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프랑수아 아르마네 지음, 김희진 옮김 / 문학수첩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당신이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세 권의 책은?"


프랑수아 아르마네와 질 앙크틸이 10년에 걸쳐 세계의 작가들에게 

<르누벨옵세르바퇴르>의 인터뷰와 서신으로 건넨 질문이다. 



무인도에 책을 가져갈 수 있다. 그것도 세 권이나. 


질병이나 전쟁으로 고립된 도시가 더 현실적이지만 아무튼, 무인도다. 어제 방송에서 거북손 가득한 작은 바위섬이 나왔지만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발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부드러운 모래, 안전한 기후, 호의적이고 먹을 수 있는 동식물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책이 필요한 이유는 그 곳이 바로 무인도이기 때문에, 책은 우리의 외로움을 달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호메로스는 진정한 무인도는 없으며 사람 없는 섬에는 모두 유령이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나는 유령을 매우 좋아한다. (바실리스 알렉사키스, p.25)



내 가벼운 책장을 뒤져 무인도의 준비물을 챙긴다면, 첫번째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을 고르겠다. 무인도라는 절망과 고독에 마주할 때 가장 힘이 될 낙천적인 친구이자, 다시 세상을 온 마음을 다해 살아갈 수 있도록 일으켜줄 책이다. 


두번째 책은 이 책에서도 많이 선택한 <장자>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우화에 스며든 장자의 철학은 나 역시 기나긴 시간의 한 부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줄 것이다. 


세번째 책은 아직 찾지 못한 이유로… <SAS 서바이벌 가이드>를 가져가고 싶다. 배 건조와 항해술에 관련한 책이 있다면 더 좋을텐데 말이다. 


오늘도 내 방의 좁고 작은 책장을 두고 책들은 결투를 벌인다. 



내가 무인도에 가져갈 책 세 권은 내가 남겨두고 떠나는 세상을 담아야 하고, 빈곳을 채우고, 인생을 다시 그려야 한다. 그 책들은 내게 속세의 관계를 잊게 해주어야 한다. 적어도 고독이 연출자를 맡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야 한다. (알랭 마방쿠, p.141)



영미문학을 좋아한다면 틀림없이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성경과 셰익스피어를 제외한다는 조건을 붙였지만, 그 둘을 선택한 작가들이 많다. 특정 작가 선집도 반칙이지 않을까. 많은 사랑을 받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돈키호테>, <모비딕>, <율리시스>, <안나 카레니나>, 보르헤스와 체호프, 발자크 등등. 나딤 아슬람과 리처드 플래너건은 <안나 카레니나>를 삼창했다. 


고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소설을 가져가야 한다는 작가와 소설은 싫다는 작가, 요리책을 선택하는 작가, 고대 그리스어 교본과 오디세이아, 백과사전, 전화번호부, 그리고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백지 책을 가져가서 무언가를 적고 싶다는 작가와 그저 빈 종이를 바라만 보고 싶다는 작가가 있다. 시집을 가져가는 작가도 많은데 시를 어려워하는 나에게는 너무 놀라운 선택이다. 


J.B.밸러드를 보고 내가 막연히 좋아하는 그 밸러드가 맞나 생각했는데 그가 고른 책 <이방인>, <멋진 신세계>, <메뚜기의 날>을 보니 확실히 그 밸러드가 맞다. 요 네스뵈의 <맥베스>신간 예고도 보인다. <백년의 고독>, <암흑의 핵심>은 올해 안에 읽어보고 싶어졌다. 


수많은 작가들이 세 권의 책과 사소한 이야기를 들고 독자를 기다리는 책이다. 



80대에 들어서는 지금, 이 세 권의 책은 나에게 소중한 모든 것을 요약해서 나타낸다. 나는 이 작품들이 언제까지나, 영원을 넘어서까지 존재하기를 소망한다. (가말 기타니, p. 94)




2001년 12월 3일, 보르헤스의 미발표 자필 원고 경매가 열렸다. 

그날 카스티야어로 빽빽하게 쓴 세 페이지의 원고가 발견됐는데, 

그 글에서 보르헤스가 무인도에 가져갈 세 권의 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수리 철학 서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같은 형이상학 책 한 권, 

플루타르크나 기번 혹은 타키투스의 역사서 한 권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의외의 선택을 통해 보르헤스가 새로운 해석의 문을 열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이상적인 서재라는 유혹을 일깨우는 세 가지 테마, 세 가지 분야.”


독자 입장에서는 대부분 그가 쓴 책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작가가 어떤 책을 골랐느냐도 흥미로운 주제겠지만, 분명 그 선택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나 의견을 통해 더 많은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출판사 책 소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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