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월드 1 - 마법의 색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테리 프래쳇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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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검과 마법, 다양한 이종족과 신들까지. 이쯤되면 어지간한 판타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재료들이다. 하지만, 디스크월드의 구성원들은 전형적인 설정에서 어딘가 조금씩(?) 어긋났달지 현실적이랄지. 아무튼, 재미있다.

거북이 등짝위에 놓인 거대한 땅덩어리라는 설정부터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전사네 마법사네 하면서 등장하는 인물들도 사리사욕과 공명심을 너무도 솔직하게 드러내곤 한다.

디스크월드에 대한 짧은 소개에서 호기심을 자아내고, 모험의 땅 앙크모포크에 관광온 두송이꽃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황금도시에서 왔다는 두송이꽃은 책으로만 보던 전사와 마법사, 드래곤 같은 것들을 직접 보기 위해 이 땅에 "관광" 왔다. 커다란 짐짝을 끌고 다니면서 돈을 뿌리고 가는 곳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이 영락없는 관광객이다. 어떤 황당한 상황이 닥쳐도 즐겁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까지도. 마치 테마파크에 놀러온 것마냥 두송이꽃은 그에게 닥쳐오는 환상적인 모험들을 즐긴다.

그에 비해 어찌어찌 안내를 맡게 된 어설픈 마법사 린스윈드는 몇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다. 명색이 마법사면서 위기의 순간마다 쩔쩔매고 궁상이나 떠는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보는 이를 유쾌하게 한다.

대사는 없지만 주인인 두송이꽃을 따라다니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짐짝'도 놓칠 수 없는 매력 캐릭터다. 린스윈드를 집요하게 따라다니지만 번번이 놓치고 마는 어딘가 어설픈 사신이나 '반'투명드래건에서는 그냥 폭소. (희대의 괴작 <투명드래곤>을 떠올려 버렸다. -_-;)

기초가 튼튼하지만 무겁지 않고,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는 이야기였다. 갑갑한 일상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면 환상과 모험이 가득한 디스크월드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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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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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나 애니메이션은 곧잘 보지만,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딱히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실격에 대해 처음 알게 됐던 건 몇 해 전인가 오바타 타케시가 표지를 그렸다는 소식을 통해서였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듯이 오바타 타케시는 <고스트 바둑왕(히카루의 바둑)>, <데스노트> 등을 그린 일본의 유명 만화가. 그가 표지를 그린 <인간실격>은 상당한 판매고를 기록했다고 들었다. 나중에는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오바타 타케시는 여기서도 캐릭터 원안를 맡았다고 한다.

오바타 타케시의 그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거 하나 때문에 원서를 구해 읽을 만큼은 아닌지라 결국 평범한(...) 표지의 번역서를 읽게 되었다.

"세계문학전집"이란 꼬리표가 달려 있어서 진부하고 따분하지 않을까 했는데, 어느 순간 정신없이 읽어내려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도 놀랐다. 주인공이 눈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마치 20세기 중반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독백조의 문체. 존재 자체가 허무인 한 인간의 심리를 흐르듯이 하지만 집요하게 따라가는 문장들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참 이상한 느낌의 소설이다. 좋으면서 싫고 좋지 않으면서 싫지 않고. 나약한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한 문장들이 공감이 가면서도 너무 집요하게 파고들어 가슴속 아주 깊은 곳까지 콕콕 찔러댈 때는 불쾌해진다. 내가 이미 "세상"에 물들어 버려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허무와 절망, 끝없는 추락같은 것들로 채워져 답답하면서도 진부한 희망이나 가식적인 정의를 남기지 않고 끊어버려 처절한 고통과 허무만 남기는 게 오히려 마음에 들기도 한다. 자전적이고 뭐고 이전에 이런 글을 쓰는 작가의 마음이 어땠을지 막연하게 짐작해보며 창작자의 고통이 우리의 행복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이 작품은 1948년에 쓰여졌다고 한다. 몇번이나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우울증에 빠진 작가 개인의 심리도 반영되었겠지만, 아마 패전후 일본의 불안한 정세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미 수십년이 흐르고 세기가 바뀌었지만 현대인의 불안한 심리는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인터넷이니 소셜네트워크니 하는 첨단 기술이 쏟아져도 여전히 개인은 고독과 불안속에서 허우적대고 인간들은 가식속에서 서로를 공격하기 바쁘다. 21세기에도 읽히는 <인간실격>을 보며 이것이 문학인가, 이것이 인간인가 싶어 씁쓸한 미소를 떠올려볼 뿐이다.

 
같이 수록된 단편 <직소>. 뭔가 했더니 성경에 나오는 가롯 유다의 이야기더라지.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신성모독이네 어쩌네 하며 비판하려들지 모르겠지만, 그냥 한 인간의 넋두리 정도로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사랑과 질투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나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 놓으면서도 예수님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올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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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4
제임스 미치너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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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단순히 소설의 제목이 "소설"이라니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 이렇게 네 부류에 속하는 각각의 인물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게 흥미롭기도 했다. 첫번째 장인 작가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을 때는 조금 지루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에 빠져들어 책을 중간쯤 넘길 때는 뭔가 이상한 걸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니다. 소설이 맞긴 맞는데, 소설이 쓰여지고 책으로 만들어지고 세상에 나와 읽히고 잘난 비평가들로부터 씹히기까지의 과정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설명해 놓은 안내서이기도 하다. 소설을 둘러싼 갖가지 인생들을 다채로우면서도 생동감 있게 표현함으로써 그 어떤 작법서나 이론서 이상의, 아니 전혀 다른 차원의 깊이와 통찰로 소설을 이해하고 느끼게 해준다.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붙인다면 "20세기" 소설이라는 점이다.

인물들이 겪는 갈등도, 소설을 놓고 이루어지는 온갖 고민과 논쟁들도 20세기를 배경에 깔고 있다. 본문에서 미래의 책을 잠깐 언급하기도 하지만, 21세기의 우리는 20세기와는 다른 출판 환경을 살고 있다.

이 책에서는 타자기라도 등장하는데, 이미 우리는 컴퓨터로 글을 쓰는 데 익숙하다. 요즘 시대에 어느 작가가 구식 타자기를 사용한다거나 손으로 직접 글을 쓴다고 하면 아마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작가와 독자의 커뮤니케이션도 네트워크를 통해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이루어진다. 블로그나 트위터로 작가가 독자를 만나는 시대다.

어쩌면 기술적이고 실무적인 부분은 지금의 출판 환경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을 만들고 읽는 인간의 삶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작가들은 여전히 텅 빈 모니터를 앞에 놓고 무엇을 왜 어떻게 쓸 지에 대해 고민한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물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서도 여전히 소설은 소비되고 있다.

소설을 놓고 벌이는 논쟁과 고민들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시대에 소설이 가벼워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디지털 기술이 소설의 지평을 넓힐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스트라이버트에 동의하냐 마냐 차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시대의 소설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느냐의 문제다.

비평가까지는 아니지만 소설을 읽을 때 나도 나름의 관점을 갖고 있다. 똑같이 인쇄된 책을 읽는다고 해도 백 명의 독자가 있다면 백 가지 이야기가 있다. 책 읽기, 특히나 문학 읽기는 다분히 개인적인 영역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하고 각자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읽는 것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도 제각각 처한 입장이나 성격에 따라 같은 소설에 대해서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었다. 종종 서로 대립하고 감정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이 내는 삶의 소리들이 소설이라는 교형곡 속에서 나름의 화음을 이뤄가는 부분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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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떻게 죽는가 (보급판 문고본)
셔윈 B. 뉴랜드 지음, 명희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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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사실에 근거하면서도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며 다분히 문학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이런 책들은 매번 흥미롭고 재미있다. 책을 집어들 때 뭔가를 알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지만, 호기심과 탐구심은 결국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대상과 맞서기 위한 인간의 기본 스킬이다. 죽음이라는 궁극의 최종 보스가 대상이라면 더더욱 긴장하게 된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인간이 "어떻게(How)" 죽는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노화나 질병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죽음에서부터 사고나 살인, 자살같은 갑작스런 죽음까지.

현장에서 수십년 동안 활동한 의사로서 과학적 사실로 죽음의 과정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개인의 경험과 주변의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감정에 호소하는 문장들이 많이 쓰였다. 이런 방식이 공감을 불러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다분히 저자의 주관이 담겨있다. 치료행위, 특히나 죽음이라는 극단적 상황과 연결되는 의사의 판단과 행동은 윤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에 서술자의 가치 판단이 들어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만큼 논란의 여지도 있다.

인간의 피끓는 감정과 지성 같은 것들을 단순히 수식과 생화학 원리로 설명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관점에서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우주의 오묘함을 현재의 과학기술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죽음 같은 극단적 상황이 이상하고 잘못 된 것 혹은 오래된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속에서 순리에 따른 결과일 뿐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안도하게 된다.

"그저 때가 되니까 죽는 겁니다." - 269쪽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이 책은 산 자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죽음의 과정에서 "How"는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죽음 자체의 "What"은 어쩌면 영원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 죽음이 무엇인지, 죽음뒤에 무엇이 있는지, 종교에서는 무수히 많은 말들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과학의 권능 밖에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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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 파크 Nobless Club 22
김지훈 지음 / 로크미디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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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뜸하던 노블레스클럽에서 간만에 내놓은 <크레타 파크>. 도입부를 읽는 순간부터 같은 레이블의 이전 작품인 <뉴욕 더스트>와 비슷한 향기가 났다. 물리적 또는 생화학적 방법으로 신체를 강화해 전투에 이용한다는 설정부터 초인적인 전투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정체를 숨기고 평범한 일상을 꿈꾼다는 점에서 두 작품의 기본틀은 여러가지로 비슷하다. <뉴욕 더스트>가 꽃파는 남자였다면 <크레타 파크>는 책덕후라는 정도의 차이.

여기에 나름 능력있는 여성이면서 결국은 왕자님이 구해주기를 기다리는 히로인이나 중간에 끼어드는 제멋대로인 소녀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사랑이야기라고 말하지만 다분히 남성 중심적이고 심하게 비틀려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 렘지가 책읽기를 좋아한다고 설정해서 그런지 본문에서는 지겨울 정도로 잡다한 지식을 늘어놓곤 한다. 그것까지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그에 비해 대놓고 주변 인물들을 사이코에 저능아 취급하곤 하는 부분은 솔직히 좀 짜증이 났다. 하긴, 주인공을 위해 조연들을 희생시키는 방법도 여러가지이니까.

그래도 <뉴욕 더스트>에 비하면 좀더 지적이고 세련되어 보이기는 한다. 주인공의 잘난 척 아는 척이 거슬리지만 않는다면 적당히 유머러스하고 시니컬한 문장도 나름 재미있고, 첨단기술을 이용한다는 설정이지만 요정이니 인어니 하는 환상속 존재들을 등장시켜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크레타 파크>만의 장점도 있지만 결국 결론도 비슷하게 나온다. 만약 대여점에 꽂혀 있었다면 제법 "있어 보이는" 책이 될 수도 있겠지만 서점에서 국내외의 쟁쟁한 작품들과 나란히 진열된다면 "글쎄"라는 물음표를 달아주고 싶을 것 같다. 오랜만에 나온 신간이라 기대가 컸던 탓일까. 나쁘지는 않지만 썩 만족스러운 독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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