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 > 나는 왜 '헤겔 평전'을 번역했나? - 프레시안
인문학 연구를 업으로 택하는 이들을 찾기 힘들어진 지 오래다. 더불어 각종 실용서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출판시장에서 고급 인문학 서적은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 출간되는 인문학 서적들은 대체로 독자들의 교양 욕구를 겨냥한 가벼운 읽을거리로 기획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아니면 최신의 이론적 조류만을 반영한 책이 보통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경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책이 나와 주목된다. 미국의 철학자 테리 핀카드가 쓴 헤겔 평전〈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이 그것이다.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헤겔의 삶과 철학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다.
새로운 것 혹은 쉬운 것이 존중받는 최근 출판가의 경향을 고려한다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름의 철학자, 그러나 왠지 어려운 느낌을 주는 철학자를 방대한 분량으로 다룬 것은 상당한 용기를 요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용기만으로도 이 책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이런 책을 시장에 내놓은 이들은 무엇 때문에 이런 용기를 내게 된 것일까?
이 책의 공동번역자 중 한 사람인 전대호 씨가 자신이 헤겔의 평전을 번역하게 된 동기를 담은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전 씨는 이 글에서 1980년대의 혼란을 체험한 자신이 왜 대중과 시장이 외면하는 학문인 철학을 공부하게 됐는지, 그리고 이 시대에 독일 고전철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와 함께 전 씨는 헤겔에 대해 흔히 갖고 있는 몇 가지 오해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전 씨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몇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다음은 전 씨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1980년대 말, 강의실의 고요는 우리를 안정시킬 수 없었다
먼저 내가 처음으로 헤겔을 만나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1980년대 말이었고, 나는 물리학을 전공하는 문학청년이었다.
이 땅의 초중등학교는 이를테면 무균실 같았다. 적어도 현실이나 정치나 사회와 관련해서는 철저히 소독된 곳이었고, 그곳에서 하루 24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며 우린 자랐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면역력인 비판의 능력을 키울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계몽은 다름 아니라 제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갖는 것이라고 칸트는 말했다. 그 말이 옳다면, 학교는 우리를 계몽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길로 인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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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안 |
그렇게 자라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때인 1980년대 말, 우린 모두 꿈이 컸고 불안했다. 나는 아인슈타인이나 퀴리부인의 이야기를 읽고 감동을 먹은 적은 없었지만, 원자폭탄을 개발하여 국력에 큰 보탬이 되자는 각오도 가진 바 없었지만, 물리학도가 되어 있었다. 권력에 좌우되지 않는 진리, 누구나 이해하기만 하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명백한 진리, 추상적이기에 일의적이고 형식적이기에 단순한 기호들이 지배하는 진리, 그런 수학적인 자연과학의 진리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상이 내가 꿈꾼 행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희고 고운 동안으로 물리학 전공과목을 들으면서 나는 그토록 신비로운 우주의 비밀들과 정교한 공식들이 찬란하게 반짝이는 강의실을 왜소하게 고립된 공간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유예된 공간 안의 고요는 우릴 안정시킬 수 없었다. 만약 우리가 성장기에 합리적인 비판의 힘을 키웠더라면, 또 그에 걸맞게 이 세상도 조금만 더 합리적이고 관용적이었더라면, 우린 더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삶이 밖에서 물결치며 우릴 불렀다. 때로는 몸부림치고 피 흘리며 불렀다. 우린 고등학교 윤리교과서의 '가치관의 정립' 장에서 이미 확립한 가치관을 고수하면서 지혜롭게 '아노미 상태'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때 우리의 잦은 구토가 꼭 술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노력하는 동안 인간은 헤매게 마련이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취미생활로 시작한 시 쓰기가 점점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자기 이름이 붙은 법칙을 남겨 과학사에 길이 남겠다는 욕심이 물러난 자리에 이 시대의 문제와 아픔과 비굴을 말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욕심은 두려움을 동반했다. 누구인들 자신이 속한 세상을 찬양하고 싶지 않겠는가. 정말 진지하게, 나는 불행하다고, 우린 다 틀려먹었다고, 부조리가 지배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녕 두려운 일이다. 원형극장의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직시하는 것과 내 삶 전체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비극을 직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한참 후에 나는 "노력하는 동안 인간은 헤매게 마련이다"라는 괴테의 문장을 알게 되었다. 또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사람들이 진리라고 여기는 모든 것들이 차례대로 예외 없이 무너지는 과정을, 그 쓰라린 비극의 역사를 읽었다. "우린 모두 비극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어"하고 헤겔이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쓰라린 붕괴의 역사가 진리야"라는 그의 말이 덧붙여졌을 때, 나는 빛이 나를 휘감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길 위에 있는 자에게 주는 위안의 말, 영원히 안주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불안에 떠는 자에게 주는 진정한 위로의 말, 위로를 의도하지 않고 다만 냉정하게 진실을 일러주는 말 - 넌 끝없이 쓰러지고 일어서고 또 쓰러질 거야.
하지만 그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내가 이 세상과 나 사이의 불화를, 나의 정처 없음을 글로 옮기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할 당시에 나는 헤겔도 괴테도 몰랐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토록 근본적인 두려움을 극복하고 모순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던 걸까? 솔직히 말하면, 그때 나는 어리석어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근본적인 불화에 대한 두려움, 전면적인 따돌림에 대한 두려움은 지금도 항상 나와 함께 있다는 얘기다. 헤겔은 철학을 하려면 이성과 '진리를 향할 용기'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경우처럼 용기와 두려움이 동전의 양면인 듯 함께 있는 것은 지극히 헤겔적인 구도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나는 아름답고 정갈한 물리학을 포기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번역된 전문용어들이 난무하는 인문학의 어스름 속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가슴속엔 오직 하나의 다짐이 있었다. 무균실 밖으로 나가 치우치지 않은 삶을 살리라. 이 파편화와 분업의 시대에도 누군가는 설령 아무 것도 제대로 모르는 얼치기가 될 위험이 있다 해도 편협한 명쾌함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전체를 몽땅 붙든 채 흔들려야 하리라.
자유에 대한 열망은 철학으로 향하게 하는 힘 "모래 알갱이에서 우주를, 꽃 한 송이에서 영원을"이라는 유명한 시구가 있다. 이 시구가 표현하는 움직임이, 그 무한을 향한 움직임이 우리의 정신이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도한 주장일까? 사람은 무엇을 보건 그 너머를 함께 보고, 어느 시스템에 속해 있건 또한 동시에 그 시스템 밖에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 사실이 바로 독일 고전 철학자들이 자유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자유만이 전체와 어울릴 수 있다. 아직 삼류 철학자에 불과한 나이지만 헤겔의 어투를 흉내 내어 선언하자면, 자유로운 것만이 전체일 수 있고, 전체인 것만이 자유롭다.
그리고 인간은 자유롭다는 확고한 사실을 헌법의 첫 문장처럼, 공리체계의 첫 공리처럼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시작하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시각이 매우 독일적인 것으로, 더 나아가 지극히 헤겔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칸트가 입버릇처럼 붙이던 "적어도 우리 인간에게는"이라는 단서가 헤겔에 이르러 "적어도 우리 근대인에게는"으로 바뀐 이래로 자유에 근본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지식체계는 결코 시대를 이끄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생계에 대한 불안…철학자는 작가가 되어야 소크라테스가 과거의 자연철학자들과 달리 다시 지상으로 눈을 돌려 사람을 화두로 삼았듯이 나도 이 살벌한 세상에서 이리 깨지고 저리 무너지며 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인문학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을 때, 내 눈에 철학이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자유에 대한 확신과 어울리는 학문은 철학뿐이라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치우치지 않고 전체를 말하려면 철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철학을 선택하려면 또 한 번 용기가 필요했다.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에도 아주 자세히 나오지만, '영원한 철학의 거장' 헤겔도 밥벌이를 제대로 못해 무던히 애를 먹었다. 철학을 해서 돈을 벌 길은 철학교수가 되는 것밖에 없는데, 그게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라는 것을 어린 나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상태였으므로 멀어져가는 밥그릇의 뒷모습을 그냥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젊은 동료 철학자들에게 '당신은 작가야'라고 말하곤 한다. 그들이 왕성하게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삶이 난해하다면 학문도 난해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헤겔을 공부하기로 한 것도 과감한 선택이었다. 헤겔은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게다가 아주 보수적이고 국가지상주의자이며 과학에 대해서는 무식이 철철 넘친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마르크스주의라는 '불온한' 사상과 맥이 닿아 있다고 했다. 자유를 제일 우선으로 두려는 나로서는 도처에서 들려오는 헤겔철학의 교조적 성격에 대한 경고가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헤겔을 전공해 보겠다는 나를 말렸다. 그러나 나는 꿈이 컸고 내 삶의 불안을 인정하기로 한 상태였으므로 두려움을 동반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삶이 난해하고 복잡한 것이라면, 우리가 하는 학문도 난해하고 복잡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물리학을 했으니 과학철학을 하면 무난하지 않겠느냐는 조언은 내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헤겔철학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헤겔 자신이 누누이 한다. 그래도 나는 "참된 것은 전부이다"라는 헤겔의 문장과 그가 가장 중시하는 개념인 "'아니라'고 하는 힘(부정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는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고 전부를 알고 싶었다. 또 막연하게나마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심하게 흔들리고 수시로 멀미에 시달리더라도 헤겔처럼 해보기로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다.
헤겔의 보수성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다. 지금도 나는 독자들에게 가깝고 민감한 정치사회적 사안들에 대한 헤겔의 생각에 처음부터 다가가지 말고 헤겔이 근본으로 삼은 멀고 추상적인듯한 원리들에 먼저 다가가라고 권하고 싶다.
"너 헤겔처럼 말한다?" 헤겔에게 가는 길은 지뢰밭이다. 수많은 오해가 마치 지뢰처럼 깔려 있다. 나는 크게 두 가지 오해를 언급하려 한다.
한편으로 헤겔은 도무지 알아먹기 힘든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사람으로 찍혀 있다. 영어권 지식인들은 종종 "너 헤겔처럼 말한다(You sound like Hegel)"라는 표현을 쓴다. 뭔가 아주 고차원적인 얘기를 하는 듯한데, 안개가 자욱하게 낀 듯이 도통 불명확하고 공허하다는 뜻이다.
헤겔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자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유한한 개인 앞에 무한으로 다가오는 이 삶을 정말 통째로 풀어헤치는 작업을 누군가 했다면, 그의 글이 난해한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헤겔은 이른바 낭만주의의 시대에 활동했다. 계몽주의가 내세운 이성의 과도한 자신감이 분명한 폐해를 드러내면서 근본적인 반성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할 때 그가 나타났다. 그런 그가 남긴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진실은 결국 불명확한 흔들림일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실 이 교훈 때문에 그는 200년 전의 철학자답지 않게 진정한 의미에서 현대적이다. 이 글에서 소개할 책의 서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현대의 어느 프랑스 철학자는 모든 현대 철학자들의 가장 큰 불안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철학자들이 아무리 많은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하더라도 그 길들은 결국 끝이 막혀 있는데, 그 끝에는 항상 헤겔이 미소 지으며 기다리고 있다."
나는 요새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있는 스피노자나 니체나 들뢰즈보다 헤겔이 더 어렵다는 말은 잘 이해가 안 된다. 원리적으로 글의 난해성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정말 난해한 것을 충실하게 다루기 때문에 생기는 난해성이고, 다른 하나는 쉬운 것인데도 불충분하게 다루기 때문에 생기는 난해성이다. 헤겔의 난해성은 전자에 해당한다.
헤겔이 교조적인 전체주의자라고? 다른 한편으로 헤겔은 세상사 전체에 단순하고 기계적인 도식을 강압적이고 일률적으로 적용하여 삶의 풍요를 제거해버린 교조적인 철학자로 찍혀 있다. 이 오해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우리가 일본을 통해 헤겔을 수입했다는 역사적인 우연 때문에 오해가 강화되었을 것이다. 헤겔 하면 정/반/합의 도식을 떠올리고, 절대정신의 절대적 지배를 떠올리는 것이 우리에겐 자명한 정석이다. 헤겔은 모든 각각의 것에 불분명하게 들어 있는 모순이 자신을 명백히 드러내는 과정들을 정말 다채롭게 서술했고, 그의 절대정신은 종교와 예술과 철학의 형태로 존재하는 앎이다. 도대체 어디에 기계적인 도식이 있고, 어디에 절대적인 국가권력 따위가 있는가?
"참된 것은 전체이다"라고 선언한 전체주의자 헤겔과 그의 뒤를 이은 마르크스에 대한, 시위대가 허수아비를 만들어놓고 불사르듯이 헤겔과 마르크스의 인형을 세워놓고 하는 이상한 비판은 이 나라의 국민윤리 교과서가 제공하는 철학의 단골 메뉴였다.
그러나 귀 있는 독자여, 헤겔의 말을 들어보라. 그가 표현하고자 한 전체, 그가 내세운 정신은 이러하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움츠러들고 환란 중에 순수하게 숨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참고 환란 중에 자기 자신을 얻는 삶이 정신의 삶이다. 만신창이로 찢어진 조각들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만 정신은 자신의 진실에 이른다."
국가의 책임 회피를 비판하는 게 헤겔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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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안 |
숱한 비판에서 국가에 대한 헤겔의 태도를 문제 삼으니 국가를 예로 들어 해설해보자. 만신창이로 찢어진 조각들처럼 파편화된 개인들 각각에서 국가 자신을 발견할 수 없는 국가는 진정한 국가가 아니라고 헤겔은 분명히 말했다.
개인이 각자의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덕목이 부각된 근대 이후 국가는 개인들 각각에서 자신을 발견하기 어렵게 되었다. 국가에게 환란이, 심지어 죽음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국가가 움츠러들어 책임을 회피하거나 순수하게 숨어 행정편의적인 제도로만 존속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헤겔의 메시지다. 우리 각자가 국가 안에서 나 자신을, 국가가 우리 각자 안에서 국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에 누가 반기를 들 수 있을까? 또 귀 기울여 들어보라. 헤겔은 애초부터 만신창이가 된 적도, 될 생각도 없는 기계적인 국가, 전체주의적인 국가를 진정한 국가로 옹호하고 있는가? "만신창이로 찢어진 조각들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만 정신은 자신의 진실에 이른다." 헤겔은 오히려 국가는 먼저 만신창이로 찢어져야 하고, 하지만 결코 그 단계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하는 사람이다.
헤겔의 정신, 헤겔의 체계, 헤겔의 전체는 애초부터 정해져 있어 부분들을 옭아매는 틀이 절대로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겔은 피도 눈물도 없는 논리의 철학자요 지독한 전체주의자라는 오해가 막강한 위세를 떨치는 모습을 보면 황당함을 느낀다.
나는 헤겔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절대정신' 따위는 잊고 헤겔에게 다가가라고 권하곤 한다. 아니 어떻게 그걸 빼고 헤겔을 논하느냐고 그들은 반문한다. 나는 그걸 빼야 헤겔의 목소리가 들릴 거라고 장담하곤 한다.
헤겔을 담배 가게 아저씨처럼 편하게 느껴보자 헤겔은 70년생 88학번(헤겔은 177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나 1788년 뒤빙겐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다)이다. 역시 88학번인 내가 이렇게 학번과 생년을 들어 그를 소개하면, 사람들은 해맑게 웃곤 한다. 워낙 위대한 철학자로 인정하다 보니 그 흔한 88학번 친구로 소개하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철학자를 그렇게 우리 동네 담배 가게 아저씨처럼 대해야 함께 철학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참된 무한은 제 안에 유한을 거두어 품기 마련이다. 헤겔이 진정으로 영원한 철학의 거장이라면, 마땅히 담배 가게 아저씨처럼 편하게 느껴져야 옳다.
과연 어떻게 하면 그 겁나게 난해한 헤겔을 담배 가게 아저씨처럼 편하게 대할 수 있을까? 이제 드디어 최근에 나와 태경섭 형의 공동번역으로 출판된 헤겔의 평전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을 소개할 차례가 된 것 같다.
강압적으로 맞이한 근대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헤겔 철학 영어권에서 손꼽히는 헤겔 전문가인 테리 핀카드 교수가 쓴 이 책은 우선 헤겔의 삶을 놀랍도록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것이 이 책이 1000쪽 이상의 분량으로 불어난 첫 번째 주요 이유다. 게다가 '찾아보기'에 나오는 인명들만 훑어봐도 알겠지만, 이 책은 헤겔의 삶을 그 삶이 놓였던 시대에 초점을 맞추면서 서술한다. 핀카드는 헤겔이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의 시대에 살았던 최초의 근대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헤겔은 근대를 환영하는 동시에 진지하게 고민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나는 우리의 학계와 문화계에서 '근대성'에 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안다. 그런데 그 논의에 철학의 기여가 미미한 것 같아 부끄럽다. 철학이 영원한 것에 관한 학문이어서 '근대성' 따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이 땅의 문인과 예술가들이 근대성을 논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 논의에 철학자가 귀를 기울일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의 의의는 각별하다 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외래 세력(나폴레옹의 군대)에 의해 강압적으로 근대를 맞이한 독일의 상황과 당대 지식인들의 대응을 정말 상세하게 서술한 책이기 때문이다. 헤겔은 지역적 전통과 특수성을 고수하는 고향 마을의 특수주의와 인간 보편의 가치를 내세우는 근대 국가의 보편주의 사이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의 철학은 대립하는 그 두 입장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핀카드는 설명한다.
독일어 연습시간으로 전락한 철학 세미나…헤겔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다 각종 자료와 정보의 충실성에 있어서 가히 필적할 경쟁서가 없어 보이는 이 책은 전문적인 학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즐거운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 나는 앞에서 담배 가게 아저씨처럼 친근한 헤겔을 언급한 바 있다. 나는 평전의 형태를 띤 이 책이 헤겔을 그렇게 친근한 인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일반인들에게도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헤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헤겔을 공부하기로 해놓고도 언어의 장벽에 막혀 답보하다가 독일로 떠날 때, 정말이지 나는 헤겔을 읽으면서 그의 목소리를 한 번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열망으로 가득했다. 독일어라는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수도 없이 절망해야 했던 날들이 내 안에 헤겔의 목소리를 향한 열망을 키워놓았다. 진리의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여 대학원에 들어온 초롱초롱한 눈들이 열 개 쯤 자발적으로 모여 칸트를 읽었는데, 대부분의 시간이 독일어 문법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채워졌다. 안타깝게도 번역서들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진지하게 인정하고 고민해야 할 장벽이었는데, 그 때는 그냥 별 것 아닌 놈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독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제발 독일어 문법 안 따지면서 철학책 한 번 읽어보자는 생각이 나를 움직였다.
헤겔을 알려면 물론 헤겔을 직접 읽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10년 전에 내가 그랬고 지금도 적잖이 그렇듯이 이 나라의 학생 대부분은 그 최선의 길을 갈 수가 없다. 잘 이해가 안 되는 한국어나 영어 번역판을 앞에 놓고 머리카락을 쥐어뜯노라면 복장이 터진다. 차라리 원서가 낫다는 말 절로 나오고, 초롱초롱한 눈들의 철학 세미나는 다시 독일어 연습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철학자 칸트나 헤겔의 목소리는? 철학을 해본 독자는 알 것이다. 전혀 안 들린다. 그들이 사람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들이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을 구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 왜 그랬을까, 전혀 안 들었다.
평전을 통해 '인간 헤겔'을 느껴보자 그래서 나는 평전이라는 장르에 큰 매력을 느낀다. 사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원한 철학의 거장' 헤겔은 꼭 200년 전에 <정신현상학>의 원고를 완성하여 불멸의 지위에 올랐다. 그런데 바로 그 해(1806년)에 그는 사생아 아들의 출생을 참담한 심정으로 기다리며 수입이 보장된 일자리를 찾아 백방으로 헤매고 있었다. 그의 인생이 바닥에 이르러 삽질을 하던 때였던 것이다.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에는 원서에는 없지만 옮긴이들의 주장으로 덧붙여진 부록이 있다. 헤겔이 쓴 <정신현상학>의 서문이 그것이다. 나는 헤겔을 사람으로 보게 된 일반 독자들에게 그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나는 번역가로서 그 <정신현상학> 서문의 번역에 가장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일단 죽어 상품이 된 다음, 시장에서 부활해야 한다는 것이 이 시대의 준엄한 정언명령인 것 같다. 판에 박힌 논술 공식들이 길잡이별로 높이 떠 철학을 원하는 젊은 정신들을 인도하는 이 시대에, 자꾸자꾸 얕아지기만 하는 출판시장의 악다구니 속에서, 우선 가격과 두께에서부터 소비자를 겁주는 이 책이 당당히 부활할 수 있다면, 그건 그냥 그 자체로 '희망'이라 불러도 좋은 놀라운 사건이 될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정녕 그럴 수 있다면, 이 책은 기꺼이 여름용 베개라도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