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구역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세상에 끝이 있을까’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노래는, 만약 그 순간이 온다면 노래를 하겠다고 한다. 낡지도 새롭지도 않은 노래, 당신을 위한 노래를. 세상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제1구역은 질병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좀비가 된 시대의 맨하탄을 부르는 새로운 이름이다. 이 세계에는 인류 문명의 재건을 꾀하는 본부 ‘버펄로’와 그 주도아래 행동하는 해병대와 수색팀 등이 있다. 주인공 마크 스피츠, 게리, 리더 케이틀린은 수색팀 ‘오메가’로 제1구역을 ‘청소’한다. 그리고 제1구역은 오메가팀이 끔찍한 3일의 주말을 맞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세심하고 끈질긴 묘사와 설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내일, 아니 당장 다음 순간에 죽을 듯이 행동하는 사람, 가망 없는 먼 미래의 일을 실행에 옮기려는 사람, 너무 급격하게 변해버린 현실에 이상행동을 보이는 아주 많은 사람들. 사람들은 과거의 평범한 순간에서 위로를 받고 현재의 평범한 순간에서 희망을 갖는다. 


두꺼운 책, 위트 넘치는 문장은 독서가 지루하지 않게 해주며 작가가 꽤 재밌는 사람일거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으며 생각해본다. 이 세상에 끝이 있다면, 나는 어떤 추억을 가지고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모두들 나름대로 망가져 있었다. 지금은 그것이 각자의 개성이었다. - P48

그는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과연 그들보다 빨리 뛸 수 있을지 계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는 일을 그만두었다. - P167

‘누구든 이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에게. 가까이 오지마. 도와줘요. 날 기억해요.‘ - P3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프랑수아 아르마네 지음, 김희진 옮김 / 문학수첩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당신이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세 권의 책은?"


프랑수아 아르마네와 질 앙크틸이 10년에 걸쳐 세계의 작가들에게 

<르누벨옵세르바퇴르>의 인터뷰와 서신으로 건넨 질문이다. 



무인도에 책을 가져갈 수 있다. 그것도 세 권이나. 


질병이나 전쟁으로 고립된 도시가 더 현실적이지만 아무튼, 무인도다. 어제 방송에서 거북손 가득한 작은 바위섬이 나왔지만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발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부드러운 모래, 안전한 기후, 호의적이고 먹을 수 있는 동식물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책이 필요한 이유는 그 곳이 바로 무인도이기 때문에, 책은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호메로스는 진정한 무인도는 없으며 사람 없는 섬에는 모두 유령이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유령을 매우 좋아한다. (바실리스 알렉사키스, p.25)



내 가벼운 책장을 뒤져 무인도의 준비물을 챙긴다면, 첫번째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을 고르겠다. 무인도라는 절망과 고독에 마주할 때 가장 힘이 될 낙천적인 친구이자, 다시 세상을 온 마음을 다해 살아갈 수 있도록 일으켜줄 책이다. 


두번째 책은 이 책에서도 많이 선택한 <장자>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우화에 스며든 장자의 철학은 나 역시 기나긴 시간의 한 부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줄 것이다. 


세번째 책은 아직 찾지 못한 이유로… <SAS 서바이벌 가이드>를 가져가고 싶다. 배 건조와 항해술에 관련한 책이 있다면 더 좋을텐데 말이다. 


오늘도 내 방의 좁고 작은 책장을 두고 책들은 결투를 벌인다. 



내가 무인도에 가져갈 책 세 권은 내가 남겨두고 떠나는 세상을 담아야 하고, 빈곳을 채우고, 인생을 다시 그려야 한다. 그 책들은 내게 속세의 관계를 잊게 해주어야 한다. 적어도 고독이 연출자를 맡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야 한다. (알랭 마방쿠, p.141)



영미문학을 좋아한다면 틀림없이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성경과 셰익스피어를 제외한다는 조건을 붙였지만, 그 둘을 선택한 작가들이 많다. 특정 작가 선집도 반칙이지 않을까. 많은 사랑을 받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돈키호테>, <모비딕>, <율리시스>, <안나 카레니나>, 보르헤스와 체호프, 발자크 등등. 나딤 아슬람과 리처드 플래너건은 <안나 카레니나>를 삼창했다. 


고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소설을 가져가야 한다는 작가와 소설은 싫다는 작가, 요리책을 선택하는 작가, 고대 그리스어 교본과 오디세이아, 백과사전, 전화번호부, 그리고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백지 책을 가져가서 무언가를 적고 싶다는 작가와 그저 빈 종이를 바라만 보고 싶다는 작가가 있다. 시집을 가져가는 작가도 많은데 시를 어려워하는 나에게는 너무 놀라운 선택이다. 


J.B.밸러드를 보고 내가 막연히 좋아하는 그 밸러드가 맞나 생각했는데 그가 고른 책 <이방인>, <멋진 신세계>, <메뚜기의 날>을 보니 확실히 그 밸러드가 맞다. 요 네스뵈의 <맥베스>신간 예고도 보인다. <백년의 고독>, <암흑의 핵심>은 올해 안에 읽어보고 싶어졌다. 


수많은 작가들이 세 권의 책과 사소한 이야기를 들고 독자를 기다리는 책이다. 



80대에 들어서는 지금, 이 세 권의 책은 나에게 소중한 모든 것을 요약해서 나타낸다. 나는 이 작품들이 언제까지나, 영원을 넘어서까지 존재하기를 소망한다. (가말 기타니, p. 94)




2001년 12월 3일, 보르헤스의 미발표 자필 원고 경매가 열렸다. 

그날 카스티야어로 빽빽하게 쓴 세 페이지의 원고가 발견됐는데, 

그 글에서 보르헤스가 무인도에 가져갈 세 권의 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수리 철학 서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같은 형이상학 책 한 권, 

플루타르크나 기번 혹은 타키투스의 역사서 한 권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의외의 선택을 통해 보르헤스가 새로운 해석의 문을 열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이상적인 서재라는 유혹을 일깨우는 세 가지 테마, 세 가지 분야.”


독자 입장에서는 대부분 그가 쓴 책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작가가 어떤 책을 골랐느냐도 흥미로운 주제겠지만, 분명 그 선택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나 의견을 통해 더 많은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출판사 책 소개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