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딸기 > 고이즈미, 결국은.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들의 만류와 국내 반대여론을 무시하고 15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연미복 차림으로 격식을 갖추고 야스쿠니 신사 본전을 방문, 15분간 참배하면서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라 서명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2000년 집권 때부터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한국과 중국 등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 ‘15일 참배’는 피해왔다. 그러나 ‘퇴임 전 마지막 찬스’를 놓칠 수 없다는 듯 참배를 강행했다. 일본 총리가 종전기념일인 8월15일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총리 이래 21년만이다.

요미우리신문은 고이즈미 총리가 6년 만에 ‘8·15 참배 공약’을 지켜낸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신사 회랑을 거닐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 본인의 엇나간 ‘자부심’과는 달리, 일본 내에서도 이날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면서 찬반 양론이 부딪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이같은 행동은 차기 총리 자리를 거의 굳힌 아베 관방장관에게도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정치권 내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극비 여론조사 뒤 ‘여론 무시-참배 강행’


일본 정부가 고이즈미 총리의 15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앞두고 2차례 극비리에 여론조사를 실시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했다.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여론의 반발을 가늠하기 위한 이 조사에서는 질문은 ‘총리가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단 하나의 문항 뿐이었다.

첫 번째 조사 결과는 찬성이 반대를 웃돌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총리는 지난달 중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더 한차례 조사를 하는 편이 좋겠다’며 재조사를 지시했다. 고이즈미가 첫 번째 조사결과를 보고받기 직전인 지난달 20일 쇼와(昭和)천황이 A급 전범의 야스쿠니 합사에 불쾌감을 표시했었다는 도미다 아사히코(富田朝彦) 전 궁내청장관의 메모가 나오면서 일본 내 여론은 야스쿠니 참배 반대 쪽으로 기울어졌었다. 이를 계기로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신중론이 퍼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천황의 심경을 전한 이른바 ‘도미다 메모’가 여론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고 싶어했다. 예상대로 이달초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반대여론이 훨씬 많았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여론을 따르기보다는 평소처럼 ‘적극적인 행동으로 설득하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고이즈미를 보통 ‘포퓰리스트’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얘는 반포퓰리스트, 확신범이다)

야스쿠니신사는 15일 하루 참배자가 약 25만8000명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작년 같은날 참배인원보다 5만3000명이나 늘어난 수치라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신사 측은 그러면서 총리의 신사참배를 줄곧 반대해온 아사히신문의 취재를 제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정치권 양분


초당파 국회의원들이 만든 ‘모두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의원들은 15일 야스쿠니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참배에는 이 모임의 회장인 가와라 쓰토무(瓦力) 전 방위청장관과 오쓰지 히데히사(尾?秀久) 전 후생노동상 등 자민·민주·국민신당 의원 56명이 참가했다.

이와 별도로 야스쿠니신사 내에서 열린 ‘전몰자추도중앙국민집회’에는 ‘고이즈미 칠드런’으로 불리는 자민당 초선의원들이 만든 ‘전통과 창조모임’ 소속 의원 6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가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린다’면서 치하했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총리도 고이즈미 총리의 행동을 “잘 한 것”이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공산당, 일본신당 등 야당 지도부 인사들도 일제히 고이즈미 총리를 비난하는 성명을 내거나 회견을 가졌다. 연립여당의 한 축인 공명당의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대표는 물론이고, 자민당 내 유력인사인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전간사장 등도 참배를 비판했다.


주요 언론·지식인들은 ‘헌법 위반’ 비판


아사히신문은 “야스쿠니 참배, 귀를 닫고 눈을 감았다”는 제하의 16일자 사설에서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이웃 국가들의 우려와 반발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반대 여론까지 무시한 야스쿠니 참배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일본의 ‘살아있는 양심’으로 불리는 철학자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도쿄대 교수는 일본교육회관 등 도쿄 내 2곳에서 이날 연달아 강연을 하면서 야스쿠니 문제에서는 총리의 참배와 A급 전범 합사만이 초점인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카하시 교수는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와 관련해 ‘공양이라고 하면서 공용차를 타고 내각총리대신이라 서명하며 참배를 한 것은 사적행위일 수가 없으며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변호사연합회 히라야마 세고(平山正剛) 회장도 “국정 최고책임자인 총리가 종교법인인 야스쿠니신사를 공식 참배한 것은 국가의 종교활동을 금지한 헌법 20조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일본 법원들의 판결은 엇갈리고 있는 상태다.


경제단체들, “다음 총리는 삼가달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와 관련, 일본 재계는 간접적으로 우려를 표현하며 차기 총리에 ‘신중한 태도’를 주문했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회장을 맡고 있는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福士夫) 캐논 회장은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에 대해 “개인의 판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며 직접적인 코멘트를 피했다.

그러나 지난 5월 고이즈미 총리에게 야스쿠니 참배를 중단할 것을 요청했었던 경제동우회 기타시로 가쿠타로(北城恪太郞) 대표간사는 “다음번 총리는 우리나라의 안전과 번영을 확보하기 위해서 세계 각국과의 상호이해와 신뢰를 구축할 수 있도록 외교정책을 입안, 실행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해 이번 참배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차기 총리의 참배 중단을 다시 촉구했다. 일본상공회의소측도 “이웃나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차기 총리의 과제”라고 지적하며 같은 입장을 밝혔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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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 미만의 국민들은 보시오!

우석훈 선생의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2006, 녹색평론)을 읽다가 요근자에 읽은 어떤 FTA관련 서적들에 비해 확실히 알기 쉽게 FTA를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읽다가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있어 함께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일일이 타이핑을 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부분적으로 본래 책의 원고와 틀린 부분은 내가 교정을 본(교열이 아니라) 부분이거나 아니면 타이핑 하다가 오타가 난 부분이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부부합산으로 연소득 6,000만원 이하를" 벌어들이고 있는 사람들은 노무현호 아니 현재 흐름대로라면 '대한민국호'에 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현재의 추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부부합산으로 연소득 6,000만원 이하를 벌어들이고 있는 사람들이 현재의 '노무현호'를 타고 미래로 갈 이유는 없다. 만약 '고향' 혹은 '우리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어서 이 특수한 상품 혹은 서비스를 소비하는데 매우 특별한 만족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재'를 찾는 것이 절실한 순간이다. 어차피 학교에서도 이제는 '우리말'이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인데, 우리 말을 사용하는 편리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높다. <21쪽>

그리고 "7장. 그럼 도대체 정부가 아는 건 뭐야"라는 부분을 한참 신나서 읽고 났더니 몹시 슬픈 이야기였다. 원고 내용 중 밑줄 치고, 굵은 글씨 부분은 별도로 내가 강조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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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럼 도대체 정부가 아는 건 뭐야?

한미 FTA의 결과, 무역수지는 손해인데, 서비스업도 별로 밝아보이지 않고, 미국 시장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고, 한국 시장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럼 대체 정부가 아는 게 뭔가? 보통의 경우라면 정부가 모르는 것을 중심으로 논의를 하고 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들이 한 얘기를 빈틈없이 뒤집어보면 정부가 뭘 제대로 아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정부가 도대체 지금 무엇을 알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저렇게 용감하게 “최단 시일 내에 성공적 협상을 하겠다”며 질주하는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을까? 한번 정부가 알고 있는 걸 찾아보기로 하자.

가. 농업은 망한다
어쨌든 노무현 정부는 농업이 망한다는 정도는 아는 것 같다. 이건 새로운 미국과의 통상 관계 때문이 아니라 농업은 그만둔다는 정책 기조로 지난 3년간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이다. 졸저 <아픈 아이들의 세대>에 노무현 정부의 농업 정책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분석한 적이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이 정도로 농업의 얘기를 접기로 하자. 현재 국민의 8% 정도인 농민이 4%대로 줄어들지, 아니면 정부의 목표대로 1%대로 내려앉을지가 문제일 뿐이다.

나. 월마트한테는 안 당한다
월마트와 까르푸가 국내 유통업계에서 철수하게 된 것이 금년(2006년) 초이다. 정부는 대형유통시장에서 한미FTA로 경쟁조건을 바꾸더라도 국내 업체에게 승산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계속 죽어나갈 것이다. 월마트가 다시 들어올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하여간 정부는 “월마트한테 안 당한다”는 정도는 안다.

다. 한국영화 안 본다고 죽는 거 아니다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면서 국내 영화산업은 일단 현재의 절반 정도로 축소될 것이다. 국내영화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로 유지가 되어야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정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스크린쿼터 146일 규모에서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생겨서 몇 개의 경쟁력 있는 한국영화가 나온 것으로 분석할 수 있는데, 이 규모가 73일이 되면 기계적으로 시장 규모가 반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규모의 경제에 미치지 못하는 그만그만한 영화가 나오게 되는 것이 현대 영화시장의 특징이다. 이것까지는 정부가 몰랐던 거다. 정부가 아는 것은 다만 “한국 영화 안 본다고 안 죽는다”는 점이다.
멕시코의 일류 감독들이 지금 CF감독으로 연명하면서 3~4년간 돈을 모아서 겨우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 한 편 만드는 상황을 보면서도, 정부는 미국에 일단 스크린쿼터를 내주고 협상을 시작하고 있다.

라. 병원 안 간다고 다 죽는 건 아니다
보건경제학 쪽에서 조금 더 자세한 분석이 나오려면 6개월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숫자를 정확하게 내기는 어렵지만 아마 국민의 30%에서 40%정도는 한미FTA 이후 5년이 지나면 의료비와 보험비가 비싸져서 병원에 가기 어려워지는 게 사실이다. 계산하기 어려운 것은 얼마나 되는 국민들이 병원에 갈 수 없을지 여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건 소득분배의 재구성 모델이 나와야 숫자가 정확히 나온다. 의료서비스의 가격이 비싸지는 것은 시나리오 형태로 추정할 수는 있는데, 단지 국민들이 “얼마나 가난해질지를 몰라서” 계산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정부에서는 한 가지를 알고 있다. 병원에 안 간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물론 그렇기는 하다. 돈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것이 서럽기는 해도, 아프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다. 약초요법과 전통의학 등 ‘대체의학’이 급속도로 발전할 수도 있다.

마. 공무원들한테는 별일 안 생긴다
사실 정부라는 것은 공무원들의 총합이기도 하다. 공무원들의 운명은 사실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FTA는 민간부문과 민영화되는 공공부문까지 영향을 크게 미칠 뿐, 공무원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이 거의 없다. 국민들이 겪게 될 평균적인 변화와는 다른 미미한 변화만이 생길 뿐이다. 만약 공무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지금 같은 방식으로 한미FTA 추진이 가능했을까? 확실히 정부는 공무원들에게는 별일 안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정부 내에서 저항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말이다.
물론 지금 정부가 조심스럽게 준비 중인 ‘행정민영화’ 프로그램이 진짜로 강도 높게 추진된다면, 원칙론적인 ‘희망’과는 달리 공무원 세계도 격랑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바. 국민들은 농민 편 안 들어준다
정부도 인정하는 것과 같이 사실 한미FTA로 가장 많은 타격을 받을 사람들은 농민들이다. 꼭 한미FTA에서 특별한 규정이 생기거나 쌀시장이 추가로 개방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상 쌀시장은 이미 다자관계인 WTO에서 개괄적인 틀로 결정된 상태다. FTA라는 틀에서 쌀시장을 다룰 이유가 별로 없다.
전략적으로는 미국이 약간 요구하는 척 하다가 양보할 것이고, 정부는 국민들에게 그래도 쌀시장을 지켰고, 그 대가로 다른 분야에서 좀 희생을 했다는 선전을 할 것이다. 정부가 양자관계에서 다룰 필요가 없고 다루지도 않는 ‘쌀시장’을 꼭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걸 보면서 이건 거의 ‘야바위’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한미FTA가 농민들에게 치명적인 것은 협상이 진행된다는 이유만으로 몇 년 후에 시행될 ‘농업죽이기’ 정책이 훨씬 빨리 진행될 것은 물론, 추곡수매가 사라진 다음 실질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던 보조금 정책 등을 ‘없던 얘기’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국민들이 농민들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확실하다. 한미FTA를 통해서 농민이 손해보고 그 대신 서비스업은 좋아질 것이라고 정부가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위험해진 미장원 주인들조차 농업이 망하고 어려워진 만큼 그 이익이 자신에게 올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농민들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대다수 국민들이 절대로 농민들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히 안다.

사. 한나라당은 꼼짝할 수가 없다
노무현 정부는 적어도 한미FTA에서만큼은 한나라당이 꼼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나라당에는 FTA가 실제로 어떠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어떤 부문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분석할 수 있는 실무전문가가 없다. 따라서 정부에 곤란한 질문을 하지 못할 것이다. 정부도 아는 것이 별로 없는데, 한나라당이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구조상 불가능하다. 상당수 한나라당 당원들은 일단 ‘자유무역’이란 말이 들어가면 무조건 찬성하는 경향이 있다.

아. 국민들은 벤츠를 좋아해
한국정부는 자동차 부문의 협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은 모양새다. 미국정부도 한국시장에서의 자동차 판매에 꽤나 공을 들이고 있는 형편이다. 자동차 조금 더 팔자고 3,000cc 이상의 대형자동차에게나 적용될 제도들을 없애고, 배기가스 배출기준을 없애고, 심지어는 수도권 대기관리대책까지 없애라고 하는 미국의 요구는 내정간섭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 기본적인 환경정책의 틀 정도는 지킬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게 진짜 협상의 핵심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부문의 변화가 워낙 크기 때문에 어차피 타는 수입자동차, 독일제를 타나 미제를 타나 국민경제에는 별가시적 변화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연소득 6,000만원 미만의 국민들에게는 어차피 해당사항 없는 일이기도 하다.
정부는 국민들이 미국자동차를 타지 않는 이유가 다른 복잡한 이유가 아니라 벤츠와 BMW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잘 안다. 반면 미국 정부는 아직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독일제 자동차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나 보다.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캐딜락을 타고 싶다는 미국인들처럼 한국인들도 자신의 첫 번째 외제 승용차는 벤츠이기를 바란다. 물론 한국정부는 이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자. 국민들은 식품 안전에 관심이 없다
정부가 아는 또 한 가지 사실 중에서 가장 슬픈 일은 한국 국민이 식품안전에 사실상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사고가 터지면 벌떼처럼 떠들지만, 길어야 일주일이다. 광우병 의혹이 있는 미국산 축산물도 문제지만, 한미FTA로 정말 곤란하게 되는 것은 유기농산물의 기반이 무너지고,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안전한 식품공급시스템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붕괴된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한국 국민들은 이런 근본적인 식품안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무엇보다도 OECD 국가 중에서는 유전자변형식품(GMO)에 대한 인식수준이 가장 낮은 국민이라는 점을 정부는 잘 알고 있다. WTO협상에서도 다른 선진국이 전부 만들어 넣은 학교급식 재료조달에 관한 예외규정을 하나도 만들지 않은 게 한국이다. 정말 한국정부는 다른 건 몰라도 국민들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차. 그래봐야 이민 갈 용기가 있는 국민은 별로 없다
다음 장의 결론을 미리 당겨서 말하자면, 현재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FTA체제 속에서 ‘개인으로서의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국민직접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국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보인다. 이러한 경우에 유일한 의사표시 방법은 많은 국민들이 이민을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그래봐야 이민 갈 정도로 용기 있는 국민이 별로 없다는 사실까지도 잘 알고 있다. 이미 붕괴된 교육시스템에 불만이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조기 유학을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뭔가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공부 못하는 애들 유학 보내봐야 인생만 망가진다”는 ‘조기유학 위험론’으로 협박을 일삼던 정부다. 가끔 소주 마시며 대통령을 씹어대긴 하지만, 사실 국민들이 미래를 불안하게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거라는 점을 노무현 정부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쉽게 정리해보면, 정부는 한미FTA와 관련해서 정부가 꼭 알아야 할 것들은 거의 모른다. 그런데 국민들과의 협상에서 이기는 방법은 너무 잘 안다. 진화적 게임이론으로 상황을 설명하자면 ‘노무현 시스템’은 외국이 아니라 국민들을 상대하는 감각기관이 기이하게 발달․진화한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정부’라고 뭉뚱그려 표현하지 말고 대체 어떤 시스템을 가진 정부인지 좀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문 126~133>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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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에는 장봉군 화백의 만평이 실려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자동차를 끌고 과속질주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앞길에는 미국과의 FTA협상으로 국민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른 멕시코가 있다. 대통령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협상 한 번 잘못했다고 나라 망하는 거 아니다."

아마도 우석훈 선생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협상 한 번 잘못했다고 나라 망하는 거 아니다. 대신에 이민도 갈 수 없고, 그렇다고 이 나라에서 이대로 살기도 어려운 국민들만 망하는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FTA를 막을 길은 국민직접행동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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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나는 왜 '헤겔 평전'을 번역했나? - 프레시안

 

'88학번 물리학도'가 만난 '88학번 헤겔'

 

[기고] 나는 왜 '헤겔 평전'을 번역했나?

 

2006-08-14 오후 6:04:38

 

  인문학 연구를 업으로 택하는 이들을 찾기 힘들어진 지 오래다. 더불어 각종 실용서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출판시장에서 고급 인문학 서적은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 출간되는 인문학 서적들은 대체로 독자들의 교양 욕구를 겨냥한 가벼운 읽을거리로 기획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아니면 최신의 이론적 조류만을 반영한 책이 보통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경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책이 나와 주목된다. 미국의 철학자 테리 핀카드가 쓴 헤겔 평전〈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이 그것이다.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헤겔의 삶과 철학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다.
  
  새로운 것 혹은 쉬운 것이 존중받는 최근 출판가의 경향을 고려한다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름의 철학자, 그러나 왠지 어려운 느낌을 주는 철학자를 방대한 분량으로 다룬 것은 상당한 용기를 요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용기만으로도 이 책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이런 책을 시장에 내놓은 이들은 무엇 때문에 이런 용기를 내게 된 것일까?
  
  이 책의 공동번역자 중 한 사람인 전대호 씨가 자신이 헤겔의 평전을 번역하게 된 동기를 담은 글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전 씨는 이 글에서 1980년대의 혼란을 체험한 자신이 왜 대중과 시장이 외면하는 학문인 철학을 공부하게 됐는지, 그리고 이 시대에 독일 고전철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와 함께 전 씨는 헤겔에 대해 흔히 갖고 있는 몇 가지 오해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전 씨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몇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다음은 전 씨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1980년대 말, 강의실의 고요는 우리를 안정시킬 수 없었다
  
  먼저 내가 처음으로 헤겔을 만나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1980년대 말이었고, 나는 물리학을 전공하는 문학청년이었다.
  
  이 땅의 초중등학교는 이를테면 무균실 같았다. 적어도 현실이나 정치나 사회와 관련해서는 철저히 소독된 곳이었고, 그곳에서 하루 24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며 우린 자랐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면역력인 비판의 능력을 키울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계몽은 다름 아니라 제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갖는 것이라고 칸트는 말했다. 그 말이 옳다면, 학교는 우리를 계몽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길로 인도했던 것이다.
  

▲ ⓒ프레시안

  그렇게 자라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때인 1980년대 말, 우린 모두 꿈이 컸고 불안했다. 나는 아인슈타인이나 퀴리부인의 이야기를 읽고 감동을 먹은 적은 없었지만, 원자폭탄을 개발하여 국력에 큰 보탬이 되자는 각오도 가진 바 없었지만, 물리학도가 되어 있었다. 권력에 좌우되지 않는 진리, 누구나 이해하기만 하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명백한 진리, 추상적이기에 일의적이고 형식적이기에 단순한 기호들이 지배하는 진리, 그런 수학적인 자연과학의 진리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상이 내가 꿈꾼 행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희고 고운 동안으로 물리학 전공과목을 들으면서 나는 그토록 신비로운 우주의 비밀들과 정교한 공식들이 찬란하게 반짝이는 강의실을 왜소하게 고립된 공간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유예된 공간 안의 고요는 우릴 안정시킬 수 없었다. 만약 우리가 성장기에 합리적인 비판의 힘을 키웠더라면, 또 그에 걸맞게 이 세상도 조금만 더 합리적이고 관용적이었더라면, 우린 더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삶이 밖에서 물결치며 우릴 불렀다. 때로는 몸부림치고 피 흘리며 불렀다. 우린 고등학교 윤리교과서의 '가치관의 정립' 장에서 이미 확립한 가치관을 고수하면서 지혜롭게 '아노미 상태'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때 우리의 잦은 구토가 꼭 술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노력하는 동안 인간은 헤매게 마련이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취미생활로 시작한 시 쓰기가 점점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자기 이름이 붙은 법칙을 남겨 과학사에 길이 남겠다는 욕심이 물러난 자리에 이 시대의 문제와 아픔과 비굴을 말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욕심은 두려움을 동반했다. 누구인들 자신이 속한 세상을 찬양하고 싶지 않겠는가. 정말 진지하게, 나는 불행하다고, 우린 다 틀려먹었다고, 부조리가 지배한다고 말하는 것은 정녕 두려운 일이다. 원형극장의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직시하는 것과 내 삶 전체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비극을 직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한참 후에 나는 "노력하는 동안 인간은 헤매게 마련이다"라는 괴테의 문장을 알게 되었다. 또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사람들이 진리라고 여기는 모든 것들이 차례대로 예외 없이 무너지는 과정을, 그 쓰라린 비극의 역사를 읽었다. "우린 모두 비극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어"하고 헤겔이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쓰라린 붕괴의 역사가 진리야"라는 그의 말이 덧붙여졌을 때, 나는 빛이 나를 휘감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길 위에 있는 자에게 주는 위안의 말, 영원히 안주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불안에 떠는 자에게 주는 진정한 위로의 말, 위로를 의도하지 않고 다만 냉정하게 진실을 일러주는 말 - 넌 끝없이 쓰러지고 일어서고 또 쓰러질 거야.
  
  하지만 그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내가 이 세상과 나 사이의 불화를, 나의 정처 없음을 글로 옮기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할 당시에 나는 헤겔도 괴테도 몰랐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토록 근본적인 두려움을 극복하고 모순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던 걸까? 솔직히 말하면, 그때 나는 어리석어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니까 근본적인 불화에 대한 두려움, 전면적인 따돌림에 대한 두려움은 지금도 항상 나와 함께 있다는 얘기다. 헤겔은 철학을 하려면 이성과 '진리를 향할 용기'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경우처럼 용기와 두려움이 동전의 양면인 듯 함께 있는 것은 지극히 헤겔적인 구도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나는 아름답고 정갈한 물리학을 포기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번역된 전문용어들이 난무하는 인문학의 어스름 속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가슴속엔 오직 하나의 다짐이 있었다. 무균실 밖으로 나가 치우치지 않은 삶을 살리라. 이 파편화와 분업의 시대에도 누군가는 설령 아무 것도 제대로 모르는 얼치기가 될 위험이 있다 해도 편협한 명쾌함에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전체를 몽땅 붙든 채 흔들려야 하리라.
  
  자유에 대한 열망은 철학으로 향하게 하는 힘
  
  "모래 알갱이에서 우주를, 꽃 한 송이에서 영원을"이라는 유명한 시구가 있다. 이 시구가 표현하는 움직임이, 그 무한을 향한 움직임이 우리의 정신이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도한 주장일까? 사람은 무엇을 보건 그 너머를 함께 보고, 어느 시스템에 속해 있건 또한 동시에 그 시스템 밖에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 사실이 바로 독일 고전 철학자들이 자유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자유만이 전체와 어울릴 수 있다. 아직 삼류 철학자에 불과한 나이지만 헤겔의 어투를 흉내 내어 선언하자면, 자유로운 것만이 전체일 수 있고, 전체인 것만이 자유롭다.
  
  그리고 인간은 자유롭다는 확고한 사실을 헌법의 첫 문장처럼, 공리체계의 첫 공리처럼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시작하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시각이 매우 독일적인 것으로, 더 나아가 지극히 헤겔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칸트가 입버릇처럼 붙이던 "적어도 우리 인간에게는"이라는 단서가 헤겔에 이르러 "적어도 우리 근대인에게는"으로 바뀐 이래로 자유에 근본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지식체계는 결코 시대를 이끄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생계에 대한 불안…철학자는 작가가 되어야
  
  소크라테스가 과거의 자연철학자들과 달리 다시 지상으로 눈을 돌려 사람을 화두로 삼았듯이 나도 이 살벌한 세상에서 이리 깨지고 저리 무너지며 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인문학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을 때, 내 눈에 철학이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자유에 대한 확신과 어울리는 학문은 철학뿐이라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치우치지 않고 전체를 말하려면 철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철학을 선택하려면 또 한 번 용기가 필요했다.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에도 아주 자세히 나오지만, '영원한 철학의 거장' 헤겔도 밥벌이를 제대로 못해 무던히 애를 먹었다. 철학을 해서 돈을 벌 길은 철학교수가 되는 것밖에 없는데, 그게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라는 것을 어린 나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상태였으므로 멀어져가는 밥그릇의 뒷모습을 그냥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젊은 동료 철학자들에게 '당신은 작가야'라고 말하곤 한다. 그들이 왕성하게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삶이 난해하다면 학문도 난해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헤겔을 공부하기로 한 것도 과감한 선택이었다. 헤겔은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게다가 아주 보수적이고 국가지상주의자이며 과학에 대해서는 무식이 철철 넘친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마르크스주의라는 '불온한' 사상과 맥이 닿아 있다고 했다. 자유를 제일 우선으로 두려는 나로서는 도처에서 들려오는 헤겔철학의 교조적 성격에 대한 경고가 마음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헤겔을 전공해 보겠다는 나를 말렸다. 그러나 나는 꿈이 컸고 내 삶의 불안을 인정하기로 한 상태였으므로 두려움을 동반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삶이 난해하고 복잡한 것이라면, 우리가 하는 학문도 난해하고 복잡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물리학을 했으니 과학철학을 하면 무난하지 않겠느냐는 조언은 내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헤겔철학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헤겔 자신이 누누이 한다. 그래도 나는 "참된 것은 전부이다"라는 헤겔의 문장과 그가 가장 중시하는 개념인 "'아니라'고 하는 힘(부정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는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고 전부를 알고 싶었다. 또 막연하게나마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심하게 흔들리고 수시로 멀미에 시달리더라도 헤겔처럼 해보기로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랬던 것 같다.
  
  헤겔의 보수성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다. 지금도 나는 독자들에게 가깝고 민감한 정치사회적 사안들에 대한 헤겔의 생각에 처음부터 다가가지 말고 헤겔이 근본으로 삼은 멀고 추상적인듯한 원리들에 먼저 다가가라고 권하고 싶다.
  
  "너 헤겔처럼 말한다?"
  
  헤겔에게 가는 길은 지뢰밭이다. 수많은 오해가 마치 지뢰처럼 깔려 있다. 나는 크게 두 가지 오해를 언급하려 한다.
  
  한편으로 헤겔은 도무지 알아먹기 힘든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사람으로 찍혀 있다. 영어권 지식인들은 종종 "너 헤겔처럼 말한다(You sound like Hegel)"라는 표현을 쓴다. 뭔가 아주 고차원적인 얘기를 하는 듯한데, 안개가 자욱하게 낀 듯이 도통 불명확하고 공허하다는 뜻이다.
  
  헤겔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자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유한한 개인 앞에 무한으로 다가오는 이 삶을 정말 통째로 풀어헤치는 작업을 누군가 했다면, 그의 글이 난해한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헤겔은 이른바 낭만주의의 시대에 활동했다. 계몽주의가 내세운 이성의 과도한 자신감이 분명한 폐해를 드러내면서 근본적인 반성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할 때 그가 나타났다. 그런 그가 남긴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는, 진실은 결국 불명확한 흔들림일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실 이 교훈 때문에 그는 200년 전의 철학자답지 않게 진정한 의미에서 현대적이다. 이 글에서 소개할 책의 서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현대의 어느 프랑스 철학자는 모든 현대 철학자들의 가장 큰 불안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철학자들이 아무리 많은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 하더라도 그 길들은 결국 끝이 막혀 있는데, 그 끝에는 항상 헤겔이 미소 지으며 기다리고 있다."
  
  나는 요새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있는 스피노자나 니체나 들뢰즈보다 헤겔이 더 어렵다는 말은 잘 이해가 안 된다. 원리적으로 글의 난해성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정말 난해한 것을 충실하게 다루기 때문에 생기는 난해성이고, 다른 하나는 쉬운 것인데도 불충분하게 다루기 때문에 생기는 난해성이다. 헤겔의 난해성은 전자에 해당한다.
  
  헤겔이 교조적인 전체주의자라고?
  
  다른 한편으로 헤겔은 세상사 전체에 단순하고 기계적인 도식을 강압적이고 일률적으로 적용하여 삶의 풍요를 제거해버린 교조적인 철학자로 찍혀 있다. 이 오해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우리가 일본을 통해 헤겔을 수입했다는 역사적인 우연 때문에 오해가 강화되었을 것이다. 헤겔 하면 정/반/합의 도식을 떠올리고, 절대정신의 절대적 지배를 떠올리는 것이 우리에겐 자명한 정석이다. 헤겔은 모든 각각의 것에 불분명하게 들어 있는 모순이 자신을 명백히 드러내는 과정들을 정말 다채롭게 서술했고, 그의 절대정신은 종교와 예술과 철학의 형태로 존재하는 앎이다. 도대체 어디에 기계적인 도식이 있고, 어디에 절대적인 국가권력 따위가 있는가?
  
  "참된 것은 전체이다"라고 선언한 전체주의자 헤겔과 그의 뒤를 이은 마르크스에 대한, 시위대가 허수아비를 만들어놓고 불사르듯이 헤겔과 마르크스의 인형을 세워놓고 하는 이상한 비판은 이 나라의 국민윤리 교과서가 제공하는 철학의 단골 메뉴였다.
  
  그러나 귀 있는 독자여, 헤겔의 말을 들어보라. 그가 표현하고자 한 전체, 그가 내세운 정신은 이러하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움츠러들고 환란 중에 순수하게 숨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참고 환란 중에 자기 자신을 얻는 삶이 정신의 삶이다. 만신창이로 찢어진 조각들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만 정신은 자신의 진실에 이른다."
  
  국가의 책임 회피를 비판하는 게 헤겔의 메시지
  
▲ ⓒ프레시안

  숱한 비판에서 국가에 대한 헤겔의 태도를 문제 삼으니 국가를 예로 들어 해설해보자. 만신창이로 찢어진 조각들처럼 파편화된 개인들 각각에서 국가 자신을 발견할 수 없는 국가는 진정한 국가가 아니라고 헤겔은 분명히 말했다.
  
  개인이 각자의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덕목이 부각된 근대 이후 국가는 개인들 각각에서 자신을 발견하기 어렵게 되었다. 국가에게 환란이, 심지어 죽음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국가가 움츠러들어 책임을 회피하거나 순수하게 숨어 행정편의적인 제도로만 존속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헤겔의 메시지다. 우리 각자가 국가 안에서 나 자신을, 국가가 우리 각자 안에서 국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에 누가 반기를 들 수 있을까? 또 귀 기울여 들어보라. 헤겔은 애초부터 만신창이가 된 적도, 될 생각도 없는 기계적인 국가, 전체주의적인 국가를 진정한 국가로 옹호하고 있는가? "만신창이로 찢어진 조각들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만 정신은 자신의 진실에 이른다." 헤겔은 오히려 국가는 먼저 만신창이로 찢어져야 하고, 하지만 결코 그 단계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하는 사람이다.
  
  헤겔의 정신, 헤겔의 체계, 헤겔의 전체는 애초부터 정해져 있어 부분들을 옭아매는 틀이 절대로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겔은 피도 눈물도 없는 논리의 철학자요 지독한 전체주의자라는 오해가 막강한 위세를 떨치는 모습을 보면 황당함을 느낀다.
  
  나는 헤겔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절대정신' 따위는 잊고 헤겔에게 다가가라고 권하곤 한다. 아니 어떻게 그걸 빼고 헤겔을 논하느냐고 그들은 반문한다. 나는 그걸 빼야 헤겔의 목소리가 들릴 거라고 장담하곤 한다.
  
  헤겔을 담배 가게 아저씨처럼 편하게 느껴보자
  
  헤겔은 70년생 88학번(헤겔은 177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나 1788년 뒤빙겐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다)이다. 역시 88학번인 내가 이렇게 학번과 생년을 들어 그를 소개하면, 사람들은 해맑게 웃곤 한다. 워낙 위대한 철학자로 인정하다 보니 그 흔한 88학번 친구로 소개하는 것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나는 철학자를 그렇게 우리 동네 담배 가게 아저씨처럼 대해야 함께 철학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참된 무한은 제 안에 유한을 거두어 품기 마련이다. 헤겔이 진정으로 영원한 철학의 거장이라면, 마땅히 담배 가게 아저씨처럼 편하게 느껴져야 옳다.
  
  과연 어떻게 하면 그 겁나게 난해한 헤겔을 담배 가게 아저씨처럼 편하게 대할 수 있을까? 이제 드디어 최근에 나와 태경섭 형의 공동번역으로 출판된 헤겔의 평전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을 소개할 차례가 된 것 같다.
  
  강압적으로 맞이한 근대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헤겔 철학
  
  영어권에서 손꼽히는 헤겔 전문가인 테리 핀카드 교수가 쓴 이 책은 우선 헤겔의 삶을 놀랍도록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것이 이 책이 1000쪽 이상의 분량으로 불어난 첫 번째 주요 이유다. 게다가 '찾아보기'에 나오는 인명들만 훑어봐도 알겠지만, 이 책은 헤겔의 삶을 그 삶이 놓였던 시대에 초점을 맞추면서 서술한다. 핀카드는 헤겔이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의 시대에 살았던 최초의 근대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헤겔은 근대를 환영하는 동시에 진지하게 고민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나는 우리의 학계와 문화계에서 '근대성'에 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안다. 그런데 그 논의에 철학의 기여가 미미한 것 같아 부끄럽다. 철학이 영원한 것에 관한 학문이어서 '근대성' 따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이 땅의 문인과 예술가들이 근대성을 논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 논의에 철학자가 귀를 기울일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의 의의는 각별하다 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외래 세력(나폴레옹의 군대)에 의해 강압적으로 근대를 맞이한 독일의 상황과 당대 지식인들의 대응을 정말 상세하게 서술한 책이기 때문이다. 헤겔은 지역적 전통과 특수성을 고수하는 고향 마을의 특수주의와 인간 보편의 가치를 내세우는 근대 국가의 보편주의 사이의 긴장과 갈등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의 철학은 대립하는 그 두 입장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핀카드는 설명한다.
  
  독일어 연습시간으로 전락한 철학 세미나…헤겔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다
  
  각종 자료와 정보의 충실성에 있어서 가히 필적할 경쟁서가 없어 보이는 이 책은 전문적인 학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즐거운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까? 나는 앞에서 담배 가게 아저씨처럼 친근한 헤겔을 언급한 바 있다. 나는 평전의 형태를 띤 이 책이 헤겔을 그렇게 친근한 인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일반인들에게도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헤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헤겔을 공부하기로 해놓고도 언어의 장벽에 막혀 답보하다가 독일로 떠날 때, 정말이지 나는 헤겔을 읽으면서 그의 목소리를 한 번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열망으로 가득했다. 독일어라는 높은 장벽에 가로막혀 수도 없이 절망해야 했던 날들이 내 안에 헤겔의 목소리를 향한 열망을 키워놓았다. 진리의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여 대학원에 들어온 초롱초롱한 눈들이 열 개 쯤 자발적으로 모여 칸트를 읽었는데, 대부분의 시간이 독일어 문법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채워졌다. 안타깝게도 번역서들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진지하게 인정하고 고민해야 할 장벽이었는데, 그 때는 그냥 별 것 아닌 놈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독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제발 독일어 문법 안 따지면서 철학책 한 번 읽어보자는 생각이 나를 움직였다.
  
  헤겔을 알려면 물론 헤겔을 직접 읽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10년 전에 내가 그랬고 지금도 적잖이 그렇듯이 이 나라의 학생 대부분은 그 최선의 길을 갈 수가 없다. 잘 이해가 안 되는 한국어나 영어 번역판을 앞에 놓고 머리카락을 쥐어뜯노라면 복장이 터진다. 차라리 원서가 낫다는 말 절로 나오고, 초롱초롱한 눈들의 철학 세미나는 다시 독일어 연습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철학자 칸트나 헤겔의 목소리는? 철학을 해본 독자는 알 것이다. 전혀 안 들린다. 그들이 사람이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들이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을 구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 왜 그랬을까, 전혀 안 들었다.
  
  평전을 통해 '인간 헤겔'을 느껴보자
  
  그래서 나는 평전이라는 장르에 큰 매력을 느낀다. 사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원한 철학의 거장' 헤겔은 꼭 200년 전에 <정신현상학>의 원고를 완성하여 불멸의 지위에 올랐다. 그런데 바로 그 해(1806년)에 그는 사생아 아들의 출생을 참담한 심정으로 기다리며 수입이 보장된 일자리를 찾아 백방으로 헤매고 있었다. 그의 인생이 바닥에 이르러 삽질을 하던 때였던 것이다.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에는 원서에는 없지만 옮긴이들의 주장으로 덧붙여진 부록이 있다. 헤겔이 쓴 <정신현상학>의 서문이 그것이다. 나는 헤겔을 사람으로 보게 된 일반 독자들에게 그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나는 번역가로서 그 <정신현상학> 서문의 번역에 가장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일단 죽어 상품이 된 다음, 시장에서 부활해야 한다는 것이 이 시대의 준엄한 정언명령인 것 같다. 판에 박힌 논술 공식들이 길잡이별로 높이 떠 철학을 원하는 젊은 정신들을 인도하는 이 시대에, 자꾸자꾸 얕아지기만 하는 출판시장의 악다구니 속에서, 우선 가격과 두께에서부터 소비자를 겁주는 이 책이 당당히 부활할 수 있다면, 그건 그냥 그 자체로 '희망'이라 불러도 좋은 놀라운 사건이 될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정녕 그럴 수 있다면, 이 책은 기꺼이 여름용 베개라도 되고 싶다.
   
 
  전대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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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과학을 읽다

과학책 읽기에 관한 한국일보의 좌담회를 작업실에 스크랩해놓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마침 오늘부터 '과학을 읽다'가 연재된다고 하니까 이에 맞춰서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한국일보(06. 08. 08) "수학·과학 알면 교양에 날개단 격이죠"

'엔트로피'나 '불확정성의 원리'와 같은 자연과학 용어가 사회현상을 설명하거나 철학적 용어로 차용된 지 오래다. 하지만 정작 그 뜻을 이해하는 이들은 드물다. 과학책이라면 손대지 않은 풍토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과학책을 통해 교양의 폭을 넓히기 위한 시리즈 '과학을 읽다' 연재(8월15일자부터 과학면 게재)를 앞두고 좌담회를 열었다. 우수과학도서를 선정하고 저술을 지원하는 과학문화재단의 나도선 이사장, 인기 과학책 저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과학도서 전문 출판사인 승산의 황승기 대표가 자리를 함께 했다.



=과학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가 적습니다. 과학책을 많이 안 읽는 이유가 뭘까요?

나도선 과학문화재단 이사장=과학책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책을 잘 안 읽는 게 문제입니다.

황승기 승산출판 대표=요즘은 그래도 웬만큼은 팔립니다. '파인만의 QED(양자전기역학) 강의'를 출판할 때 이렇게 어려운 걸 교양서로 냈다니까 언론에서 전혀 다루지 않았는데 1만7,000권이나 나갔죠. 이공계 출신 중 양자전기역학을 어려워했던 이들이 읽는 것 같아요(*의외로 많이 나갔군! 교양물리학 전도사로서 파인만은 가히 '천재적'인데, 그의 책들이 원래부터 많이 나간 건 아니었다.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사이언스북스, 2000) 같은 경우 나는 <파인만씨, 농담도 정말 잘하시네요!>(도솔, 1989)로 읽었었는데, 그때만 해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던 책이었다. 책은 내용으로만 승부하는 게 전혀 아닌 것.)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이공계 출신과 수험생 덕분에 과학책들이 팔리죠. 문제는 번역서에 비해 국내 저술서가 너무 빈약하다는 점입니다. 많은 책들이 정작 과학내용이 없고 거의 만화 수준입니다. 쉽게 쓴다고 알맹이는 빼놓고 냄새만 풍긴다면 과학책이 아니죠.

=하지만 그렇게 저술할 수 있는 분들이 적죠.

나 이사장= 과학에서 성공한 과학자가 대중 과학서를 쓰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해요. 과학자들이 그 쪽으로는 인식을 못하고, 능력을 개발하지 않기도 했죠. 사실 연구자로 성공하려면 다른 데 눈을 못 돌리는데, 원로들이 책 쓰는데 좀더 참여했으면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문화재단은 과학문화총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최 교수=대중활동을 많이 하는 저는 막말로 '골 빈 과학자'로 꼽힙니다. 연구나 하라는 핀잔도 많이 들었죠. 물론 연구에 분ㆍ초를 다투는 분야에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제 분야는 아주 길게 연구하는 분야이니 대중활동을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과학문화 특임교수제를 만들어 대중활동을 업적으로 평가하면 실효가 있을 것입니다. 또 과학자뿐 아니라 전문 과학 저술가층을 두텁게 해야 합니다. <붉은 여왕>을 쓴 매트 리들리는 기자였지요. 역시 기자인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은 과학자가 쓴 책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오죽하면 과학자들이 학회에 그를 초청해 강연을 들었습니다(*나는 두 사람의 책을 모두 갖고 있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과학책을 왜 읽어야 할까요.

황 대표=정말 똑똑하고 경영도 잘 하는 경영자 중에서 가끔 너무 뻔한 것에 속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만 보니 수학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안 돼 있어 그런 것 같아요. 과학책은 이공계 출신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인문·사회과학적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 과학을 알면 날개를 단 것입니다.

나 이사장=저는 '여성의 과학하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학생들이 과학을 잘 할 수 없다는 선입견 많은데 현대과학은 육체적 노동도 아니고 치밀함과 집념을 갖고 하는 것이기에 여성들 하기에 적합한 분야입니다. 이러한 꿈을 키우기 위해선 과학책을 많이 읽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최 교수=지난해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에서 "왜 글 잘 쓰는 과학자가 성공하느냐"는 주제로 강연을 했습니다.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모리스 윌킨스, 제임스 왓슨, 프란시스 크릭이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화학실력이 달렸던 왓슨은 처음에 좀 웃음거리였어요. 그런데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기억하고, 미국 의회에서 휴먼게놈프로젝트를 해야 한다고 손을 들어 밀어붙인 것은 왓슨이었습니다. 그가 '이중나선'을 써서 그렇다는 거죠. 이 책은 일반인은 물론 동료 과학자에게도 DNA에 대한 인식을 크게 높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감명 깊었던 책이나, 추천할만한 과학책을 꼽는다면.

 

 

 



나 이사장=특히 학생들은 과학자를 인간으로 보는 것이 가슴에 와 닿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여성 과학을 만나다>(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편저)는 우리나라 곳곳에 여성 과학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 수 있어 좋습니다.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브렌다 매독스)도 꼭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최 교수=미국에 '동물의 왕국'을 공부하러 갔는데 밤새 읽고 난 뒤 세상이 다르게 보인 책이 바로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입니다(*최교수의 해제는 언젠가 옮겨놓은 듯하다). <이중나선>은 과학자 되고 싶은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책이죠. 특히 내가 정말 과학자가 될 수 있을까 회의하는 사람들에게요. 과학이 인문학과 만나 영역이 넓어져야 한다는데 <총 균 쇠>(재러드 다이아몬드)가 그런 책입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여전히 10위 안에 듭니다. 저자의 근저인 <문명의 붕괴>도 꼭 읽어보십시오.

 

 

 



황 대표=책을 출판하느라 어떤 책은 30번 이상 읽는데 그냥 지나쳤던 내용이 새삼 다가옵니다. <엘러건트 유니버스>(브라이언 그린)를 읽고 발견한 것이, 뉴턴이 자연법칙에 접근하는 방식과 아인슈타인의 방식이 다르고, 위튼(초끈이론의 대가)의 접근 방식이 또 다르다는 점입니다. 현대에 뉴턴 식으로 해선 과학자로서 성공할 수 없어요.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는 고등학생들이 서너번은 읽어야 할 책입니다. 제가 학원 수학 강사를 할 때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했더니 1명이 읽고 "서울대 논술 준비는 이제 끝났다"고 했답니다.(진행·정리=김희원기자)

06. 08. 08./0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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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라주미힌 > Sealed with a kiss / Bobby Vinton

Sealed with a kiss / Bobby Vinton





Sealed with a kiss / Bobby Vinton
Though we gotta say goodbye for the summer
비록 여름동안 헤어져 있어야 하지만

Darling I promise you this
사랑하는 그대여, 이것만은 약속할께요

I'll send you all my love every day in a letter
매일마다 편지속에 내 모든 사랑을 담아 보내겠어요

Sealed with a kiss
키스를 봉해서

Yes it's gonna be a cold lonely summer
그래요, 서글프고 외로운 여름이 되겠지만

But I'll fill the emptiness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겠어요

I'll send you all my dreams every day in a letter
매일마다 편지속에 내 모든 꿈들을 실어 보내겠어요

Sealed with a kiss
키스를 봉해서

I'll see you in the sunlight
찬란한 햇빛 너머 그대 모습을 볼거예요

I'll hear your voice everywhere
어디에서나 그대의 목소리를 들을 거예요

I'll run to tenderly hold you
그대를 살포시 안아보려 뛰어갈 거예요

But darling you wont be there
하지만 사랑하는 그대는 그곳에 없겠지요

I dont wanna say goodbye for the summer
여름동안 잘 있으라는 인사는 하고 싶지 않아요

Knowing the love we'll miss
우리 둘 다 사랑의 순간을 아쉬워 할 테니까

Oh let us make a pledge to meet in September
오,우리 9월이 오면 다시 만나기로 맹세해요

And seal it with a kiss
그리고 그 맹세 위에 키스를 봉하는 거예요

Yes it's gonna be a cold lonely summer
그래요, 서글프고 외로운 여름이 되겠지만

But I'll fill the emptiness
마음의 허전함을 채우겠어요

I'll send you all my dreams every day in a letter
매일마다 편지속에 내 모든 꿈들을 실어 보내겠어요

Sealed with a kiss
키스를 봉해서

Sealed with a kiss
키스를 봉해서

Sealed with a kiss
키스를 봉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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