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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4
제임스 미치너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처음에는 단순히 소설의 제목이 "소설"이라니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 이렇게 네 부류에 속하는 각각의 인물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게 흥미롭기도 했다. 첫번째 장인 작가의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을 때는 조금 지루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에 빠져들어 책을 중간쯤 넘길 때는 뭔가 이상한 걸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니다. 소설이 맞긴 맞는데, 소설이 쓰여지고 책으로 만들어지고 세상에 나와 읽히고 잘난 비평가들로부터 씹히기까지의 과정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설명해 놓은 안내서이기도 하다. 소설을 둘러싼 갖가지 인생들을 다채로우면서도 생동감 있게 표현함으로써 그 어떤 작법서나 이론서 이상의, 아니 전혀 다른 차원의 깊이와 통찰로 소설을 이해하고 느끼게 해준다.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을 붙인다면 "20세기" 소설이라는 점이다.
인물들이 겪는 갈등도, 소설을 놓고 이루어지는 온갖 고민과 논쟁들도 20세기를 배경에 깔고 있다. 본문에서 미래의 책을 잠깐 언급하기도 하지만, 21세기의 우리는 20세기와는 다른 출판 환경을 살고 있다.
이 책에서는 타자기라도 등장하는데, 이미 우리는 컴퓨터로 글을 쓰는 데 익숙하다. 요즘 시대에 어느 작가가 구식 타자기를 사용한다거나 손으로 직접 글을 쓴다고 하면 아마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작가와 독자의 커뮤니케이션도 네트워크를 통해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이루어진다. 블로그나 트위터로 작가가 독자를 만나는 시대다.
어쩌면 기술적이고 실무적인 부분은 지금의 출판 환경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을 만들고 읽는 인간의 삶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작가들은 여전히 텅 빈 모니터를 앞에 놓고 무엇을 왜 어떻게 쓸 지에 대해 고민한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물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서도 여전히 소설은 소비되고 있다.
소설을 놓고 벌이는 논쟁과 고민들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시대에 소설이 가벼워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디지털 기술이 소설의 지평을 넓힐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스트라이버트에 동의하냐 마냐 차원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시대의 소설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느냐의 문제다.
비평가까지는 아니지만 소설을 읽을 때 나도 나름의 관점을 갖고 있다. 똑같이 인쇄된 책을 읽는다고 해도 백 명의 독자가 있다면 백 가지 이야기가 있다. 책 읽기, 특히나 문학 읽기는 다분히 개인적인 영역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하고 각자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읽는 것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도 제각각 처한 입장이나 성격에 따라 같은 소설에 대해서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었다. 종종 서로 대립하고 감정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이 내는 삶의 소리들이 소설이라는 교형곡 속에서 나름의 화음을 이뤄가는 부분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