는 것이니 아직 초급의 초식밖에는 갖고 있지 못하다고 해야겠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과문한 것도 아니어서 국내 출간된 다케우치의 책은 <일본과 아시아>(소명출판, 2004), 그리고 <루쉰>(문학과지성사, 2003)이 전부인 듯싶다(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는 다케우치는 루쉰 연구자 다케우치였다). 전자는 '당신이 없는 사이에' 나온 책이어서 출간 사실도 이번에 알았고 <루쉰>은 내가 산 책인 듯도 싶지만 기억의 공백 때문인지 감이 없다. 여하튼 '다케우치 유시미라는 물음' 자체가 어떤 내용을 갖는 것인지는 리뷰나 읽으면서 알게 됐다. 한데, 경향신문의 리뷰는 기본사항들을 전제하고 있으면서도 '연이은 의문부호'들을 나열하고 있기에 좀 불친절하다. 지난주 서울시문의 리뷰를 먼저 읽어봐야 문맥이 잡힌다. '동아시아 저항사상의 계보'라는 문맥. 

 

서울신문(07. 02. 10)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지난해 국내에서 ‘근대 논쟁’ ‘해방전후사 논쟁’이 뜨겁게 불어닥치는 등 요즘 동아시아에서는 ‘탈근대’가 화두이다. 침략, 이식의 형태로 유입된 근대는 아시아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사상적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진보주의와 동양의 민족주의를 모두 넘어서는 ‘근대’를 사유한 일본의 비평가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1910∼1977)의 사상은 우리에게도 유의미하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유럽모델’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한 일본의 근대를 강력히 비판한 사상가로 유명하다.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근대화를 이루고, 자신을 유럽과 동일시하면서 근대화의 과정을 겪은 일본의 근대는 기본적으로 ‘저항’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일본은 어떤 저항이나 반성도 없는 패전을 경험했다는 게 다케우치의 생각이다. 일본의 패전 당시 중국에 있었던 다케우치는 일본군의 무저항 상태를 이렇게 묘사했다.“일제히 통곡했다. 그리곤 잠들어 버렸다. 다음날 눈을 뜨고 나서 그들은 일제히 귀국준비를 위해 몸단장을 했다.”



도쿄제국대학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한 다케우치는 루신(魯迅·1881∼1936) 연구에 한평생을 바친 루쉰 전문가이다. 최초의 저작이 1943년 발간한 ‘루쉰’이었고,65년 평론가 폐업을 선언한 이후 죽을 때까지 루쉰의 글을 번역하는 일에 전념했다. 평생 루쉰을 사상의 ‘참조점’으로 여겼던 것이다. 이는 당대 일본내의 중국 및 중국문학 연구가 한학 중심이었던 것에 비춰볼 때 엄청난 차이점이었다.

이런 그가 루쉰을 통해 길어낸 사상은 ‘쩡자’ 다.‘쩡자’는 ‘저항’이라는 말로 옮길 수 있지만 ‘자기임과 자기이외임을 모두 거부하는’ 이중의 거부로 보인다.“아시아의 사상 자원은 겉으로 보기에 유럽에 대항하는 모습을 취하겠지만 반드시 ‘반유럽적’이지도 않다.”라는 다케우치의 말은 바로 이 ‘쩡자’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한다.

중국의 쑨거(孫歌·52)는 10년 이상 이런 다케우치의 사상에 매달렸다.‘루쉰-다케우치 요시미-쑨거’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저항’사상의 계보가 엮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재작년 일본어와 중국어로 펴낸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쑨거 지음, 윤여일 옮김, 그린비 펴냄)은 다케우치 사상, 루쉰 사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듯하다.(박홍환 기자)

경향신문(07. 02. 17) ‘타자’로 자기해체, ‘주체’로 자기재건

다케우치 요시미를 대면한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다케우치는 끊임없이 신원 증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소속 기관이 발부한 증명서를 가지고 가도, 관공서가 인증한 등본 서류를 제출해도, 다케우치의 반응은 싸늘하다. 쓰라린 비웃음만이 되돌아올 뿐이다. 무언의 눈빛으로 다케우치는 계속 추궁한다. 바깥에서 ‘주어진 것’이 어찌 너의 주체성을 보증할 수 있느냐. 어떤 외적 근거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온전히 네 자신만으로 너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가. 여기서 실질적인 증명 가능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물음을 자신의 물음으로 끌어안을 때 당면하게 되는 일련의 또다른 질문들. 지금껏 자명성과 안정성을 자신에게 부여해 준 근거들을 향하는 연이은 의문 부호.

다케우치가 평생 씨름하며 고투한 ‘주체’의 문제는 ‘주체와 세계’ 혹은 ‘주체와 타자’의 문제이기도 하였다. 객관성-관찰 가능성 등의 이름으로 주체와 대상 혹은 타자 사이에 거리를 확보하면, 주체에게는 안정적 근거가 마련된다. 이 안정성이 주체의 주체성과 활동성을 보장해 주지만, 그 대가로 주체는 세계-대상에서 이탈하고 분리된다. 세계-속에 존재하는 주체가 세계의 전체상을 가질 수는 없다. 지구를 보려면 지구 바깥에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신은 이미 세계의 전체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주체가 인지 가능한 방식으로 추상화하고 조작한 결과일 터이다. 통계 수치나 계량적 측정이 대표적인 수단이겠다. 주가 지수가 경제 상황의 전체상을 대신하고, 통계 수치가 현실의 움직임에 대한 지식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주체의 자리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단적으로 이른바 국가의 정책이 시행되는 자리는 늘 여기이다. 국민의 대상화가 불가피하므로, 어떤 국가-정부도 국민의 의지와 수렴될 수는 없다.

다케우치 식으로 추궁하자면, 국민을 대표할 수 없다는 뼈아픈 자각을 전제로 할 때, 국가의 정책은 어떤 의의가 있고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다케우치는 말한다. “지식은 그것을 부정하는 계기 없이는 지식으로 살아갈 수 없다.” 인문학이 정말 위기라면, 정말 근본적인 이유는 인문학에 자기 부정의 계기가 없기 때문이다.

주체가 세계를 관찰하지 않고 대상-타자와 더불어 세계 속에 내재해 있다면, 세계가 움직이는 한 주체는 늘 유동상태에 놓인다. 여기서 안정적인 실체성은 존립하기 어렵다. 제도화된 개념이나 객관적인 지식도 분명 존재하고 또 필요하다. 그렇지만 주체-세계의 유동 속에서 이러한 실체성은 늘 부정될 운명을 자각해야만 한다. 그래야 배반당하지 않는다.

주체의 부단한 자기 갱신은 타자와의 관계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타자라는 매개를 통해 자기 해체를 진행하면서도 타자를 따르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를 재건하는 길. 이 길은 바로 “타자를 타자로서의 자족성에서 해방하는 동시에, 자기를 자족적 배타성에서 자유롭게 만드는 부단한 과정이다.” 다케우치를 대면하는 일이 고통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잠 들지 않고 깨어 있다는 것은 고통스럽다. 달콤한 유혹과 자기 변명은 이미 수없이 유포되어 있지 않은가.

지난 20년 간 개혁 개방 시기 중국의 내적 혼란과 지식계의 변동을 몸으로 겪으면서, 바로 이 문제를 자신의 신체감각으로 예민하게 파악한 지식인이 이 책의 저자이다. 저자에 따르면 다케우치는 평가를 기다리는 역사상의 인물이라기보다는 당대 중국 및 아시아 지식인으로서 저자가 직면한 문제들을 대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질문법’에 가깝다.

다케우치의 명성은 무척 오래지만, 아무도 그 일을 선뜻 맡겠다고 나서지는 않았다. 당연히 다케우치 자신이 아무에게나 말을 걸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장 중문학자인 서광덕, 백지운 두 분에 이어, 젊은 패기의 윤여일씨가 고된 일을 자임하고 나섰다. 다케우치 요시미가 기억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제목처럼, “다케우치 요시미” 자체를 “물음”으로 전환하는 능력은 너무도 절실하다. 다케우치 요시미에게 루쉰이 그러했고, 저자 쑨거에게 다케우치 요시미가 그러했듯이.(류준필|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07. 02. 18.

P.S. 국역본에는 중국어판과 일본어판, 그리고 한국어판 저자 서문이 모두 붙어 있다. 그건 한국어판이 맨마지막에 나왔다는 뜻도 된다. 이미지는 일본어판(2005)의 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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