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한미 FTA가 국내 제약산업에 미치는 영향

한미 FTA가 국내 제약산업에 미치는 영향

 

 

한미 FTA의 추진 배경 
 
지난 2월 우리나라와 미국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 이하 FTA)의 본격적 개시를 선언하였다. 2008년 협정 발효를 목표로 진행되는 이번 FTA 협상은 아시아에서는 우리 나라가 최초로 참여하고 있으며, 한미 간 무역 자유화를 통해 국내 경제 시스템의 선진화뿐 아니라 대외 경쟁력 제고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선 FTA의 핵심은 관세를 철폐하는 데 있으므로, 수출국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주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FTA를 통해 상대국에 대한 수출 증가 및 시장 확대를 기대할 수 있으며, FTA를 맺지 않은 다른 수출국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수입 측면을 고려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현재 국내에서 FTA와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협상국보다 취약한 경쟁력을 가진 산업의 경우 관세 폐지에 의한 혜택보다는 각종 제도와 관련된 비관세 분야 장벽 철폐에 의한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하면서, 외국 기업에 의해 국내 시장이 단시간 내 장악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미 스크린쿼터제 축소, 쇠고기 수입 재개 등 한미 FTA 4대 쟁점 현안 중 일부 과제는 협상이 타결되는 등 어느 정도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으나, 의약품 분야는 아직 그 협상 내용이 구체화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관련 업계에서도 명확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 못한 상태라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다. 
  
한미 FTA로 예상되는 의약품 관련 제도 변화 
 
의약품 분야와 관련하여 아직 뚜렷한 협상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한미 FTA 협상을 통해 미국 측이 주장하고자 하는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약품 보험 급여 제도의 변화를 통해 자국 기업의 고가 오리지널 의약품 처방을 증대시키고,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권을 강화함으로써 제네릭 의약품의 출시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다국적 기업들의 유통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 변화를 촉구하는 등, 결과적으로 자국 기업의 국내 시장 침투가 용이하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질 것으로 보인다. 
 
● 약가 관련 제도 개정 
 
우선 한미 FTA를 계기로 미국 측은 현재 신약 약가 산정 기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전망이다. 현재 오리지널 제품의 약가 산정은 선진 7개국의 평균 가격과 유사 효능 제품의 가격을 비교하여 낮은 쪽을 채택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신약 가격이 선진 7개국 가격의 약 50%대로 낮게 책정되어 있으며, 약가를 높게 받을 수 있는 혁신적 신약의 범위 자체가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약가 정책에 대해 다국적 제약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해 온 것이 사실이어서, 이번 FTA 협상을 통해 원래 기준에 맞게 약가를 바로잡아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우리 정부가 심평원 등을 통해 그 동안 추진해 왔던 약가 인하를 위한 각종 제도들(참조가격제, 포지티브 약가 제도 등 : <BOX> 기사 참조)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요청할 것으로 보여 약가 정책 전반의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은 현재 오리지널 제품의 80%까지 약가를 보장하고 있는 국내 제네릭 의약품 가격 책정 제도에 대해서도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어, 이와 관련된 부분도 이번 FTA에서 주요 의제로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 의약품 특허권 강화 
 
약가에 대한 문제 제기와 더불어 한미 FTA 의약품 분야 협상에서 주로 다루어질 사안 중 하나로 예측되는 것은 의약품 특허 강화에 대한 것이다. FTA 협상에서 다루게 될 의약품 특허 강화 의제로는 지금까지 자료 독점권(Data Exclusivity), 식약청-특허청 연계, 특허 기간 연장, 제네릭 의약품 개발 예외(Bolar Exception) 불인정 등의 4가지가 알려지고 있다. 그 중 자료 독점권의 경우는 신약의 판매 허가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이미 제출된 자료에 대한 불공정한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국내 기업이 제네릭 제품을 허가받기 위해서는 이미 제출된 유효성 및 안전성 자료를 활용할 수 없으며, 자체적으로 관련 자료를 다시 준비해 제출하도록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미국은 칠레, 싱가포르, 호주 등과의 FTA 협상에서 자료 독점권의 기간을 허가일로부터 5년까지 보장하는 조항을 포함시킨 바 있다. 특허 기간 연장은 의약품 허가를 받기 위한 활성, 안전성 시험에 장기간이 소요될 경우, 발생된 지연 기간을 특허 기간에 포함시켜 3~5년의 기간을 연장시키는 것으로, 이 역시 미국이 싱가포르나 호주와의 FTA 체결 당시 요구했던 규정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FTA를 통해 오리지널 제품의 권리를 보다 강화하는 동시에 제네릭 의약품의 허가에는 엄격한 규정을 추가하도록 할 것으로 보여, 향후 국내 기업들이 제네릭 의약품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좀더 철저한 대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 FTA가 몰고 올 파장 
 
한미 FTA 협상을 통해 이와 같은 미국 측의 요구가 대부분 관철된다고 가정한다면, 그 동안 제네릭 의약품 개발을 주로 해 온 국내 제약 기업들의 입지는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들의 고가 정책으로 의약품 비용 부담이 증가하여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초래할 수 있고, 경쟁력이 취약한 국내 제약 기업들에게 대체로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미국 측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존의 의약품 제도가 가진 허점을 개선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FTA 협상에 의한 제약산업 전반의 변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다국적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 강화 
 
의약품 시장조사 전문 기관인 IMS Health Korea에 의하면, 2005년 국내 의약품 시장은 전년대비 15% 가량 성장하여 7조 9천억 원 규모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 중 전문의약품 시장이 77%를 차지하고 있다. 전세계 제약 시장이 연평균 8% 성장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이와 같은 성장률은 괄목할 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내 의약 시장 내 다국적 제약 기업의 점유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전문의약품 상위 품목 또한 다국적 제약사의 제품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표 > 참조). 다국적 기업들의 상승세는 최근 국내 제네릭 의약품들의 선전으로 잠시 주춤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한미 FTA가 체결된다면 유리한 제도 변화로 인해 다국적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 강화는 다시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영세한 국내 기업들의 생존 기반 약화 
 
다국적 기업들의 경우와 달리 국내 제약 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FTA로 인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기업들은 극소수 상위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제네릭 개발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제네릭 의약품의 개발 환경이 까다로워질 경우 기업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제품 출시 지연 및 수익 구조 악화 등 일정 부분 타격을 입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관세 철폐에 따른 수출 증가 효과 또한 의약품 분야에서는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제약 기업들의 기술 수준이 과거에 비해 향상되고 있다고는 하나, 실제 우리나라에서 미국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생산 기준을 확보한 기업이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미국, 유럽 등 선진 시장 진출을 통한 수출 확대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FTA에 의한 긍정적 효과에도 주목해야 
 
이와 같이 앞으로 본격 전개될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 측이 관세 장벽 보다는 비관세 장벽, 지적 재산권의 강화나 신약 가격 유지 등의 분야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제약 업계는 매우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미 FTA의 협상 의제들을 달리 해석해 보면, 이번 FTA는 장기적으로 볼 때 국내 제약산업의 근본적 체질을 강화하는 데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우선 미국 측의 요구는 의약품 관련 제도의 투명성 개선을 가장 강조하는 만큼, 과거 제약사와 병·의원 간 이루어진 불공정한 거래 관행 등 국내 제약산업의 오랜 병폐를 개선하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간 국내 제약업체들은 제네릭 개발이 중심이 되다 보니, 다분히 영업력 확대 위주의 정책에만 주력했고, 선진 기업과 겨룰 수 있는 제품 개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향후에는 국내 의약 시장에서도 영업력뿐 아니라 R&D 역량 등을 두루 갖추고 확실한 중장기적 성장 모델을 보유한 대형 기업들만이 다국적 기업들에 맞서 생존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과거 제약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이 불분명한 영세 업체들이 난무하던 국내 제약산업 내 구조조정을 촉발함으로써, 본격적인 경쟁 환경을 조성하고 의약 시장의 질적 성장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미 FTA는 긍정적인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성공적인 협상을 위한 대응 필요 
 
한미 FTA의 다른 협상 분야에 비해 의약품 분야는 구체화된 세부 내용뿐 아니라 그 중요성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실제로 한미 FTA 협상에 대해서는 이미 작년부터 수 차례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제약업계나 관련 기관들은 이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비교적 소홀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미국 측은 자국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입장에서 기존 제도의 총체적 개혁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FTA 협상 과정에서 빚어지는 혼란을 최소화하고, 국내 기업들이 보다 준비된 태세로 FTA에 의한 각종 변화에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협상 관계자 및 관련 업계는 만반의 준비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선 정부는 향후 FTA 협상을 진행해 나가는 데 있어 냉철한 경제 원리를 바탕으로 보다 설득력 있게 협상에 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의약 시장은 과거 미국의 FTA 협상 파트너였던 호주나 싱가포르, 바레인, 모로코 등과는 달리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제약산업 자체가 활발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이번 한미 FTA 협상은 맹목적으로 미국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타 국가와의 협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래도 현재 국내 제약 산업이 절대적으로 협상 상대국인 미국에 비해 취약한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 정부로서는 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 마련에 서둘러야 할 것이다. 
 
업계에서는 FTA의 중요성을 충분히 감안하여 제약협회 등을 구심점으로 국내 제약업계의 실질적 요구 사안을 수렴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미 주요 기업들을 중심으로 대책위원회 구성 등이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통상 전문 인력의 부족 등으로 원활한 정보 수집 및 공유가 어려운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제약 기업들이 R&D 역량 강화 등을 통해 다국적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기반 구축에 힘써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새로운 환경 변화의 시점을 맞아 부정적 측면만을 보고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일 것이 아니라, 보다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국내 제네릭 전문 기업들이 해외에서 인증하는 GMP 시설을 갖추고 경쟁력을 키워 나간다면 이번 FTA 체결은 해외 시장 공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미 세계 제네릭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인도의 Ranbaxy와 같은 업체들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였다. 국내 기업들도 이와 같은 사례를 면밀히 벤치마킹하여 이번 FTA 협상 자체를 충분히 활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 20여 년 전 신물질 특허 제도의 도입 당시에도 국내 제약산업은 준비 미흡으로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후 제약 기업들의 체질 개선 노력으로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수 있었다. 한미 FTA가 단기적으로 국내 제약산업의 위축을 불러올 지는 모르지만 의약 시장전반의 성장세를 가로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관련 업계는 이번 FTA를 국내 제약산업이 세계 시장으로 도약해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고 근본적인 체질 강화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끝> 

 

 

출처 : LG 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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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말들의 풍경] <18> 텔레비젼 토론(고종석)

2006. 7. 5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607/h2006070418135285150.htm

 

[말들의 풍경] <18> 텔레비젼 토론
-문화상품으로서의 정치… 백분토론 유시민·손석희씨 등 스타 탄생의 산실로
토론자들은 상대방보다 시청자의 눈·귀를 의식해
논리보다 재치 앞세운 비디오형 정치인 각광받게


한국에서 텔레비전 토론이 힘을 얻은 것은 제5공화국 군부파쇼 체제를 무너뜨린 1987년 6월항쟁 뒤다. 제5공화국은 컬러텔레비전 시대를 열어 시청자들의 색채감각을 키웠지만, ‘땡전 뉴스’라는 말로 상징되는 그 시절 텔레비전의 정치 시사 담론은 편파적 정권 홍보로 일관하며 시민들의 정치감각을 뭉그러뜨리는 데 골몰했다.

그 시절에도 토론 프로그램 비슷한 것이 있기는 했다. 제5공화국 초기에는 KBS의 ‘90분 토론’ ‘8시에 만납시다’와 MBC의 ‘이야기 좀 합시다’ 따위가 전파를 탔고, 80년대 중반에는 KBS의 ‘금요 토론’ ‘시청자 토론’과 MBC의 ‘일요 토론’ ‘일요 광장’ 따위가 편성됐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출연자들 사이의 토론에 무게중심을 두었다기보다 비슷한 견해를 지닌 사람들끼리의 좌담을 통해 시청자를 ‘계도’한다는 취지가 컸다.

기실 이런 형식의 토론 프로그램은 텔레비전이 대중의 일상생활에 파고들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있었다. KBS의 ‘TV 응접실’(1962)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1965), TBC(동양방송. 삼성계열의 민영 방송사로 1980년 언론통폐합 때 KBS에 흡수됐다)의 ‘동서남북’(1967)과 ‘TBC 공개토론회’(1969), MBC의 ‘젊은 대화’(1969) 따위가 대표적이다. 특히 TBC의 ‘동서남북’은 최초의 본격 텔레비전 토론프로그램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시절의 이 프로그램들 역시 80년대 토론 프로그램들처럼 당대 정치체제의 폭력성에 주눅들 수밖에 없었고, 정권의 눈치를 세심히 살피는 방송사 쪽의 잦은 개편으로 그 수명도 길지 못했다. 1987년 시민항쟁이 정치적 민주주의의 물살을 흘려보내기 시작한 뒤에야, 텔레비전은 토론다운 토론의 마당이 되기 시작했다.

그 선편을 쥔 것은 KBS의 ‘심야토론’이다. 1987년 10월에 돛을 단 ‘심야토론’은 그 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텔레비전 토론프로그램의 본보기 노릇을 하며 여론의 바다를 주항해 오늘날 최장수 토론 프로그램이 되었다. 초창기에는 사회자가 노골적으로 한 쪽 의견을 편들어 시청자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으나, 서로 다른 정치적 사회적 견해 사이의 대화를 그럴 듯하게 이끌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심야토론’의 의의는 크다.

‘심야토론’이 풀무질한 텔레비전 토론프로그램 활성화 바람은 다른 방송사들로도 펴져 나가, 오늘날엔 지상파 방송 모두가 두세 개씩 텔레비전 토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MBC의 ‘백분토론’은 1999년에 시작됐다.

‘백분토론’은 손석희라는 이름과 떼어놓을 수 없다. 작고한 경제학자 정운영씨와 지금 복지행정 수장으로 있는 유시민씨가 손석희씨 이전에 이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긴 했지만, ‘백분토론’에 다른 방송사들의 비슷한 프로그램과 확연히 다른 경쟁력을 공급한 것은 손석희씨다. 전문 아나운서 출신답게 말씨도 스타일도 깔끔한 그는 공정한 진행자로서 토론 분위기의 이완을 조절하며 그 흐름을 장악함으로써,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토론 사회자가 되었다.

‘백분토론’과 손석희씨의 영향은 상호적이었다. ‘백분토론’을 가장 영향력 있는 토론 프로그램으로 만든 것은 손석희씨지만, 손석희씨를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만든 것도 (그가 MBC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아침 프로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더불어) ‘백분토론’이라 할 수 있다.

올해 3월 성신여대 교수로 자리를 옮긴 손석희씨는 지금도 ‘백분토론’과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에 의해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손석희씨의 예에서 보듯, 텔레비전 토론프로그램은 스타를 낳는 분만실이 될 수 있다. 토론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단골 손님으로 거기 초대되는 이들은 시청자들에게 연예인 못지않게 친숙해질 기회를 얻게 돼 ‘명망성’이라는 무형 자산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토론프로그램 덕분에 태어난 또 다른 스타는 유시민씨다. 그는 손석희씨 이전의 ‘백분토론’ 진행자로도 꽤 훌륭했지만, 토론자로서 훨씬 더 유능했다.

유시민씨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논리와 박식과 능변으로 상대 토론자들을 제압하며 ‘똑똑한 사람’의 이미지를 얻었고, 스튜디오에서의 뜨거운 논쟁을 효과적인 정치 마당으로 활용함으로써 수많은 팬과 안티팬을 얻었다. 글싸움에서 시사평론가 진중권씨에게 이길 사람이 없다면, 말싸움에서 유시민씨에게 이길 사람은 없어 보인다.

(말싸움에서 유시민씨를 눌렀다고 판정받은 이로 국회의원 전여옥씨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논리의 타래를 팽개친 채 막가는 ‘기싸움’ 얘기이므로 ‘토론’과는 무관하다.) 본디 글 잘 쓰는 논객이었던 유시민씨는 사람을 압도하는 말솜씨를 보여줌으로써, 글 잘 쓰는 사람은 어눌하다는 속설을 불식시켰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젠 토론에 능하지 않으면 정치인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유시민씨가 짧은 기간에 정치적 자산을 크게 불릴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토론에 능하다는 사실과 꽤 관련이 있을 테다. 텔레비전 토론이 정치에 가장 깊이 간여하는 것은 대통령 선거 때다.

대통령 후보 사이의 토론이 시작된 것은 1997년 제15대 대선 때부터다. 그 전에도 텔레비전 토론에 대한 여론의 요구는 있었으나, 우세한 후보가 이를 꺼려 당사자들끼리의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텔레비전 토론은 정치에 깊숙이 끼여들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부터 본선에 이르기까지, 노무현 후보는 논리와 달변에 더해 신뢰감 주는 말투로 자신의 지적 능력과 도덕성을 과시하고 국가 비전을 제시했다.

텔레비전 토론의 융성은 정치인들을 비디오형 인간으로 만들었다. 토론에서는 논리의 힘도 중요하지만, 난처한 질문을 빠져나갈 수 있는 재치와 순발력, 시청자들을 매혹할 수 있는 감성적 소구 능력, 게다가 외모와 표정과 제스처 따위가 그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뛰어난 정치인의 능력은 뛰어난 연예인의 능력과 많은 부분 겹치게 되었다. 그것은 정치가 문화상품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은 정책 결정과 수행이라는 본업을 잊은 채 늘 미디어에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시청률 경쟁이 미디어의 논리라면, 미디어에 대한 경쟁이 정치의 논리가 돼 버린 셈이다.

말 잘하는 사람은 미덥지 않은 사람이라는 전통적 편견은 이제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말을 잘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토론하는 능력은 한 사람의 총체적 정신 능력의 큰 부분을 보여주므로, 이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텔레비전 시청자를 포함한 대중 앞에서의 토론이 근본적으로 ‘연극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토론자들은 토론 상대자에게 얘기한다기보다 시청자에게 얘기하는 것이다.

토론 언어는 내면의 언어가 아니라 외면의 언어다. 아니 내면을 가장한 외면의 언어다.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장관은 그 점에서 가장 뛰어난 토론자였다. 그들은 치밀한 논리에다 간절한 진정성의 분위기를 더해 열광적 지지자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자신들의 언어가 일종의 연극대사였다는 것을 오래도록 숨기지는 못했다. 정치는 그 시작부터 연극의 성격을 띠었지만, 오늘날처럼 그 연극적 성격이 짙어지는 것이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 도정일 최재천의 '대담'
입말과 글말 사이

영문학자 도정일씨와 생물학자 최재천씨의 대담을 수록한 ‘대담’(2005, 휴머니스트)은 오늘 우리가 살핀 텔레비전 토론과는 여러 모로 다르다. 우선 이 책은, 그 부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가 드러내듯, 좁은 의미의 정치 담론이 아니라 두 문화 사이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름이 알려진 ‘교양인’ 사이의 토론답게, 견해 차이의 ‘격렬함’도 비교적 우아한 언어의 면사포로 가려져 있다.

지면 대담의 언어는 텔레비전 대담의 언어와 다를 수밖에 없다. 녹취된 언어가 고스란히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윤문과 편집을 거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면 대담은 텔레비전 토론의 입말과 서신 토론의 글말 사이 어디엔가쯤에 자리잡게 된다. 도정일씨와 최재천씨의 ‘대담’도 그렇다. 그들의 언어는 텔레비전 토론 언어보다는 화장을 한 언어지만, 서신 토론의 언어에 비하면 맨살에 가까운 언어다.

그런데도 ‘대담’에서 더러 텔레비전 토론 언어의 ‘불완전성’이 드러나는 게 흥미롭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동문서답’이랄까 ‘딴소리’랄까 하는 특징이다. 상대방의 물음이나 이의 제기에 곧이곧대로 답변하는 것이 아니라 딴청을 부리는 것이다. 특히 연장자인 도정일씨 쪽이 그렇다.

그럴 때 토론 상대자나 토론 진행자가 집요하게 물고늘어질 만도 하건만, 대개는 다음 주제로 넘어가 버린다. 대담자에 대한 배려이기는 하겠으나, 독자에 대한 배려는 아니다. 또 대담공간이 공적 자리는 아니었을지라도 출판을 염두에 둔 대담이므로, 이들의 언어는 상대방을 향하는 동시에 불특정 다수 독자를 향하고 있다. 텔레비전 토론 언어가 상대방 못지않게 시청자를 향하듯 말이다. 이 책의 대담자들은 겸손과 허세를 뒤섞으며, 드물게는 자가당착을 무릅쓰며, 일종의 연극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대담’은 젊은이들이 읽어둘 만한, 좋은 책이다. 대담자들이 대화의 결론으로 내놓은 ‘공생인’(共生人)이나 ‘두터운 세계’ 같은 말은 모든 지혜의 언어가 그렇듯 진부하지만, 거기 이르기 위해 그들이 네 해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며 들여다본 문화와 유전자의 세계는 동물이면서도 끝내는 동물이 아닌 인간의 자리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두 대담자가 상대 영역에 대해 만만찮은 교양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캐스팅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교양이나 전문성은 동아시아 전통 속에 있다기보다 유럽 전통 속에 있다. 아쉬우면서도 이해할 만하다. 그 사실 자체가 지금 단계 한국 문화의 좌표를 드러내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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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말들의 풍경] <19>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고종석)

2006. 7. 12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607/h2006071117464985150.htm

 

[말들의 풍경] <19>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가시내… 서리서리… 내 영혼 적시는 울림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은 세대와 계급에 따라, 더 나아가서 개인에 따라 다르다. 각자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꼽아보자.

김수영 시인

누구에게나 모국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다. 그것은 아름다움이 그 심판관의 편견에 깊숙이 연루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선 먼저 깊이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라서 외국어로 배운 언어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는 있겠으나, 그 아름다움에는 문화적 허영이라는 불순물이 섞여 있기 쉽다. 프랑스 바깥에서 프랑스 문화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제 몸뚱어리에도 이물감을 주는 프랑스어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꼽는 것 따위가 그 예다. 마흔일곱 해 동안 한국어를 써온 한 남자에게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 낱말 열 개를 벌여놓는다.

하나, 가시내. 컴퓨터 모니터 속 활자 ‘가시내’에는 붉은 밑금이 그어져 있다. 그것은 이 낱말이 규범 한국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말은 한국어 사전에 올라있지 않다. 그것이 표준어 ‘계집애’의 서남 방언이기 때문이다. ‘가시내’라는 말에 깊은 울림을 입힌 이로 서남 출신의 시인 서정주가 있다.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작구 다라나고/ 울타리는 막우 자빠트려 노코/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입마춤’)이나, “눈물이 나서 눈물이 나서/ 머리깜어 느리여도 능금만 먹?杵底? 어쩌나… 하늬바람 울타리한 달밤에/ 한 집웅 박아지꽃 허이여케 피었네”(‘가시내’) 같은 시행에서, 가시내는 순애와 애욕을 동시에 체현하고 있다. 사랑과 관련된 정서적 소구력의 크기에서, 표준어 ‘계집애’는 도저히 ‘가시내’에 다다를 수 없다.

둘, 서리서리. 부사 ‘서리서리’는 동사 ‘서리다’에서 나왔다. 서린다는 것은 (국수나 새끼 따위를) 헝클어지지 않게 빙빙 둘러서 포개 감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서리서리’는 포개어 감기는 모양과 관련 있는 부사다. 국수 뭉치를 세는 단위 ‘사리’가 ‘서리서리’와 동원어(同源語)임은 물론이다. ‘서리서리’는 사랑의 부사다. 이 낱말을 사랑의 부사로 만든 사람은 황진이라는 여자다. 이 여자의 유명한 시조 한 수는 이렇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애인과 떨어져 있는 황진이에게 겨울 밤은 한없이 길다. 그런데 그 밤은 애인과 함께라면 너무나 빨리 새버릴 밤이다. 시간의 빠르기는 각자의 심리 상태에 달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 시인은 이 밤을 여투어두기로 한다. 그녀는 밤을 한 토막 잘라내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어놓기로 한다. 애인이 온 날 밤에 굽이굽이 펴기 위해서. 황진이의 놀라운 상상력은 시간을 공간으로, 물질로 바꿔놓고 있다.

셋, 그리움. 그리움은 결핍의 정서적 효과다. 프랑스어 화자들은 “나는 네가 그리워”를 “너는 내게 결핍돼 있어”(Tu me manques)라고 표현한다. 모든 사랑의 시는 그리움의 시다. 사랑은 결핍과 부재의 상태에서 가장 격렬하기 때문이다.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김영랑의 ‘내 마음을 아실 이’)나 “‘그립다’ 생각하면/ ‘그립다’ 생각하는 아지랑이”(서정주의 ‘아지랑이’) 같은 시행에서 그리움은 사사로운 감정이지만,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이성부의 ‘벼’)이나 “그러나 불현듯, 어느 날 갑자기/ 미친 듯이 내 가슴에 불을 지르는/ 그리움은 있다”(김정환의 ‘지울 수 없는 노래’) 같은 시행에서 그리움은 정치적 사랑과 이어져 있다. 그 둘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둘 다 빈 데를 채우려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그 마음의 움직임을 좀더 객관적으로는 ‘기다림’이라 부른다.

넷, 저절로. ‘저절로’는 인텔리전트빌딩이나 하이테크파크의 작동 원리다. 그것은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또는 노동에서 배제하는 새로운 사회의 부사다. 다시 말해 ‘저절로’의 공간은 ‘인간이 거세된 인공’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자연의 공간이기도 하다.

16세기 문신 김인후(金麟厚)는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山) 절로 수(水)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라 노래한 바 있다. ‘저절로’는 애씀이나 집착을 넘어선, 마음과 몸의 가장 높은 단계이기도 하다. 인위와 자연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 ‘저절로’의 매력 또는 마력이다.

다섯, 설레다. 설렘은 마음의 나풀거림이다. 그것은 정서적 정신적 미숙의 증상일 수도 있다. 부동심(不動心)은 동서고금의 많은 현인들이 다다르려 애쓴 이상적 마음상태였다. 그러나 설렘이 없다면 생은 얼마나 권태로울 것인가. 소풍 전날의, 정인(情人)을 기다리는 찻집에서의, 설날 해돋이 직전의 설렘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은 생의 정당한 사치다. 그것은 생의 밋밋함을 눅이는 와사비다.

여섯, 짠하다. 내가 늘 펼치는 한국어 사전에는 ‘짠하다’가 “지난 일이 뉘우쳐져 못내 마음이 언짢고 아프다”로 풀이돼 있다. 내가 굳이 사전을 펼쳐본 것은 컴퓨터 모니터 속 활자 ‘짠하다’에 붉은 밑금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히 밑금이 그어지리라 지레짐작했다. 이 말을 서남 방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전의 설명이 표준어 ‘짠하다’의 올바른 정의일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아는 ‘짠하다’는 사전의 정의와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그 뉘앙스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어 화자 가운데서도 서남 지방 사람들일 것이다. 서남 사람들이 잘 쓰는 ‘짠하다’는 표준어 ‘안쓰럽다’와 뜻이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고스란히 겹치지는 않는 것 같다. ‘짠하다’에는 안쓰러움과 애틋함이 버무려져 있다. ‘짠하다’는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연민의 형용사다.

일곱, 아내. ‘아내’라는 말이 내게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내가 남자이기 때문일 테다. 요즘엔 젊은 세대고 나이든 세대고 할 것 없이 ‘아내’ 대신 ‘와이프’라는 말을 즐겨 쓰는 듯하다. 힘센 언어에서 차용된 외래어는 그 비릿한 사용 맥락에도 불구하고 우아하게 들리게 마련이지만, 이 ‘와이프’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국어 속에 끼여든 ‘와이프’는 그 본적지에서와 달리 천박하게 들린다. 나만 그런가?

여덟, 가을. 지방에 따라 ‘가을’이라는 말이 ‘가을걷이’ 곧 ‘추수’의 뜻으로도 쓰이고 있는 걸 보면 한국인들의 상상 속에서 가을은 무엇보다도 결실의 계절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가을은 또 조락(凋落)의 계절이기도 하다. 미국 사람들의 ‘가을’(fall)에는 그 조락의 상상력이 또렷하다. 성함의 끝과 쇠함의 시작이 맞닿아 있는 때가 가을이다.

아홉, 넋. 넋에 대한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것은 공식 통계와 상관없이 인류의 종교적 심성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뜻일 테다. 넋이 과학의 까탈스러운 눈 앞에 제 모습을 번듯하게 드러내지 못했으니, 이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넋이 사라진 세상은 얼마나 허전할 것인가. 얼마나 납작할 것인가.

열, 술. 이 말이 아름답게 들리는 것인지 이 말이 가리키는 물질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지 섞갈릴 때가 있다. 아무튼 ‘술’이라는 말만큼 술처럼 들리는 말이 내가 아는 외국어에는 없다. ‘술’의 마지막 소리인 설측음 /ㄹ/은 술의 물리적 성질을, 다시 말해 액체로서의 유동성을, 그 흐름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들린다. 한편 그 첫 소리인 치마찰음 /ㅅ/은 술이 예컨대 증류수 같은 무미 무취 무색의 액체가 아니라 빛깔과 향기와 맛을 지닌 매력적인 액체라는 것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그 두 자음을 이어주는 원순 후설모음 /ㅜ/는, 내게, 술은 내뱉는 것이 아니라 마시는 것이라는 점을, 또 마시되 예컨대 모음 /ㅏ/가 연상시켰을 수도 있듯 폭음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 있게 느릿느릿 마시는 것이라는 점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술은 뇌세포에 상처를 낼 정도로, 또는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청각이 흐릿해져 서로 악다구니를 써대거나, 과장된, 또는 가장된 애상의 몸짓이 펄럭일 정도로 마실 일이 아니다. 이 말을 해 놓고 보니 쑥스럽긴 하다. 나 자신 ‘음주인’의 직업윤리를 잘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시인 김수영이 꼽은 말은?
마수걸이·에누리·은근짜·총채… 상인집안 내력에 장사 용어 많아

시인 김수영(金洙暎ㆍ1921~1968)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라는 수필에서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말들로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을 꼽은 바 있다. 시인 자신이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말들은 아무래도 내가 어렸을 때에 들은 말들이다. 우리 아버지는 상인이라 나는 어려서 서울 아래대의 장사꾼 말들을 자연히 많이 배웠다”고도 고백하고 있거니와, 이 말들 가운데는 ‘시장 언어’가 꽤 있다. 장사꾼의 공간이라는 ‘아래대’란 동대문에서 광희문에 이르는 지역을 가리킨다. 그 맞은편의 서울 서북 지역은 ‘우대’라 불렀다.

젊은 독자들 귀에 설지도 모를 말들을 설명하자면 ‘마수걸이’는 하루나 한 해 중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을 뜻하고, ‘은근짜’는 몸을 파는 여자를 뜻하며, ‘서산대’는 옛날 글방에서 학동들이 책의 글자를 짚는 데 사용하던 막대기다. 먼지떨이라는 뜻의 ‘총채’도 요즘은 많이 쓰지 않는 듯하다.

김수영이 꼽은 이 말들은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이 세대(와 출신지역과 계급)에 따라, 더 나아가 개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즘 젊은 세대라면, 설령 이 말들의 의미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단계로 건너가기 위해 포착해야 할 뉘앙스를 도무지 잡아낼 도리가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말(의 뉘앙스)이 변하는 것은, 그래서 아름다운 말의 기준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수영은 이 수필에서 자신이 ‘매우 엉거주춤한 입장’에 있다며 “‘얄밉다’ ‘야속하다’ ‘섭섭하다’ ‘방정맞다’ 정도의 낱말이 퇴색한 말로 생각되고 선뜻 쓰여지지 않는 반면에, ‘쉼표’ ‘숨표’ ‘마침표’ ‘다슬기’ ‘망초’ ‘메꽃’ 같은 말들을 실감 있게 쓸 수 없는 어중간한 비극적 세대가 우리의 세대”라고 푸념하고 있다. 그렇지만 김수영 세대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는 언어의 생태학 속에서 ‘매우 엉거주춤한 입장’에 있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어중간한 비극적 세대’일 수밖에 없다. KBS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 ‘상상플러스’의 ‘세대 공감 OLD & NEW’라는 코너는 한 세대의 말이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옮겨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각자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를 꼽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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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말들의 풍경] <17> 우리말 안의 그들 말(고종석)

2006. 6. 28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606/h2006062717351985150.htm

 

[말들의 풍경] <17> 우리말 안의 그들 말
36년 日語간섭, 한국어의 뿌리 뒤흔들어
노르만 정복 후 영어 어휘 절반이 불어 차용


간섭은 두 언어가 접촉했을 때 그 효과로 한쪽 또는 양쪽 언어에서 일어나는 변화 현상을 가리킨다. 한국어는 역사적으로 중국어, 일본어, 영어의 간섭을 크게 받았다.

외국인이 쓰는 한국어가 한국인이 쓰는 한국어와 달라 보이는 것은 그 외국인의 모국어가 새로 배운 한국어에 간섭하기 때문이라고 지난 주 이 자리에서 지적한 바 있다. (언어)간섭(interference)은 두 자연언어가 접촉(contact)했을 때 그 효과로 한쪽 또는 양쪽 언어에서 일어나는 규범이탈이나 규범변경을 가리킨다.

지난 주에 살핀 것은 한 개인이 부려쓰는 두 자연언어가 그 개인의 두뇌에서 맞닿아 꼬이며 빚어진 간섭이었다. 그러나 한 개인이 어떤 외국어를 구사할 줄 모르더라도 그의 모국어가 오랜 세월 그 언어와 접촉했다면, 이 개인의 모국어에는 그 외국어의 간섭 흔적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그 외국어가 그의 모국어보다 세력이 큰 언어일 경우에는 더 그렇다. 이 때의 간섭은 이 특정한 개인만이 아니라 모국어를 그와 공유하는 화자 집단 전체가 겪는 간섭이다.

신인(新人)= 새댁 / 실내(室內)= 남의 아내 / 방송(放送)= 죄인을 풀어줌 / 한국 한자어 뜻도 일본쪽 변질
‘-에 있어서’‘-에의’ 등 통사구조에도 간섭 미쳐 韓日문장구조 더 비슷해져

19세기 끝머리 이후로 한국어에 가장 크게 간섭한 자연언어는 일본어다. 1945년까지는 일본어와의 접촉이 한반도 주민집단 대부분에게 열려있거나 강요되었고, 그 뒤에도 일부 지식인들을 통해 그 접촉이 계속되었으니, 간섭의 흔적이 큰 것은 당연하달 수 있다. 일본어의 간섭은 1945년 이후 남한에서 크게 위세를 떨친 영어의 간섭보다도 훨씬 깊고 넓게 이뤄졌다. 그 간섭은 특히 한국어의 한자어 계통 어휘부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그래서 그 전까지 중국어의 그늘을 짙게 드러냈던 한국어 한자어들은 오늘날 일본어 쪽을 훨씬 더 닮게 되었다.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허다한 한자 신조어들이 한국어 어휘부로 밀려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그 전부터 한국어에 있던 한자어들도 일본어의 간섭으로 뜻이 바뀌었다.

예컨대 한국어에서 ‘생산’(生産)은 본디 ‘아이를 낳는 일’ 곧 ‘출산’의 뜻이었으나, 이젠 일본어 ‘세이산’(生産)의 쓰임새에 간섭을 받아 ‘인간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일’을 뜻하게 되었다. 물론 ‘생산’이라는 말이 지금도 ‘출산’의 의미로 쓰이는 일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주변적 의미가 되었고, 게다가 그런 의미의 ‘생산’은 낡은 말투로 여겨진다. 남의 아내를 점잖게 이르는 말이었던 ‘실내’(室內)도 이제 그런 의미를 거의 잃어버리고 일본어 ‘시쓰나이’(室內)의 간섭으로 ‘방안, 집안’을 뜻하게 되었다.

이런 예는 수두룩하다. 몇 개만 더 살펴보자. ‘마음 속’을 뜻했던 ‘중심’(中心)은 일본어 ‘주신’(中心)의 간섭으로 ‘한가운데’를 뜻하게 됐고, 막 결혼한 여성 곧 ‘새댁’을 뜻했던 ‘신인’(新人)은 일본어 ‘신진’(新人)의 간섭으로 본디 뜻을 거의 잃어버리고 ‘어떤 분야에 새로 들어온 사람’을 뜻하게 됐다.

‘방송’(放送)은 본디 ‘죄인을 풀어줌’의 뜻이었으나 일본어 ‘호소’(放送)의 간섭으로 ‘새 소식이나 오락물을 전파에 실어 내보냄’을 뜻하게 됐고, ‘발명’(發明)은 본디 ‘죄가 없음을 말하여 밝힘’ 곧 ‘변명’의 뜻이었으나, 이젠 그런 용법은 사극에서나 볼 수 있을 뿐 일본어 ‘하쓰메이’(發明)의 간섭으로 ‘새로운 기술이나 물건을 만들어냄’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일본어가 한국어에 간섭한 것은 의미 수준에서만이 아니다. 현대 한국어와 현대 일본어의 문장 구조가 매우 닮은 것은 이 두 언어의 유형이 본디 비슷했다는 사정말고도, 구한국 시절 이후 한국어가 일본어로부터 받은 통사(統辭) 간섭에 적잖은 이유가 있다.

일본말투의 전형으로 흔히 지적되는 ‘-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 관형사구를 만들어내는 ‘-에의’, ‘-에로의’, ‘-로서의’, ‘-로부터의’ 따위 겹조사 표현도 일본어 통사구조의 간섭으로 태어났다. 일본어를 직역하다보니 그런 간섭을 피할 수 없었을 테다. 또 피동형의 남용도 일본어가 한국어 통사구조에 간섭한 결과랄 수 있다.

두 언어의 접촉에 따른 간섭은 다른 자연언어들 사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1066년 노르망디공 윌리엄의 잉글랜드 정복(상자 기사 참조) 이후 수백년간 영어에 간섭했던 프랑스어는 20세기 들어 거꾸로 영어의 간섭을 받고 있다.

프랑스어에는 본디 영어의 -ng(우리말의 받침 ‘ㅇ’)에 해당하는 연구개음이 없었지만, parking이나 home-banking 같은 영어가 프랑스어 어휘부에 들어오면서 이 음이 독립 음소로 자리잡아 가는 중이다. 또 프랑스어 동사 realiser는 당초 ‘실현하다, 구현하다’의 뜻만 지니고 있었지만, 영어 realize의 의미 간섭을 받아 지금은 ‘깨닫다’라는 뜻도 겸하게 되었다. 영어 realize가 본디 프랑스어 realiser의 차용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역전이다.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 가짜친구(Faux amis)
같은 어원서 유래됐지만 낱말 뜩이 달라진 경우도

간섭은, 가장 넓은 뜻으로 쓰일 때, 접촉하는 두 자연언어 한 쪽 또는 양쪽에서 이 접촉의 효과로 일어나는 변화를 몽땅 가리키기도 한다. 이런 뜻의 간섭은 그 외연이 차용과 거의 겹친다. 옆 기사에서 간섭의 예로 거론한 것들도 결국은 의미, 통사, 음운 수준의 차용이었다. 자연언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차용의 가장 큰 부분은 어휘 형태의 직접적 차용이다. 그래서 한 언어가 다른 언어에 행사하는 간섭의 가장 큰 부분도 어휘 간섭이랄 수 있다. 두 언어의 격렬한 접촉은 양쪽에 이른바 ‘외래어’를 만들어낸다.

오늘날 영어는 세계의 다른 모든 자연언어의 어휘에 깊이 간섭하고 있지만, 과거엔 프랑스어의 깊은 간섭을 받았다. 그 간섭의 정도는 한국어나 일본어 어휘에 대한 중국어의 간섭에 견줄 수 있을 만큼 컸다. 프랑스어가 영어에 들입다 간섭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방의 영주 윌리엄(프랑스어로는 ‘기욤’)이 잉글랜드에 쳐들어가 노르만왕조를 세운 1066년 이후다.

영국사에서 노르만 정복(Norman Conquest)으로 알려진 이 사건 뒤로, 프랑스어는 잉글랜드에서 수백 년 동안 지배계급의 언어 노릇을 했다. 잉글랜드에서 영어가 프랑스어를 제치고 다시 제1공용어가 된 것은 14세기 후반~15세기 전반의 백년전쟁 뒤다. 이 전쟁이 프랑스와 프랑스어에 대한 잉글랜드사람들의 거리낌을 부추긴 덕이다. 그러나 그 뒤로도 프랑스어는 여전히 잉글랜드 법정의 언어였다. 그 나라 법원이 프랑스어를 포기하고 영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1731년에 들어서다. 그 때는 이미 영어 어휘의 반 이상이 프랑스어로 채워진 뒤였다.

프랑스어의 영어 간섭은 영어에 셀 수 없이 많은 유의어 쌍을 만들어내 이 언어를 살찌웠다. 물론 그 유의어들은 뉘앙스에서 거의 일관된 차이를 보였다. 프랑스어는 잉글랜드 지배계급의 언어였으므로, 영어에 흡수된 프랑스어 단어도 본디 있던 앵글로색슨 단어(게르만계 단어)보다 더 기품과 격조가 있어 보였다.

예컨대 to begin(시작하다)과 to commence, to end(끝내다)와 to finish, to feed(먹이다)와 to nourish, to help(돕다)와 to aid, to sell(팔다)과 to vend, to keep up(유지하다)과 to maintain, to answer(대답하다)와 to reply, to sweat(땀흘리다)와 to perspire 같은 영어동사들의 유의어 쌍에서, 거의 일관되게 더 격이 있어 보이는 것은 앵글로색슨 계통 어휘인 앞쪽이 아니라 프랑스어에서 차용한 뒤쪽이다.

한국어에서 한자어가 그 고유어 유의어보다 흔히 더 격조 있어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격식의 뉘앙스를 띤다는 것이 늘 긍정적이진 않다. 한국어에서 한자어보다는 고유어가 정서를 환기시키는 힘이 더 크고 그래서 더 한국어답게 들리듯, 영어에서도 프랑스어계 낱말보다는 앵글로색슨계 낱말이 그 정서적 환기력 덕분에 더 영어다워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한자어가 한국어 어휘를 크게 두 층(고유어와 한자어)으로 만들었듯, 프랑스어계 외래어도 영어 어휘를 크게 두 층으로 만들었다.

프랑스어에서 차용된 영어 낱말들은 그 말들의 원산지인 프랑스어에서보다도 격식의 뉘앙스가 짙다는 점을 지적하자. 프랑스어에서는 그 낱말들에 지배계급의 표지가 없었던 데 비해, 영어에서는 오래도록 지배계급의 표지가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컨대 to commence, to nourish, to vend, to aid 같은 영어동사들은 이 말들의 원래 형태인 프랑스어 동사 commencer, nourrir, vendre, aider 따위보다 격식의 뉘앙스가 짙다. 다시 말해 프랑스사람들에게 이 프랑스어 낱말들이 환기시키는 정서를 영국인들에게 거의 비슷하게 환기시키는 영어 낱말은 프랑스어와 형태가 닮은 이 차용어들이 아니라 to begin, to feed, to sell, to help 같은 고유어다.

그런데 프랑스어 낱말과 이를 차용한 영어 낱말 사이에 이런 뉘앙스 수준에서가 아니라 의미 수준에서 차이가 벌어진 예도 적지 않다. 차용이 이뤄진 뒤에, 프랑스어에서든 영어에서든 또는 양쪽 다에서든, 그 낱말의 뜻이 변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 경우에, 도버해협을 건너서 빌려주고 빌려온 이 낱말들은 형태도 닮았고 어원도 같지만, 의미는 다르다.

(물론 어원이 같으므로 의미연관이 있긴 하다.) 예컨대 영어 advertisement(광고)는 프랑스어 avertissement(경고)을 차용한 것이지만 그 뜻이 다르다. 15세기에 이 말이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차용됐을 땐 도버해협 양쪽에서 다 ‘경고’의 뜻이었지만, 그 뒤 영어에서 이 낱말의 뜻이 변해 그 의미 대응이 고스란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프랑스어 avertissement에 해당하는 영어는 warning이고, 영어 advertisement에 해당하는 프랑스어는 publicite다. 언어교사들은 avertissement과 advertisement처럼 거죽은 닮았지만 의미가 다른 쌍들을 ‘가짜 친구’(faux amis)라고 부른다.

프랑스어와 영어 사이엔 이런 가짜 친구들이 적지 않다. 예컨대 프랑스어 librairie는 ‘서점’(영어의 bookshop)을 뜻하지만 이 단어를 차용한 영어 library는 ‘도서관’(프랑스어의 bibliotheque)을 뜻하고, 프랑스어 licence는 ‘학사학위’(영어의 university degree)를 뜻하지만 이 단어를 차용한 영어 license는 ‘면허’(프랑스어의 permis)를 뜻한다.

이런 가짜 친구들을 솎아내는 것이 프랑스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영국사람이나 영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프랑스사람에겐 가볍지 않은 짐이다. 형태만이 아니라 뜻이 닮은 ‘진짜 친구’들이 두 언어 사이에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가짜 친구’들은 한국어/일본어의 한자어와 중국어 사이에도 적잖게 있다. 그것을 살필 기회가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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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경제학 책을 읽는 일의 경제성

경제학 책을 내가 사서 읽는 일은 드물지만 그렇다고 없지는 않다(지금은 모두 박스에 들어가 있지만 이 분야의 책도 30여권은 될 듯하다). 다만 최근 몇 년간 경제/경영 관련서를 구입한 기억이 없다(하긴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으니!). 물론 바타이유식의 '일반경제'라면 사정은 달라지고 나는 그쪽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관심이 제한되어 있는 쪽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제, 곧 '제한경제'일 따름이다. 그걸 나는 다리 '속좁은 경제'라고 부르고도 싶다. 북리뷰들을 훑어보다가 '가장 쉬운 경제학 입문서'라 이름붙일 만한 책의 리뷰가 눈에 띄길래 옮겨온다. 얼마전 출간된 <일상의 경제학>(더난출판사, 2006)에 대한 리뷰인데 문화일보 김종락 기자의 것이다.

문화일보(06. 07. 07) 인생이 무엇이냐고? 경제학을 읽어라!

-일부다처제는 남성에게 천국인가, 지옥인가. 혼잡한 고속도로에서 잘 빠지는 옆 차선으로 옮길 때마다 왜 머피의 법칙이 작용하는가. 스커트 길이가 짧아지는 것은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는 신호인가, 그 반대인가. 스커트 길이와 경기의 상관관계야 경제를 이야기할 때 흔히 회자되지만, 여타의 질문들은 경제학과 관계가 없어 보인다. 특히 일부다처제 같은 주제는 효율을 제1원리로 하는 경제학의 원리와는 정반대의 이야기로 여겨질 만하다. 그럼에도 <일상의 경제학>은 경제학이야말로, 이런 문제에 가장 훌륭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거의 모든 일상의 순간들이 경제학적 상황에 놓여 있고, 경제학적 설명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FAZ)’의 경제전문 에디터인 저자 하노 벡 박사는 경제학이 각종 도표와 수식으로 가득한 골치 아픈 학문이며, 일부 학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오해를 바로잡는 데서 책을 시작한다. 경제학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만 기계적으로 따지는 학문이 아니라, 보다 근저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심리학이라는 것이다(*이건 경제학의 확장인가, 자포자기인가?). 현대인의 매 순간이 경제학적 활동의 연속으로, 남녀 간의 연애에서 밀고 당기기를 할 때조차 경제학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쯤에서 책에 기대 앞의 문제를 풀어보자. 일부 남성들이 꿈처럼 이야기하는 일부다처제. 여기서 가장 큰 걸림돌은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1대1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능력있고 잘 생긴 일부 남성들이 여러 여성들을 차지할 경우 나타나는 것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다. 평범한 남성들은 일부 빼어난 남성들로 인해 확 줄어든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나마 차지하기 위해 쟁투를 벌일 수밖에 없다(*예전에 일본인 저자가 쓴 <결혼경제학>이란 책도 출간됐었다. 그걸 읽었다고 해서 내가 도움을 받은 바는 하나도 없지만).

-여성을 두고 쟁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뼈 빠지게 돈은 벌어주되 요구는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가능하고, 설거지며 빨래, 청소, 육아를 도맡아 하겠다는 전략도 가능하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여성을 얻는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혼 시장에 남성은 여전히 넘치기 때문이다. 여성의 요구가 보다 다양해지고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예상과는 다른 남성의 지옥이다.

-혼잡한 도로나 할인마트의 줄에서 머피의 작용이 작용하는 것도, 경제학에서 다루는 인간의 욕구와 관련돼 있다. 도로에서 한쪽 차선이 잘 빠지면, 필연적으로 차선을 옮겨 타는 차량이 생긴다. 문제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뿐만 아니라는 것이다. 우르르 차선을 바꾸다 보니 잘 빠지던 차선이 정체되는 반면, 좀 전의 차선은 멀쩡하게 빠진다.

-그래서 옮겨 타면 또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도로의 차선이나 할인마트의 줄 같은 것이야 조정이 빨리 이뤄지지만, 조정 사이클이 긴 농산물이나 직업 시장은 상황이 다르다. 고추 파동이며 돼지 파동이 일어나고, 한때 대접깨나 받던 직업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책은 미니스커트의 길이와 경제의 상관관계도 심리학으로 설명한다.

“여성들이 짧은 스커트를 입을 때는 언제일까. 아마도 낙관적인 분위기 속에서 뭔가를 감행하고 싶을 때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분은 바로 경기가 호황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의 기분과 같다.”



-이야기는 얼마든지 확장이 가능하다. 이를테면 여성들의 패션이 화려하고 실험적이라면 경제상황 또한 낙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책이 경제학으로 설명하는 일상은 이뿐 아니다. 왜 청바지는 직장의 유니폼이 될 수 없는가, 영화에서 여자 친구를 인질로 잡은 갱의 위협에 굴복해 총을 내려놓는 것은 왜 현실적이지 못한가, 농업보조금이 반경제적인 이유는, 내기는 도박인가 게임인가….

-경제학자인 저자가 이런 문제에 적절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경제학이 인간의 욕망해소, 선택과 집중, 계산과 저울질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책이 주제별로 배치해 솜씨좋게 풀어놓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수요와 공급, 기회비용, 가격의 탄력성, 게임이론, 죄수의 딜레마 등 경제학의 주요 개념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책은 현실과 동떨어진 채 난해한 개념이나 복잡한 수식을 늘어놓는 경제학 전문 서적이나, 전체 경제에 대한 조망없이 말초적으로 돈버는 기술만 전수하는 재테크서와 구별된다. 더불어 일상에 녹아든 경제학의 논리가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도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전한다. 맛깔스러운 번역으로 글만 읽어도 이해하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 책, 편집자들은 여기에 그림과 만화까지 덧붙여 더러 미소까지 머금으며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언젠가 전공서로서 가령 <맨큐의 경제학> 같은 책을 그 '명성' 때문에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984쪽짜리 경제학서를 읽는 게 과연 내게 '경제적인' 일인지 끝내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남들 경제학개론 들을 때 나는 문학개론이나 듣지 않았던가?). 259쪽짜리 <일상의 경제학>이라면 사정은 좀 다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경제적인' 일은 이런 잡스러운 관심들을 잡아매고 팔릴 만한(?) 책을 한권 쓰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간다...

06. 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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