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동아시아의 패러다임 변환과 다중거울
강상규 지음 / 논형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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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은 지도를 하나씩 받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인생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역사'는 지도 없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미로와 같다. '19세기 동아시아의 패러다임 변환과 다중거울'은 독자에게 훌륭한 지도이자 돋보기가 되어준다.

19세기 서세동점의 시기는 문명기준 역전, 문명충돌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중화질서가 전복되는 패러다임 변환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막을 수 없는 거대한 물결처럼 동아시아 삼국을 덮쳤고, 각 나라의 대응은 각자의 역사와 처한 상황만큼이나 달랐다. 이를 보기 위해선 큰 지도가 필요하다.

거대한 물결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하나하나의 사건과 대응으로 전개된다. 이 책의 3장에 나오는 갑오년 의제개혁과 관련한 공방처럼 돋보기로 보듯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배경과 의미 등 전말이 파악되는 것이다. '다중거울'이란 자세하게 볼 뿐 아니라 다각도로 비추어 입체적으로 보게 하는 눈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미덕은 큰 그림을 비추면서 자세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세히'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해석이기도 하지만, 발전사관이란 하나의 시각으로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보여준다는 의미이다. '거대한 역사를 이해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오늘을 헤쳐가는 데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다중거울'과 이를 활용하는 안목, 지혜가 필요'(47쪽)하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2장은 한국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조선개화파의 원조 박규수와 청년 고종의 인간적 정치적 관계, 현실정치 공간에서 그들의 모습 등을 살려내고 있다. 3장은 19세기 후반이라는 격동기에 가장 격렬하게 진행되었지만, 지금까지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갑신년 여름 의제개혁 공방을 다루고 있다. 안타깝게도 역사의 새로운 물꼬를 트려는 청년 고종의 노력은 큰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사장되고 말았다.

1장에서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조선사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가 유포되고 수용되는 과정을 고찰하고 있다. 4장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주권국가', '국제관계'와 같은 표현들이 등장하고 정착되는 과정을 추적하며, 19세기 동서문명이 폭력적으로 만나는 지점에 있는 만국공법의 의미를 재음미하고 있다.

마지막 5장에서는 마치 독자와 대화를 하듯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최종적으로 '새로운 세기의 한반도는 어디로 가야 하며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역사적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로 귀결된다. 저자의 연구는 21세기 현재 한반도가 직면한 거대한 변화 징후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예비작업(p.182)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전문서임에도 교양서로도 손색이 없다. 19세기 역사에 대한 저자의 고민을 공감하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본문에서 3분의 2 정도 차지하는 넓이의 각주는 저자의 열린 마음만큼이나 열린 형태로 내용의 무게를 따라가는 독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장점이 있다.

 


부산시민도서관 사서 조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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